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13
112 독왕(2)
당문의 소가주를 뽑기 위한 경합이 열렸다. 경합은 출전 순서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소가주로서 갖추어야 할 무력을 점검하는 무대였다.
전례대로 한다면 가주의 직계가 이어받는다.
그러나 이번에 소가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당문의 위상에 흠집을 냈다. 그 책임을 물어 모두에게 기회를 내어 주고, 소가주에게는 설욕할 명분을 주었다.
경합은 당문의 직계 연무장에서 열렸다.
연무장 중앙에 비무대를 설치하고, 정방형으로 거리를 두어 의자를 배치했다. 가주가 앉을 최상석을 좌우로 하여 의자를 서열에 맞추어 준비해 놓았다.
“소가주 경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실리를 중시하는 당가의 성향이 엿보였다. 자질구레한 형식적인 절차와 규례를 배제하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무진으로선 지루한 절차를 겪지 않아서 편했다. 원래 외부인은 경합을 관전하지 못하나, 귀빈의 자격으로 시합을 볼 수 있었다.
무진의 자리는 오른쪽 끝이었다.
그간 저지른 짓이 있어 위치가 좋다고 하긴 어려웠다. 가주가 앉은 상석에서 멀어질수록 서열이 낮아졌다. 앉은 자리를 보면 당문의 서열 구도가 보였다.
“앉으라니까.”
“전 여기가 좋습니다.”
당연우는 무진의 뒤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주인을 경호하는 호위무사처럼. 주변에서 연우에 대해 쑥덕거렸으나, 개가 짖는 줄 알았다. 경합이 벌어지고도, 연우는 무심함으로 일관했다.
“서운하지 않냐?”
“그래야 합니까?”
“아니다.”
“전 지금이 어느 때보다 좋습니다. 진작 이렇게 살 걸 그랬습니다. 하찮은 것들에게 왜 고개를 숙여야 했을까요.”
이건 좀 큰일인데.
보기에 따라서 천륜을 끊어 놓은 짓이다. 서운함이라도 있다면, 당문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당연우에게선 무심함만 자리했다. 한이나 정을 단칼에 지워 버렸다.
‘당 가주가 왜 날이 섰나 했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 가주와는 소원하긴 해도 마찰을 빚지 않았다. 당문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했고, 자식들까지 살려 주었다. 살갑지는 않지만, 예의를 지켰었다.
그런데 당연우가 돌아온 다음 날부터 당 가주의 표정이 냉랭해졌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아 간 원수를 대하듯 노려볼 때도 있었다.
지금처럼.
당문의 가주가 소가주를 뽑는 대회는 보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아들 돌려 달라는 것 같은데.
‘너 때문이잖아.’
-그래서 돌려줄 거냐?
‘미쳤냐.’
투심마안을 쓴다면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도 있겠지만, 부작용이 또 생길 수 있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손안에 들어온 보물을 내어 줄 마음은 없다. 그것이 설령 친아버지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소중했으면 진작 관리하시지, 지금 와서 지랄이실까.’
-든 자린 몰라도, 난 자린 티가 많이 나지.
소가주를 뽑기 위한 경합이지만, 모두가 소가주 자리를 노리고 참가한 건 아니다. 당가의 신성들로선 자신의 실력을 모두에게 보여 줄 자리였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 소가주가 되지 않더라도, 무력을 선보여 입지를 다지는 장으로 만들었다.
파파파팟, 타아앗!
경합에서 독의 사용은 금지했다. 당문의 독은 지독해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경합에 나온 당문의 신성들은 무공과 암기술을 펼쳐 우열을 가렸다.
경합이 무르익어 갈 때쯤 주인공이 등장했다.
소가주였던 당연천이 비무대에 올랐다.
경합에서 선전하여 자격을 얻은 당무경이 당연천을 맞이했다. 당무경의 활약은 예상되었다. 비록 혈족의 자격으로 따졌을 때 마지막 서열이긴 하나, 발군의 무력이었다. 일찍이 실력만 놓고 보면 그가 소가주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었다. 나이도 당연천보다 네 살이나 더 많고.
“시간이 필요하면 기다려 주지.”
당연천은 대결을 막 끝낸 당무경에게 내외공을 회복할 시간을 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그러나 당무경은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며 경쟁자를 제압했다. 힘과 체력의 소모는 거의 없다. 오히려 무공을 펼치면서 실전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그럴 필요 없다.”
“흠, 말투가 건방지네.”
“이젠 소가주가 아니니까.”
“곧 공경하게 해 주지.”
관객들에게 들리진 않았다. 애송이들도 눈치는 있다. 살벌한 투기가 번지자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짐작했다.
기수식을 취한 후 대결에 들어갔다.
