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et My Husband, I’ll Go Make Money RAW novel - Chapter (181)
181 화
타르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저 유리병을 본 적이 있었다.
네프테르가 쓰러지고 아리스티 네가 독살범으로 몰렸을 때의 일이다.
“그 병은……”
“우리 혼수.”
아리스티네가 생긋 웃었다.
“내가 아이루고로 떠날 때 폐 주가 직접 내 손에 쥐여 준 거야”
아리스티네의 혼삿길에는 온갖 진귀한 물품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승전국인 아이루고의 요구이거나 제국의 국력이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 기 위한 사치품일 뿐이었다.
단 하나,아리스티네가 손에 쥐고 있는 유리병만이 그녀의 아비가 직접 선택해 쥐여 준 것 이다.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해야지.”
아리스티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리네.”
“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 니까.”
그 말에 타르칸이 그녀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같은 문양을 새긴 대관식 예복이 스르륵 엉켜들었다.
그의 숨결이 아리스티네의 목 덜미를 간지럽혔다.
“걱정하지 않아. 네가 어떤 사 람인지 잘 아니까 널 믿어. 잘 마무리 짓고 와.”
흘러가는 대로 살라고,과거에 매몰되어 있으면 본인만 손해라 고,복수는 비극만을 불러올 뿐 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특히 가족에 관한 것이 라면,복수해 봤자 상처받는 것 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고.
그러나 어떤 것은 매듭을 지어 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타르칸이 새하얀 목덜미에 입 술을 지그시 대었다.
“돌아와서 대관식을 마치면 놀 러 가자.”
“막 즉위한 황제가 그래도 돼?”
아리스티네가 키득거리며 그의 품 안에서 몸을 돌렸다.
타르칸은 마주한 아내의 얼굴 을 보고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몰래 놀러 가면 되지. 라우넬 형님에게도,부왕께도 모두 비밀 로 하고. 우리 둘이서만.”
“시온은?”
“시온에게도 몰래.”
쪽,타르칸의 입술이 아리스티
네의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가을에는 단풍이 예뻐서,겨울 에는 눈이 예뻐서,봄에는 신록 이,여름에는 여름 장미가 예뻐 서.”
예쁘다는 말을 할 때마다 아리 스티네의 얼굴 위로 잔꽃 같은 키스가 내렸다.
“그럴 때 우리 둘이서만 놀러 가자. 그렇게 살자.”
타르칸이 아리스티네를 감싸 안았다. 아리스티네는 그 따뜻한 품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칸의 말대로 살고 싶었다.
계절이 변하는 것, 날씨가 좋 고 나쁜 것.
그런 단순하고 평범한 것을 하 나하나 세세하게 느끼며, 옆의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들고 남 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라면 무겁디무거운 황제의 관을 쓰고서도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럴 것 같은 게 아니라 확실했다.
네프테르를 보며 왕은 참 고독 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행복도,짐도…… 원망과 분노 조차 곁에서 함께 나눌 사람이 있었으니까.
“다녀올게.”
어둠 속에 옹송그리고 있던 폐 주 알피어스는 완전히 열리는 문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배급조차 아래에 난 구멍으로 되었던지라 문이 열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나오시지요.”
그리고 그 드문 일 중에서 그 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 것 은 처음이었다.
알피어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 눈을 부릅떴다.
시종은 더 말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알피어스를 기다렸다.
더듬더듬 움직이던 알피어스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경계하며 한 발짝,한 발짝 문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끔찍한 방을 나섰는데,아 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종은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중한 자세였다.
신선한 바람이 그를 반겼다.
푸른 하늘은 조각나지 않은 채
끝없이 펼쳐지고,햇빛이 그를 비추었다.
이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그리 웠던가.
‘낳아 준 아비에게 감사하긴커 녕 감히 날 가둬?’
감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자유를 박탈한 아리스티네에 대 한 분노로 바뀌었다.
시종은 슬쩍 시선을 들어 알피 어스를 바라보았다.
완전히 하얗게 센 머리는 듬성 듬성했고, 등은 새우처럼 굽어
있었다.
아무래도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내서 그런 듯했다.
그런 그에게서 황제의 위엄 따 위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황녀님과 정말 다르지.’
아리스티네는 거의 평생을 갇 혀 있었음에도 자세가 바르고 발음도 좋았다.
시종은 탁 트인 야외에 감격하 다 씩씩거리고 있는 알피어스의 모습이 아니꼬웠다.
‘그 어렸던 황녀님께 이 모든 것을 빼앗았던 건 본인이면서.’
그러나 그는 화를 숨기며 고개 를 숙였다.
“이쪽으로 오셔서 마차에 오르 시지요.”
