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6)
이 시간에 손님이 찾아왔다고?
라피네가 어리둥절해하자, 집사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게, 손님께서 아가씨에게만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말입니다. 아가씨만 조용히 저택 밖으로 나와 달라고 …….”
라피네의 미간이 좁아졌다.
대체 누구길래 그러지?
라피네는 안락의자에 걸쳐 놓은 숄을 걸치고 집사를 따라나서며 물었다.
“손님이 누군데?”
“그게…….”
집사는 누가 들을세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이름을 들은 라피네의 눈동자가 잠시 커다래졌다.
* * *
에스턴 저택가의 후문 앞.
마차 1대가 커다란 나무 아래 은밀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키가 큰 남자 1명이 마차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는데…….
끼익…….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라피네가 집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라피네.”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라피네를 발견하고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클라이드.”
몰래 찾아온 손님은 루카, 로이스의 친구인 클라이드 바스티엔이었다.
라피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늦은 시간에 이루어진 은밀한 만남인 만큼, 에스턴 가의 집사는 눈에 불을 켜고 라피네의 뒤에 서서 그를 노려봤다.
‘쌍둥이 도련님들의 절친한 친구라 어쩔 수 없이 불러 드리긴 했지만……. 감히 이 시간에 우리 아가씨를 불러내?’
클라이드는 라피네의 어깨 너머, 집사의 눈초리를 무시한 채 말했다.
“이 시간에 불러내서 미안해.”
“대체 무슨 일이야? 루카, 로이스 오빠가 무슨 사고라도 쳤어?”
라피네는 혹시 루카와 로이스가 가족들 몰래 사고를 쳐서, 그가 그 일에 대해 상담하러 온 건가 싶어 물었다.
그러나 클라이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고……. 줄 게 있어서 불렀어. 네게 직접 주고 싶어서.”
“뭐를?”
라피네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고는 별안간 한쪽 무릎을 굽히고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라피네, 너에게 청혼하고 싶어.”
“…….”
난데없는 청혼에 라피네의 표정이 왈칵 구겨졌다. 뒤에 서 있던 집사 브라운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청혼은 정식으로 청혼서를 보내셔야…….”
집사가 잔소리를 퍼부으려다 멈칫했다.
달빛에 비친 클라이드의 표정이 무척이나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내 집사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 딱 1걸음만 뒤로 물러났다.
저 남자에겐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일 텐데……. 방해해선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서 아가씨를 지켜야 하기에 딱 1걸음만 물러난 것이다.
클라이드는 그런 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라피네만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진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어. 나는, 그 누구보다 널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다.”
라피네는 그가 내민 반지 케이스를 내려다보았다.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건 꽤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 * *
‘기가 막히는군.’
같은 시각, 같은 장소.
라피네가 청혼을 받고 있는 그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 그곳에서 누군가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다.
사각지대인 코너 너머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는 제르칸이었다.
“…….”
달빛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냉랭하고 싸늘했다.
레스토랑에서 빠져나온 직후. 그는 곧장 이곳을 찾아왔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려던 그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후문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자신이 찾아왔다는 걸 알면 공작 부부가 깜짝 놀랄 테니, 라피네만 따로 부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객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이런 상황을 목격하다니…….
여기까지 오는 짧은 거리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는지 모른다.
제르칸은 꼭 믿었던 동료에게 큰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별안간 맞선이라니? 계약 결혼이라니?
그 약속을 라피네가 왜 주선하는 거지?
쏟아지는 의문들은 어제까지 떠올렸던 것들과 달리 우중충하기만 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라피네에게 따질 생각이었는데……. 청혼을 받고 있다니.
게다가 청혼에 대답을 머뭇거리고 고민하는 라피네를 보자 갑자기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
“……전하. 어찌할까요?”
옆에서 기다리던 호위 기사가 묻자, 제르칸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몸을 돌렸다.
그는 마차를 세워 놓았던 곳으로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라피네의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
* * *
“미안해.”