흥!
여유를 부리는 당연천의 손짓에 당무경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직계보다는 방계에 가깝다는 이유로 경합은커녕 거론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예전에도 넌 내 상대가 아니었어.’
삼양공을 바탕으로 한 당무경의 열양장력이 당연천을 향해 쏘아졌다.
꽈아앙!
묵직한 파공성에 비무대를 휩쓴 기운이 연무장 전체로 퍼졌다. 그리고 드러난 두 사람은 희비가 교차했다.
“……막았어!”
그것도 한 손으로.
“제법이긴 해. 하지만 그 정도론 어림없지.”
여유롭게 받아 낸 당연천이 도리어 장력을 발출했다. 막아 낸 직후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퍼어엉!
예상을 벗어난 대치였다. 다급해진 당무경은 장력의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반격이 워낙 빨랐다.
타다다닥, 파아앗!
장심에서 번진 장력의 휘말리는 기류는 주변을 빨아들였다가 일순 토해냈다.
지척이라도 위험하다.
후아아아앙!
마지막 순간 바닥을 치고 날아올랐다. 장력에서 벗어난 당무경은 당연천을 찾았다.
“……없어?”
“여기야.”
당무경의 등 뒤에서 들렸다.
주르륵!
등골이 축축이 젖었다. 오 년 전에 겨루어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 이길 수 있었음에도, 주변의 눈이 있어 실력을 숨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대결에서만 이기면 소가주의 자리는 자신의 것이 되니까.
“전과 달라서 당황했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을 노렸으면 끝낼 수도 있었다. 예상을 뒤엎고 당연천은 당무경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전에 알고 있던 경지를 넘어섰다. 소가주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절치부심했음을 증명했다.
모두가 경합에 주목하고 있는 와중.
“어떠냐?”
“별거 아닙니다.”
“그래도 저 정도면 제법 아니냐?”
“쓰레기보다 나은 수준입니다.”
무진의 질의에 당연우의 대답은 가차 없었다. 동생의 선전에 화라도 냈다면 이해가 될 텐데, 시큰둥했다. 이제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남이었다.
‘아줌마는 좋아 죽네.’
가주의 옆에 제갈수란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압도적인 무력에 흡족해했다. 그러면서도 심심치 않게 무진을 노려보다 눈이 마주치면 비웃었다.
‘보잘것없는 놈이라도 아들은 아들인가 보군.’
-너 같은 놈도 아들이라고, 자당께선 귀하게 여기지 않냐.
반박하기 힘들 만큼 비유가 찰졌다.
가문의 망나니로서 압도적인 활약을 해 올 때도 어머니와 아내는 굳건한 신뢰를 보내 주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효도는 필수였다.
그 지랄을 떨고 효도 안 하면 사람도 아니지.
아버지는 충분히 효도를 받고 있으니 논외로 치고 있었다. 지금도 아버지는 나한테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말지.’
제갈수란은 당연우를 소가주 자리에 올리기 위해 무진이 밀어주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굳이 부질없는 오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지만, 그런다고 풀리진 않을 것 같다.
크억!
당연천에게 일장을 허용한 당무경은 버티지 못하고 비무대 밖으로 떨어졌다. 목숨을 잃을 치명타는 아니더라도, 더는 시합을 전개하기 어려웠다.
“더 할 테냐?”
“……제가 졌습니다.”
전력의 큰 손실 없이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였으니, 소가주로서 재신임 되는 것은 기정사실에 가까웠다.
확실히 당연천의 무위가 달라지긴 했다. 무진이 목덜미를 쳐 기절시켰을 때보다는. 그렇다고 눈여겨볼 정도로 대단치는 않았다. 주변에 워낙 뛰어난 녀석들이 있다 보니, 당연천은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그래도 같은 피를 이었다고, 자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소가주가 될 수도 없었겠지.
“내 자리를 원하면 누구든 도전해도 좋다.”
여유가 담긴 건방진 발언이었지만, 승자이기에 허물이 되진 않았다. 소가주의 위신을 다시 세우려는 당연천의 의도적인 발언이었다.
스윽!
좌중을 훑어보던 당연천은 당연우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 따위는 감히 넘보지 못할 자리라는 자부심이 담겼다.
씨익!
그러나 예전의 당연우가 아니었다. 이 녀석은 동생의 선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순진했던 호구가 아닌, 당당히 비아냥거릴 줄 아는 사내대장부가 되었다.
그딴 자리, 너나 앉아라.
그리 말하는 것처럼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서역인의 피를 이어받아서 생각이 표정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와락!
그것을 증명하듯, 당연천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슬슬 일어나시죠.”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사위를 압도하며 무력을 과시했던 당연천이었다. 당무경이 일방적으로 패하면서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좌중 사이에서 창백한 안색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청년이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당연수잖아.”
