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5)
라피네가 처음 할 일은, 바로 시녀를 뽑는 것과 귀족 여성들만 초대하는 소규모 연회를 여는 것이었다.
처음 여는 연회는 몹시 중요했다. 누굴 초대할 건지, 누굴 가까운 자리에 배치할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후 폐하는 첫 연회 때 초대한 귀부인들 대부분과 여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우선적으로 시녀를 뽑는 일이 중요했다.
라피네는 아카데미에서 함께 지냈던 영애 중 꽤 친했던 몇 명을 떠올렸다.
황족의 시종이 되는 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말이 시종이지, 따지자면 비서나 마찬가지다. 평생의 뒷배를 보장받는 것일 뿐 아니라, 가문에도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황태자비의 전담 시녀는 미래에 황후의 시녀로 자동 승격하게 될 테니, 전생의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국가 최고 기관의 고위 공무원인 셈이었다.
라피네는 가장 먼저 제안할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시녀들의 안내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드레스룸 앞에 대기 중인 또 다른 시녀가 말을 전했다.
“밖에 황태자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라피네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슬쩍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제복 차림의 제르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와, 이 얼굴이 공식적인 내 남편이라니.’
우월한 외모의 제르칸을 보자마자 그 생각부터 들었다.
비록 가짜 남편이지만, 정말이지 예상대로 직업 만족도가 엄청났다.
‘그래, 언제 또 황태자비로 살아 보겠어. 권력이 최고야. 즐겨 보자고. 게다가 남편이 저 외모잖아.’
직업 만족도로 줄을 세우면 온 대륙을 통틀어 단연 1등을 거머쥘 자신이 있었다.
제르칸은 우아한 자세로 기사처럼 손을 내밀었다. 자세, 동작, 각도 하나하나 황족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라피네는 사랑에 푹 빠진 소녀 같은 눈동자로 그의 손을 잡았다. 지켜보던 시녀와 시종들은 흐뭇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흐뭇한 표정은 금방 굳어졌다.
“…….”
제르칸의 무표정한 얼굴이 오늘따라 유독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
반면 라피네는 이 순간이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란히 팔짱 끼고 걷는 두 사람의 표정은 대비가 극명했다.
한 사람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한 사람은 봄날의 꽃처럼 따사로웠다.
‘전하도 참…….’
‘우리 비전하 가여워서 어쩌나…….’
시녀들은 벌써부터 라피네의 편이 되어 안타까운 듯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파이어 궁 건물 앞에 대기하던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라피네는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별일 없으셨죠?”
“평소랑 똑같았다. 라피네, 너는? 잠은 잘…… 잔 건가?”
“당연히 못 잤죠.”
라피네의 대답에 제르칸은 의아했다.
‘새벽부터는 쿨쿨 잘 잤으면서.’
한참 동안이나 잘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라피네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허리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요. 끄트머리에서 자려니까 너무 신경 쓰여서……. 전하는요? 허리는 안 아파요?”
“……별로.”
“진짜요? 어떻게 허리가 안 아프지?”
“내 허리는 튼튼해.”
제르칸이 순수하게 대답했다.
“아, 아하……. 그렇구나.”
라피네는 순간 미묘한 생각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혼자 변태가 된 기분에 그녀는 말을 돌렸다.
“저는 오늘 황제 폐하, 황후 폐하와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
“그래, 들었어.”
제르칸은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원래 오늘 오찬 모임에는 황제가 함께 참여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오찬 자리에 가 보니 쏙 빠져 있었다.
시종에게 물어보니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 폐하께서는 급히 다른 볼일이 있다고 하셔서요. 황후 폐하와 함께 비전하와 점심 식사를 하신답니다.”
제르칸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혼자만 라피네와 식사를 하러 간 아버지가 얄미웠다.
그 역시 마음 같아선 라피네와 하루 종일 함께 있고 싶었다. 라피네가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황성에 자주 찾아왔어도, 그래도 막상 이곳에서 지내는 건 낯선 일일 테니까.
황성은 무척 외로운 곳이니 곁에서 라피네가 외롭거나 당황하지 않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라피네는 그가 없어도 무척 잘 지낸 듯했다.
“식후에는 황후 폐하와 산책을 했어요. 사파이어 궁의 정원이 엄청 멋지더라고요.”
“그래, 멋진 곳이지.”
“뒤쪽에는 호수도 있다던데, 가 보셨어요?”
“예전에 몇 번.”
“밤에 가면 예쁠 것 같던데.”
“그래, 밤이 되면 조명을 켜 두어서 아름다워.”
“와, 정말요? 조만간 가 봐야겠네요.”
“함께 가지.”
“전하랑 저랑요? 바쁘지 않으신가?”
라피네는 물끄러미 제르칸을 쳐다봤다. 그는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너 혼자 갔다가 호수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엥? 저요? 제가 호수에 왜 빠져요?”
라피네는 콧잔등을 긁으며 물었다. 자신에겐 오르파나가 있어서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
호수에 빠진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 없었다. 애초에 빠질 일도 없고.
