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12
111 독왕(1)
당문에서 무진에 대한 평판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운만으로 당문의 귀빈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당문십수까지 당하자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다만, 무진에 대한 평판은 극명하게 갈렸다.
시험했던 무인들이 개망신을 당했고, 서역의 피가 섞인 당연우를 대놓고 지지했으니 평판이 좋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당문의 가주가 인정한 귀빈이었고, 그에 걸맞은 무공을 갖추었다. 무인에게 있어 무공은 자신을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무기였다. 누구도 무진을 함부로 무시하진 못했다.
당문의 무인들에게는 짜증 나는 현실이었다.
적대시하자니 명분이 부족했다. 얄밉게도 무진은 진원각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가문의 귀빈을 모시는 장소였고, 자기들이 찾아가서 도전했다.
그러는 사이 당문은 풍파에 휩싸였다.
경합을 치러 소가주를 다시 세우기로 장로회에서 결론이 났다. 다만, 소가주 자리에서 물러난 당연천에게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의종군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문제를 일으켰다곤 해도 당문의 소가주였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게 할 순 없었다. 또한, 모두가 만족할 실력을 보여 준다면 분란의 명분을 줄일 수 있었다.
당문이 내부적인 사안으로 골치를 썩고 있는데 반해, 무진은 오히려 평온했다. 도전하는 자도 이젠 없다. 오는 족족 개망신을 당하는데, 자기 명예를 깎아 먹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무진과 비무를 하려면 최소한 장로급에서 나서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망신의 나열이었다.
육칠이 돌아왔다.
개방의 신표를 내밀었고, 무진은 사전에 육칠이 돌아올 거라고 말을 해 놓았다. 육칠의 배후에 홍무개가 있으니 간섭은 하지 않았다. 내부 일로도 복잡한 상황에서 개방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당문이었다.
“어떻게 됐어?”
“동시 타격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정과 인원이 새어 나가면 위험할 수도 있어.”
“그래서 정확한 일정과 인원은 저도 모릅니다.”
“개방에서 힘을 쓰기는 한 모양이야.”
“총분타주가 방주님을 설득했습니다.”
무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육칠에겐 달랐다. 이번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 개방은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칫 계획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개방의 위상에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그 녀석은?”
“북경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잘 지켜 줘. 나서진 말고.”
“그렇게 전했습니다.”
역사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변화로 인해서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의도치 않은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녀석이라, 자칫 위험한 일에 빠지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 목숨은 보전해야 했다.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육칠이 경험한 무진은 강하다. 그것도 상상도 못 할 무공을 가진 절대고수였다. 굳이 생각이란 걸 하지 않아도, 거칠 것이 없었다. 당문에 엉덩이를 박고 꼬장을 부리는 것만 봐도.
다들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알면 환장할 것이다.
‘실상 아무 계획도 없다고 봐야지.’
자기 무력만 믿고 설치고 있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무진은 무림을 위해 큰일을 했다. 남궁세가에서 벌어진 사건을 파헤쳐 오대세가의 분열을 막았다.
‘왜 지나고 나면 잘되지?’
단순히 운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당문의 일도 그렇고, 통찰력이 날카로웠다. 믿기지 않지만,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당연우의 재질을 당문의 가주가 알아봤다곤 해도, 수면 위로 드러낸 것은 무진이었다.
혹시 나도?
“넌 아니다.”
“제가 뭘 물어볼 줄 알고요?”
“넌 재능이 별로야. 그러니 내 안목을 믿지 마라.”
“저도 꽤 잘나갑니다.”
“거지 중에 하나겠지.”
이 인간은 정이 들 만하면 초를 대놓고 쳤다.
그냥 자기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데도 누구도 무진에 대해서 의심하질 않았다. 그저 다른 의도가 있나, 그 정도 선에서 의심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능력이었다.
“남궁세가에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자기 집도 못 지키면서 나대기는.”
“좀 고맙다고 하면 안 됩니까?”
“부끄러워서 그래. 난 칭찬에 약하거든.”
저런 말은 보통 자기 입으로 안 하지 않나?
그리고 부끄럼을 타긴 누가?
무진을 조금이라도 아는 육칠에겐 명백한 개소리로 들렸다. 실상 수치를 느끼면 지켜본 사람들만 위험해진다. 자신의 수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살인멸구할지도.
“당문은 어때?”
“한패라고 하긴 무리가 있지만, 아니라고 하기도 모호하더군요.”
“그 정도면 됐어. 나릉에게 가 봐.”
“그 자식, 좀이 쑤셔 죽으려고 하던데요.”
“손 잘못 놀리면 잘라 버린다고 전해.”
“옙.”
나릉은 변장한 채로 객잔의 손님으로 있었다. 위장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기에 신분이 들킬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둑이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손가락이 근질거리면 잘라 주는 수밖에.
진원각에서 육칠이 나가고 나서 얼마 뒤, 당연우가 찾아왔다.
흠.
무진은 당연우를 흥미롭게 보았다.
재능만 놓고 보면 대륙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테지만, 성격이 유약했다. 고집스럽고 지독한 당문의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당연우의 기도가 바뀌었다.
조각처럼 선이 분명한 이국적인 인상이나, 눈빛이 선하고 맑았었다. 현재의 당연우는 전체적으로 날카로웠다. 예리하게 정제된 차가운 기도를 풍겼다.
-투심마안을 쓰긴 했어도, 그사이에 진전이 있었나 보군. 제법 티가 난다.
‘잘 먹히는 녀석이 있기는 있구나.’
