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9)
* * *
오르파나는 루비의 도움을 극구 부정했지만, 정상으로 향하며 라피네가 계속해서 치유를 받자 말이 없어졌다.
꽁꽁 얼어붙어 상처가 난 발과 다리를 치유 받은 게 벌써 20번째였다.
루비 덕분에 체력은 충전이 되었지만, 정신력은 너덜너덜 넝마가 되어 버렸다.
‘체력만큼 정신력도 중요하구나……. 진짜 죽을 것 같다.’
라피네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을 다시 옮겼다. 발목 깊이 눈이 파고들었다.
갓 쌓인 눈은 포근하고 소복소복 발이 들어가지만, 얼어붙은 지 오래된 눈은 달랐다.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음 결정들이 발목을 할퀴고 지나갔다.
‘근데 너무 추워서 별로 아픔도 안 느껴져.’
상처보다는 꽝꽝 얼어붙은 발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또 치유를 받자니 그마저도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고문을 반복하는 느낌이라 정신적인 피로감이 엄청났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정상까지 도착했을 땐 늦은 밤이었다.
“헉, 허억…….”
정상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었는데, 눈으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라피네는 그 아래에 털썩 쓰러져 숨을 몰아쉬었다.
「주인님, 괜찮으셔요? 곰탱아 뭐 해! 빨리 치유해 드려!」
「……내 도움 필요 없다며?」
「…….」
루비의 지적에 오르파나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러나 겨우 숨을 몰아쉬는 라피네가 콜록콜록 기침까지 하기 시작하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르파나가 서둘러 말했다.
「그래, 네 도움 필요한 거 맞아. 그러니까 빨리 좀 어떻게 해 봐! 주인님이 죽으면 네 성물도 못 찾는다고!」
「흥, 말 안 해도 해 주려고 했다.」
「이이…….」
오르파나는 얄미움에 치를 떨면서도 치유 받는 라피네를 걱정스럽게 살폈다.
그러나 라피네는 상처가 치료되고 체력이 회복되었음에도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지친 것이다.
오르파나는 그런 라피네를 재촉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간의 휴식을 취한 후, 라피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물은 어디 있는 거지?”
오르파나는 곧장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곳으로 가 보자, 놀랍게도 아주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 별로 깊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이 설산에서 꽁꽁 얼어붙지 않은 거지?”
라피네는 연못 앞에 주저앉아 신비로운 빛을 내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바로 머리 위에 떠 있는 밝은 달빛이 잘게 부서지며 연못 위로 쏟아졌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았음에도 라피네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연못으로 손을 뻗은 라피네는 물을 뜰 때처럼 양손을 오목하게 모았다.
손 한가득 물을 담아 뜨자, 손바닥에 고인 물이 찬란히 빛나며 작은 틈새로 조금씩 흘러내렸다.
그렇게 물이 전부 빠진 손바닥 안에는 작은 돌 하나만 남아 있었다.
“이게 성물이구나…….”
그 돌은 마치 연못의 결정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로라를 뿜어내는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 오르파나.”
라피네는 조심스럽게 오르파나를 향해 성물을 내밀었다.
오르파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라피네는 왠지 오르파나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찾아오면 얼떨떨하고 모든 게 꿈처럼 느껴진다.
라피네는 오르파나의 손을 잡고 그 위에 성물을 올려 주었다.
진정한 주인의 손길이 닿아서일까, 성물은 오르파나와 닿자마자 엄청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르파나는 그 성물을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성물은 아주 느리게 그의 품에 스며들었다.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셔 라피네가 잠시 눈을 가렸다가 뜨자, 어느새 빛은 사라지고 울고 있는 오르파나만 남아 있었다.
「고마워요, 주인님.」
오르파나는 유독 서글프게 울었다. 꼭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행복하게 웃었다.
라피네는 굳이 묻지 않고 루비와 함께 오르파나가 진정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 주었다.
새벽 해가 뜰 무렵, 셋은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려갈 땐 루비의 도움을 받아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거대한 곰의 등에 탄 기분은 생소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루비의 털이 엄청 포근하고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르파나는 산을 내려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제 성물에는 제가 사랑했던 정령의 영혼이 담겨 있어요.」
“사랑……? 정령도 연애해?”
분위기를 와장창 깨는 질문에 오르파나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라피네가 “미안, 계속 말해.” 하고 사과하자 그제야 오르파나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 아이는 누구보다 맑고 아름다웠어요. 저를 지키다 끝내 죽어 버렸지만요. 그래도 그 아이의 영혼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에요. 이게 모두 주인님 덕분이에요.」
“…….”
