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1
011 세월유수(1)
빠드득
이가 갈린다.
살다 살다 이렇게나 많이 처맞아본 적이 있었을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 보는 무기력함의 절정에 도달했다.
명문거파의 후기지수와 비교하면 부족하기는 해도 재능은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또래라면 충분히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거라고 봤거늘, 명백한 착각이었다.
일방적으로 맞았고, 반격하다 더 맞았고, 울분을 토하다 1년 전에 먹은 것까지 게워냈다.
사내라면 응당 폭력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현실은 개판이다. 왜 매 앞에 장사 없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했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을까?
세상이 넓다는 걸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않느냐고? 꼭 그렇지도 않았다. 우물 안에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세상이 우물보다 무서운지 이제는 모르겠다고.
그 괴물이 오늘도 히죽였다.
저 얄미운 면상을 확 마!
“오늘은 안 개기냐?”
빠드드득!
“주먹을 언제까지 몸으로만 받을 거야.”
으드드득!
“맷집만 믿고 설치면 곤란하단다.”
으아아악!
저 독살 맞은 주둥이를.
그냥 패라!
형이 아니라 웬수다.
첫날의 패배로 부족함을 깨우치고, 나아가기 위해 순수한 열의를 불태웠었다.
부질없는 포부였다.
5년이 지난 지금 남아있는 것은 악과 독기, 형에 대한 원한뿐이다.
살면서 살의를 느껴본 적이 없건만, 형이 유일하다. 정말 같은 혈육이지만 패 죽이고 싶을 만큼 얄밉다. 하는 말마다 속을 긁어 놓아 평정심을 흔들었다.
저 주둥이만 닫아도 살만할걸.
“얼레, 한눈을 파네. 많이 컸어.”
“……빌어먹을 개새… 쿠웩!”
“욕도 할 줄 알고. 뿌듯하구나!”
“……이 악마 같은 새끼야!”
“그래, 많이 짖으렴.”
내 동생의 눈물겨운 항쟁…… 흠, 몸부림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웠다. 여전히 원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장차 송호문의 문주로서, 대륙제일검을 노려봐야 할 거 아닌가.
지방제일검으로 만족해선 안 되었다. 명색이 전투의 마왕으로 불렸던 전왕의 동생이면 대륙제일검은 되어야 면이 서지, 안 그래.
하나, 모든 일은 순리가 있는 법.
강해지려면 훈련은 필수.
차차 배워가면 되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이 형만 믿고 따르렴.
“옆구리가 비잖아.”
“……치고… 나서 말하지… 쿨럭!”
“그거 좀 찼다고 피 토하기는.”
“……갈비뼈가… 부러진 거..같아!”
“안 부러졌어. 알잖아, 이 형이 감 무지 좋은 거. 침 바르면 금세 나으니까 엄살 그만 부려.”
엄살 아니라고!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아!
동생이 아프다고 하는데, 더 심하게 때리는 법이 어디 있냐고. 무호는 형에 대한 악감정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5년 전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형은 악마의 분신, 아니 악마 그 자체였다.
어찌 이리 악랄한 독수를 혈족에게 쓸 수 있단 말인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장가도 못 간 동생의 허리를 비틀었다.
뿌득!
안……돼!
좌에서 우로 검을 휘두르다가 수직으로 변화를 시켰지만, 허공을 갈랐다. 그 즉시 허리를 파고들어 와 감싸며 다리를 봉쇄당했다.
뚜득!
골음(骨音)과 함께 무호는 상체와 하체가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괜찮아, 형 손은 약손이다.”
“그게 무슨 약손이야! 똥손이지!”
만지는 순간 치료는커녕 파괴될 거야.
무호는 본능적으로 손길을 피했다. 반사적으로 지면을 박차고 튀어 올라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찰나지만 치명타는 피했다. 그런데도 몸 구석구석 안 아픈 부위를 찾는 게 더 빨랐다.
“동생을 죽일 셈이야!”
“죽일 거였으면 오 년 전에 죽었겠지, 동생아.”
“이 사기꾼!”
“어허, 형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이럴 거면 도로 가져가!”
“우리 동생 많이 귀여워졌네. 크크크크.”
저 간사한 웃음.
움찔!
위험했다.
귀엽다는 칭찬에 속아선 안 된다. 무호는 재빨리 보법을 펼쳐 거리를 벌렸다.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꽈아아앙!
반경 십장.
초토화되었다.
부르르르!
땅거죽이 속살을 드러내며 구덩이의 깊이를 짐작하지 못하게 했다.
‘……무식한!’
무호는 식은땀이 흘렀다. 보기엔 가볍지만, 당하는 처지에서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 안에 실린 미증유의 거력은 분명, 무형의 의지로 이루어낸 절대의 권공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오 년 전만 해도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짓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 년 만에 무형권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소림의 백보신권도 형의 주먹질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달마대사가 현신하여 고련을 하여도 안 될 것 같다.
망할!
그리고 우리 가문은 검문이라고?
웬 권공이야!
“보폭은 간격 조절이 안 되고, 진기의 흐름은 불완전해서 흔들렸잖아. 용천혈에서 두 푼가량 뺏으면 훨씬 빨랐을 거다.”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고.”
“하늘 같은 형님이 하시는 말씀에 토 다는 거냐. 그런 거야?”
“……아냐, 그런 거.”
무호는 여전히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눈앞에 있는 자가 과연 형이 맞을까? 보여준 무력만 놓고 보면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절대고수가 되어 있는데, 그걸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피를 나눈 형제도 쉽사리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내공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외공이 더디다. 특히 하체에 전달되는 진기의 수발에 불필요한 낭비가 있으니까 내외공의 전력소모가 커지잖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오늘 처음… 크악!”
