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et My Husband, I’ll Go Make Money RAW novel - Chapter (109)
109 화
‘파엘라미엔 공주?’
비록 귀신으로 오해할 만한 몰 골이긴 했지만 일단은 사람인 것 같긴했다.
대체 공주가 왜 여기서 귀신 놀이를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나 못 본 척해 주는 게 좋을 둣 했다.
‘창피할 테니까……’
그렇게 뒤를 도는데一.
바스락.
낙엽이 짓밟히는 소리가 고요한 가운데 커다랗게 울렸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리스티네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길 바라며 천천히 고개 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딱 마주쳤다.
이렇게 어색한 순간이 또 있을까.
경악한 파엘라미엔의 얼굴을 보고 아리스티네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날씨 좋죠?”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둣 파엘 라미엔은 아리스티네를 외면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울고 있던 얼굴을 가리는 데엔 성공적이었지만 문제는 더 귀신같아졌다는 거다.
아리스티네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엔 파엘라미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우는 사람을 이대로 두고 그냥 갈 수도 없는 법이었다.
아리스티네가 가까이 다가오자 파엘라미엔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방어적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하긴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치욕스럽고 분할 것 이다.
애초에 이런 인적이 드문 으숙한 곳에 와서 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그걸 생각하면 그냥 이대로 가는 게 좋았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으음……’
우는 모습을 아예 안 보인 거 랑 보였는데도 외면당하는 건 다르다.
아리스티네는 파엘라미엔과 살짝 거리를 둔 채 낙엽 위에 풀썩 앉았다.
파엘라미엔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우거진 나 무 사이를 비행하며 마른 나뭇 잎을 흔들었다.
아리스티네는 하늘을 올려다보 았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잎이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워요.”
옆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되묻는 아리스티네를 힐끔 본 파엘라미엔이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다고요.”
“잘 안 들려요.”
정말로 잘 안 들려서 그런 건 데 파엘라미엔은 왈칵 인상을 찌푸리며 성이라도 낼 것처럼 숨을 흑 들이켰다.
하지만 그녀는 고함치지 않았다.
잠시 감정을 갈무리하듯 흐트 러진 숨을 내쉰 파엘라미엔이 몸을 돌려 아리스티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울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으나 두 눈은 또렷하니 공주다운 위엄이 어려 있었다.
파엘라미엔은 아리스티네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부왕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인사에 아리스티네는 눈을 깜빡였다.
뭔가 쑥스러운 기분이 되어서 아리스티네는 귀 끝을 매만졌다.
“저의 부왕이시기도 한걸요.”
그 말에 파엘라미엔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다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파엘라미엔이 입 다물고 있는 데 제가 말을 거는 것도 그래서, 아리스티네는 함께 침묵을 지켰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서로 다 른 곳을 바라보지 않고,상대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날 싫어하지 않았어요?”
침묵 후 나온 파엘라미엔의 말 에 아리스티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싫어하다니?’
아리스티네는 고민했다.
딱히 파엘라미엔을 싫어하진 않았다. 물론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여태까지 그녀가 아리스티네에게 적대적으로 굴었던 건 전부 정적을 견제하려는 행위였다.
그러니 딱히 마음에 담아 둘 것도 아니었다.
‘물론 내가 파엘라미엔에게 당했다면 생각이 달랐을 수도 있지만……
아리스티네는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엘라미엔 쪽이 아리스티네에게 당했다고 봐야 했다.
원래 승자는 기억하지 않고 패자만이 실패의 기억을 곱씹는다고 했던가?
물론 파엘라미엔과 아리스티네 가 확실하게 붙은 적은 없지만말이다.
“딱히 아무 생각도 없는데요.”
무심한 대답에 파엘라미엔은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리스티네의 얼굴은 정말로 별생각 없어 보였다.
어쩐지 아리스티네를 신경 쓰고 경계했던 자신이 우습게 느 껴져서 파엘라미엔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신이 아이루고에 도착하자 마자 더럽다며 시궁쥐라고 비웃었는데도요?”
“아,그랬었죠.”
아리스티네는 덤덤하게 답했다.
당연히 그 일을 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기억 따위는 아리스티네라는 사람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 중 아리스티네에게 크게 남아 있는 건 타르칸이었다.
그녀를 비단으로 감싸 공주님처럼 안아 든,자신의 남편.
그와 협상을 타결했을 때의 기쁨,깜짝 놀랄 만큼 맛있던 스콘.
더 중요한 기억이 반짝반짝 빛 나,마차에서 내릴 때 킥킥거리 던 사람들의 모습 위로는 뿌연 먼지가 잔뜩 내려앉았다.
“그런 일 하나하나 마음에 쌓아 두고 곱씹기엔 나도 일이 많았어서요.”
중얼거리며 아리스티네는 쌓인 낙엽 위로 발을 묻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했던 것도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반응 이라기보다는 정적의 기선을 제압하려던 거였잖아요.”
아리스티네의 말에 파엘라미엔 이 멈칫했다.