어디까지나 정중하게 모시라는 아리스티네의 명이 있었기 때문 이다.
마차는 알피어스가 황제로서 이전에 타던 것보다는 못했지만, 고급이었다.
죄인을 호송하는 용도가 아니 라 고위 귀족이 쓰는 마차였다.
이동하는 내내 알피어스는 극 진한 대우를 받았다.
시종은 계속해서 그의 편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마차에서 내리니 잘 정돈된 정 원에 마련된 테이블이 보였다.
비단으로 만든 차양에는 황제 의 문양이 금박된 얇디얇은 시
폰 몇 폭이 길게 늘어트려져 선 선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백금 테이블 위에는 이 계절에 피지 않는 모란을 메인으로 한 꽃다발이 장식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귀빈을 극진히 대 접하기 위해 정성스레 마련한 자리였다.
처음 유폐되었던 방을 나설 때 까지만 해도 경계 가득했던 마 음이 정중한 대접으로 점차 풀 어지더니, 이제는 완전히 놓였다.
가슴이 뛰었다.
알피어스는 저도 모르게 테이 블로 다가가 식기를 쓸었다.
아찔할 정도로 매끄럽고 유려 한 촉감이었다.
자신의 손이 얼마나 거칠어졌 는지 깨달을 만큼.
“아버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알피 어스는 몸을 돌렸다.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리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이 보였다.
홀린 듯 풀어졌던 알피어스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너,너……!”
“잘 어울리나요?”
아리스티네가 빙그르르 돌았다.
대관식 예복이 위엄 있게 제 모습을 뽐내고 길게 늘어트린 망토가 무겁게 펄럭였다.
황제의 관이 그녀의 머리 위에 서 반짝거렸다.
그녀가 타고 온 마차 역시 실바누스 황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때요? 나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뻔뻔한 물음에 알피어스가 이 를 으득 갈았다.
아비를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 를 차지하는 패륜을 저지른 주 제에 어찌 저런 말을 할 수 있 단 말인가.
신이 선택한 황제가 아리스티 네라는 점은 알피어스에게 중요
하지 않았다.
들뜨기 시작했던 마음이 한순 간에 시궁창에 처박혔다.
아리스티네는 사뿐사뿐 걸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알피어스 를 향해 말했다.
“앉으세요.”
허락을 내려 준다는 어투였다.
‘감히……!’
알피어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리스티네는 빙긋 웃었다.
‘어쩜,단순해라.’
라우넬리안과 아리스티네를 죽 이려던 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알피어스의 취급은 최악으 로 치달았다.
기가 팍 죽어서 몸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옹송그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기를 펴 주었다.
황제였을 적과 비슷한 대접을 해 주며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 으키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멍청한 알피어스는 그게 마땅히 자신이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그런 인사였으니까.’
아리스티네는 시니컬하게 생각 하며 오랜만에 보는 아비를 바라보았다.
알피어스는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이 지난 것처럼 폭삭 늙어 있었다.
“신수가 훤해 보이시네요.”
제 모습을 모르는 알피어스는 아리스티네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매를 찡그렸다.
‘건방지게 굴더니 갑자기 아부 를 하고.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러나 아리스티네의 미소에서 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계속 서 계실 건가요? 모처럼 정성을 들여 아버지를 위한 자 리를 준비했는데.”
모처럼 정성을 들여, 아버지를 위한 자리.
알피어스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생각해 보면 대관식 예복을 입고 온 모습에 자신이 과민 반응했던 것 같다.
앉으라는 말이 허락이나 명령 이 아니라, 그저 권유일 수도 있는데.
‘나보다 먼저 앉은 것은 건방 진 행동이었지만,그래. 갇혀 살았던 애가 뭐 그리 예법에 밝겠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알 피어스는 그것을 합리화하기 바 빴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원하는 것,바라는 것을 보기 마련이니 까.
그리고 아리스티네는 그 점을 잘 이용했다.
자리에 앉은 알피어스를 마주 한 채 그녀가 환한 미소를 머금 었다.
“기뻐할 만한 일이 있어요. 그 래서 함께 축하주를 들고 싶은데.”
축하할 만한 일이라는 게 무엇 인지 뻔했다.
아리스티네가 입은 대관식 예 복을 훑은 알피어스가 입을 열었다.
“황제 즉위 말이냐.”
간만에 누군가와 말하는 게 어색했다.
그는 그저 어색하다고 생각했 지만 그의 가슴 저변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생기가 알피어스의 사고 회 로를 한없이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자식은 원래 아비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기 마련이지.’
레타나시아도 그랬다.
항상 자신을 존경한다고 말하 며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이제 황제도 되었겠다, 아리스 티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기쁜 날에 죄인을 사면하는 것 은 당연하다.
