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01
100 (가)족 같은 세가(1)
-납치 사건의 전모, 주도자는 극살 이융이었다.
-극살은 사특한 무공을 익히기 위해 순음지기를 지닌 여인을 제물로 사용하였다.
-연령대별로 납치한 것은 무공을 감추기 위한 기만술이었다.
-천주신창 곽운백 대협께서 극살 이융의 악행을 처단하였다.
-곽운백은 악인을 처단한 개방과 무당의 숭고한 희생을 애도하였다. 피치 못하게 발생하게 된 희생자들에겐 위로를 전했다.
극살의 죽음으로 납치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고, 천주신창과 무인들의 헌신으로 해결되었다고 소문이 났다.
개방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천주신창과 무당이 보인 협을 높이 샀다.
한동안 소란이 일었다.
십오 년 전 사라졌던 극살이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년간 벌어진 납치 사건 중 일부는 극살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
희생자들은 극살을 원망하고 저주했다. 다행히 정의는 살아 있었다. 오랜 추적 끝에 마침내 극살을 찾아내 단죄했다.
개방과 무당, 천주신창의 협심이 빛을 발한 정의구현이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개방, 무당, 천주신창의 명성은 높아졌다.
빠득!
한림학사처럼 고고함이 흐르던 묵암의 안면이 흡사 악귀처럼 변했다.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던 그로서는, 작금의 실패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따위 하찮은 수에 당해! 요승! 네놈이 살아 있었다면 내 손에 죽었을 것이다.’
실패의 원흉은 요승이었다. 환술에 재능을 보여 내버려 두었더니, 병단의 제조에 쓰일 제물의 습득에 차질을 빚게 생겼다.
‘극살이 죽을 줄이야.’
칠살에 속한 극살이라면 요승의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아야 했다. 개방과 무당에서 파견된 무인의 능력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천주신창의 개입은 예상치 못했지만, 마령을 얻은 극살은 육성보다 강했다.
‘남궁세가의 일만 성공했어도.’
개방이 오래전부터 추적했다고 하는데, 전부 개소리였다. 요승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면 추적은 처음부터 당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개방이 소문을 내는 이유는 뻔하다.
‘상스러운 것들.’
개방의 정보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무당을 엮은 것만 봐도 개방의 속셈이 뻔히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개방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피해만 놓고 보면 작전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 새끼는 대체 뭐지?’
또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번에도 있다. 알고서 번번이 개입했다고 보기도 모호하다. 무당파의 속가제자로 들어간 계집들의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니까.
‘죽일까?’
고민하기 전에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한데, 놈을 죽이기가 쉽지 않다. 개방과 죽이 맞는 데다 무력 수위도 꽤 높았다. 손을 쓰면 개방이 나설 우려가 있었다.
‘우선은 상전부터.’
실패가 쌓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본교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부르르!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묵암의 두 눈에 두려움이 일었다. 교의 처단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것이니.
***
“네가 나릉이라며?”
“몰랐냐.”
천면호리를 옆에 두고도 멀리서 찾았던 육칠은 속된말로 병신이 되었다. 사천성에 들어서기 전 홍무개한테 처맞으면서 쓴소리를 들었다.
네놈 때문에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다나.
‘그게 왜 내 탓이냐고!’
자기도 몰랐으면서.
교양 없이 무식하게 사람을 패! 거지 같은 세상이라도 이승이 낫다며. 다 살자고 한 일인데, 자기도 처맞았으면서. 맞은 사람의 심정은 누구보다 잘 알잖아.
“어떠냐, 내 변신술이? 크크크크.”
“이 새끼가, 또 염장 지르네!”
“그러게 눈 똑바로 뜨고 다녔어야지.”
“오늘 죽자!”
정체가 발각된 나릉은 도리어 육칠을 놀렸다. 예전이었다면 놀라서 도망부터 쳤을 텐데, 나릉도 이젠 포기했다.
주인이 언제부터 제정신이었다고.
포기하니 비로소 편해졌다.
신화마정갑이고 나발이고.
극락은 멀리 있지 않다.