그 말이 맞았다.
스탈리나나 예니카리나는 어떨지 몰라도 자신은 왕후의 편을 들기 위해 아리스티네를 깎아내린 거였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분리가 되나?’
파엘라미엔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듯 아리스티네를 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가 물었다.
“……왜 울고 있었냐고 안 물어봐요?”
“물어 주길 바랐어요?”
파엘라미엔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안 물어보길 바랐다.
물어보면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누구 놀리느냐고 따질 생각이었다.
혹여라도 아리스티네가 왜 우냐, 울지 말라며 달래 줄까 봐 등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건 치욕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리스티네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곁에 있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했다.
“저 결혼해요.”
말을 내뱉고 나서야,파엘라미 엔은 자신이 말했다는 사실을깨달았다.
말할 생각 따위 없었는데,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회는 되지 않았다.
아리스티네는 그녀를 잠시 바 라보다가 미소 지었다.
“겹경사네요. 하미르 왕자님도 혼담이 나왔었는데.”
그 말에 파엘라미엔은 눈앞이 새빨갛게 물드는 것 같았다.
꾹꾹 늘러 참았던 분노가 폭발 했다.
“겹경사? 하! 그런 것 따위 없어요. 하나의 흉사만 있을 뿐.”
“네?”
아리스티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아, 하고 깨달았다.
“설마, 하미르 왕자님 대신에……
파엘라미엔은 입술을 꽉 깨물 었다.
“애초에 하미르 오라버니를 결혼시킬 생각이 없었겠죠. 그걸로 얼마나 잘 팔아먹는데.”
피식 웃는 파엘라미엔을 보고 아리스티네는 미간을 모았다.
그간 왕후파는 하미르의 부인 자리를 놓고 여러 귀족가와 줄 다리기해 왔다.
하미르의 비가 되면 다음 대 왕후가 될 가능성이 크니 다들 안달복달하며 왕후에게 숙이고 들어갔다.
‘그래서 왕후가 하미르를 결혼시킬 생각이라고 했을 때 의외 이긴 했지만……”
설마 분위기만 잡고 하미르 대신 파엘라미엔을 보낼 줄이야.
하미르를 곧 결혼시키겠다는 말에 여러 귀족가가 마지막 경쟁을 위해 왕후에게 이권 문제를 양보하고 동맹을 견고히 확인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만약 아리스티네를 독살범으로 몰았던 사건이 없었다면 더 경쟁이 치열했을 것이다.
‘일단 그것만 받아 챙기고 결 정을 보류했다는 뜻이군……. 아예 없던 일로 해 버리면 반발이 강할 테니 대신 파엘라미엔을 내주겠다는 것이고.’
파엘라미엔으로서는 당연히 분노할 만했다.
‘하지만…..’
아리스티네가 봐 온 파엘라미 엔은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정적인 아리스티네의 앞에서까지 반발심을 보이 는 게 의외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하는 정략혼이잖아요. 물론 본인을 하미르 왕자의 대타로 취급하는 게 기분 나쁠 순 있지만,원래 정치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너 알 만큼 알잖아?
그런 시선에 파엘라미엔은 주 먹을 꽉 쥐었다.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던 낙엽 이 그녀의 손안에서 바스러졌다.
고집스레 입을 다물었던 그녀가 툭 내뱉었다.
“못생겼어요.”
“네?”
아리스티네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다.
하지만 파엘라미엔의 표정을 보고 진짜라는 걸 깨닫고 황당 해졌다.
뭘 그런 걸. 정략혼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티 나는 눈빛에 파엘라미엔이 발끈했다.
“비전하는 타르칸이랑 결혼했잖아요!”
넌 이해 못 해!
파엘라미엔이 소리쳤다.
그 서슬에 발치에 쌓였던 낙엽이 흩날렸다.
타르칸이 어떤 남자인가.
파엘라미엔은 타르칸을 좋아하진 않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도 타르칸은 괜찮은 신랑감이었다.
잘생기고,키 크고,몸 좋고, 능력까지 출중했다.
결혼해서 아내를 냉대하고 소박 놓을 줄 알았는데 웬걸?
남들에겐 차가워도 내 여자에게는 다정한 타입이었는지,그렇게 꿀 떨어질 수가 없었다.
일전의 오찬 자리에서 아리스티네를 바라보는 타르칸의 눈빛에 파엘라미엔은 자신이 밥을 먹는 건지 꿀을 퍼먹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으음.”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기울였다.
타르칸이 꽤 괜찮은 정략혼의 파트너라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남편으로서는 글쎄?
“타르칸이 딱히 좋은 남편인건……”
“첫날밤에 침대를 부쉈으면 서!”
파엘라미엔이 기만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곤 아차,하고 고개를 팩 돌렸다.
그녀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는 게 스 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크흠,큼.”
괜히 헛기침하는 그녀를 바라보던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기웃했다.
‘침대를 부수는 게 그렇게 중 요하나?’
물론 이 침대를 부순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안다.
