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
그날 늦은 밤.
공작가 저택의 집무실.
에스턴 공작, 콜린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는 화려한 금발 머리에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진 미남으로, 아직도 젊은 시절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미간에는 평소와 다르게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공작의 책상 앞에는 공작의 유능한 수석 비서관, 가딘이 서 있었다.
조금 전, 그가 보고한 내용은 베릴 자작가에 관한 기밀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베릴 자작가에서 그동안 라피네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베릴 자작은 유독 하인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집안이었다. 게다가 하인들 중에서도 라피네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극히 일부였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글쎄. 어떻게 처리해야 속이 시원할까.”
“명령을 내리시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검은 가면을 움직이게 할까요?”
검은 가면은 에스턴 공작 휘하의 최정예 부대였다.
그들의 주특기는 암살과 정보를 빼돌리는 일로, 암흑가의 비밀 조직이라 알려져 있었다.
암암리에 귀족들이 이용하는 수면 아래의 조직이었지만, 사실 그들의 수장은 에스턴 공작이었다.
가문의 가신과 원로회에서도 알지 못하는 일급비밀이었다.
“그렇게 처리하면 너무 쉽지. 일단 자금줄부터 천천히 막아라.”
“알겠습니다.”
“감히 내 딸에게 개도 먹지 않을 음식을 먹게 하고, 발길질하고, 천한 핏줄이라 비난한 그 가문의 일원들 전부. 하나도 빼놓을 수 없겠지.”
“자작 가문을 드나드는 하인, 상인 할 거 없이 모든 이들의 인적 사항과 가족 관계, 금전 상황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
“한 놈도 빼놓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각하.”
가딘이 나간 뒤, 에스턴 공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콜린은 자신의 집안에 일어난 이 사건이 모두 본인의 탓이라 여겼다.
만삭의 아내가 라피네를 출산하던 당시. 소피아와 아이들은 모두 영지가 아닌 그녀의 친정이 있는 수도 안, 에스턴 공작가 저택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필 그날, 콜린은 영지 경계에 야만족의 횡포를 막으러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저택의 별채가 불타고 있었고, 큰 소란이 일어났다.
다행히 아내와 가족들은 무사했으나…….
[여보…… 콜린, 우리 아이가…… 내 아이가…….>죽은 갓난아이의 시체를 안고 울고 있는 아내를 맞닥뜨렸을 때.
그는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싶어졌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게 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주변에서는 그렇게 말했으나 콜린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아내의 곁에 있었다면…….
어쩌면 모든 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일은 평생토록 짊어질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그런데 아이가 바뀌었다니.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죽은 아이의 친자 검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당연히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카락은 소피아를 닮은 분홍색이었고, 저택에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또한, 저택의 하인 중 임신한 이도 없었고.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게 아닌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젠장…….”
그는 괴로움을 삼키며 독한 위스키를 들이켰다.
막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알게 된 뒤, 가장 괴로워한 사람이 아내라면 그다음은 콜린이었다.
밀려오는 죄책감에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니.
그것도 그렇게 험한 일을 당하면서…….
늘 시리기만 했던 그의 푸른 눈동자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깊은 밤. 공작의 집무실에서는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 *
“응? 근데…… 아빠. 얼굴이 왜 그래요?”
온 가족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하던 때, 로이스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그 말에 루카와 아드리안, 소피아와 라피네의 시선까지 공작에게로 향했다.
‘붕어인가.’
라피네는 퉁퉁 부은 에스턴 공작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눈도 코도 입도 뺨도 땡글땡글 부어 있었다.
잘생겼지만 어딘가 날카롭고 험악해 보이던 인상이 오늘은 조금 부드러워 보였다.
아무래도 퉁퉁 부어 전체적으로 얼굴에 곡선이 생긴 탓일 것이다.
“여보…….”
소피아가 조심스럽게 끄트머리에 앉은 남편을 불렀다.
덩치 큰 남편이 오늘따라 유독 처량해 보였다. 마치 버림받은 커다란 대형견처럼…….
“아닙니다, 부인.”
에스턴 공작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목소리도 평소와 다르게 매우 허스키했다.
‘또 울었구나.’
소피아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으나 이내 내색하지 않고 라피네의 식사를 돕기 시작했다.
남편이 티를 내기 싫어하는데 굳이 말을 꺼내고 싶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소피아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요즘 라피네와 함께 자고 있었다.
그 말은, 공작은 매일 밤 혼자 지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라피네에게 미움 아닌 미움을 받고 있는데, 라피네에게만 신경 쓰느라 남편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소피아는 하루빨리 라피네가 아빠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으면 싶었다.
‘내가 더 노력해야겠지.’
소피아는 남편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드리안 역시 퉁퉁 부어 버린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우셨구나.’
상냥하고 부드러운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늘 어려운 존재였다.
어릴 때라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특히 막내가 죽고 난 이후로 아버지는 예전보다 더 차가워졌다고 한다.
