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2)
‘어어?’
라피네는 순간 너무 놀라 드레스 자락을 밟고 휘청거릴 뻔했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제르칸의 손이 라피네의 등허리를 받치지 않았다면 분명 넘어졌을 것이다.
제르칸은 커다란 손으로 라피네의 허리를 단단하게 받쳐 가까이 끌어당겼다.
‘뭐지?’
정신을 차려 보니 왈츠로 음악이 바뀌었고, 코앞에 제르칸의 가슴팍이 있었다.
라피네는 짧은 틈에 일어난 일이 얼떨떨하기만 했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제르칸을 쳐다봤다.
‘와, 눈이 멀겠네…….’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제르칸의 얼굴은 정말…… 감사했다. 시력이 정화되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러나 제르칸이 고개를 숙여 눈을 마주쳐 오자…… 라피네는 확 시선을 내리깔아 버렸다.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못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거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라피네는 제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손바닥의 감촉이 묘하게 의식되었다. 이렇게 극도의 긴장감을 느껴 본 건 처음이었다.
하나를 의식하기 시작하자, 줄지어 신경 쓰이는 것투성이였다.
마치 파묻히듯 그의 큰 손에 꽉 잡힌 오른손도 그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제르칸의 집요하고 따가운 시선과 넓은 그의 가슴팍. 게다가 이 향기……. 뭐지?
‘프리지어 꽃향기 같은데……. 묘하게 시판 향수들이랑 다르네. 이런 향수가 있었나?’
이렇게까지 은은하고 따뜻한 향기의 향수가 있었으면 분명 유행했을 것이다.
멋 내기를 좋아하는 아카데미 학생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을 텐데……? 이런 향수가 있으면 라피네 역시 몰랐을 리가 없다.
“집중해.”
그때, 제르칸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라피네는 자신이 넋을 놓고 딴생각을 하느라 스텝을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낙 제르칸이 유려하게 라피네를 이끌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라피네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춤에 집중했다. 그러려고 했다.
‘아니, 숨결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춤에 집중을 해.’
이렇게 손을 맞잡을 뿐 아니라 몸까지 가까이 붙어 있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조금 전, 제르칸이 귓가에 속삭인 행동 때문에 그쪽의 귀를 비롯해 목덜미, 어깨까지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정신 차리자. 오늘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을 생각해.’
지금 놀러 왔어?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술 때문이다.
라피네는 머릿속으로 독한 위스키를 떠올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음악이 끝날 때쯤 되자, 미친 듯이 쿵쾅거리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러나 지척에 있던 제르칸이 떨어지고, 그가 유려한 동작으로 팔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보자 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평범한 동작 하나하나도 예술 작품 같네.’
라피네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홱 돌려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제르칸과 가까이 있는 걸 다들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화끈거렸다.
‘심장아 제발 진정하자.’
라피네는 결국 포도주를 1잔 들고 비어 있는 테라스로 들어갔다.
화끈거리는 뺨을 찬바람으로 식히기 위해서였다.
* * *
한편, 제르칸은 멀어지는 라피네를 빤히 바라보았다.
음악이 끝나자마자 라피네는 그를 쳐다도 보지 않고 고개를 홱 돌려 가 버렸다.
그런 라피네의 뒷모습을 보며, 제르칸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자꾸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하고 싶어진다.
다른 영식과 춤을 추려는 라피네가 못마땅해서 갑자기 음악을 바꾸라 명령하고 끼어든다거나.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차려입은 라피네를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싫어서 죄다 쫓아내고 싶다든가.
자신을 두고 가 버리는 라피네를 붙잡고 싶다든가 말이다.
이건 확실히 이상하다.
제르칸은 멍하니 서서 그 이유를 고민했다.
그러길 한참. 제르칸은 그동안 느꼈던 정체 모를 감정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서운함.
이건 서운한 감정이 분명했다. 서운함뿐이라고 하기엔 미묘한 찜찜함이 있었지만, 그는 애써 모른 척했다.
‘근데 내가 왜 서운함을 느끼지?’
제르칸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아 미간을 구겼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라피네에게 서운함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고작 어렸을 때 했던 결혼 약속을 지금에 와서 외면했다고? 겨우 그것 때문에?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 모를 서운함이 자꾸만 밀려들었다.
가슴이 한쪽이 자꾸만 시큰거렸다.
‘미치겠군. 대체 왜…….’
