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et My Husband, I’ll Go Make Money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실바누스 기사들이 머리를 땅에 박고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차만 홀짝였다.
그럴수록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기사들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거무죽죽하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이러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위대하고 위대하신 황녀님을 호위하기에 자신들은 너무나 부족한 자들이니 부디 책임을 물어 파면해 달라.
기사들은 그걸 위해서 아리스티네를 향해 온갖 아부를 퍼부었다.
제국의 자랑이자 기쁨,모든 제국민이 우러러보는 고귀하신 황녀.
평화의 인도자,제국의 수호자, 구국의 영웅 등등.
검보다 헛바닥을 더 잘 놀리는 것 같았다.
기사들과 떨어지는 건 아리스티네도 원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이 핑계저 핑계를 대며 파면하겠다는 말을 미뤘다.
그때마다 기사들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자존심 빼면 시체인 자들이라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면서도 스스로를 진창에 처박았다.
그렇게나 무시하고 깔봤던 아리스티네에게 납작 엎드려 비굴하게 헤헤 웃는 심정이 어떨까.
아리스티네는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단순한 두 음절에 기사들이 고 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너희에게 책임을 묻도록 할게.”
“황녀 전하……!”
책임을 묻겠다는 말을 들은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밝을 수는 없었다.
기사들은 감격으로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리스티네는 그 얼굴을 보며 나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단 기사 자격 박탈은 당연 하고. 또……
“기,기사 자격 박탈이요?”
예상치 못한 말에 기사들의 눈물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그냥 호위 기사 직위에서 파면할 줄 알았지,아예 기사 자격박탈이라니!
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었다.
고자 된 기사들에게 남은 건 기사라는 명예뿐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빼앗겠다는 건 너무했다.
실바누스에 돌아가서 자신들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눈에 선했다.
기사들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매장당할 것이다.
“응. 싫어?”
아리스티네가 되물으며 느긋하게 차를 홀짝였다.
“싫으면 계속 내 호위 기사 하든가”
그 말에 기사들은 항의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요 며칠간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위압적인 아이루고 전사들의 협박과 은밀한 폭력.
그건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가장 최악은 타르칸이었다.
그가 한 번씩 올 때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돋았다. 목덜미가 선뜩해져 기사들은 바르르 떨었다.
이대로 실바누스로 돌아가면 황제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제는 자신들을 죽이지는 않을 터.
“너희가 저지른 죄는 단순한 능력 부족과 직무 태만이 아니야.”
수많은 음담패설과 조롱,성적인 희롱까지.
그들은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착각해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정말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는 아리스티네였다.
“내게 개인적으로 보상해야 할 게 참 많을 거야. 그렇지?”
아리스티네는 즐거운 마음으로 두려움에 떠는 기사들을 둘러봤다.
“물론 황녀인 나를 우롱한 건 그 목숨으로 갚아도 부족하겠지만一.”
뒷말을 끄는 아리스티네를 기사들이 초조하고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파면시켜 달라는 말을 하러 왔 을 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황녀 역시 자신들을 꼴 보기 싫어할테니 얼씨구나 하고 보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리스티네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가지고 놀았다.
아리스티네가 한마디 할 때마다 기사들은 자존심도 체면도 모두 다 팽개치고 밑바닥을 보여야 했다.
이번에는 과연 저 입술에서 무 슨 말이 나올까?
“너희 집에 돈 좀 있지?”
아리스티네가 생긋 웃었다.
사업 자금을 마련할 아주 좋은 기회다.
도저히 삥을 뜯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천사같이 아름다운 미소였다.
* * *
“세상에..! 기사님들이 실바누스로 돌아간대요!”
“기사님들이?!”
“그럼 황제 폐하의 명은……”
“아니,그보다 우린 어쩌죠?”
실바누스의 시녀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수군거렸다.
아이루고에 도착한 지 이제 근 한 달.
모든 것은 예상과 완전히 다르 게 흘러갔다.
혼자 살아서 반쯤 미쳤다고, 그러니 아이루고에서도 인정받 을 리 없다며 황녀를 무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황녀를 따르는 사람만 늘어나고,자신들의 입지는 그와 반비례해 좁아졌다.
그래도 그간 애써 ‘괜찮다,아무렇지 않다’ 하며 당당하게 굴었다.
위축되는 건 저 재수 없는 황녀에게 지는 것만 같아서 일부러 더 무시하고 더 깔봤다.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인생은 끝난 거나 다름없으 니까.
하지만 기사들이 실바누스로 돌아간다니…….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죠?”
“이런 건 예정에 없었어요.”
“우리는 황녀를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역할로 온 거잖아요.”
주제를 모르는 건방진 발언이었다.
하지만 시녀들은 모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두각시 황녀.
