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4)
“반갑습니다.”
셀레스티나가 우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족들은 대체로 종교를 믿어 신전에 우호적이었기에, 성녀에게 또한 호감을 느꼈다.
게다가 종말의 균열이 사라진 직후 나타난 성녀의 존재는 마음속 깊이 있는 신앙심을 자극하는 데에 일조했다.
게다가 이렇게 청초한 외모라니.
귀족들은 늘 사교계의 화젯거리를 좋아했기에, 이 성녀의 존재가 수도에 어떤 바람을 불고 올지 기대했다.
사실 대체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극적인 추문이었다.
그때, 누군가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있는 레베카 황비와 셀레스티나 성녀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레베카 황비 전하.”
바로 테들러 자작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녀의 재회였다.
귀족들은 수군덕거리며 눈치껏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대놓고 그쪽을 구경했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레베카 황비가 떠난 직후.
그녀를 고발했던 게 친부인 테들러 자작이라는 사실이 스멀스멀 퍼져,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레베카 황비는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자작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테들러 자작은 서운하다는 말투로 지껄였다.
“수도에 돌아오신 지가 꽤 지났는데, 드디어 얼굴을 뵙는군요.”
“그런가요.”
레베카 황비는 성의 없이 대꾸하며 테들러 자작의 옆에 선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레베카 황비의 남동생인 게롤 테들러였다.
“오랜만입니다, 누님.”
“무례하군.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호칭으로 부르다니. 자작은 아들을 교육하지 않는 건가?”
레베카 황비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나이가 많은 아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자작에게도, 게롤에게도 모욕적인 언사였다.
“흠, 글쎄요. 제가 자식들을 잘 못 가르는 편이긴 합니다만……. 황비 전하께서 그런 걸 지적하실 자격은 없지요.”
테들러 자작이 느물거리며 말했다. 아들을 학대하다 쫓겨난 레베카를 비웃는 거였다.
그러자 레베카는 시선을 내리깔며 울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도 저의 지난 과실은 인정합니다. 다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보통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하지 않습니까.”
“……!”
“앞으로는 보고 배운 대로가 아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늘 노력해야지요.”
자신이 보고 자란 게 그것뿐이라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레베카가 우아하게 자작을 비꼬자, 테들러 자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 귀족들은 두 사람의 기 싸움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테들러 자작은 크게 헛기침을 하며 돌아섰다.
게롤 테들러 역시 화가 난 시선으로 황비를 노려보다가 아버지를 따라갔다.
‘건방진 것들.’
레베카는 속으로 두 사람을 비난했다. 한때는 의지했던 아버지였으나, 이제는 정적이나 다름없었다.
레베카 황비는 자신이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은 안토니오의 마음을 얻어야 하겠지.’
안토니오를 황제로 만드는 건 그 뒤의 일이었다.
일단은 안토니오가 자신을 따르게 만들어야 황제로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만큼, 모자 사이는 꽤 서먹해져 있었다.
자신이 수도원으로 떠난 뒤, 테들러 자작에게 의지하고 자랐을 안토니오를 떠올리면 이가 갈렸다.
‘부모 자식을 생이별하게 만들다니…….’
테들러 자작이 원망스러웠다. 더 이상은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레베카 황비는 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 * *
그날 밤.
라피네는 부모님과 함께 술에 취한 오빠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술에 취한 아드리안과 루카, 로이스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너희는 날 닮아서 술은 입에도 대면 안 된다고 그리 말했거늘…….”
아빠의 잔소리에도 세 사람은 인사불성이었다. 다행히 주사는 없어서 흐느적거리기만 할 뿐, 모두 얌전히 방으로 들어갔다.
“라피네, 너도 이 아버지를 닮아서 술이 약할 수도 있어. 그러니 절대 마시지 말렴. 아빠는 말이다, 1잔만 마셔도 아주 기절해 버린단다.”
“그렇지만 저는 오늘 위스키 5잔을 마셨는걸요?”
라피네의 말에 에스턴 공작의 동공이 흔들렸다.
옆에 서 있던 공작 부인이 우아하게 라피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라피네는 나를 닮았구나. 엄마는 럼주 1통을 다 비워도, 위스키 몇 병을 마셔도 절대 취하지 않거든.”
“오…… 역시.”
라피네는 엄마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에스턴 공작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모녀를 바라봤다.
* * *
다음 날 아침.