“그게 아니라, 갑자기 누가 침입할 수도 있고…….”
“예? 황성에요?”
제국 황성의 보안은 엄청 유명했다. 황성 마법사들이 몇십 년 동안 공을 들여 만든 보안망이었다.
“거대한 맹수가…….”
“어라, 황성 숲에는 토끼랑 사슴만 산다고 하던데요?”
“…….”
말을 할수록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제르칸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냥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뭐, 어쨌든 함께 가요. 제가 조르고 졸라서 마지못해 따라간 느낌으로.”
“……그래.”
제르칸은 속으로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라피네와 대화할수록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다행히 라피네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사이 마차는 에스턴가 저택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라피네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미소 지었다. 가족들이 전부 건물 앞에 나와 있는 게 보였다.
“라피네!”
마차 문이 열리자 루카와 로이스가 달려왔다.
라피네는 양손을 뻗어 한 쪽씩 내민 두 사람의 손을 잡고 내렸다.
“…….”
먼저 나가서 라피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생각이었던 제르칸은 외롭게 뒤따라 나왔다.
“우리 딸, 어젯밤에 춥지는 않았고?”
“그래, 황성에서 누가 괴롭히진 않더냐?”
공작 부부는 라피네를 아기처럼 대하며 이것저것 질문했다.
“라피네, 집이 그리웠지? 그치? 거봐, 집이 최고지?”
“그냥 너 여기서 황성 출퇴근하면 안 되냐?”
“오, 좋은 생각인데? 로이스 웬일이냐?”
“나도 머리 쓸 땐 써.”
루카와 로이스는 헛소리를 주고받았다. 아무도 신경 쓰진 않았지만.
제르칸은 마치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었으나, 아드리안과 바이올렛 덕분에 그런 신세는 면했다.
“이젠 정말 가족이 됐네.”
아드리안이 그렇게 말하며 제르칸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가족. 기분이 이상했다.
어린 시절, 제르칸은 늘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을 부러워하는 아이였다.
두 사람에겐 다정한 가족이 있었으니까.
어렸을 때 이야기책에서 나오는 가족들은 전부 그런 느낌이었다. 서로를 살갑게 챙기고, 다정한 말을 주고받고, 함께 식사하며 웃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다음 날 아무렇지 않은 듯 화해하고.
그러나 제르칸의 가족은 전혀 달랐다. 애초에 황성은 그런 분위기를 겪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커다란 기사들이 복도를 경비하고, 딱딱한 시종들이 예법을 강요하고, 어머니는 냉랭하고, 아버지는 엄격하고.
그래서 제르칸은 아드리안이나 바이올렛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행복감을 느끼면서도 지독하게 외로웠다.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본 적은 없으나 소망하기도 했다. 나도 저런 가족들이 있었으면, 그렇게.
“전하,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식당으로 들어서자 공작 부인이 제르칸에게 손짓했다.
제르칸은 얼떨떨하게 다가가 라피네의 옆자리에 앉았다. 상석에는 공작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다들 자리에 앉자 넓은 식당이 꽉 찬 느낌이었다.
맞은편엔 아드리안과 바이올렛, 루카가 앉았고, 제르칸의 옆엔 라피네와 로이스가 이어 앉았다.
식탁 위에는 호화로운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고 촛불이 밝게 일렁였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에스턴 공작이 잔을 들고 큼큼 헛기침하며 말했다.
공작의 시선은 제르칸에게로 향했다.
“이제 곧 한 가족이 될 사이니, 적어도 이런 자리에서만큼은 공식적으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전하.”
“물론입니다.”
그렇게 대답하자 공작은 입꼬리를 올려 환하게 웃었다.
저렇게 활짝 웃는 모습의 에스턴 공작은 처음 봤다. 이렇게 보니 아드리안, 라피네, 루카, 로이스와 정말 닮은 점이 많았다.
“이제 전하, 아니……. 제르칸 너도 내 아들이다. 제국에서 가장 귀한 아들을 얻었으니 축배를 들어야겠지.”
“…….”
“다른 녀석들과 다름없이 귀한 자식으로 대할 것이다. 바이올렛, 너도 마찬가지고. 하하! 제국에서 나만큼 자식 복이 많은 이는 없겠지.”
에스턴 공작은 통 크게 웃으며 잔을 올렸다. 다들 미소 지으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제르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샴페인을 마셨다. 목구멍이 따가워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황제에게 오늘 딸 하나가 생긴 것처럼, 에스턴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제르칸은 자신에게 다정한 아버지가 한 명 더 생겼음을 정말로 실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둑놈 보듯 제르칸을 쳐다보던 에스턴 공작은, 이제 소중한 아들을 대하듯 제르칸을 바라보았다.
그날, 제르칸은 공작 부부의 애정이 담긴 시선을 듬뿍 받았다.
황성으로 돌아가는 길, 제르칸은 어쩐지 가슴이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차, 예쁘게 반짝이며 찰랑거리는 느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