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2
012 세월유수(2)
“공사가 다망하신 우리 동생을 계속 붙잡아 둘 순 없지, 어서 내려가 봐라.”
“너무하는 거 아냐!”
“뭐가?”
“동생한테 다 떠넘기고, 자긴 편하게 살겠다 이거잖아.”
무진은 가문의 행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모든 일은 무호에게 맡겨 두고, 의도치 않은 금분세수를 즐기는 중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할 일이 많았다. 아내와 자식들을 돌보는 데만도 하루가 부족했다. 하물며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강화하는데, 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게 누가 후계자 하래?”
“사기야, 사기!”
“남아일언 중천금에 가족까지 걸어놓고 이제 와 딴말하시겠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무진의 설렁한 태도에 무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말을 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는다. 송호문의 대대적인 개편을 전부 자신이 주도했다. 지금 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다.
“나만 거짓말쟁이가 되잖아!”
“알았으면 어서 가서 대공자로서 품위를 누리거라, 내 사랑스러운 동생아. 이 형님은 가문의 보온(保溫)을 위해 나무나 더 해야겠다.”
동생은 투덜거리면서 본인의 품위유지를 위해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고 산에서 내려갔다. 구시렁거림이 늘긴 했어도 여태까지 잘 따라와 준 동생이 대견했다.
“녀석.”
과거에는 부족함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은 어른스럽고 과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나이 또래의 천진함을 보였다. 자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거운 무게에 짓눌려야 했다.
그래서일까?
맘은 아닌데, 괴롭혀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생의 앙탈을 보고 있으면 마냥 흐뭇하다.
휙!
손짓하자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통으로 잘려 나가 장작으로 화했다. 무형의 의지가 극에 이르자,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결대로 반듯하게 잘려 나갔다.
전왕공의 공수는 무장류(武裝流)를 기반으로 두었다. 보지 않지만, 보이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육신을 감쌌다.
-확실히 괴물 같은 녀석이야.
‘마왕 주제에 사람한테 괴물이라니.’
-과거의 성취를 거의 따라잡았군.
‘공력만 놓고 보면 그렇지.’
무진은 5년 동안 놀지 않았다. 과거의 성취를 찾는 데 주력했다. 천경도 무진의 무공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토록 자신을 하는지 이해는 되었다.
5년이 짧다고 볼 수는 없지만, 완성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런데 전왕은 원래의 자신을 5년 만에 완성했다. 더욱이 무공에 대한 이해는 이전보다 높아졌다.
‘그동안 앞만 보며 살았지.’
쉬지 않고 싸우기만 했던 미래와 달리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나태해지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오히려 무공을 완벽히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대로만 가면 우리 문파는 건사할 수 있겠지.”
-세상은 어쩌려고?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아니면 하늘에 맡겨야지. 천망회회 소이불실이라잖아.”
-이기적인 놈이군.
“마왕이 세상을 왜 챙겨? 네가 영웅이냐!”
-하긴,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
무진의 목표는 가문의 안녕과 무사태평이었다.
세상은 그다음이었다. 수신제가를 이룬 후 치국평천하는 이룰 수 있으면 하기로 했다. 자기 가족도 지키지 못한 주제에 세상의 평화를 찾겠단 포부는 누가 봐도 뻘짓에 지나지 않았다.
“알잖아. 나 전왕이야.”
-잘난 체는 내가 아니라 네가 더 해!
“누가 뭐래냐, 인정.”
-인정하지 마, 새꺄!
“마왕답네.”
-넌 아냐!
무진과 천경은 함께 하면서 서로의 성향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보통은 자신의 성향에 영향을 주면 신경을 쓰는데, 둘 다 그런 쪽으론 무심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하다.
둘은 전왕과 마왕이다.
본인에 대한 자부심과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지녔다. 주변에 영향을 받을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더욱이 절대고수치고 팔랑귀는 드물었다. 고집이 세면 셌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쪽팔려서 안 바꾸는 놈도 있었다.
그땐 대가리를 쪼겠는데 지금은 멀쩡하겠구나. 다시 쪼개야 하나? 고민이다.
“그나저나 여전한 거냐?”
-그런 것 같다.
“마왕이면서 그딴 금제 하나 못 풀어?”
-마왕으로 대접이라도 해주면서 말하지 그러냐. 언제는 주둥아리 나불거리지 말라며.
“무능력한 건 죄악이야.”
-이 망할 놈! 어, 어… 닫지 마!
네가 닫지 말란다고 닫지 않을 것 같냐.
무진은 약을 올린 후, 영혼의 감응을 차단해 버렸다. 5년 동안 계속 써먹고 있는 수법 중 하나였다.
“알면서도 통하거든.”
약이 바짝 오른 마왕의 고군분투를 기대하고 있었다. 영혼의 단련과 동시에 이능의 훈련을 도맡아 했다. 굳이 양의심공을 쓰지 않지만, 두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개별적으로 훈련할 수 있다. 그것이 종합적으로 운용이 되어 전투력으로 평가가 된다.
“이능만 조심하면 별거 아니지.”
