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6)
두 사람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황성에 도착했다.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방으로 들어온 제르칸은 멈칫했다.
라피네가 이미 침대에 누워 잠든 채였기 때문이다.
아직 이틀째긴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나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와 한 침대를 쓰게 되다니.
그것도 라피네와.
제르칸은 조심스럽게 걸어가 침대 한가운데 대자로 뻗어 잠든 라피네를 쳐다봤다.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모습이 귀여웠다.
제르칸은 이불을 들어 라피네의 목 끝까지 덮어 주었다. 3초가 지나지 않아 라피네가 다시 걷어찼지만.
“…….”
제르칸은 괜히 서서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긴장으로 몸이 차가워졌다.
진짜 부부가 아니니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계속 스스로 세뇌해 보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진짜 부부라면 더욱 긴장될 것 같은데.’
제르칸은 침대 끄트머리에 누울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다가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다.
소파에 앉아 등을 기대자, 아까 전 저녁 식사 때의 기억이 밀려왔다.
따뜻한 가족의 한때에 자신이 어울려 있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식사 도중 그는 문득 라피네에게 시선을 돌렸고, 눈이 마주치자 라피네는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어 웃었다.
그 미소를 보자마자 숨이 탁 막혔다. 눈을 마주치는 게 어려워 곧바로 시선을 피해 버렸다.
“후우…….”
기억을 떠올리자 다시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제르칸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쓸어내렸다.
혼란스러운 밤이었다. 어쩐지 밖에 나가 다짜고짜 달리고 싶기도 하고…….
* * *
이른 아침, 부스스 일어난 라피네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침대엔 그녀 혼자였다. 끄트머리에서 일어났긴 한데, 문제는 제르칸이 자던 쪽의 자리였다.
‘알아서 잘 잤겠지, 뭐.’
어젯밤 씻고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져 자느라 제르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라피네는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확실히 부부 침대라 그런가, 훨씬 커서 아늑하단 말이지.’
제르칸은 오늘도 엄청 일찍 출근한 모양이었다.
라피네는 시녀들을 불러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원래 살던 저택 역시 편하긴 했지만, 황성은 더 좋았다. 일단 잔소리하는 루카와 로이스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했다.
‘호캉스 온 것 같네.’
라피네는 몸이 녹아내릴 만큼 편한 소파에 늘어져 쿠키를 먹다가 손을 털고 일어났다.
‘이제 시녀 리스트를 좀 작성해 볼까.’
어제 고민한 결과, 아카데미에서 친했던 영애 중에서 2명 정도 뽑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티파티 초대 명단은…….’
사실 황후 폐하께서 이에 관해서는 살짝 귀띔을 해 주셨다.
어떤 귀족들을 초청하는 게 나을지 말이다.
그러나 고민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황비가 수도원에서 데려온 성녀.
그 여자는 현재 황궁 근처에 있는 신전에서 지내고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황비를 찾아오고, 심지어 황궁에서 자고 갈 때도 있다고 하던데…….
‘황비는 성녀를 통해 사교계를 휘어잡으려는 거겠지.’
확실히 귀족들은 성녀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초대를 할까, 말까.’
황후는 추천하지 않았지만, 라피네는 오히려 성녀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고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라피네는 이번 연회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반드시 긍정적인 인연을 맺을 생각이었다.
제르칸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만한 중립파 세력들도 상당수 초대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었다.
지금은 홍차 열풍으로 티파티의 유행이 시작된 시기였다.
최근 귀족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홍차의 찻잎과 귀한 찻잔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겠지만, 제국에서 가장 쉽게 그 두 가지를 구할 수 있는 건 라피네 뿐이었다.
이번 연회에서 라피네는 현재 구할 수 있는 찻잎 중, 가장 귀한 걸 선보일 예정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영애와 귀부인들에게 임페리얼 메이슨의 찻잔 세트와 최고급 찻잎을 선물로 줄 생각이다.
아무리 황금이 많아도 구하기 어렵다는 브랜드의 찻잔과 귀한 찻잎. 다들 기뻐하며 돌아갈 것이다.
소문이 나면 자연스럽게 라피네와 친하게 지내려는 귀족들이 늘어날 거고.
‘자고로 정치 싸움은 여론전이지.’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황비와 대적해야 한다.
라피네는 독사 같은 황비와 외래종 두꺼비 같은 테들러 자작, 매국노 안토니오를 어떻게 견제해야 할지 고심했다.
* * *
그러나 상황이 마냥 느긋하게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그날 오후, 국정 회의에 안건 하나가 대두되었다.
국경 지대에서 마수에 의한 피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마수라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균열은 분명 사라졌어요. 그런데 어찌……!”