라피네는 어떻게 거절의 말을 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만.”
클라이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피네 널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어.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
“하지만 내일 정식으로 집사를 통해 청혼서를 보낼 거야. 강요하는 건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작은 희망이라도 얻고 싶어.”
라피네는 뻘쭘한 나머지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미안해.”
“아니, 미안할 거 없어. 내 마음은 진심이야. 그저…… 청혼서를 보내기 전에, 네게 내 마음을 고백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 급하게 찾아온 거야.”
“…….”
“그만 가 볼게.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 어서 들어가 봐.”
“……알겠어.”
집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철문을 열어 주었다. 라피네는 클라이드를 힐끔 쳐다보다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들어가던 집사는 마지막으로 클라이드 바스티엔을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후…….”
라피네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던 클라이드는 어딘가 홀가분한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했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그는 시원섭섭한 얼굴로 마차에 올랐다.
* * *
‘어우 불편해.’
라피네는 방으로 돌아와 겨우 편하게 숨을 내쉬었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루카, 로이스가 미리 말했기에 클라이드가 청혼서를 보낼 거라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직접 찾아와 다짜고짜 청혼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부담스러워.’
대뜸 청혼하고 간 클라이드는 마음이 편할지 몰라도, 거절하게 된 라피네는 마음이 불편했다.
클라이드는 분명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지만…….
솔직히 이렇게 대뜸 찾아오면 당연히 곤란하다는 걸 알았을 텐데.
‘어쨌든 좋게 거절했으니 됐겠지.’
라피네는 편안하게 안락의자에 앉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이상하게 자꾸만 뭔가 한구석이 찜찜한데…….
‘대체 뭐지?’
라피네는 그 찜찜함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아리송했다.
* * *
다음 날 오전.
제르칸은 어젯밤, 라피네의 대답을 듣지 않고 온 것을 후회했다.
지난밤 내내 대답이 궁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뿐더러, 겨우 1시간 정도 잤는데 이상한 꿈까지 꾸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라피네는 그 이상한 놈의 청혼을 받아 주었다.
남을 평가절하하고 싶진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늦은 시간에 그렇게 은밀하게 찾아가 청혼하는 놈이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놈일 리가 없지.’
그러나 꿈속의 라피네는 환하게 웃으며 청혼을 수락하고 그 남자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타들어 갔다.
왜 자신이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써 추측해 보자면, 그만큼 라피네가 제르칸에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적, 그는 라피네에게 빚을 진 셈이니까.
게다가 자신뿐 아니라, 바이올렛도 그런 꿈을 꾸었다면 비슷한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 바이올렛이라면 더 했겠지.
그래, 그래서였다.
그런데 꿈은 꿈이고, 실제로는 어땠을지 떠올리자 가슴이 콱 막혀 왔다.
라피네는 그 정신 나간 미친놈의 청혼을 받아 주었을까?
‘……라피네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 보는 눈이 이상했지.’
물론 자신에게 청혼했던 라피네를 그렇게 평가하긴 민망하지만…….
‘그건 이상한 동화책에 나오는 왕자님에게 빠져서 나한테 청혼했던 거니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뒤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그 실타래가 진흙에 풍덩 빠진 기분이었다.
답이 안 나온다는 뜻이었다.
그때, 집무실 문을 노크하고 누군가 들어왔다. 수석 보좌관인 퍼시였다.
“전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일정은!”
퍼시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다가 제르칸의 얼굴을 보자 멈칫했다. 그가 들고 왔던 서류 더미 중 몇 장이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잔 실수를 하지 않는 편인 퍼시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드물었다.
퍼시는 서둘러 책상에 서류를 내려놓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을 주웠다.
“저, 전하……. 그, 오늘 일정은 취소할까요?”
“왜?”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신 듯해서요.”
“내가? 내가 왜?”
그렇게 묻는 제르칸의 표정에는 묘하게 살기가 넘쳐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