하지만 그게 결혼 생활에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물론 이왕이면 잘하는 게 (?) 좋겠지.
그러나 그건 그저 후계를 생산하기 위한 의무의 일환 아닌가.
“아니, 음…. 정략혼이잖아요? 나도 타르칸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어요.”
마수보다도 더 흉측한 괴물. 피에 미친 야만인.
그저 못생겼다는 말이 아니라, 온갖 끔찍한 수식어를 들으며 혼삿길에 올랐다.
아리스티네는 뻣속까지 황족이었다.
당연히 사랑해서 결혼한다거나 하는 생각 따윈 박혀 있지도 않 았다.
결혼은 정치적 동맹이자 협상 수단이었다.
정략혼은 가장 큰 사업 중 하나였다.
‘파엘라미엔이 아니라 스탈리나…… 하다못해 예니카리나였다면 그나마 이해를 해 보겠는데.’
“저도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어요. 그럼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으니까.”
중얼거린 파엘라미엔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나도 알아요. 정략혼에 외모를 따지는 게 무슨 철없는 짓인가요. 스탈리나도 아니고.”
아리스티네는 파엘라미엔에게 혹시 제 생각을 읽힌 건가 흠칫 했다.
“하지만.”
파엘라미엔이 쥐고 있던 주먹 을 폈다.
거기엔 낙엽과 함께 다 구겨져 엉망진창이 된 사진이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그 사진인지 넝마인지 모를 것을 받아 들어 살살 폈다.
그리고.
“오…………”
애매한 감탄사가 아리스티네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보랏빛 눈동자가 홀껏 파엘라미엔의 얼굴을 살핀다.
조심스러운 시선이었다.
“어,음……. 저,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는 거 아니에요?”
“동갑이에요.”
네?!
이게 동갑?!
아리스티네가 눈을 부릅뜬 채 사진을 바라보았다.
허허벌판처럼 광활한 남자의 머리 위에는 머리카락 한 줄기가 마지막 잎새처럼 가련하게 매달려 있었다.
“어……. 그렇군요,동갑……”
정말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 잎새도 잎새지만,얼굴도…… 음…….
사람의 외모 가지고 이러면 안되지만,솔직히 결혼 상대로선 아무래도…
적어도 겉보기에 아빠뻘과 식장에 들어서긴 그렇지 않나.
물론 사람이 괜찮다면 다르겠지만, 정략혼은 본디 인성을 보고 하는 혼인이 아니었다.
“다섯 살부터예요.”
파엘라미엔이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제가 살아남기 위해서 왕후의 밑에 납작 엎드려서 살아온 게 그때부터 라고요.”
긴 세월이었다.
“그간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정말 아무것도.”
파엘라미엔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나도 왕족이에요. 대단한 야망 이나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러면 경계를 살테니까.”
파엘라미엔의 모비는 쟁쟁한 후작가 출신의 레이디였다.
그리고 불행히도 파엘라미엔은 영특했다.
권력가 출신 왕비 소생의 영민 한 아이.
왕후의 경계를 사기에는 충분 했다.
그때는 타르칸에 대한 경계도 없었던 때라,그야말로 하미르의 독주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파엘라미엔이 하 미르의 가장 큰 라이벌이 될 터였다.
저를 날카롭게 바라보던 왕후가 예를 제대로 올리지 않았다는 핑계로 자신을 무릎 꿇렸을 때 파엘라미엔은 깨달았다.
아, 앞으로 평생을 이렇게 살겠구나.
사람 피를 말리는 길고 긴 후계 다툼이 가시밭길처럼 앞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만일 패배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모비도,외가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파엘라미엔은 그래서 무릎 꿇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왕후의 아래로 들어가 그녀의 수족이 되었다.
꼭 왕이 되고 싶다는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왕후가 명령을 내릴 때면 조금 귀찮고 짜증 나긴 했지만, 안전을 보장받은 걸로 되었다 싶었다.
하지만.
“가문이라도 괜찮으면 말을 안 해요. 일부러 이런 가문에 보내는 게 틀림없어요.”
너무 좋은 가문에 보내면 파엘라미엔이 세력을 얻게 된다. 그걸 경계하는 게 틀림없다.
결혼 상대의 가문은 전통적인 명문 세도가가 아닌 대신 돈이 많았다.
파엘라미엔을 내주는 조건으로 왕후는 그 가문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았을 것이다.
독살 사건 후,왕후에게서 돌아선 귀족들을 돈으로 다시 포섭하려는 것이겠지.
파엘라미엔은 픽 웃었다.
‘먹고 버린다는 게 이런 건가.’
“평생을 왕후의 개로 지냈는데 이게 그 결과라니.”
눈물이 파엘라미엔의 뺨을 타고 흘렀다.
아리스티네는 조금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못생긴 것이 문제가 아니었겠지.’
왕후의 배신이 문제였다.
“이왕 이럴 거면 잘생긴 놈으 로 해 주든가.”
아리스티네는 할 말을 잊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