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0
010 변화(6)
하아!
무호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앞에 있는 자가 과연 내가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형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말투와 행동은 물론 눈빛까지도 다르다. 가문의 처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지만, 아닌 척해도 열등감이 묻어나왔었다.
그런 형이 항상 안쓰러웠거늘.
지금의 형에겐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기는 한데, 속은 기분이다.
“아직 감이 오지 않지?”
“얼떨떨한 기분이야. 형 같으면 어떨 거 같아?”
“나 같아도 그렇겠지.”
20년을 알고 지낸 형이 능력을 감추고 있었단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었던 형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고, 함께 살아왔었던 형이 지나치게 낯설게 다가왔다.
순순히 믿어지지 않지만, 눈앞에 증거가 버젓이 있으니 아니라곤 못 했다. 그래서 더 감을 잡지 못하겠다.
“무인이 감을 못 잡을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뭔 줄 알아?”
“대련하자고?”
“일단 맞다 보면 확실해질 거야.”
“형이 달라진 건 인정해. 그래도 날 만만히 보면 큰코다칠 수 있어.”
“나 정도 되면 만만히 봐도 되니까 어서 하고 싶은 대로 공격해 보렴, 아우야.”
형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무호는 기가 막혔다.
장작을 패는 솜씨는 분명 놀라웠다. 결대로 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와 사람은 다르다. 하물며 무인은 또 달랐다. 단련된 무인은 나무와 비교도 되지 않으며 살아 움직이게 되면 결 역시도 변하기 마련이다.
“후회하지 마.”
“너나 따라온 걸 후회하지 마라. 울면 곤란해? 어른이 울면 추하거든.”
“울긴 누가 울어!”
“아니면 말지 왜 소릴 질러. 형 귀 안 먹었어.”
무호는 연신 내 형이 맞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형이 보여준 장작 패기가 범상치는 않았다. 무인으로서 방심은 치명적인 실수를 초래하게 된다. 자신은 그와 같은 실수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방심은 화를 부르고 지나친 경계는 몸을 굳게 하지.”
“알고 있거든.”
“쫄면 곤란해.”
“그딴 저속한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너무 고지식하면 발전이 없는데.”
무호는 휘둘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가문에서 보여준 성적만 놓고 보면 형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으니, 한편으로 한심했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경계를 늦추지 말고, 육체를 움직인다. 육성의 진화공이 주천하여 안정감을 주었다. 공력의 순환으로 원래의 자신을 찾았다.
“간다.”
“얼마든지.”
자신감이 생긴 동생의 대응에 무진의 내심은 씁쓸했다.
동생이 그간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항상 무게를 잡고, 평정심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단속했다. 10살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내가 방황을 하기 시작하면서 동생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도 어쩌겠어, 이게 네 운명인걸.’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동생을 버린 무진의 냉혹한 결정이었다. 차후, 어떤 식으로 나오든.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했다.
낙장불입이거든.
스륵!
무진은 빙판을 미끄러지듯이 유유히 내디뎠다. 느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는 기대하고 있었던 무호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자 실망했다.
어?
단련된 무인일수록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속성이 있었다. 그런데 무호는 순간적으로 공간을 잃고 말았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이런!”
공간을 잃음으로써 다음 수가 엉키고 말았다. 제공권을 만들어 내기 위해 검을 출수하지만, 궤적이 간단히 읽혀 버렸다.
“뻔해.”
공간을 파고든 무진은 반보 안으로 더 들어갔다. 그러자 검의 공간이 아닌 권의 공간이 나왔다.
제압된 공간.
무진은 자유로웠고, 무호는 제약을 받았다.
유불리가 갈린다.
퍽!
명치 아래.
사혈을 치진 않았으나, 그 한 방으로 무호는 움직임을 잃었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속된 말로 내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직…… 헉!”
“사양하지 않으마.”
고개를 숙인 무호의 대가리를 팔꿈치로 찍어 버리는 무진이었다.
퍽!
이중고.
처맞고 바닥에 찍힌 무호는 바르르! 떨다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취미 한 번 고약하군.