“형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 꼭 말을 해야 알아듣냐. 넌 자칭 송호문 제일 기재이자 천재 아니냐.”
“차라리 그냥 패… 쿠웩!”
“원한다면.”
무진은 동생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고 충실히 단련을 시켜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생존력 강화훈련에는 탁월했다.
전왕공의 기반이 송호문의 진화공에서 묻어나오고 있었다. 내리사랑은 아름다운 법이다.
“여전히 군더더기가 많아. 검은 생명을 죽이는 병기일 따름이야. 같잖은 공자왈, 석가왈에 의미를 두지 마. 상념이 많아질수록 검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 죽일 거면, 죽여. 그러고 난 후에 생각해. 그래야 목숨은 건지거든.”
“……!”
“대답해야지.”
“……발… 부터 치, 워…….”
“아, 이런 실수.”
“…실수는…… 무슨… 고의가… 우웩!”
“자꾸 그러니까, 미끄러지잖아.”
발이 하필 왜 동생 얼굴에 있을까? 이해하기 힘든 일이긴 하나 실수를 정정할 필요는 있었다. 오래간만에 자유로운 발재간을 보여주기는 했다. 주먹질만 해서, 주먹만 쓰는 줄 알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 형이 발재간도 제법 있단다.”
“…그 딴말 듣고 싶지 않아… 어디 다 넣는 거야.”
“미안, 실수.”
“……고의면… 서…… 우웩!”
“사실을 적시하면 부끄럼 많은 이 형님이 창피하잖니.”
명색이 전왕이 창피할 순 없잖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동생이라 살인멸구의 패륜은 저지를 수 없으니 친절하게 발로 막아준 거다. 가족이니까 살아 있는 거지, 하마터면 쪽팔려서 살수를 연발할 뻔했다.
일각이 흘렀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거야, 동생아?”
“일어난다고!”
“성깔은.”
“그게 누구 탓인데.”
“나야 모르지.”
와, 이 뻔뻔함 보소.
내 형님의 뻔뻔함을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변하지 않고 강화되었다. 다른 건 다 변했는데, 성격 하나만큼은 초지일관이라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바른 검로도 중요하지만, 순간순간의 대처 능력 즉 임기응변이 여전히 부족해. 감각훈련을 좀 더 보강하겠다.”
“……여기서 더?!”
감각훈련을 하겠다며 빛 하나 들어오지 않은 공동에 가둬 놓고 비수를 던졌었다. 그땐 정말 죽음의 공포보다 더한 공포를 느꼈다. 잠을 잘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악랄한 훈련이 있다니. 무호는 자결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아니면 다음 대련에서 성과를 내든가.”
“알았어. 하면 되잖아.”
무진은 미소를 지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의젓했던 동생이다. 형으로서 문파에 안착하지 못하고 겉돌아서 생긴 부작용이다. 사람은 그 나이 또래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엄살도, 앙탈도, 고집도 부려볼 수 있는 거다. 항상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무게 속에 살아왔던 동생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흡족했다.
“그래야 송호문의 제일 기재이자, 천재답지.”
“천재가 다 죽었겠지!”
“죽일 순 없으니 숨 막힐 때까지 패줄까?”
“형제끼리 농담도 못 해, 헤헤.”
무호는 투덜대곤 있지만, 인정은 하고 있었다.
문파의 검공인 송호십검을 새로이 정립하여 5초식으로 만들었다. 초식이 줄어들어 약해졌냐? 그리 물어본다면 아니었다. 비교하면 그간 쓸데없이 초식만 많았던 것이다. 초식의 연계를 통해 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 전에 쓸려나가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대종사의 반열에 들었어!’
믿고 싶지 않지만, 형은 괴물 같은 실력뿐만 아니라 무리의 깨달음이 대종사급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대에 걸쳐 내려온 검공을 재정립하여 완성하진 못할 테지.
-내 덕임을 잊지 마라.
‘잘난 체는.’
-잘난 체가 아니라 잘난 거다.
‘주둥아리는 살아서.’
-현재의 난 주둥아리가 없다.
무진은 전왕으로서 전투 감각은 따를 자가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무공에 대한 이해와 깊이는 다른 문제다. 자기 무공과는 달리 다방면으로 깊이 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마왕은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문일지십의 천재를 넘어섰다. 송호십검을 오검으로 줄였음에도, 검공의 의미를 잃지 않고 담아냈으며 위력은 배가시켰다.
‘그래, 잘났다.’
-네가 멍청한 거다. 너 정도 되면 하급 무공쯤은 해석하고 바꿀 줄 알아야지. 전왕이 똥머리였을 줄이야. 내가 똥머리한테 당한 거라니.
‘머리가 좋은 거랑, 전투랑은 관계없거든.’
-지휘를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겠지!
전왕은 마신교를 정벌할 빌미를 제공했지만, 전장을 지휘하진 않았다. 그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은 무림맹 측의 군사부였다. 사람들은 전왕이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줄만 알았지, 사실은 전투와 달리 전쟁의 판세를 짜는 능력은 부족했다.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
‘갑자기 웬 인정.’
-절대고수는 그 자체로 강력한 병기니까.
한 명의 절대고수가 행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겠지만, 절대고수 간에도 급이 있었다. 전왕은 그 급이 다른 족속 중에서도 최강이었다.
그러니 마신교가 매번 쩔쩔맬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