자신은 죄인이 아니었지만, 어 쨌거나 무릇 정치란 명분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감히 자신을 몰아내고 황제가 된 건방진 년이었지만,아리스티네가 제대로 뉘우친다면 상황 노릇을 하며 사는 것도 괜찮았다.
자신의 힘으로 아리스티네를 몰아낼 수 없으니 하는 비겁한 생각이었지만,알피어스는 진심 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옳아,제대로 못 배운 년이니 통치를 잘할 수 있을 리가. 내 도움이 필요한 게지.’
그런데 아리스티네가 눈을 동 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어머,내가 황제로 즉위하는 건 기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 이지요.”
그 반응이 거슬리긴 했지만, 화해를 위해선 자신 역시 조금 은 협력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피어스는 자신이 겁먹었다는 것을 그렇게 포장했다.
“그래,그럼 무엇이 기쁜 일이 냐.”
‘‘흐.”
아리스티네는 대답을 미루고 시종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시종이 아이스 버켓에 담긴 와인을 가져왔다.
코르크를 딴 시종이 차갑게 식 은 유리병 안으로 와인을 따랐다.
우아하게 디켄팅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리스티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참, 아버지께서 그렇게나 염원 하던 일을 내가 이뤘어요.”
피처럼 새빨간 와인이 유리병 안에서 뒹구는 것을 바라보던 알피어스가 고개를 돌려 아리스
티네를 바라보았다.
“내 염원이라니?”
“아이루고 말이에요.”
알피어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리스티네의 말은 단 하나를 뜻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숙원이자 염원이었다.
역대 황제 그 누구도 무릎 꿇 리지 못한 아이루고를 복속시키는 것.
그것 하나로 자신은 가장 위대한 황제로 추앙받을 것이었다.
그걸 위해 온갖 일을 감행했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전쟁에서 지는 것으로 모자라, 그 뒤로 꾸몄던 계략 역시 무위 로 돌아갔다. 아니,무위로 돌아 간 것뿐만이 아니라 결국 이 꼴 이 났다.
‘한데 이깟 실패작이……!’
질투로 미칠 것 같았다.
“아이루고와 실바누스를 합치 는 게 아버지의 평생 숙원이었 잖아요. 그렇죠?”
아리스티네의 어조는 묘했다.
마치 아버지의 숙원이니 내가 그 뜻을 이어받은 것이라는 듯 한 말투.
알피어스는 딸을 바라보았다.
생긋,아리스티네가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유폐당했던 시절에 아리스티네가 그에게 이런 미소를 지은 적 은 없었다.
태도가 변했다.
‘그래,나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야.’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실패작인 것도 아니었다.
레타나시아 그년이 자신을 속 이지만 않았어도 성공작인 아리 스티네를 이용해 자신이 이뤘을 것이다.
“그래,아이루고를 복속시키다 니. 역시 나의 딸이다.”
알피어스의 말에 아리스티네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복속시킨 것도,당신의 딸이라 가능했던 것도 아니다.
아리스티네는 디켄팅을 마친 와인에 손을 댔다.
“축하주,같이 들어 줄 거죠?”
딸의 물음에 알피어스가 씨익 웃었다.
‘그것 봐라. 지금도 이렇게 내게 축하받고 싶다면서 쪼르르 달려오지 않았는가.’
오늘처럼 고분고분하게 굴면 앞으로는 아비로서 잘 가르쳐 주어도 괜찮을 듯했다.
“그래,이 아비가 축하해 주마.”
알피어스가 자신의 와인 잔을 붙잡았다.
“고마워요.”
아리스티네는 생긋 웃으며 유리병을 기울였다.
핏빛의 와인이 와인 잔 위에서 한 바퀴 뒹굴며 짙은 향기가 피어올랐다.
아리스티네는 제 몫의 와인까지 따랐다.
챙,와안 잔이 부딪치는 소리 가 조용한 정원에 울렸다.
미소를 주고받고,알피어스는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최상품의 와인이라 그런지 향기부터 시작해 혀끝에 감기는 촉감까지 일품이었다.
그리고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며 배 속으로 와인을 삼킨 순간.
“커 헉.”
속이 뒤틀리며 안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알피어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새빨갛다.
하지만 와인은 아니었다.
“아.,’
아리스티네가 잊은 것을 떠올렸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무엇이 기쁜 일 이냐 여줘 보셨지요.”
알피어스는 손바닥을 붉게 물들인 자신의 피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아리스티네를 향해 고개 를 들었다.
“오늘은 내 오랜 원수의 명줄을 끊는 날이거든요.”
아리스티네가 와인보다도 더 향기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