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5)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지?”
“제르칸……. 후, 일단 이거 받아.”
아드리안은 품속에서 비장하게 무언가를 꺼냈다. 연한 아이보리 빛 봉투였는데, 겉모양만 봐서는 꼭 러브 레터처럼 보였다.
제르칸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드리안을 쳐다봤다.
“설마 바이올렛에게 줄 편지를 검토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일단 읽어 봐.”
제르칸은 미심쩍은 듯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었다.
우아한 필체로 적혀 있는 건 시간과 장소, 그리고 짧은 메시지였다.
“라피네가 전해 달라고 한 거야.”
“나한테?”
“그래.”
제르칸이 얼떨떨해하던 그때, 아드리안이 팔을 뻗어 제르칸의 손등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뭐 하는 거야, 낯간지럽게.”
“제르칸.”
“…….”
아드리안이 진지한 목소리로 부르자, 제르칸 역시 장난기 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라피네가 여전히 널 좋아하나 봐……. 그 귀여운 녀석. 내가 겉으로는 바이올렛에게 맞장구치며 너에게 라피네는 안 된다고 장난쳤지만……. 난 널 믿어.”
“무슨……”
“너라면 난 허락할 수 있다고. 누구보다 내 동생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는다.”
그 말에 제르칸은 귓가가 홧홧해졌다.
아드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거두고는 제르칸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네 마음이 중요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너 그거 잘 알아야 해. 우리 라피네보다 더 사랑스러운 여자를 찾긴 어려울걸?”
“…….”
“유일하게 더 사랑스러운 바이올렛은 내 짝이 되었으니 말야.”
그 말에 제르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지만, 사랑에 푹 빠진 친구 아드리안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손에 쥔 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잘해 봐.”
아드리안은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제르칸은 편지로 시선을 내렸다.
예쁜 편지지에 쓰인 둥글둥글한 필기체의 글자가 이상하게 그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에 새기고 또 새겼다.
약속 장소는 수도 번화가의 레스토랑.
시간은 내일 저녁 시간대였다.
바쁘긴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은 낼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 내야 했다.
‘……저녁 약속이라.’
게다가 마지막 문구가 압권이었다.
‘이곳에 가면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제르칸은 한숨을 푹 쉬며 손바닥에 얼굴을 푹 묻었다.
‘너무…… 귀엽잖아.’
이건 생각지도 못한 귀여움이었다.
지금 라피네가 눈앞에 있었다면, 그 귀여운 뺨을 꼬집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귀여운 행동을 할 거라곤 정말로……. 상상도 못 했다.
계속 마주칠 때마다 딱딱하게 대하길래, 어색해서 거리를 두려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다 부끄러워서 그랬던 모양이다.
‘미치겠군.’
심장이 쿵쿵 거세게 뛰었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그 울림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들떴다.
그는 화끈거리는 귓가를 만지작거리며 어제의 일을 곱씹었다.
어젯밤, 아드리안과 마찬가지로 제르칸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라피네의 작은 손을 마주 잡고 춤을 추던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왈츠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추던 그때. 제르칸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었다.
두 사람 다 조그마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덮어씌워지며 순간 추억에 잠겼다.
그러나 음악이 끝나자마자 홱 하고 가 버리는 라피네를 보며 묘한 서운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자신이 어른이 된 라피네를 낯설게 느끼는 것처럼, 라피네 역시 많이 달라진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서먹하게 굴었던 라피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서운했던 감정은 어느새 눈 녹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온갖 의문들이 꽉꽉 채워졌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답은 쉽게 나왔다.
어젯밤 아드리안을 닦달하며 라피네가 던졌던 질문들의 의미는 명확했다.
그러나 그 답이 맞는지 확신하기 어려워서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운명의 상대라는 단어를 사용한 건 무슨 의미일까?
혹시 어렸을 때처럼 청혼하려는 건가?
라피네가 먼저 청혼을 하도록 해도 되는 건가?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건가?
제르칸은 처음 느껴 보는 생소한 기분에 사로잡혀 다음 날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 멍한 상태를 유지했다.
* * *
조금 멋쩍으면서도 쑥스럽지만, 구름을 만지는 듯이 들뜨는 기분.
다음 날 오후까지 제르칸의 기분은 그런 상태로 유지되었다.
“오늘 전하 표정 봤냐?”
“어, 오늘 기분 엄청 좋아 보이시던데?”