이들은 아리스티네의 옆에 붙어 그녀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옆에 붙어 있긴커녕 아이루고 궁인들한테도 밀려날 지경이니.
“여기 궁인들은 과연 야만인답게 몸집만 커다랗고 예의도 잘 모르고 말도 안 통해요.”
“당연히 황녀의 친정 시녀인 우리가 더 상전 취급을 받아야하는데.”
시녀들이 매일같이 하는 이야 기였다.
하지만 이렇게 뒤에서 씨근덕 거릴 뿐,궁인들 앞에서는 제대 로 말하지도 못했다.
와르르 몰려가서 뭐라고 말해도 아이루고 궁인들은 별 대꾸도 없이 획 지나쳤다.
그렇다고 뺨이라도 올려붙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모두 키가 그녀들보다 훌쩍 컸으니까.
황녀의 개가 된 로잘린에게도 치이고,아이루고 궁인들에게도 치이고.
도저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또 타르칸은 얼굴만 반드르르 한 황녀에게 홀린 건지 자신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몇 번이나 개인적으로 차를 가져가기도 하고,괜히 바로 앞에서 연약하게 휘청거리기도 했는데.
“우리도 실바누스로 돌아가야 할까요?”
“하지만 그러면 황명이……”
“돌아가면 사교계에서 어떤 무시를 당하겠어요. 그 황녀에게 밀려서 돌아왔다고.”
안달복달하는 시녀들을 기둥 뒤에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로잘린이었다.
로잘린의 얼굴에 흥,하고 기세등등한 미소가 걸렸다.
‘하여간 상황 파악도 못 하는 멍청이들.’
황녀의 비위를 맞추는 자신을 그토록 무시하더니 잘됐다.
시녀들을 피식 비웃은 그녀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바로 아리스티네의 방이었다.
* * *
“황녀 전하.”
아리스티네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 방에 들어온 로잘린을 보고 작게 한숨을 지었다.
‘모처럼 외출하는 날인데.’
서둘러 준비해서 나가고 싶은 데 자꾸만 일이 생긴다.
달걀이 깨진 기사들이 어기적 어기적 나간지 얼마나 됐다고 또 불청객이 왔다.
아리스티네의 기분도 모르는 지,로잘린은 신이 난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기사들이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시녀들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그녀는 고소해 죽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아리스티네의 귓가에 재잘거렸다.
“자기도 엄마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울상이더라고 요. 하여간 겁쟁이들.”
아리스티네는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신나게 속삭이던 로잘린이 멈칫하며 아리스티네의 얼굴을 살 폈다.
“네가 한 게 뭔데?”
무심한 보랏빛 시선이 로잘린을 향했다.
‘이게 아닌데?!’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에 로잘린은 어쩔 줄을 몰랐다.
당연히 아리스티네가 기뻐하면서 자신과 함께 고소해할 줄 알 았다.
그러면서 더더욱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방심하게 될거라고생각했는데…
“시끄럽게 짖어 대는 개한테 멀찍이서 마주 컹컹 짖어 대는 건 이빨 빠진 늙은 개도 할 수 있어.”
아리스티네가 소파에 푹 기댔던 몸을 천천히 세웠다.
“로잘린,난 분명 말했을 텐데.”
부쩍 가까워진 거리에서 아리스티네의 보랏빛 눈이 로잘린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에 서린 위압감에 로잘린은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아리스티네가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긁어 주었다.
마치 아끼는 애완견을 어르듯 부드럽고 다정하게.
“내가 원하는 건 사냥개라고.”
부드럽고 부드러워 벨벳같이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채찍처럼 흉포하게 로잘린을 강타했다.
“ 읏”
하지만 로잘린은 차마 아리스티네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아리스티네의 위세에 온몸이 짓늘리는 기분이었다.
로잘린은 하얗게 질린 채 식은 땀을 홀리며 아리스티네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리스티네는 그저 시녀들을 견제하기 위해 로잘린을 이용한 게 아니었다.
그 정도는 궁인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시녀들을 언제까지고 곁에 둘 생각이 없기에 로잘린에게 사냥 개가 되라고 했던 것이다.
“로잘린.”
“네,네?”
나직한 부름에 로잘린이 화들 짝 놀라 답했다.
“사냥을 못 하게 돼 쓸모없어 진 사냥개가 어떻게 되는지 아 니?”
로잘린은 멍하니 아리스티네를 올려다봤다.
‘쓸모없어진 사냥개는一.’
그녀의 턱을 다정히 긁어 주는 아리스티네는 자애로운 얼굴을하고 있었다. 생긋.
눈이 마주치자 아리스티네가 달콤하게 웃는다.
‘一잡아먹히지.’
손끝이 차가웠다.
로잘린은 시선도 못 피한 채 바르르 떨었다.