제르칸은 머릿속이 엉켜 버린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그때,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이 술잔을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 * *
테라스로 나온 라피네는 찬 바람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겨울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제야 묘하게 들뜬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바람이 춥기는커녕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체온이 급격히 상승했던 모양이다.
라피네는 목이 타는 느낌이라 포도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은 위스키만 마시려고 했지만……. 일단은 어쩔 수 없지.’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나자 그제야 신체 상태가 완벽히 정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긴장해 죽는 줄 알았네.’
겨우 안도하던 그때였다.
누군가 라피네가 홀로 있는 테라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보통 무도회의 테라스에서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시종들이 테라스마다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다.
레이디 혼자 들어가 있는 테라스는 함부로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건…….
의심스럽게 커튼 너머를 쳐다보는데, 불쑥 손 하나가 튀어나와 두꺼운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어…….”
시종이 막지 않은 걸 보니 제르칸인가 싶었는데, 테라스로 들어온 사람은 안토니오였다.
하긴, 안토니오 역시 시종들이 막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왜 온 건데?’
라피네는 뜬금없이 찾아온 그를 보며 놀란 눈을 깜빡였다.
시종이 서 있는 걸 봤을 테니 비어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온 건 아닐 것이다.
안토니오는 왠지 화가 난 눈으로 라피네를 응시하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난간 쪽에 배치된 소파에 앉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앉아.”
“…….”
“명령을 해야 들을 거냐?”
‘뭐야, 왜 저래?’
라피네는 어렸을 때처럼 안토니오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제 성년이 된 만큼,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사교계에 소문이 쫙 돌 것이다.
라피네는 최대한 안토니오와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안토니오는 그런 라피네를 보고 픽, 비웃더니 술잔을 내려놓았다.
밖에서 들고 들어온 술잔 같은데, 딱 보니 위스키였다. 라피네는 뚫어져라 위스키를 바라보았다.
사실 술을 엄청 좋아해서 이러는 건 아니고……. 루카와 로이스가 성년이 된 2년 전부터 계속해서 라피네를 놀렸기 때문이었다.
〈라피네, 술이란 건 말야. 참……. 인생의 맛이라고 할까? 넌 아직 성년이 아니라 모르겠지만 말이야. 큭큭……. 술맛이 얼마나 쓰면서 달콤한지 넌 모를 거야.〉
〈야, 어린애한테 그런 말 해서 뭐 해? 라피네, 잘 들어. 있지, 술은 참 쓰다? 그러니까 넌 이런 거 마시지 마라……. 후…….〉
그런 말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듣다 보니, 이상하게 술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
‘분명 쌍둥이 오빠들보다 내 주량이 더 셀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어서 이날만이 다가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형님과 춤을 추던데. 나도 네게 춤 신청을 해도 되는 거냐?”
그때, 안토니오로부터 뜬금없는 질문이 날아왔다. 날이 선 말투와 목소리였다.
라피네는 멍하니 술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안토니오랑 춤을 추라고……?’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 표정을 본 안토니오 역시 미간을 구겼다. 그는 씩씩대며 말했다.
“그 표정은 뭐야! 형님은 괜찮고 나랑은 싫다는 거냐?”
라피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뭐, 안토니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출 만큼 유쾌한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뭐, 뭐?”
안토니오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붉히며 되물었다. 라피네는 잘 알지 않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너랑 내가 좋은 사이는 아니잖아? 그 뜻이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꼭 큰 충격을 받은 사람 같았다.
“나는 우, 우리 사이가 꽤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요?”
“내 편지를 받았잖아! 그 편지를 읽었으면……!”
“…….”
뜻 모를 말에 라피네는 어안이 벙벙했다.
전쟁터에 떠나기 전에 주고 갔던 그 편지? 그걸로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한 건가? 난 답장도 안 했는데?
안토니오의 사고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머리채를 쥐어 잡혔을 때도 그렇고, 여전히 너무 일방적이라 추측하기도 어려웠다.
“젠장…….”
안토니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씩씩거렸다.
라피네는 분노 조절을 잘 못 하는 안토니오가 또 한 번 자신의 머리채를 잡기라도 할까 봐 슬금슬금 일어났다.
안토니오는 그런 라피네를 홱 째려봤다.
“어딜 가?”
“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남녀 둘이 테라스에 오래 있으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거든요. 게다가 아직 12시가 지나지 않아 저는 성년이 아니라서…….”
그 말에 안토니오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벌떡 일어났다.
본인이 매너 없는 행동을 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안토니오는 사과도 없이 쿵쿵거리며 테라스를 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