“저 녀석이 어째서?”
좌중은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햇살을 맞지 않은 하얀 피부와 연약해 보이는 체격만 봐도, 당연수의 도전은 예상 밖이다. 실제로 그는 오 년 전부터 병환으로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소가주에 도전하다니, 누가 봐도 만용이었다.
하나, 경합에 도전할 자격은 있었다.
당연수는 당사진의 손자였다. 당명후의 아들들을 제외하면 도전할 명분은 차고 넘쳤다.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과분한 욕심을 부리는구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젠 멀쩡합니다. 그러니 시작하시지요.”
“선택엔 대가가 따른다. 곧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가문의 직계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당연천의 위협에도 당연수는 담담히 자기가 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는 자만하지도, 자신하지도 않았다. 기수식을 취해 예를 표하고, 역할에 충실했다.
흠.
최상석에 자리한 당명후는 왼쪽에 앉아 있는 숙부를 보았다. 아들이 죽은 후 숙부에게는 손자가 유일했다. 그런 손자가 병약해서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 병을 고치려고 했지만,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거늘.
“노부는 손자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네.”
소가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이라기보다는 손자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라도 주려 한 할아버지의 간절함으로 비쳤다.
‘알고 있었나?’
당명후는 멀찍이 앉은 무진을 보았다.
가주실에서 보인 기운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가히 당대의 절대자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기세를 품었다. 하지만 언행은 가볍다 못해 경박스러웠다. 귀물을 거래한다곤 하나, 맘에 들진 않았다.
한데,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만약 조사한 대로라면?
당명후의 내심은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성립되려면 당연수가 당연천을 이겨야 했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마십시오.’
의외성이 크지만,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당연수가 당연천을 상대로 승리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너 번의 공수라도 맞댄다면 다행이었다.
파파팟, 타아앗!
대결이 벌어졌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당연수는 당연천과 공방을 주고받았다. 간단히 당연천의 권공을 받아 내고, 돌려주었다. 마치 다음 수를 알고 있다는 듯 정교하게 맞물렸다.
파아아앙!
하물며 공력의 수위도 상당한 수준임을 보였다. 단순히 내력이 높기만 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공력을 운용하여 최적점을 찾았다.
퍼퍼퍼펑!
십수가 순식간에 지나갔음에도 우위를 점하기는커녕 밀렸다. 어이없는 현실에 당연천은 공력을 끌어 올려 장력을 퍼부었다. 내력의 우위로 열세를 만회하려고 했다.
휘리리릭, 파앗!
당연수의 손이 기이한 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휘젓자, 장력이 말려 들어갔다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귀산수해(鬼算手解).
당문에서도 사라진 파훼수법으로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의 수를 결합한 초절한 기예였다. 워낙 난해하고 익히기 어려워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졌다. 이 수법을 펼치려면 눈이 좋고 계산이 빨라야 한다.
모든 걸 갖추어도 실전에서 통하려면 내외공의 기본이 갖추어져야 했다.
“저럴 수가!”
“말도 안 돼!”
가공할 장력이 손짓에 사라지는 광경에 관중은 대경실색했다. 실제로 저게 가능한 수법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힘으로 받아쳤다면 이해가 빨랐을 것이다.
-저놈,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심안을 열었다.
‘방금 수는 심안이 아니면 펼치기 힘들긴 해. 대체 어떻게 심안을 개방한 거지?’
-절맥을 치료하면 심안이 열리기도 한다. 어쩌면 저놈, 천음절맥이었을지도 모른다.
‘절맥은 원래 스무 살 전에 죽지 않나?’
-간혹, 치료가 되면 이능을 얻기도 한다. 심안의 경우는 천음절맥이나 구음절맥을 치료하면 열리지. 한데 저놈은 사내일 테니, 천음절맥일 확률이 높을 거다.
절맥을 하루아침에 치료하긴 힘들 테고, 영약이 있더라도 신의에 가까운 의원이 필요하다. 의술과 약은 당문도 뛰어난 편이다. 그럼에도 치료를 하기 어려운 분야가 절맥이었다. 어지간한 실력으론 턱도 없었다.
‘냄새가 나긴 하네.’
-당장 접촉을 하진 않았을 거다. 아마 내버려 두었겠지. 아니면 다른 식으로 조치를 했거나.
마신교와의 연관성이 아예 없다고 부정하긴 힘들었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신체의 신비를 푸는 쪽으로는 마신교를 따라오기 힘들다.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었을 테지만, 일이 틀어진다 해도 찾기는 어려울 듯싶다. 당장 힘을 쏟기보다는 기반을 다진 후를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