“물론 나는 강아지를 무척 좋아한단다.”
아리스티네가 나긋하게 말하며 손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로잘린은 아리스티네가 턱을 긁어주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리스티네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마침 선물을 가지러 갔던 궁인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비전하,가져왔어요.”
“특별히 더 신경 썼대요.”
“와,정말?”
아리스티네는 반색하며 궁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럼 이제 갈까?”
“예,전하.”
궁인들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로잘린을 바라보다가 뒤돌아 아리스티네를 따랐다.
누가 보면 친정 시녀가 궁인들이고,로잘린이 시가에서 텃세 부리는 못된 시녀라고 착각할 기세였다.
로잘린은 점점 멀어지는 아리스티네와 궁인들의 뒷모습을 바 라보았다.
아리스티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긴 치맛자락이 가볍게 나 풀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
로잘린은 기가 막힌 숨을 내쉬었다.
위압감에 짓눌렸던 것에서 빠 져나오니 뒤늦은 분노가 거칠게 타올랐다.
그녀는 주먹을 콱 틀어쥐었다.
‘그래,네 말대로 사냥개가 되어 주지!’
그저 으르렁대고 짖기만 하는 개가 아니라,상대를 물어 죽이는 진짜 사냥개가.
계획은 아주 쉽게 떠올랐다.
타르칸이라는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있는데 어려울 리가 있겠 는가.
‘그래서 다른 년들의 숨통을 죄 물어뜯은 다음에.’
로잘린의 눈이 이미 아리스티네가 사라진 곳을 향했다.
짙은 녹안이 번뜩였다.
‘최후의 만찬은 너야.’
* * *
유백색의 교차 궁륭을 중심으로 회랑이 길게 이어졌다.
기둥에는 오팔화된 아게이트를 잘게 박아 넣어 햇빛 속에서 찬 란하게 빛났다.
회랑 자체는 우아한 절제미를 뽐내지만,안을 들여다보면 이보다 호사스러울 수 없다.
‘과연 장군을 배출해 내는 명문가답네.’
아이루고의 건축 양식은 실바누스와 확연히 달라 보는 맛이 있었다.
실바누스가 천장화와 부조물을 기하학적으로 빼곡하게 배치해 사치스러움의 극치라면,아이루고는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곡선과 여백의 미를 살렸다.
여백의 미라고는 하지만 아이루고는 절대 소박하지 않았다.
값비싼 보석을 체인에 걸어 늘어트리고,여백을 만들어 보석에 빛을 투과시켜 모든 것이 반짝 반짝 빛나기 때문이다.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옷에도 그 특성이 잘 묻어나왔다.
실바누스의 드레스는 무겁게 떨어지는 치마를 페티코트로 부풀려 양식미를 강조한다.
그에 반해 아이루고는 가벼운 천이 그대로 몸에 감겨 바람에 자유롭게 흔들리는 곡선을 살렸다.
아리스티네의 몸에 감긴 아이루고식 드레스 자락이 그녀의 걸음과 봄바람의 하모니에 맞춰 살랑거렸다.
그럴 때마다 이 대저택의 고용인들이 한숨을 홀렸다.
‘정말 비전하셔…..’
‘세상에,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아름다우시잖아?’
‘어깨선이 어쩜 저렇게 가녀릴 수 있을까.’
‘세상 소중해!’
‘요정이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리스티네를 수행하는 궁인들의 콧대가 높아졌다.
역시 우리 비전하가 최고시다.
고용인들은 궁인들이 그러는지 도 모르고 소곤거렸다.
‘그러고 보니 도련님이 비전하 보고 뭐라고 하셨지?’
‘요정?’
‘천사?’
‘여신?’
‘그런 거 아닌데.’
‘너네 생각을 말하지 마.’
고용인들은 속닥투닥거리며 골몰에 잠겼다.
분명 뭐라고 하셨는데,뭐였는 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때,회랑 건너편에서 도련님이 등장했다.
아이루고인들 중에서도 태산같은 도련님이 앞에 서니 왕자비는 더더욱 작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고용인들이 “앗!” 하고 탄성을 질렀다.
‘엄지 공주!’
정확히는 ‘그 아까 태어난 것 같은 작고 하찮은 엄지 공주’였지만,고용인들의 머릿속에서 앞에 붙은 쓸데없는 수사는 다 날아갔다.
‘……엄지 공주?’
멀리 있는 고용인들이 우리 비 전하에 대해 무슨 말을 주고받나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궁인들의 귀에 한 단어가 들렸다.
‘엄지 공주라니……!’
궁인들의 시선이 앞서가는 아리스티네의 뒷모습에 박혔다.
‘어머나 세상에,이건 온 세상 에 알려야 해!’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