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0)
수도원이라는 단어에 가족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라피네는 양심이 콕콕 찔렸지만 애써 외면했다.
가족들에게 사실대로 안토니오의 청혼을 피하기 위해서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황가와 맞서려고 할 테니까.
라피네는 가족들이 자신으로 인해 조금의 희생도 치르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 엄마는 허락한다.”
공작 부인의 말에 가족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공작가의 실 결정권자인 소피아가 허락한 거라면,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었다.
“아, 아버지!”
“아버지!”
그 순간, 조용했던 에스턴 공작이 목덜미를 잡고 스르륵 넘어갔다.
* * *
“뭐?”
소식을 들은 레베카 황비 역시 안토니오처럼 분노했다.
‘그 건방진 게……. 감히 내 아들을 가지고 놀아?’
안토니오는 이미 두 사람이 결혼에 합의한 것처럼 말했었다.
아들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라피네 그 계집이 아들을 우롱한 것이 분명하다.
‘쳐죽일 것……!’
분노에 떨던 레베카 황비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안토니오를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안토니오는 이미 연무장에서 한바탕 분노를 표출했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레베카는 안토니오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다가, 아들의 손에 흉터가 가득한 것을 보고는 경악했다.
“안토니오!”
“…….”
안토니오는 대답도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레베카는 곧장 시종을 시켜 치료 도구를 가져오라 명령했다.
“안토니오, 이 어미도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그 건방진 계집이 감히 널 속인단 말이냐!”
“…….”
“이 어미가 반드시 복수를 해 주마. 그러니 너무 상심 말고…….”
“폐하께서 그러시더군요.”
“뭐?”
안토니오는 갈라진 목소리로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절대 제게 허용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요…….”
그 말에 레베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님의 것을 탐하는 것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감히…….”
레베카는 손톱이 살결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황제를 떠올리자 분노로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
“근데 왜 안 되는 겁니까?”
“…….”
레베카는 흠칫하며 안토니오의 눈을 응시했다. 물론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다지만, 이렇게 화가 난 아들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왜 형님의 것을 탐하면 안 되는 겁니까?”
레베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안토니오의 모습은 과거 그녀의 모습과 몹시 닮아 있었다. 테들러 자작은 황비에게 늘 당부했다. 계집인 넌 남동생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레베카는 안토니오의 손등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왜 안 되겠느냐. 당연히 되는 것이지.”
“…….”
“그게 뭐가 되었든 뺏고 쟁취하면 그만이란다. 원래 내 것이었던 걸 돌려받는 건 당연한 거지.”
레베카는 뱀처럼 웃으며 속삭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미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녀 역시 안토니오가 제르칸의 것을 모두 빼앗아 갈취하기를 바라지만, 단 한 가지. 여자는 절대 허용할 수 없었다.
장차 안토니오가 황제 자리에 오를 때, 형의 아내를 빼앗았다는 오명을 쓰는 것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역사서에 아예 없던 일은 아니지만, 그런 황제들은 모두 최악의 황제라 평가받았다.
아들을 그런 황제로 만들 순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안토니오를 달래야 했다. 달콤한 열매로 유혹하듯.
“안토니오, 이 어머니의 말대로만 하면 너는 제르칸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단다.”
“……어떻게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머니?”
안토니오가 분노로 떨며 물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눈가로 설움과 억울함이 얼룩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내 안토니오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쏟아 냈다.
“가여운 내 아들…….”
레베카는 제 품에 안겨 우는 아들을 다정히 위로해 주며 속닥거렸다.
제르칸의 모든 것을 빼앗고 나면, 라피네는 마지막 전리품으로 따라오게 될 거라고.
* * *
“축하드립니다, 황후 폐하.”
“축하드립니다.”
시녀들의 축하에 황후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활짝 웃었다.
최근 들은 소식 중, 이토록 기쁘고 즐거운 소식이 있을까. 황후는 내내 입꼬리가 내려올 틈이 없었다.
“내일은 공작 부인을 초청해 약혼식 준비를 상의해야겠구나.”
“많이 바빠지겠군요.”
“그래, 참. 서궁 옆의 사파이어 궁전도 정비를 시작해야지.”
사파이어 궁전은 황태자가 결혼하게 되면, 황태자비와 함께 지내게 되는 거처였다.
여태까지 비어 있었으니 재정비가 필요했다.
황후는 일거리가 잔뜩 쌓였음에도 신이 나기만 했다.
“그나저나 잘 출발했는지 모르겠구나…….”
황후는 걱정스레 창밖을 쳐다봤다.
“전하께서 어련히 잘하시려고요.”
“그럼요. 너무 걱정 마셔요, 황후 폐하.”
황제와 황후의 허락이 떨어진 뒤, 오늘에야 제르칸은 황실의 공식 인장이 찍힌 청혼서를 직접 전달하기 위해 황성을 나섰다.