물론 가족들 앞에서는 미소를 보이긴 했으나, 아드리안은 그 미소 너머에 짙은 슬픔과 어둠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점점 나아지겠지…….’
어딘가 늘 딱딱하고 차가웠던 공작저의 분위기가 라피네가 온 뒤로 바뀌었다.
시간은 천천히 흐를 것이다.
결국에는 가족들이 얻었던 상처도, 라피네가 얻었던 상처도 모두 흐려질 날이 오겠지.
아드리안은 열심히 음식을 먹는 라피네를 보며 웃었다.
“로이스, 아빠 얼굴 좀 봐.”
“나도 봤으니까 조용히 해.”
식탁 위의 분위기를 읽은 로이스가 루카를 핀잔했다.
“그렇지만 붕어 같은걸. 그렇지, 라피네?”
로이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맞은편에 앉은 라피네에게 물었다.
‘나만 붕어 같다고 생각한 게 아니네.’
그 사실이 왠지 웃겨서 라피네는 저도 모르게 “푸힛!” 하고 소리 내 웃고 말았다.
“…….”
“……?”
라피네가 웃자 식탁에 정적이 찾아왔다.
방긋방긋 미소를 띤 적은 많으나, 라피네가 소리를 내서 웃은 것은 처음이었다.
“바, 방금 라피네가 웃은 건가?”
루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대놓고 비웃다니. 아가야, 너무 예의가 없구나. 하지만 아가니까 괜찮을 것이다.」
“…….”
무릎 위에 올려놓은 루비의 말에 라피네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라피네는 조심스럽게 저 끄트머리에 앉은 에스턴 공작을 쳐다보았다.
‘괜히 미안하네…….’
에스턴 공작은 아무렇지 않게 부은 얼굴로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대한 무섭지 않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어린 루카와 로이스마저 아빠가 측은해 인상을 쓸 정도로.
어젯밤, 보고를 들었기에 공작은 라피네가 왜 자신을 보고 겁내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른 남자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더는 라피네가 자신을 피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으로 상처받지 않았다.
“…….”
라피네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포크로 고기 한 조각을 쿡 찍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끄트머리에 앉은 공작을 향해 포크를 내밀었다.
소피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여보……!”
“……!”
에스턴 공작은 믿기지 않다는 듯 두 눈을 깜빡거렸다.
“나, 나를 주려고?”
“……네.”
라피네의 대답에 에스턴 공작은 벌떡 일어나 한걸음에 걸어왔다.
그러고는 라피네의 의자 옆에 스스럼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제마저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철혈 공작.
그런 에스턴 공작을 이렇게 쉽게 무릎 꿇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그의 아내와 라피네가 유일할 것이다.
“아!”
라피네가 입을 크게 벌리라며 “아!” 하라는 의미로 소리쳤다.
“그래, 아……!”
에스턴 공작은 기꺼이 입을 벌려 아이가 주는 고기 조각을 받아먹었다.
그러나 차마 씹지도 못하고 입을 가린 채,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윽…….”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와 로이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며칠 전에 목격했지만, 저렇게까지 흐느끼는 것은 처음 보았다.
“흐으…….”
“아빠아…….”
결국 루카와 로이스까지 삐쭉삐쭉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저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니 동요된 것이다.
“여보…….”
소피아마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지켜보던 사용인들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꾹꾹 찍었다.
“하아…….”
아드리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눈가도 이미 촉촉해진 상태였다.
「이 식사 분위기 어쩔 것이냐, 아가야……?」
“…….”
라피네는 울음바다로 변해 버린 상황이 당황스러웠으나, 모든 사람이 울기 시작하자 저도 모르게 조금씩 가슴이 들썩거렸다.
“미안하다, 라피네. 아가, 울지 말렴. 아빠가 잘못했다. 그러니까…….”
라피네가 울려고 하자, 에스턴 공작은 커다란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린 후 아이를 달랬다.
“흐으…….”
라피네는 입술 끝을 잔뜩 내린 채, 어깨를 들썩거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기세였다.
‘울기 싫은데!’
하지만 눈물은 쉽게 옮아 버린다. 설움이 북받쳐 자꾸만 가슴이 일렁였다.
라피네는 자신을 달래 주는 공작에게 손을 뻗었다.
“……라피네.”
“여보…….”
소피아가 어서 안아 주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에스턴 공작은 덜덜 떨리는 팔로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보았다.
6년 만에 찾은 막내딸을 처음으로 안아 보는 순간이었다.
“붕어라고…… 놀린 거, 잘못했어요.”
라피네는 에스턴 공작에게 안긴 채, 눈물을 찔끔거리며 사과했다.
그 말에 공작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과 마찬가지로 미소도 전염되는 법.
라피네의 귀여운 사과에 소피아도, 아드리안도, 두 쌍둥이 형제의 얼굴에도, 지켜보던 사용인들의 안면에도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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