‘이론은 개떡이거든.’
가르치기 귀찮은 건 아니고.
허억!
눈을 뜬 무호는 뒷골이 당기는 아찔한 충격과는 별개로 멍한 상태였다. 올려다본 하늘이 맑기는 한데,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무호는 주변을 돌아봤다.
“깼냐.”
무진은 잘라낸 고목의 그루터기에 느긋하게 앉아 동생이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고지식한 건 여전해, 변칙 수에 너무 약해.”
“변칙이라고?”
“제공권이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거야. 당황한 건 둘째 치고, 그 정직한 검로는 또 뭐냐?”
무진의 이죽거림에도 무호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조금 전의 일이 꿈처럼 다가왔다. 가문에서도 아버지와 장로님들을 제외하곤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물며 그분들이라고 해도 자신을 단 두 방으로 기절시키진 못했다.
“인정 못 하겠지?”
“맞아.”
“그럼 뭐 하고 있어, 어서 와라.”
“이번에는 아까처럼 당하지 않아.”
“다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맞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무진은 히죽이며 끌어들였다.
무호도 물러서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방어로는 답이 안 나왔다. 일단 공격으로 방향을 잡기로 했다.
모든 공력을 끌어올렸다.
착!
무호의 검은 나아가지 못했다. 검이 궤적을 완성하기 전에 무진이 또다시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감도 못 잡았다.
“불필요한 동작이 많아.”
“…젠장…… 크윽!”
손목을 제압한 무진은 물 흐르듯이 타고 들어 무호의 턱을 강타했다. 공격이 이어지는 과정이 완벽하다.
퍽!
비틀!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몇 번이나 털썩 주저앉기를 반복하고 말았다.
풀썩!
결국, 쓰러진 무호는 허탈한 눈으로 형을 올려다보았다. 오랜 세월의 적공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격의 차이를 의미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못 이긴다.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의 뼈아픈 결과만 그려졌다.
그래서 의문이다.
이렇게나 강하면서.
“후계자는 왜 넘긴 거야?”
“나보다는 네가 나으니까.”
“이제라도 형이 해.”
“어허,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했다. 사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기냐.”
무호는 그제야 형이 맹세하라고 한 이유를 깨달았다. 되돌리지 못하도록 미리 못을 박아 둔 것이다.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무엇보다 저 눈빛과 표정을 보니 귀찮아서 떠넘긴 게 분명하다.
얄밉다.
오늘처럼 형을 치고 싶은 적이 있었나 싶다. 한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본문의 후계자가 돼서 맞고 다니면 곤란하겠지.”
“……어쩌려고?”
“미안하지만 난 이론 수업은 꽝이거든.”
“……설마?”
“자, 맞자.”
무진의 환한 미소에 무호의 혈색이 파랗게 질렸다.
가르침을 빙자해 동생을 학대하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고개를 완강히 저으며 반대 의사를 피력했지만.
“……싫다면?”
“더 맞겠지.”
“형 맞아?”
“완전 맞을걸.”
***
이른 아침 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무진은 훈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검을 들고 계신 아버지에게서 사뭇 진지함이 풍겼다. 오늘 날 잡았다는 각오가 전해졌다.
“검을 잡거라.”
“안 가져왔는데요.”
“왜?”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잖아요. 오라고만 했지.”
“빨리 가져오너라!”
무진은 돌아가서 대충 아무 검이나 가지고 왔다. 누가 쓰는 검인지 알 수는 없으나, 나중에 돌려주면 그만이란 주인 의식을 발휘했다.
“잘 보고 배우거라.”
“뭘요?”
“뭐긴 뭐야, 송호십검이지. 네가 명색이 장남인데, 후계 자리를 놓았다고 해도 제대로 알고는 있어야지.”
“예.”
이런 날이 다 있네. 아버지의 관심은 어릴 때 이후로 사라진 줄 알았다. 항상 실망만 안겨 드려 죄송할 따름이었다. 무진은 아버지가 펼치는 송호십검을 눈을 떼지 않고 살폈다.