소식을 들은 귀족들은 혼란에 빠졌다. 균열과의 전쟁을 겪었던 몇몇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보고에 의하면, 죽은 사람들의 몸에 남은 상처를 분석한 결과 마수에 의한 피해와 일치했다. 다만, 마수를 직접 목격한 자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폐하,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진상을 조사하셔야 합니다. 마수가 다시 나타날 이유가 없습니다!”
한 귀족의 말에 테들러 자작 쪽 귀족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지난번에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균열이 열렸답니까?”
“맞습니다. 거짓으로 이런 일이 보고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혹시 지난 전쟁에서 균열이 제대로 닫힌 게 아닌 거 아닙니까?”
제기된 의문에 귀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이미 언쟁을 높이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그럼 황태자 전하께서 실수를 했다는 소립니까?”
“누가 그렇다고 했나? 왜 발작하듯 그러는 거지? 뭔가 찔리기라도 하나?”
“아니, 이 사람이!”
쿵쿵!
황제의 곁에 선 보좌관이 두꺼운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귀족들은 그제야 언짢은 표정의 황제를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쯧. 황제는 낮게 혀를 찼다. 최근 기분 좋은 일들만 가득해 대신들을 너무 풀어 준 모양이었다.
“혀가 잘리기 싫으면 다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게. 우선은 진상 조사를 위해 기사단을 파견하겠다.”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회의가 끝났음에도 귀족들은 돌아가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러다 마수 떼가 수도까지 밀려오면 어쩐단 말인가.”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군. 황태자 전하께서 설마 일부러 그랬을 리도 없고…….”
“무슨 말인가?”
“생각해 보게. 균열을 마무리한 건 황태자 전하 아닌가! 마수가 다시 나타난 게 진짜라면, 그게 누구 탓이겠나!”
“흠흠…….”
테들러 자작과 황비 쪽 귀족들은 서로 대척 관계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한편인 것처럼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어디 감히 함부로 입을 놀려!”
“황태자 전하께서 그 오랜 시간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황후 쪽 귀족들이 나섰으나 이미 중립파 귀족들은 불안감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
결국, 반나절 만에 황태자 책임론이 귀족들의 논쟁거리로 자리 잡았다.
* * *
한가롭게 황비 무리를 혼내 줄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라피네는 마수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선빵 맞았네.’
라피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원래라면 마수가 다시 나타날 리가 없었다. 원작에서도 균열이 도로 열린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원작과 흐름이 달라진 만큼, 적들의 공격 패턴도 달라졌을 테니 안심할 순 없었다.
확실한 건 이건 균열의 재발생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낸 사고가 분명하다.
‘마수를 직접 본 사람도 없다니. 더욱 수상해.’
기다렸다는 듯이 황태자 책임이라 몰아가는 귀족들의 반응도 그랬다. 우스울 정도로 상황이 딱 들어맞게 흘러가고 있었다.
라피네는 시종을 통해 제르칸의 행방을 물었다.
“전하께서는 아직 집무실에 계실 겁니다.”
고민 끝에 라피네는 사파이어 궁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때마침 라피네가 나가려는 타이밍에 제르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하.”
제르칸은 어쩐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라피네는 제르칸이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다는 걸 기억해 냈다.
대신들이 하루아침에 제르칸에게 책임을 떠넘긴 상황이다. 티를 내진 않지만 분명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라피네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천천히 다가갔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위로하는 건 어려웠다.
그러나 입을 먼저 연 것은 제르칸이었다.
“라피네, 당분간 황성에 혼자 있어야겠어. 아드리안이 특별히 신경 쓸 테니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라피네는 어리둥절해 눈만 깜빡였다.
“무슨 말이에요?”
“일이 좀 생겨서 국경 지대에 다녀와야 해.”
“대충 들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직접 가려고요?”
“혹시 모르니까. 정말 균열이 열린 거면…….”
제르칸은 말을 잇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지옥 같았던 상황이 그의 머릿속에 다시 펼쳐졌다.
갑자기 제르칸의 뒤로 연기 같은 검은 오라가 형성되었다. 주인의 어두운 감정을 먹고 자라는 어둠의 정령 짓이었다.
“아니, 이건 뭐야.”
라피네는 손을 휘휘 저어 연기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어둠의 정령의 멱살을 잡았으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그녀의 눈에 보이진 않았다.
라피네는 멍해진 제르칸의 뺨을 붙잡았다. 차가운 손바닥의 감촉에, 풀렸던 제르칸의 동공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잡념에 흔들리지 마요. 균열은 열리지 않았어요.”
제르칸은 라피네를 응시했다. 확신에 넘친 태도가 터무니없었지만, 상대가 라피네라 그런지 어쩐지 믿음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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