라피네는 숙취 없이 멀쩡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곧장 아드리안을 찾아갔다. 황궁 푸른 기사단의 단장직에 발령받은 아드리안은 출근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라피네, 무슨 일이야?”
다짜고짜 찾아온 라피네를 보며 아드리안은 당황해했다.
사실 지난밤, 아드리안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라피네가 했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오빠, 오늘 황궁에 가면 이것 좀 제르칸 황태자 전하께 전해 줘.”
라피네가 그렇게 말하며 내민 건 작은 편지 봉투였다.
아드리안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꼭 전해 줘야 해. 알겠지?”
“그, 그래…….”
“고마워, 그럼 출근 잘해.”
라피네는 그렇게 가벼운 미소를 짓곤 방을 나갔다. 아드리안은 입술을 떨며 온 방 안을 서성거렸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준비를 계속할 정신이 없었다.
결국, 아드리안은 3백 번 정도 고민하다 편지를 열었다.
편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라피네의 귀엽고 예쁜 필체로…….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도 함께였다.
“……이럴 수가.”
그의 예상이 맞은 셈이었다.
아드리안은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출근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저택을 나섰다.
* * *
오전 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다가오자 에스턴 공작가는 손님들로 몹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안녕하신가. 나는 헤르트 백작가의 집사요. 엣헴. 오늘은 우리 도련님의 청혼서를…….”
“접수처는 저쪽입니다.”
“……접수처?”
청혼서를 건네러 왔던 각 가문의 집사들은 얼떨떨하게 접수처라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저 앞 책상 의자에 앉은 에스턴 가문의 집사, 브라운은 같은 말만 반복하는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입을 움직였다.
“가문 이름은 여기, 청혼한 영식의 이름은 여기 적으시오. 보다시피 손님이 많아 연락은 추후 드리겠소.”
“…….”
공작가 사용인들이 바쁜 이유는 라피네에게 쏟아지는 청혼서 때문이었다.
라피네는 창가에서 줄지어 선 마차들을 보며 혀를 찼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청혼서가 쏟아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딱히 기쁘진 않았다.
‘어차피 내가 아니라 내 조건을 보고 청혼하는 건데, 뭐.’
에스턴 공작가는 누구나 침을 흘릴 정도로 탐나는 상대였다.
황제의 큰 신임을 얻고 있는 가문인 데다가, 큰 규모의 사업도 진행하고 있는 터라 엄청나게 부자였다.
게다가 정령사인 라피네는 제국에게 있어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제, 황후의 이쁨을 받고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사실이었고.
이 정도 사실만으로도 이 난리인데, 만약 ‘라비오르’ 상단의 주인이 라피네라는 게 알려진다면 지금보다 더했을 것이다.
라피네는 심드렁하게 창가를 바라보다가 오르파나를 소환했다.
“2차 맞선 약속은 잘 잡았어?”
「넹. 첫 맞선 상대는 메이어드 자작가의 영애이고 두 번째는 세른 백작가 영애입니다.」
“좋아. 장소는?”
「아주 로맨틱한 식당을 통째로 예약했으니 걱정 마셔요. 그나저나…… 에휴. 좌표는 언제 뜨려나, 하아…….」
오르파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울적한 얼굴로 라피네를 쳐다봤다.
그녀가 성년이 되면 성물의 좌표가 뜰 거라고 예상했는데, 뜨지 않으니 실망한 모양이었다.
라피네 역시 실망스러운 건 마찬가지였기에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뜰 거야.」
“알겠어요……. 에휴.”
* * *
페르데이아 황성.
황태자의 집무실로 누군가 찾아왔다.
바로 그의 절친한 친우이자 황태자 직속 기사단인 푸른 기사단의 책임자가 된 아드리안이었다.
“어젠 많이 취한 것 같던데. 괜찮나?”
제르칸이 멀쩡한 그를 보며 물었다.
“멀쩡합니다, 전하.”
아드리안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곤 자리에 앉았다.
곧 시종이 차를 내어 왔고, 제르칸은 자리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어색하지 않은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젯밤 테라스에서, 라피네가 술에 취한 아드리안에게 퍼부었던 질문에 관한 내용이었다.
물론 아드리안은 제르칸도 그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다짐하고 제르칸을 바라보았다.
“제르칸. 지금부터 하는 말은 친구로서 하는 말이야.”
“…….”
갑작스러운 말에 제르칸은 시선을 돌려 아드리안을 쳐다봤다. 아드리안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