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84)
라피네는 갑자기 안토니오와 가까이 서 있기가 몹시 부담스러워졌다.
다행히 머지않아 레베카 황비의 시종이 와서 안토니오를 데려갔다.
“다녀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할 말이 있으니까.”
안토니오는 그렇게 말하고 가 버렸지만, 라피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피해야 한다, 이건.’
본능적인 불안감이었다.
라피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차라리 밖에 나가서 숨어 있다가 들어오기로 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피해 걸음을 옮겨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정원으로 나갔다.
다행히 한창 연회가 이루어지는 중이라 그런지 정원 쪽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는 건 착각이었다.
“자기야.”
“사랑해. 음……”
커다란 나무 근처에서 들려오는 남사스러운 소리에 라피네는 소스라쳤다.
그렇게 밀회를 벌이는 커플들을 피해 회랑 쪽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또각또각.
별안간 라피네의 구둣발 소리 뒤로 다른 발걸음 소리가 합쳐졌다.
‘뭐지?’
라피네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뒤를 돌았다. 혹시라도 안토니오가 따라온 건가 싶어 불안한 마음이 덜컥 밀려왔다.
그러나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건 안토니오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화난 눈빛을 한 제르칸이었다.
“왜…….”
라피네가 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리자 제르칸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말했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갑자기 목구멍이 바짝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마치 범행 사실을 숨기고 도망치다 들킨 기분이었다.
제르칸은 한쪽을 턱짓했고, 라피네는 끌려가는 죄인처럼 그를 따라갔다.
도착한 장소는 정원 깊숙한 곳의 분수대 근처였다.
라피네는 혹시라도 밀회를 나누는 연인들이 있나 싶어 수풀 너머를 힐끔거렸다.
“뭐 하는 거지?”
제르칸이 그런 라피네를 수상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그냥, 나무 근처에 숨어 있는 연인들이 많길래요.”
“여긴 없어. 황성의 은밀한 곳은 내가 전부 다 알고 있거든.”
확실히 제르칸은 황성에 사는 사람답게 사람이 없는 곳을 잘 알았다.
근데 이상하게…… 그 말에 귓가가 화끈거렸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어 민망했다.
라피네는 큼큼, 애써 헛기침을 하며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나마 제르칸이 꽤 간격을 둔 채 서 있어서 나름대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눈은 못 마주치겠지만…….
“라피네.”
“……예.”
제르칸은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라피네를 빤히 응시했다.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화가 나고……. 서운하고, 섭섭하고.
그가 이렇게 된 것은 조금 전 목격한 상황 때문이었다.
라피네는 안토니오 황자와 매우 친밀한 듯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제르칸은 꼭 거대한 둔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것처럼 골이 흔들리고 얼얼했다.
자신과는 조금 닿는 것도 그렇게 싫어해 놓고…….
자신과 팔짱을 끼고 유독 불편해하는 라피네를 보며, 제르칸 역시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그런데 안토니오 황자와 있는 라피네의 모습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수도를 떠나 있던 지난 긴 시간 동안 안토니오와 라피네가 친해졌던 건가 싶었다.
안토니오 황자의 행적은 보고를 들어 알고 있긴 했지만……. 라피네와 이렇게까지 친하게 지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각이 더 앞서 나갔다.
어린 라피네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안토니오를 붙잡고 결혼하자고 졸랐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꽉 쥔 주먹이 떨려왔다. 눈앞이 새빨개지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
라피네는 막상 자신을 불러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제르칸을 보자 불안했다.
기다림에 지쳐 먼저 물어보려던 때, 제르칸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왜 자꾸 날 피하는 거지?”
“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날것 같은 질문이었다. 라피네는 당황해서 입만 뻥긋거렸다.
제르칸은 몰아붙이듯 이어 말했다.
“날 피하고 있다는 건 너도 부정하지 못하겠지.”
“…….”
“왜. 내가 정말 어릴 때 약속을 지키려고 너에게 결혼하자고 할까 봐 겁이라도 먹었어?”
“그, 그게…….”
쏟아지는 팩트 폭행에 라피네는 얼얼했다.
게다가 제르칸이 자꾸 한 걸음씩 다가오는 바람에 저절로 뒷걸음질을 치게 됐다.
결국 라피네는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등 뒤로 커다란 기둥이 느껴졌다.
“그래서 떠난 거였나?”