「그 아이도, 저도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예요.」
진솔한 목소리에 라피네는 말없이 오르파나의 등을 두드렸다. 위로해 주고 싶었다.
「내 등 위에서 둘이 친한 척 굴지 마라. 대체 오르파나 넌 왜 내 등 위에 올라탄 건데?」
「닥치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곰탱아.」
다시 또 티격태격하는 두 정령을 보며 라피네는 웃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아! 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성물을 찾으면 정령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했잖아. 게다가 힘이 더 강해진다며?”
「네, 제 소원은 그 아이의 영혼을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하는 거였고…….」
“그럼 힘은? 뭐가 달라졌는데? 겉보기엔 그대로 같은데…….”
라피네가 오르파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오르파나는 후후 웃으며 숲 한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눈 덮인 나무 위의 눈이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뭐야?”
어리둥절해서 오르파나를 돌아보자, 그는 손바닥 위에 커다란 눈의 결정을 든 채로 웃었다.
“네가 사랑했다던 그 정령이 눈의 정령이었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겨울의 정령이었어요.」
“그럼 이제 네가 그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야?”
「네.」
“오…….”
라피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빠르게 두들겨졌다.
‘역시 그때 계약 사항을 수정하길 잘했어.’
어렸을 때, 라피네는 정령들과의 계약을 수정했다.
성물을 찾은 뒤에도 최소 5년 이상 계약 관계를 유지하고, 그 5년간 자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로 말이다.
‘좋아……. 5년 동안 열심히 써먹어야지.’
라피네가 그렇게 속으로 계산적인 생각을 하는 사이, 오르파나는 행복과 감동에 취해 웃고 있었다.
‘진짜 행복해 보이네.’
오랫동안 오르파나를 봐 왔지만, 저렇게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은 처음이었다.
고생한 게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라피네의 입꼬리 또한 천천히 올라갔다.
한편으로는 루비의 성물이 남았다는 사실에 부담이 느껴졌다.
‘정령마다 성물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던데……. 왜 난 하필 이런 애들만 모인 거야.’
그 예로 바이올렛의 정령들은 성물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고 한다.
라피네가 성물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을 때, 바이올렛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반응이기도 했다.
‘모르겠다. 일단은 한숨 푹 자자.’
그렇게 라피네는 루비의 포근한 등에서 푹 잠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산 아래에 도착한 뒤였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라피네는 기다리고 있던 말 위에 올라탔다. 루비는 다시 인형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 이제 동부로 가자.”
그나마 다행히 동부에는 이렇게 얼어붙은 설산은 없다. 이제 추운 거라면 지긋지긋했다.
라피네는 서둘러 말을 몰았고, 중간에 찾은 마을의 여관에서 식사를 하고 쪽잠을 자며 서둘러 이동했다.
* * *
그렇게 며칠 후 늦은 밤.
라피네는 대륙 동부에 있는 렌체스트 영지에 도착했다.
렌체스트 영지는 바빌레니아 왕국과 인접한 도시로,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바빌레니아 왕국은 제국과 상당히 우호적인 왕국이었는데 문화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제국과 교류가 활발했다.
마침 도시는 한창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렌체스트 영지는 바빌레니아 왕국과 커다란 강을 둔 채로 마주 보고 있었기에 특히 강 주변이 발달했다.
강에는 등불이 밝혀진 종이배를 띄우거나, 놀잇배를 타고 운치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연하게도 강 주변에는 야시장이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 먹고 술을 마시며 축제를 즐겼다.
라피네는 가장 먼저 여관을 잡고 야시장으로 뛰어갔다.
무척이나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닭꼬치부터 먹을 거야.”
루비 역시 배가 고프면 난폭해지는 라피네의 성격을 알기에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라피네는 양손에 이런저런 음식을 한가득 쥐어 들고 열심히 먹으며 축제를 구경했다.
커다란 강 너머로 바빌레니아 왕국이 보였는데, 왕성의 야경이 아주 멋있었다.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완전 한강뷰나 다름없겠네.’
실제로 강의 너비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독립하면 여기 와서 살까?’
그렇게 생각하자 이 도시의 남자들이 왠지 모르게 잘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수도에서도 동부 출신 남자들은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피부가 살짝 어두워서 섹시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라피네가 태평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수도 외곽 지역에 라피네의 수배령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