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9)
* * *
식사 분위기는 온화했다. 남아 있던 마수 1마리를 처리했다는 소식에 백작 부부는 크게 안심했다.
“영지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다행입니다.”
“혹시 남은 마수가 더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군요…….”
백작 부부의 말을 듣던 제르칸은 그들을 안심시켰다.
“인근 영지들에는 피해가 없도록 기사단이 파견될 것이다.”
제르칸과 정예 기사단은 수색을 위해 먼저 출발한 것이고, 정식으로 파견될 기사와 병사들이 며칠 이내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라피네는 식사 분위기가 딱딱해지지 않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음식의 맛이 훌륭하네요. 정말 맛있어요.”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아, 참. 이 재료는 아까 전에…….”
백작 부인이 말을 하다 멈칫했다. 라피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백작 부인은 남편의 눈치를 보며 미소로 무마했다. 니클라스 백작이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꺼냈다.
“영지민들 중에는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의 가족들이 꽤 많습니다.”
“아…….”
“전하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오늘 아침부터 영지민들이 손수 가져온 귀한 재료들입니다.”
“…….”
제르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백작은 그런 제르칸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전하께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고 싶어 소중히 품은 채 빗길을 뚫고 달려온 자도 있습니다.”
“은혜는 무슨…….”
제르칸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라피네는 그런 제르칸을 힐긋 보다가 식사를 이어 갔다.
배가 부를 텐데도 제르칸은 영지민들이 가져온 재료로 만들었다는 음식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비워 냈다.
식사가 끝난 뒤. 제르칸은 먼저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라피네는 백작 부인과 차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스턴 공작 영애가 황태자에게 푹 빠져 있다는 소문은 여기까지 퍼져 있었다.
라피네는 능숙하게 연기를 선보였다.
제르칸이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자, 백작 부인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라피네가 방으로 돌아갈 무렵.
“아 참, 전하께 이걸 전해 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백작 부인이 작은 종이를 꺼내 챙겨 주었다. 라피네가 눈으로 묻자 그녀가 상냥히 대답했다.
“전하께 전달해 주세요. 보시면 금방 아실 겁니다.”
라피네는 두 번 접힌 종이 안쪽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꾹 참고 방으로 올라갔다.
제르칸은 창가에 서 있었다.
“먼저 잠든 줄 알았는데.”
라피네는 그렇게 말하며 제르칸이 서 있는 창가로 다가갔다.
제르칸의 표정은 착잡해 보였다.
사실 늘 비슷한 표정이지만, 어쩐지 라피네는 이제 제르칸의 표정을 읽는 게 조금은 쉬워졌다.
“이거요.”
라피네는 곧바로 백작 부인이 챙겨 준 종이를 제르칸에게 건넸다.
“뭐지?”
“글쎄요. 백작 부인이 전해 달라고 하던데요?”
제르칸은 잠시 종이를 내려다보더니 그 자리에서 펼쳤다. 라피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힐끔 훔쳐보았다.
“…….”
내용을 읽은 제르칸의 미간이 구겨졌다. 라피네는 내용이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빼꼼 내밀어 대놓고 파고들었다.
“아…….”
긴 문장은 아니었다.
종이에는 어린아이의 서툰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저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여운 감사 인사에 라피네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내 굳은 얼굴로 제르칸을 쳐다봤다.
제르칸의 눈가에서 뚝 뚝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만 뚝뚝 흘리는 모습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했다.
라피네는 그의 손에 쥐어진 편지를 내려놓고 그와 마주 봤다. 조심스럽게 손을 잡자, 제르칸은 다른 손으로 눈가를 쓱 닦아 냈다.
그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난 이들의 은인이 아니야.”
“…….”
라피네는 제르칸의 눈동자에 서린 감정을 읽어 냈다.
지독한 죄책감.
그는 마치 깊은 수렁 속에 빠진 사람처럼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난…….”
제르칸은 말을 더 이으려다 멈췄다. 라피네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오히려 뭐요? 그들의 원수라고요?”
“내가 지키지 못했으니까.”
라피네는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마음이 착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결국에는 다 본인 탓으로 돌려 버린다.
그게 제일 쉽고 간단하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스스로에게 받은 상처일수록 치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치유는 더 어려워진다.