초일류의 경지에 이른 아버지의 검은 송호십검에 맞춤형이었다. 기본과 정도를 지향하며, 변식은 섞지 않았다. 기본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완벽하다면, 완벽한데.
그뿐. 강해 보이진 않는다.
무진은 아버지의 품위를 위해서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후우!
송호십검의 마지막, 송호무적을 끝으로 아버지는 착검했다. 착검하는 동작은 얼마나 훈련했는지,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하다. 지금 펼친 검법보다 착검이 훨씬 대단해 보일 지경이다. 확실히 검을 끝내고 넣을 때가 멋있어 보이긴 했다.
“해 보거라.”
“예.”
아들이 머뭇거리지 않고 검을 펼치려고 하자, 우경은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잔 심정으로 마음을 굳건히 했다.
겉멋이 제대로 든, 누굴 닮아서 그러는진 전혀 모르겠지만, 형(形)에만 사로잡혀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었다. 오늘 그 점을 깨우쳐 볼 예정이나 말 그대로 예정일 뿐이다. 3성이라도 따라온다면 하늘의 복이었다.
휙, 슈웅!
무진의 검이 허공에 점을 찍어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점에서 시작된 선이 궤적이 되어 초식으로서 형을 완성하고 있었다.
응?
우경은 아들의 검형에 눈을 손으로 비비며 다시 보았다. 겉멋에 치중한 검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검은 송호십검의 기본을 충실히 이행했다. 검의 형태만 놓고 보면 완벽하다.
‘……그럴 리가.’
무경은 아들을 사랑하지만, 믿냐고 물어본다면 대답 못 한다. 항상 기대를 배반해서 애초에 기대 따위는 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강해 보이기까지 했다. 검에서 힘이 전달되었다.
그렇다면 형만이 아닌 송호십검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데……. 우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래 이상하게 정신을 차리긴 했어도 실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무진의 검이 끝났다.
“다했는데요.”
“뭐?”
아차!
우경은 순간 넋을 놨다는 걸 깨달았지만, 근엄한 모습을 잃지는 않았다.
“고칠 부분이 있나요?”
“겉만 화려하다고 검이 아니다.”
지적할 만한 게 없자, 우경은 방법을 달리했다. 이대로 놔두면 아들의 오만을 키우는 꼴이 되었다. 차라리 하지 않은 만도 못 한 것이다.
“오너라.”
“예.”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을 잘 들어.
그럴 때가 아니지.
우경은 정신을 가다듬고 아들의 검과 마주했다. 일견 완벽해 보이나 힘, 공력, 박자, 궤적, 속도가 초식과 어울리지 않으면 텅 빈 쭉정이에 불과했다.
‘여기서 찌르면.’
우경은 가문의 검인 송호십검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이해가 높다고 자부했다.
탁, 티잉!
우경이 찌른 검이 너절하게 밀려 제자리를 찾았다. 그와 달리 아들의 검은 제자리를 우직하게 지켰다.
“왜요?”
“……아니다.”
우경은 재차 검을 찌르고, 베었다. 검의 기본이지만 실린 힘이 점점 적당하지 않았다. 아들을 봐주어야 한다는 아비의 의무보단 체면을 지키겠다는 의기가 피력되었다.
팅, 타앙!
검이 술술 막혔다.
그것이 우경을 답답하게 했다. 막히면 안 되잖아. 왜 막혀? 계속 막히고 지랄이었다.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이지만, 관리가 되지 않았다.
체력과 공력이 바닥나려고 했다.
스륵!
그때 무진이 물러섰다.
“……왜 그러느냐?”
“힘들어서요. 그만하면 안 될까요?”
“지칠 때도 됐지. 암암.”
“내일 또 올까요?”
“……그만하면 됐다.”
아들이 힘들다며 물러서자, 우경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더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뻔했다.
“역시 강하시네요.”
“자만해선 상승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법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만 가보거라.”
“예.”
아들이 멀쩡히 걸어 나가는 모습에 우경은 입맛이 썼다. 이러려고 오라고 한 게 아닌데. 혹시 체면이 깎이지 않았나, 심사숙고해보게 되었다.
“제법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