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1)
“그게 무슨 말씀…….”
“말 그대로란다. 그래서 말인데, 라피네의 성년식이 지나면 청혼서를 보내 보는 게 어떻겠니?”
“…….”
제르칸은 잠시 그대로 굳었다.
라피네가 여전히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황후가 대답 없는 제르칸을 재촉하자,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가 버렸다.
‘기쁘지 않은 건가?’
황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정말 속을 알 수 없었다.
* * *
곧바로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제르칸은 자리에 앉질 못하고 왔다 갔다 서성였다.
솔직히 말해서 어머니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분명했다.
왜냐면 아까 전 마주친 라피네는…….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어 보였는데.’
그렇게 태도가 딱딱하고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하는가.
만약 어머니 말이 사실이라면…….
‘……부끄러워서 티를 내지 못했던 건가?’
제르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전쟁터에서 있을 때는 하루하루 살아남고 동료들을 지키기 바빠 잡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수도로 돌아온 뒤부터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꾸만 쓸데없는 상념과 추측들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라피네가 그를 가장 복잡하게 했다.
솔직히 말해서, 제르칸은 어릴 적 라피네와 했던 그 약속을 여전히 기억했고, 지킬 마음 또한 있었다.
단, 라피네가 여전히 원한다면 말이다.
결혼이야 어차피 해야 하는 거고, 라피네와는 약속도 했고……. 그러니 라피네가 원한다면 당연히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피네는 어렸을 때의 일을 언급하긴커녕, 그를 피해 다녔다.
그 행동의 뜻은 분명했다. 이제는 자신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다.
당연했다. 그야 그때의 그 청혼은 어린 시절 일이니까.
제르칸은 그걸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라피네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모른 척하는 거라면 그 뜻을 존중해 자신 역시 절대로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제르칸은 여전히 이 감정의 정체를 몰라 혼란스러웠다.
“…….”
무리수라고 생각했던 황후의 시도는 반쯤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소한 잔잔했던 제르칸의 마음에 색다른 파장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 * *
성년 무도회 날의 아침이 밝았다.
토벌대의 귀환 환영식과 함께 치러지는 행사라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황성의 홀 중에 가장 큰 그레이트 홀에서 진행하는 만큼 참여하는 귀족도 많을 예정이었다.
저녁에는 폭죽 행사도 한다고 하니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을 것이다.
라피네 역시 올해 성년식을 치르는 다른 귀족들처럼 설레는 마음이었다.
12번째 달의 마지막 날.
바로 오늘 밤이 지나면, 라피네는 진짜 성년이 된다.
‘내일부터는 독한 술도 마실 수 있다.’
제국법으로 미성년은 술을 마실 수 없다.
도수가 약한 포도주는 가능하지만, 위스키나 맥주 등의 술은 불가능했다.
라피네는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이는 것 같아 마음이 풍선처럼 들떴다.
‘일단 12시가 지나면 홀에 있는 위스키부터 쭉 마셔야지.’
저녁이 되자, 라피네는 의상을 만들어 준 디자이너와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갈아입었다.
평소 잘 입지 않는 짙은 붉은색의 드레스였는데, 생각보다 분홍색의 머리카락과 아주 잘 어울렸다.
“성년식이니만큼 파스텔톤은 피하는 게 좋지요. 너무 어려 보이면 곤란하잖아요.”
“맞아요, 우리 아가씨는 이제 성년이시니까. 호호호.”
하녀들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라피네의 옷과 머리를 만져 주었다.
“다 되었습니다.”
머리 손질이 끝나자, 하녀가 거울을 보여 주었다. 라피네는 거울 속 화려한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목선이 드러나도록 틀어 올린 머리와 화려한 드레스 디자인.
머리 스타일은 의상 디자이너가 직접 제안한 것이었는데, 비록 분야가 다르긴 해도 결국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인지 확실히 머리 스타일과 드레스의 디자인이 조화롭게 잘 어울렸다.
평소 입고 다니던 스타일의 드레스와 전혀 다른 느낌이라 생소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완벽해요, 아가씨.”
“이제 마지막으로 보석을 고르시면 돼요.”
의상 디자이너가 드레스와 어울리는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 후보를 꺼내 왔다.
후보는 총 3개였는데, 라피네는 그중 가장 덜 화려한 가운데 것을 골랐다.
“탁월한 선택이세요, 드레스가 화려한 만큼 보석은 심플한 게 좋지요.”
디자이너는 후후 웃으며 라피네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다이아로 수놓아진 우아한 목걸이를 걸치자, 한층 드레스와 목선이 돋보였다.
“붉은색이 이렇게 잘 어울리실 줄이야…….”
“분명 오늘 12시가 지나자마자 청혼을 잔뜩 받으실 거예요.”
하녀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라피네는 그런 하녀들의 시선에 부담감을 느끼며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1층 현관에서는 오늘 무도회를 에스코트해 줄 루카와 로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귀족들의 성년식 첫 무도회 파트너는 부모나 형제가 하는 게 관례였다.