빨리 찾아서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청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인은 강한 무력과는 별개로 거짓말도 밥 먹듯이 하는 위인이었다.
“거기 안 서!”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쇼.”
나릉과 육칠은 보법에 자신이 있는 편이라, 무진의 시야에서 난잡하게 돌아다녔다.
고만고만한 것들의 다툼은 보는 재미가 있었다. 확실히 격차가 크면 결말이 허무하다.
그래도 계속 저러면 정신 사나웠다.
“철호야, 너는 저것들처럼 되면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한참 보법을 구사하며 손속을 겨루던 나릉과 육칠은 우뚝! 자리에서 멈췄다.
방금 한 말에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
무진은 논외로 치더라도, 저 애송이까지 자신들을 무시하는 느낌이다.
“억울하면 증명해 보든가. 이기면 공청석유 한 방울 주마.”
……흠!
나릉과 육칠은 빌어먹게도 대답하지 못했다. 재능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철호는 얼굴만 노련한 강호인이 아니었다. 근래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극살의 살검들을 처리할 때 철호의 활약은 짜증 나게도 눈부셨다.
“둘이서도 겁이 나는 거야? 그러면 실망인데.”
“합공해도 되는 겁니까?”
“얼레, 각자 덤비려고 한 거야? 난 그렇게 양심이 없지는 않아.”
“……감사합니다!”
무진의 배려임에도 불구하고, 나릉과 육칠은 떨떠름했다. 저딴 배려는 죽어도 받고 싶지 않다. 솔직히 배련지, 먹이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사부님.”
철호의 단호함에 나릉과 육칠은 미간을 찌푸렸다. 애송이가, 잘한다고 했더니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정의로운 합공술을 받아 봐야 제정신을 차리지.
“정의는 살아 있는 법이다.”
“예의와 기강을 세워 주마!”
가치관 하나는 확실한 놈들일세.
명분 좋아하는 개방과 꼴에 서열 따지는 양상군자의 의기투합이었다. 어쨌든 이리저리 재 봤자, 공청석유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우우웅!
철혈사자공을 개방한 철호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을 발출했다.
헙!
나릉과 육칠은 철호의 살벌한 기세에 흠칫했다. 이 애송이 놈이 극살의 사냥개를 죽일 때완 또 달랐다. 재능의 차이가 이렇게나 커도 되나, 하늘을 원망하고 싶을 지경이다.
‘나도 한때는 잘나갔거늘!’
‘이대로 장강의 앞 물결이 될 성싶으냐!’
철호가 맹렬한 기세로 돌진했다. 공간을 차단하며 회피 동선을 막아섰다.
꽈아아앙!
기마대의 돌격 전술을 변형한 철륜박(鐵輪迫)이었다.
황급히 방어한 나릉과 육칠은 식겁했다. 자칫 방어가 늦었다면 이 한 방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주르륵!
나릉과 육칠은 식은땀을 흘렸다. 애송이라고 얕봐선 안 되었다. 생긴 대로 괴물 같은 놈이었다. 그러나 포기는 없다. 뒤처지지 않겠다는 열등감이 폭발했다.
‘오냐, 너 죽고 나 죽자!’
철호와 두 열등감 덩어리의 사투는 의외로 한 시진이나 지속되었다. 철혈사자공이 팔성에 이른 철호는 순수 무공으론 나릉과 육칠을 넘어섰다.
그러나 강호 밥을 먹어도 수배는 더 먹은 나릉과 육칠의 속물근성과 집요함은 상당했다. 철호로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치졸한 공수의 연계였다.
철퍼덕!
여력이 다해 엎어진 나릉과 육칠은 버티고 선 철호를 보며 치를 떨었다. 보통은 쓰러져야 마땅한데, 현실은 참혹했다.
허어, 허어!
철호도 멀쩡하진 않았다. 마지막 수를 펼치고 나서야 겨우 승부를 결정지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반대의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래도 많은 걸 배웠다.
철호는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올리려고 했다.