황태자의 보좌관들이 한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중, 어제 첫 출근을 한 신입 보좌관 1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좋아 보이셨다고요? 제가 볼 때는 평소랑 똑같이 엄청 무표정하셨는데……. 늘 차가우시잖아요.”
“하, 자네 신입이라 잘 모르는군.”
수석 보좌관이 혀를 쯧쯧 차며 설명을 시작했다.
“전하는 말이야. 평소에는 이런 표정을 짓지. 하지만 기분이 좋을 땐? 이런 표정을 지어.”
“똑같은데요?”
“어허, 다르다니까? 잘 봐, 입꼬리랑 뺨의 근육의 경직도가 약간 다르다고. 자, 다시 봐 봐.”
“똑같은데…….”
“떼잇, 이렇게 눈썰미가 없어서야.”
그렇게 한참 수다 시간이 지나고 퇴근 무렵이 다가오자, 집무실 문이 열렸다.
“엇, 전하. 어디 가십니까?”
“약속이 있어서.”
제르칸은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를 호위 기사가 따랐다.
마차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가는 동안, 제르칸은 이상하게 긴장이 밀려왔다. 목을 조이는 크라바트를 살짝 풀었지만 그래도 여전했다. 마차 창문을 열어 찬 바람을 맞아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갈증이 나고, 조급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매일매일 이런 기분이 유지된다면, 어쩌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행운을 손에 쥔 기분이라고 할까?
하지만 내내 유지되었던 그 기분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와장창 깨져 버렸다.
레스토랑을 착각한 것도 아니었고, 자리를 잘못 찾은 것도 아니었다.
통째로 빌린 듯 텅 빈 레스토랑에는 한 테이블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건…….
“안녕하세요, 전하.”
라피네가 아닌 처음 보는 여자였다.
“…….”
제르칸은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조차 잊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모르고 나오실 거라고 전해 듣긴 했는데……. 뭐, 제가 잘 설명해 드릴 거라고 했어요.”
대체 뭐를?
제르칸이 멍하니 눈만 깜빡이자, 여자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저는 에스턴 영애의 소개로 맞선을 보러 나온 거고, 영애가 저더러 황태자 전하의 계약 결혼 상대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제르칸의 미간이 구겨졌다.
지금 저게 다 무슨 소리지?
“저는 좋아요. 어떤 계약 조건이든 상관없이 전하께 맞춰 드릴 수 있답니다.”
“…….”
“참고로 비밀이 새어 나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비밀 유지 계약서에 서명했거든요.”
그 말에 제르칸의 표정이 멍해졌다. 상황 파악을 끝내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뭔가 착오가 있던 모양이군.”
“네?”
제르칸은 냉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전하! 어디 가세요!”
첫 맞선 상대인 귀족 영애가 다급하게 제르칸을 불렀지만, 그는 꼭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나가 버렸다.
레스토랑 건물을 나온 제르칸은 곧장 마차에 올라타며 명령했다.
“에스턴 공작 저택으로 간다, 지금 당장.”
* * *
같은 시각.
라피네는 불안한 표정으로 방 안에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곤 오르파나를 소환했다.
“오르파나, 내가 맞선 상대 리스트만 고민하느라 미처 체크하지 못했는데……. 제르칸은 맞선인 줄 모르고 나간 거잖아?”
상단 회의를 마친 참인지, 오르파나는 돈 많은 회장님 콘셉트의 차림이었다.
창가 옆 테이블 의자에 우아하게 앉은 오르파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맞아요.」
“잘 설명하겠다고 했지? 근데 어떻게 했어……?”
「제가 다 알아서 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했냐고.”
“그 여자분이 잘 설명해 드릴 거예요.”
“…….”
라피네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맞선 상대를 누구로 하느냐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바람에 정작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그동안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 온 만큼 오르파나가 알아서 잘했으리라 믿지만…….
「주인님, 저 못 믿으세요?」
“……믿기는 하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불안하지?”
라피네는 이상하게 순서를 잘못 끼워 맞춰 실수한 기분이 밀려왔다.
그때였다.
똑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라피네는 곧장 오르파나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들어오라고 말하자,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조심스러운 표정의 집사 브라운이었다.
“저, 아가씨.”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저녁 식사가 지난 시간에는 보통 사용인들도 쉬기 때문에 찾아올 일이 없었다.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저, 그게 손님이 찾아오셔서…….”
“손님?”
집사는 몹시 곤란한 듯 우물쭈물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