그래서 라피네 역시 아빠나 아드리안에게 부탁하려고 했지만…….
아빠는 엄마를 에스코트해야 했고, 아드리안은 바이올렛을 에스코트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남는 건 루카와 로이스였다.
두 사람은 함께 에스코트를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라피네는 탐탁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사용인들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와 현관으로 향하자, 부모님과 아드리안은 먼저 황성으로 떠나 보이지 않고 서로 낄낄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쌍둥이 형제만 보였다.
“라피네 왔…….”
라피네가 도착한 것을 발견한 루카가 멈칫했다. 따라서 시선을 돌린 로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세요?”
루카는 능청스럽게 물었다. 딱 봐도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적당히 해.”
라피네가 엄하게 말하자, 두 사람은 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의외라는 듯 라피네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근데 정말 다른 사람 같은걸? 성년식이라고 진짜 힘줬네.”
“그러니까. 머리는 왜 올린 거야? 그냥 내리는 게 어때? 목이 너무 드러나잖아.”
“맞아. 좀 거슬리는데……?”
그렇게 루카와 로이스는 마차에 탄 이후에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드레스도 너무 붉어. 왜 이런 색감을 고른 거야? 평소랑 이미지가 너무 다르잖아.”
“맞아. 너무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의상 디자이너가 누구지? 당장 해고해야겠어.”
“머리카락은……. 진짜 내리는 게 어때?”
라피네는 그 말들을 모두 못 들은 척, 한 귀로 흘렸다.
루카와 로이스의 가벼운 시비는 너무나 익숙해서 큰 타격이 되지도 않았다.
마차는 빠르게 황성 앞에 도착했다.
라피네는 온갖 조명으로 꾸며진 화려한 황성 입구를 보며 감탄했다. 황성 입구 앞에는 각종 화려한 마차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꼭 동화 속 같다.’
그동안은 밤에 치러지는 무도회에 단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기에 신기할 따름이었다.
‘저 안에 술도 많겠지.’
라피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남다른 기대감에 부풀었다.
마차가 멈추자, 루카와 로이스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라피네를 향해 동시에 손을 뻗었다.
“고마워.”
라피네는 공평하게 두 사람 모두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계단 위로 거대한 그레이트 홀의 입구가 보였다. 라피네는 둘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홀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귀족들이 가득했다.
그중 라피네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핑거푸드와 함께 차려진 술이었다.
‘저쪽이 위스키, 저쪽은 꼬냑. 그리고……. 저쪽은 포도주구나.’
도수가 거의 없는 포도주 따위 이제는 거른다.
라피네는 술이 놓인 위치를 체크하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했다.
대부분이 아카데미 졸업반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시선 역시 대부분 독한 술 쪽으로 가 있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
라피네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동질감에 아는 얼굴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가 라피네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바이올렛이 보였다.
“라피네!”
“언니.”
“와, 우리 라피네 너무 예쁜데?”
바이올렛은 입가에 손을 댄 채 감탄하며 라피네를 골고루 살폈다.
그렇게 말하는 바이올렛이야말로 오늘 정말 아름다웠다.
누가 원작 여주인공 아니랄까 봐, 오늘따라 바이올렛은 정말로 동화 속 여주인공처럼 보였다.
라피네는 원작과 달리 바이올렛이 보통의 동화처럼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길 바랐다.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야.’
새삼스러운 다짐을 하며 바이올렛과 포옹을 나누자, 아드리안이 가까이 다가왔다.
“라피네, 미안하지만 바이올렛은 오늘 내 파트너야. 과한 포옹은 자제했으면 싶은데.”
바이올렛은 피식 웃으며 아드리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찍었다.
아드리안은 허리를 짚으며 신음했고, 라피네는 장난치는 두 사람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때,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였다.
올해 성년을 맞이한 귀족들이 자연스럽게 첫 춤 상대의 손을 잡고 나왔다.
라피네 역시 첫 춤을 추기로 한 루카와 손을 잡고 무대로 향했다. 루카는 능숙하게 라피네를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다.
“왜 중앙으로 가는 거야, 굳이?”
“이 오빠는 늘 가운데가 익숙하거든.”
루카가 으스대며 말하자 라피네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그를 흘겨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첫 춤이 시작되었다.
파트너와 손바닥을 마주 대고 원을 그리며 우아하게 돌다가 음악이 처음으로 돌아가면 옆으로 이동해 파트너를 바꾸는 춤이었다.
“제법인데?”
“로이스 오빠한테 배워서 그렇지.”
“칫. 춤은 내가 더 잘 추거든?”
루카와 장난스럽게 웃으며 춤을 추다가, 파트너를 바꾸기 위해 한 걸음 옮겼을 때였다.
맞은편에 보이는 이름 모를 영식과 손바닥을 겹치려던 순간.
별안간 누군가 튀어나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
그리고 차갑고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손등에 겹쳐지는 순간.
꼭 손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첫눈을 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보이는 얼굴은…….
제복 차림의 제르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