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8)
* * *
마수는 무리를 지어 활동한다.
그러나 오늘 본 마수는 1마리였다. 함께 다니는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동선을 보면, 수도에 보고된 사건을 일으킨 마수도 그 1마리의 짓이 확실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기에 며칠 더 근처에 묵으며 수색을 이어가기로 했다.
늦은 오후.
빗길을 뚫고 도착한 곳은 산에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니클라스 백작의 성이었다.
니클라스 백작은 마수와의 전쟁 당시 팔을 잃었으나, 끝까지 자리를 지킨 충직한 자였다.
제르칸은 인근 신전에 들렀다 오기로 했기에, 라피네가 먼저 백작 성에 도착했다.
백작 부부는 상냥하게 그녀를 맞아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비전하.”
“일단 비에 젖으셨으니 방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백작 부인은 하녀에게 서두르라 눈짓을 보냈다.
그렇게 따뜻한 물로 씻은 뒤, 라피네는 귀빈용으로 준비된 방에 들어왔다. 방 안은 아주 따뜻했다.
라피네는 장작불이 피어오르는 벽난로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인형의 모습으로 돌아간 루비를 말려 주었다. 비를 맞아 축 늘어진 모습이 어쩐지 측은하게 느껴졌다.
“오늘 고생했어, 루비.”
「별거 아니다, 아가.」
라피네는 곰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제르칸은 마수의 생김새가 기존의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게다가 달라진 마수의 몸에선 미약한 신성력이 느껴졌고…….
‘균열이 열린 건 아냐.’
그랬다면 마수가 쏟아져 나왔을 테니까.
정황상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신전에서 균열이 닫히기 전, 마수를 생포한 것이다.
무슨 의도인진 모르지만 생체 실험을 감행했고, 마수의 몸에 신성력을 불어 넣는 데 성공했다.
‘잡혀 있던 마수가 도망을 친 건지, 아니면 일부러 풀어 준 건지는 불확실하지만.’
어찌 되었든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큰 사건이다.
하지만 마수의 사체를 불태웠으니 남은 증거가 없다. 오로지 라피네의 증언뿐.
‘증거를 찾아야 해.’
라피네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아직도 밖은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거기에 안개까지 껴 있어 창밖은 흐릿했다.
라피네는 김이 서린 유리창을 닦고 밖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이마를 댔다.
그러길 한참. 다그닥 소리와 함께 희미한 안개 사이로 제르칸과 기사들이 탄 말이 나타났다.
백작성의 마부가 말을 끌고 갔고, 제르칸과 기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라피네는 곧장 몸을 돌려 문 앞으로 가서 서성였다.
문 너머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릴 즈음에는 기다리지 않고 먼저 문을 벌컥 열었다.
“……!”
살짝 놀란 듯한 제르칸과 눈이 마주쳤다.
라피네는 어서 들어오라며 길을 비켜 주며 손짓했다.
제르칸은 1층 현관에서 하인이 준 수건으로 물을 조금 닦아 냈는지, 물에서 방금 나온 듯한 생쥐 꼴은 아니었다.
온몸이 다 젖어 있긴 했지만.
“알아봤어요?”
라피네는 가장 중요한 걸 먼저 물었다.
제르칸이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수상하더군. 일부 신관들은 묘하게 분주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어.”
“……최대한 빨리 증거를 없애려 할 거예요.”
“이곳에서 북쪽으로 좀 더 가면 백작령보다 더 큰 신전이 하나 있어. 그곳에서 실험을 한 게 아닐까 싶은데…….”
“북쪽이면 길이 험하잖아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지금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라피네는 제르칸을 살펴봤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입술은 푸르게 변해 있었다. 이 와중에 젖어서 넘긴 머리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머리를 내려서 잘 몰랐지만, 넘긴 모습은 조금 더 남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마도 예쁘고…….
그리고 무엇보다 옷이 젖어서 그런가, 커다란 골격이 전부 드러났다.
하얀 셔츠가 젖어 살결이 비치는 게 민망했다. 숨을 쉴 때마다 얕게 들썩이는 가슴 근육이 적나라하게 보여서…….
“이, 일단 씻어요.”
라피네가 욕실 쪽을 가리키며 그를 밀어 넣었다.
제르칸은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진 라피네가 의문스러웠으나 순순히 욕실로 들어갔다.
하긴, 빗속을 달렸으니 흙냄새와 비 냄새가 섞였을 것이다.
어차피 말도, 기사들도 지쳐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그건 신전도 마찬가지일 테고.
제르칸은 물에 젖은 옷을 벗고 따뜻한 물이 담긴 커다란 욕조로 들어갔다.
눈을 감자 여러 기억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다시는 마수를 볼 일이 없을 거라 여겼는데…….