“우리 철호는 평생 혼자 살 팔자네. 저런 것들하고 한 시진이나 싸우고. 쯧쯧쯧.”
“다시 싸우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철호의 활활 타오르는 결의에 승복하려던 나릉과 육칠은 이를 갈았다. 애송이가 한 번 이겼다고 자신들을 만만히 보고 있었다. 어른의 무서움을 보여 주겠노라 다짐했다.
후후.
무진은 불협화음에 만족했다.
경쟁심이 사라진 무인은 발전하지 못한다. 강해질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었다. 나릉과 육칠의 열등감이 극한에 이를수록, 철호에겐 동기부여가 되었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셈이야!”
“공청석유가 시급합니…… 흐억!”
어디서 약을 팔아!
무진은 꾀병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았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저세상으로 하직하도록 진각을 밟았다.
쩌저저적!
진각에서 뻗어 나간 거력이 지면을 두 조각으로 나누었다. 좌우로 벌어진 내부가 어두웠다.
‘이 무식한!’
무진은 사천성의 성도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사천성 주요 세력의 정보를 육칠을 통해 들었다. 육칠은 개방의 분타에 들러 정보를 확인하고 무진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처럼 끌려다닐 순 없지.’
-생각이 없긴 했지. 그래도 밝힐 필요는 없었을 텐데.
‘믿을 만한 놈이거든.’
-장님을 만들고서 할 소린 아니지 않나.
‘왼쪽 눈은 내가 안 했다.’
무진은 될수록 홍무개하고는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미래에서 사사건건 사건을 만들어 주는 바람에 마신교와 미치도록 싸웠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모른다. 자기는 무림을 위해서라고 떠벌렸지만, 당하는 처지에선 무척이나 얄미웠다.
눈 하나로 끝내 준 걸로 다행이라 여겨야지.
그러나 눈을 잃고서도 홍무개는 무림의 안위를 위해 애썼다.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지만, 대의만은 확실했다.
‘거지 놈도 전선에서 고생을 좀 해 봐야 해.’
-역시나 원한이었군.
‘겸사겸사지.’
-너답지 않게 훌륭하긴 했다.
맘에 안 드는 것과 별개로 홍무개는 신의가 있었다. 그래서 장로가 아닌 후개에 도전할 여지를 주었다. 차후 방주가 되어 준다면 손해는 아닐 것이다. 대신, 바라는 대로 무림의 안위를 위한 동분서주는 당연했다.
무진은 이제 주변을 지켜야 했다.
정보력이 뛰어난 집단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귀찮은 상황을 피하려면 발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빚을 지웠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된다면 홍무개는 단번에 방주의 차기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장님에 장로로 끝날 운명이 바뀐 것이다.
성도는 사천성의 수도로, 삼국시대 촉한의 도읍지로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도시에 들어서자 다양한 인종이 종종 보였다. 청해, 운남, 서장과 맞닿고 있어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발전해 온 것이다.
다양한 민족이 모여 있으니 혼혈이 비교적 많았다. 다른 성과 비교하면 차별이 적은 편이나, 중원의 사고방식은 여전했다.
무진은 성도에 당도하기 전에 사천당가를 조사한 후 육칠에게 매우 사소한 임무를 맡겼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티격태격한 나릉이 발 벗고 나선 건 고무적이었다.
“저는 뭘 할까요?”
“넌 방에 들어가서 내력이나 쌓아.”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못 해. 넌 머리 쓰면 탈 나.”
철왕은 별호처럼 철인이었다.
머리 역시도.
사람에겐 각자 맡은 소임이 있으니, 무진은 철호에게 맞는 일만 시켰다.
되지도 않는 잔머리 따윈 안 쓰느니만 못하거든.
이런 말이 있잖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네 얘기군.
‘시끄러워.’
-그래서 괴롭히는 거였어. 유유상종이군. 같은 방향의 지남철은 서로를 극도로 싫어한다지.
‘닥쳐.’
머리가 나쁜 걸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철호지만, 알고 있어도 기분 나쁘기는 매한가지였다. 방으로 가면서 천자문이라도 달달 외우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