어느새 제르칸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라피네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제르칸은 삐딱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유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왜?”
“…….”
“그렇게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시도 때도 없이 조를 땐 언제고…….”
“…….”
“이제 와서.”
제르칸이 손끝으로 라피네의 턱을 당겨 올렸다. 꼭 입술이 닿을 것처럼 얼굴이 가까워서 숨을 쉬기 어려웠다.
“도망을 가?”
무엇보다도…… 그렇게 묻는 제르칸의 눈빛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얘, 얘가 왜 이래?’
라피네는 왠지 모를 소름에 등골이 오싹했다.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잠깐.
‘설마, 원작처럼 미친 집착남이 되는 건…… 아…… 니겠지?’
제르칸은 혼란스러워하는 라피네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손을 치우고 물었다.
“그래서 맞선 리스트도 만든 거고?”
“그건…….”
“내가 그렇게 두렵고 싫어서?”
물론 대부분은 사실이었지만, 어딘가 오해가 살짝 껴 있는 것 같았다.
라피네는 침착하기 위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했다.
“아닙니다. 그건……. 계, 계약 결혼이 필요하신 상황이니까요. 아무래도…….”
느릿느릿 변명하자 제르칸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내 상황에 대해 아주 잘 아는 모양이네.”
“그, 그럼요. 황후 폐하께서도 늘 걱정하시고…….”
“하지만 어차피 정말 너와 결혼할 생각은 없었어.”
“그, 그렇죠?”
반가운 말에 라피네는 화색을 띠며 그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 반응에 제르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내가 뭐 실수했나?’
모른 척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 구겨지는 표정에 라피네는 어리둥절했다.
제르칸은 화를 가라앉히듯 하늘을 한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래. 원래는 바이올렛에게 부탁하려고 했지.”
그러자 이번엔 라피네의 표정이 왈칵 구겨졌다.
뭐? 누구? 미쳤나? 바이올렛은 우리 오빠 거야!
“그렇지만 바이올렛 언니는 우리 아드리안 오빠랑……!”
라피네가 발끈하며 말하자 제르칸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살폈다. 마치 탐색하듯이.
“그래. 두 사람이 연인이 된 걸 알기 전까지 말이야.”
“……네.”
제르칸이 그렇게 말하자 라피네는 혼자 앞서간 것 같아 멋쩍어졌다.
“네 말대로 계약 결혼이든 뭐든 결혼이 중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
“네게 강요하거나 제안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
라피네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제르칸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너무 대놓고 피했던 것이 그에게는 상처가 된 것 같았다.
‘그래, 어릴 때부터 지낸 정이 있는데…….’
라피네가 너무 거리를 둬서 제르칸 역시 얼떨떨했을 것이다. 미처 배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제르칸은 이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먼저 제안했다면 모르겠지만, 내 쪽에서 네게 결혼을 강요할 일은 없다는 소리야.”
“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늘 말했잖아. 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
“결혼 상대는…… 네가 준 리스트 중에 알아보도록 하지. 수고를 덜어 줘서 고맙군.”
제르칸은 몹시도 씁쓸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그러니 더 이상 날 피할 필요 없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르칸은 서서히 멀어지더니 몸을 돌려 가 버렸다.
그리고 라피네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제르칸이 사라진 자리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젠장, 그렇게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는데.’
제르칸은 조금 전 라피네에게 했던 모든 말들이 후회스러웠다.
순간적으로 서운함이 터져 충동적으로 행동해 버렸다.
어릴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충동에 의해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안토니오와 함께 있는 라피네를 보니 눈이 돌아가 버렸다.
제르칸은 입술을 깨물며 연회가 열리는 별궁을 빠져나왔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기분이 아니었다.
가슴 한구석에 생겨났던 작은 구멍이 이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기분이다.
휑,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싸늘한 칼바람이 상처를 할퀴고 지나갔다.
* * *
한편, 마치 자신이 연회의 주인공처럼 행세하던 레베카 황비는 예리한 눈초리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대체 어딜 간 거지?’
감히 자신이 초대한 연회에 황태자를 파트너로 데리고 오는 것도 모자라, 얼굴만 비치고 사라지다니…….
‘생각할수록 건방지단 말이지.’
레베카 황비가 찾고 있는 건 라피네였다.
오늘 그녀가 라피네를 초대한 건 아주 중요한 계획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