“그러면서 왜 그들이 가져온 재료로 만들었다는 음식은 그렇게 꾸역꾸역 먹었어요? 독이라도 들었으면 어쩌려고…….”
라피네의 물음에 제르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느리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 내게 책임이 있으니.”
아무렇지 않은 대답에 라피네는 목이 멨다.
정말로 제르칸은 독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었을까?
라피네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제르칸은 사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제르칸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 깊은 곳의 제르칸은 오히려 독이 들어 있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 죄책감을 끝내고 싶어서.
짊어진 무게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이제는 견디기 힘들어서.
제르칸을 원망하는 건 병사들의 유가족들이 아니라 제르칸 본인이었다.
라피네는 그런 제르칸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어릴 때도 그러더니, 여전히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고…….
“라피네?”
제르칸은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라피네를 보며 당황해했다. 라피네는 꼭 서러운 일을 겪은 사람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울었다.
“스스로 상처 좀 그만 내요.”
“…….”
“아무도 제르칸을 원망하지 않아요. 끝까지 남아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유가족들을 위해 애쓰고……. 그걸 다들 아는데 왜 본인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왜 그렇게 이 세상에서 본인만 소중하지 않은 것처럼, 제일 하찮은 것처럼, 다쳐도 상관없는 것처럼 구는지 알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소중하게 다뤄진 적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릴 때도 그러더니…….”
라피네는 서럽게 중얼거리며 빨개진 눈으로 제르칸을 쳐다봤다.
“라피네…….”
여전히 당황해하는 제르칸을 라피네는 그대로 안아 버렸다.
제르칸은 별안간 제 허리를 꽉 끌어안는 라피네가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밀어낼 수 없었다.
그는 제 품에서 아기처럼 훌쩍거리는 라피네의 등 위로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대었다.
“내가 그랬잖아요. 잘했다, 대견하고 훌륭하고 멋지다. 그렇게 칭찬해 주라고…….”
라피네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제르칸은 어린 시절, 라피네가 붉은 꽃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줬던 그날을 떠올렸다.
“진짜 말 안 들어…….”
라피네가 투덜거리며 혼내듯 제르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옥죄는 라피네의 손길이 답답하긴커녕, 꼭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듯한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망설이던 제르칸은 이내 자신도 힘을 주어 라피네를 껴안아 보았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따뜻하고 포근했다.
제르칸은 고개를 숙여 라피네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어느새 비가 그치고, 깨끗한 새벽이 찾아왔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의식이 돌아온 제르칸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제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라피네 때문이었다.
심장이 쿵쿵,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옷을 입은 채였다. 그러나 제르칸은 꼭 알몸으로 서로 안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제 제르칸은 분명 소파에서 잠들려 했다.
그러나 라피네는 황성에서처럼 끄트머리에서 자면 된다며 그를 침대로 끌어당겼고
하루 종일 피곤한 일뿐이었기에 둘 다 금방 잠들어 버렸다.
이렇게 엉겨서 아침을 맞이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제르칸은 라피네를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라피네의 뺨은 그의 가슴에 달라붙어 있었고, 팔 역시 그의 목에 감겨 있었다.
게다가 꼭 이불을 다리로 감싸고 자는 것처럼, 그의 허벅지 위에 라피네의 다리가 올라와 있었는데……. 위치가 아주 많이 곤란했다.
이대로라면 이상함을 느낀 라피네가 깨 버릴지도 몰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제르칸은 숨 쉬는 법도 잊은 채 꼼짝하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다행히 뒤척거리기 시작한 라피네가 다리를 내리고 몸을 벌러덩 돌려 대자로 뻗었다.
“…….”
제르칸은 겨우 빠져나와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자 심박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젠장…….’
다만, 아직 심박수만 정상이었다. 몸의 한 부분은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았다.
제르칸은 힐끔 고개를 돌려 라피네가 깨지 않은 걸 확인했다.
그러나 잠옷 사이로 종아리부터 허벅지가 살짝 드러나 있는 걸 보자마자, 다시 얼굴을 돌렸다.
제르칸은 최대한 보지 않으려 시선을 돌린 채 라피네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라피네가 눈을 떴을 땐, 이불로 온몸이 칭칭 감긴 채였다.
그날부터였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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