하지만 그 이능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마왕의 무서운 능력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놈들도 이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송호문은 오 년 전과 비교해 외부적으론 몰라도 내부적으론 상당히 건실해졌다. 특히 적자를 면치 못했던 재정이 탄탄해지면서 무인을 선별하고 투자할 여건이 되었다.
단기간에 이룩한 성과하고는 거리가 멀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차근차근 공을 들였다.
오 년이 지난 지금, 송호문은 백오십 명에 달하는 무인을 보유한 중규모 문파에 도달했다. 대문파에 비하면 수적으로 부족하긴 해도 청양 내에서는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규모를 더 넓히거나 세력을 확장하진 않았다. 그보다는 가지고 있는 이권을 안정시키고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변을 일으켜 틈을 만들고 변수를 이용하는 것도 전투의 한 방법이지만, 기본이 무너져 버리면 변수를 노릴 역량이 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전투 감각이 뛰어나도 역량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소문주님!”
강무호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송호문의 3대 무력대 중 최정예로 꼽히는 적호대(赤虎隊)였다.
삼 대는 청호대(靑虎隊), 흑호대(黑虎隊), 적호대(赤虎隊)로 각각 서른다섯 명으로 구성이 되었다.
각각의 무력대는 정해진 시간마다 강무호에게 검의를 전수받았다.
적호대주 유위강과 대원들에게 있어 소문주는 완벽한 주군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인품과 실력까지 두루 겸비했다. 특히 송호문의 검공인 송호십검을 오검으로 개량해 위력을 높였다.
‘소문주님이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렇지, 대문파의 후예에 뒤지지 않으신다.’
‘저 나이에 검을 개량하시다니 실로 놀랍구나.’
타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
문파의 후계가 바뀌게 되면 소요나 분란이 조금이라도 생기기 마련인데, 동요는커녕 문파는 건재함을 과시하며 더욱 발전했다. 내실에 주목해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조만간 송호문은 청양을 넘어 안휘성에서 주목받는 문파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 중심에 소문주가 있을 것이다.
‘부담스럽네.’
무호는 모른 척하고 있을 뿐, 저들의 표정만 봐도 짐작이 되었다. 선망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실상은 형의 모래주머니에 지나지 않았다. 허구한 날 처맞고 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감추지도 않잖아.’
숨기려고 노력이라도 하면 또 몰라. 형은 스스로를 감추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저 보여주지 않았을 뿐. 하긴, 밖으로 싸돌아다니지도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살고 있었다. 간혹, 일 년에 한두 번씩 나갔다 돌아오기는 해도 길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가문의 누구보다 형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과 달리 농담이나 따먹고 허허실실하지만 순간순간 느껴지는 분위기는 소름이 돋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과 같은 날카로움이랄까?
그런데 요즘 들어 그게 과연 진짠지 의심이 들기는 했다. 허풍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찜찜하다.
“허허, 여전히 열심이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일입니다.”
문파의 원로인 강 장로였다.
그는 적호대원의 훈련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주가 검술 지도를 직접 하겠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었다. 본인의 능력과 달리 가르침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무림의 고수도 가르침은 허술한 경우가 꽤 있었다.
한데, 무호는 남달랐다.
‘실로 놀랍구나.’
적호대는 뛰어났다. 대문파의 정예와 비견될 순 없다고 해도 여타의 문파들과는 확연히 수준이 달라 보인다. 특히 눈빛부터 자신감이 들어차 있었다.
비단 적호대만이 아니었다.
청호대와 흑호대의 수준도 과거에 비하면 일취월장이란 표현도 부족했다. 점점 청양이란 변두리에서 벗어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
문파의 검공을 새로이 정립했다고 했었다. 당시엔 무호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다고 해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직접 겪어 본 후, 할 말을 잃게 했다.
송호십검의 부족한 점을 완벽히 보완하고 실전적인 검으로 재탄생시켰다. 당시에 받은 충격은 여전히 회자하였다.
“이러다가 안휘성 제일의 검문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허허허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종조부님! 누가 들을까 겁납니다.”
안휘성 제일 검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궁세가였다. 오대세가의 중추이자 의기천추, 창천검세! 천하제일검으로 평가를 받는다. 남궁세가가 있는데 안휘제일을 논한다? 정파라고 해서 적당히 넘어갈 거란 기대는 곤란하다. 오히려 정파이기에 자존심과 명예에 목숨을 걸었다.
“하긴 그렇겠지.”
“그러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허허, 노부가 소문주에게 한 방 먹었구나.”
강 장로는 매우 기꺼웠다.
남궁세가가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몰라도 소문주의 포부는 중요했다. 송호문의 미래는 소문주의 검에 달려 있었다.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무호를 보고 있자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어인 일이신지?”
“일은 무슨. 그냥 한번 들러 본 거지. 하나, 가문의 미래를 위해선 후사도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
“아직 부족합니다.”
“허허, 네 아비가 걱정하고 있어.”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소문주의 나이 28살이었다. 적지 않았다. 이 나이면 장가를 가서 아이를 얻었어도 벌써 얻었다. 무공에 힘을 쓰느라 시기가 늦어졌다. 더 늦기 전에 후사를 두어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도 한번 노력해 보겠다.”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부담이라니 가당치도 않아. 내게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