황실과 에스턴 가문의 연합이기도 한 만큼, 최대한 황성 예법을 지켜 진행하기로 했다.
황후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 * *
라피네는 저택 정문을 통과해 다가오는 마차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빨리 일이 진행될 줄이야.’
황제와 황후가 이렇게까지 일을 서두를 줄은 몰랐다.
제르칸이 가져온 공식 청혼서를 라피네가 받아 서명하면 약혼 관계가 성립된다.
이후로는 더 정신없을 것이다. 약혼식을 치른 뒤에는 황성에서 머물게 될 테니 말이다.
‘이게 맞는 건가…….’
아무리 계약 결혼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결혼이라 그런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사실 라피네는 연애 결혼의 꿈이 있었다.
‘이혼한 뒤에도 연애는 할 수 있겠지?’
이혼이 크게 흠이 되는 사회는 아니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사람들은 많으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아니지, 지금 이걸 걱정할 때가 아니야.”
라피네는 곧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다음 방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서자 현관에 서 있는 제르칸이 보였다. 황성 시종들과 함께 온 그는 오늘따라 유독 빛이 났다.
엄마와 아드리안을 제외한 가족들은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라피네는 가족들의 모습을 한번 훑고는 다시 제르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제르칸과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정말 연기가 가능하겠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라피네는 속으로 그의 걱정을 비웃으며 표정을 바꾸었다.
“어머, 전하!”
한순간에 감동받은 표정으로 변한 라피네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전하……!”
제르칸의 코앞까지 다가간 라피네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시종들은 깜짝 놀라 라피네를 쳐다봤다.
반면, 가족들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기분이 나쁜 눈초리로 제르칸을 흘겼다.
“라…… 피네.”
“네에, 전하. 이렇게 직접 오실 줄은 몰랐어요.”
“당연히…… 직접 와야지.”
“절 보러 오신 거지요? 너무 감동했어요.”
마치 구름을 걷는 듯한 사랑스러운 말투와 목소리였다.
다들 어안이 벙벙했지만, 제일 당황한 건 제르칸이었다.
라피네가 짠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제르칸과 그녀가 함께 있을 때였다. 라피네는 모든 연기력을 총동원했다.
“어서 가요, 전하.”
라피네가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제르칸의 팔에 다정하게 팔짱을 꼈다. 누가 봐도 사랑에 푹 빠진 모습 그 자체였다.
“그래…….”
제르칸 역시 최대한 자연스럽게 굴려고 노력했지만 꽤 어려웠다.
집사가 일행을 응접실로 안내했고, 라피네는 제르칸의 옆자리에 찰싹 붙어 앉았다.
황성에서 온 시종이 금색 봉투에 든 서류를 건넸다.
제르칸은 그걸 받아 인장이 찍힌 서류를 꺼내 에스턴 공작에게 내밀었다.
“…….”
에스턴 공작은 유독 퀭한 표정이었다. 소식을 들은 날 이후로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제르칸은 괜찮냐고 물으려다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아…….”
라피네는 품 안의 손수건을 꺼내 너무 행복해 죽겠다는 듯 눈가를 콕콕 찍었다.
지난 며칠간의 연기 덕분인지 가족들은 더 이상 라피네를 의심하진 않았다. 특히 쌍둥이는 아예 받아들인 얼굴이었다.
다만, 아드리안은 미묘한 의심이 서린 눈길로 유심히 라피네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의 결혼을 찬성했던 아드리안이 이렇게 된 바탕에는 바이올렛의 주장이 있었다.
라피네의 결혼 소식을 들은 바이올렛은 그 누구보다 분개했는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음모론까지 꾸며 냈다.
〈라피네가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무슨 음모가 있는 거야. 제르칸이 라피네를 협박했을지도 몰라!〉
하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그런가, 아드리안은 묘한 의심을 품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라피네는 정말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어떻게 저 눈빛을 거짓이라고 하겠는가.
아드리안의 예상대로, 라피네의 눈빛만큼은 진짜였다.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다.’
조금 걱정했는데, 오히려 제르칸이 옆에 있으니 연기하기가 더 쉬웠다.
솔직히 어떤 여자를 데려다 놔도 1초면 연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제르칸에게는 무척 좋은 향기가 나서 옆에 딱 붙어 있어도 불편하기는커녕 즐겁기만 했다.
‘약간 사심 채우기 같지만…….’
라피네는 아까까지 이게 맞나, 고민하던 건 새하얗게 잊고 역할에 진심으로 몰입했다.
“이제 서명을…….”
황성 시종의 말에 라피네는 기다렸다는 듯 펜을 들어 서명했다.
이로써 두 사람의 약혼이 결정되었다. 이제 식까지 올리게 되면 절대 무를 수 없는 것이다.
‘그래, 한번 가 보자고.’
이렇게 생긴 황태자와 계약 결혼이라니, 직업 만족도는 안 봐도 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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