-스스로 변하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효과가 크긴 하지.
‘흐리멍덩한 성격보단 낫겠지.’
마신교를 대적하면서 당연우는 금발사신으로 위명이 자자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문의 병기로서 이용만 당했다. 그러다가 너무 뛰어난 활약을 하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감회가 새롭겠어.”
“그렇진 않습니다.”
“상태는?”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아쉽진 않아?”
“전혀요. 저는 주군을 따르고 싶습니다.”
무진은 충성을 맹세한 당연우에게 제안을 했었다. 성격을 바꾸고 싶지 않냐고. 약간의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원한다면 투심마안을 걸어 주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당연우의 기질이 바뀌었고, 성취도 놀라웠다.
남몰래 숨어서 익혔던 무공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자 잠재력이 폭발했다. 이러면 무진이 알고 있었던 금발사신보다 강해질 수밖에 없다. 숨어서 익힌 무공이 그 정돈데, 금제가 풀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려면 실력부터 키워야지.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까, 예전처럼 눈치 보지 말고 열심히 해.”
“감사합니다, 주군.”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형님이라고 해.”
“예, 형님.”
그나저나 훈훈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이 훨씬 잘 어울린다. 이래서 본판이 중요한 것이다. 머리를 흑발로 바꾸면 완벽한 조각 미남이었다. 철호로서는 백 번의 환골탈태로도 다가서지 못할 자연 미남이었다.
“악연이 찾아오는데, 괜찮겠어?”
“이젠 제 동생도 아닙니다. 주제를 모르면 처벌을 내릴 뿐입니다.”
……뭐?
이거 어째, 부작용인가?
아무한테나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예 다른 인격을 원한 모양이군.
‘이상해지면 가만 안 둬.’
-어정쩡한 호구보단 훨씬 낫다.
그 말도 일리는 있었는데, 성향이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작위적으로 성격을 꾸몄다고 하기엔, 이쪽이 워낙 자연스러웠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구금이 풀린 당연천이 진원각을 찾았다. 이제 소가주의 지위를 찾으려면 경합을 벌여야 한다. 그 자체로 당연천은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바로 당연우였다.
“돌아온 걸 보니 내 자리가 탐이 나긴 했나 봐. 하지만 어쩌냐? 네놈은 경합에도 나올 수 없어!”
“가모의 치마폭에 휘둘리는 놈이 잘도 비아냥거리는군.”
“……뭐? 이 자식이 감히 어디다 대고! 죽고 싶은 거냐!”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도 내 발가락보다 못한 수준으로 거들먹거리는 주제에 누굴 협박하는 거지? 네가 진정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
……크윽!
싸늘하게 식은 당연우의 기세에 당연천은 당황했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비아냥거림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을 못 하고 있었다. 자신만 보면 회피하고 꼬리를 말았던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물며 기세에 살의가 실려 있었다.
‘야, 저거 정말 당연우 맞아?’
-효과가 기대 이상이군. 많이 써 보자.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데. 말이 심하잖아.’
-너보단 착하다.
‘이 새끼가 점점.’
당연우의 사실 적시에 당황했던 당연천은 곧 분노에 치를 떨었다. 잡종 따위가 감히 자신을 농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고, 살의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잡종 새끼! 죽여 버릴 테다!”
솨악!
막 출수하려던 당연천을 막아서는 기운이 있었다. 심혼을 관통하는 서늘함이었다.
무진의 손끝이 당연천을 가리켰다.
“거기까지! 더 하면 재미없을 거다.”
“당문의 일이야! 외부인은 빠져!”
“싫다면 어쩔 거냐, 애송아.”
“네놈이 뭔데…… 헉!”
발을 떼려는 순간, 당연천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발끝에서 머리끝을 강타하는 강렬한 전율에 몸서리를 쳤다. 소문으로만 접했던 무진의 무력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손을 뻗으면 죽는다. 저자는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몸이 말하고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이도 저도 못 하게 되자 분노가 치밀었다.
“개자식, 외부인을 믿고 설치는 거냐!”
“정 그렇게 원하면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붙어. 서로 죽여도 모르는 곳에서. 간이나 보러 온 놈이 성내기는.”
당연천은 이를 갈 뿐, 결국 출수하지 못했다. 무진의 말대로 어제 구금이 풀렸다. 또다시 말썽을 피우면 경합에도 나가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넌 절대 가문의 인정을 받지 못할 거야. 내가 있는 한!”
“가문의 인정 따윈 바라지도 않아. 그리고 너는 절대 날 막지 못해.”
하나하나 날카롭게 받아치는 당연우의 반박에 당연천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한마디도 못 했던 전과 비교하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치 그전까지는 속내를 감추고 기회를 노렸던 야심가처럼.
‘가증스러운 잡종 새끼, 죽여 버릴 테다!’
돌아선 당연천의 얼굴이 악마처럼 일그러졌지만, 그를 보는 당연우는 처음처럼 무심했다. 감정의 변화가 일절 보이지 않는 그에게서, 너 따위는 날 어쩌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비쳤다.
‘변화가 지나치게 극적이네.’
-차라리 잘됐지 않나. 이제야 비로소 금발사신답군.
호구 같은 성정은 데리고 다니기도 피곤하다.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남을 위하기 전에 자기부터 챙겨야 했다.
‘당가의 애송이도 뭔가 처먹은 것 같고, 차라리 잘됐어.’
당가에선 당연우만 챙겨도 남는 장사였다. 다른 이들은 굳이 중요하지 않았다. 당문의 가주가 제법이긴 하나, 한계가 뚜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