그가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전장에서의 기억은 끔찍한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결국 마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냈다며 제르칸을 칭송했으나, 사실 허울뿐인 승리였다.
너무나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 남겨진 가족들까지 따지면 피해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죽은 병사들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자식이며, 아내, 남편이자 부모였다.
제르칸은 병사들의 죽음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건 불가능했다.
모두가 본인의 탓처럼 여겨졌다. 유가족들의 원망이 하나둘씩 차곡차곡 등 뒤로 쌓여 가는 듯했다.
그 책임의 무게는 온전히 본인만의 짐이었다.
때로는 짊어진 것들이 너무 무거워 질식할 것만 같았으나, 버티고 버텼다.
그가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균열이 닫히고, 그는 해야 할 일을 마쳤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음에도 그 짐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계약자의 어두운 생각을 먹이로 삼는 어둠의 정령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을 때였다.
쿵쿵.
라피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제르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가 두리번거리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이 욕실 안에는 그가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안에 갈아입을 옷 없죠? 금방 가져다 달라고 할게요.”
문 너머로 라피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르칸은 마저 씻고 커다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냈다. 그즈음, 라피네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갈아입을 옷은 문 앞에 뒀어요.”
제르칸은 새삼 이곳이 황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런 곳에 라피네와 함께 있다는 게 낯설지만 또 묘하게 기뻤다.
‘그나저나, 또 한방을 쓰게 되는 건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두 사람은 이미 온전한 부부나 다름없으니까.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라피네가 보였다.
따뜻한 걸 좋아하는 모습이 꼭 아기 고양이처럼 귀엽게 여겨졌다.
라피네는 그를 슬쩍 보더니 다시 벽난로로 시선을 돌렸다. 제르칸은 라피네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비가 그치면 바로 이동해야겠어. 위험하니 넌 이곳에서 머무는 게 어때? 곰을 타고 다니겠다면…… 막을 수 없겠지만.”
그의 말에 라피네는 피식 웃었다. 그 작은 웃음소리에 제르칸의 심장이 요동쳤다.
“우리가 섣불리 움직이면 그들은 들켰다고 생각할 거예요. 최대한 모르는 척하는 게 좋죠. 게다가 빼돌린 마수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히 움직여야 해요.”
“그렇지만…….”
“여차하면 민가에 마수를 풀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라피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증거를 찾아야 하니까.
“우리가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더 안전한 조사원을 파견하면 돼요.”
“그게 누구지?”
“제 정령이요.”
“…….”
사실 조금 전, 라피네는 이미 오르파나를 인근 신전으로 보냈다.
요 며칠 오르파나는 무척이나 게을러져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어둠의 정령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심부름을 시킨 것도 있었는데, 오르파나는 좋다고 도망치듯 조사를 떠났다.
대개 사람들은 정령사가 정령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정령사마다 역량이 달랐고,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건 신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라피네는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실 같은 정령사끼리도 서로의 능력을 자세히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예로, 바이올렛과 제르칸은 성물에 대한 건 아예 모르는 눈치였다.
또한 정령마다 계약자와 소통하는 방법, 빈도도 다른 것 같았다.
바이올렛은 전투할 때가 아니면 아예 정령들과 소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르칸은…… 그냥 아예 안 할 것 같고.
‘그나저나 어둠의 정령이 거슬리는데.’
제르칸을 흑화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 게다가 오르파나를 괴롭혔던 놈.
라피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르칸을 노려봤다. 정확히는 그 너머의 어둠의 정령을 노려본 것이지만…….
“내게 화가 났어?”
제르칸이 당황하며 물었다. 라피네의 눈초리가 살벌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라피네는 눈을 슬쩍 치웠다.
“네 정령을 믿어도 될까?”
“제 정령은 아주 믿음직스럽고 저와 무척이나 친하거든요.”
그 말에 제르칸은 신기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정말 정령들과 안 친한가 보다.’
하긴, 제르칸이 바이올렛이나 아드리안 외 누군가에게 마음을 연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제르칸은 그 둘에게도 약간의 벽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때,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라피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갈까요? 백작 부부가 특별히 신경 써 준 모양인데.”
“……그러지.”
라피네는 제르칸과 함께 방을 나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를 거닐 때.
라피네가 돌연 제르칸에게 바짝 달라붙어 팔짱을 꼈다. 제르칸은 놀라 고개를 내려 라피네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라피네는 눈을 접어 사르르 웃었다.
말 그대로 사르르, 꼭 작은 나비가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신비롭고 사랑스러웠다.
“……!”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던 그 순간.
저 멀리서 백작 부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눈 때문에 라피네가 연극을 다시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왜인지 제르칸은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