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25
124 신화마정갑(2)
어쨌든.
천무자가 남긴 희대의 역작, 신화마정갑이 숨겨진 동굴에 들어섰다. 분지처럼 된 지형의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형태의 동굴이었다.
위치를 정확히 몰랐다면, 냇가의 물이 흘러 들어가는 구멍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천무자는 주변 지형을 가지고 장난을 잘 치는 성격인 모양이다. 어지간히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내어 줄 만도 할 텐데.
입구는 좁았다.
강기로 입구를 반듯하게 잘라서 넓혔다. 나중에 보물을 가지고 나오려면 넓혀 놓아야 했다.
마차는 입구 앞에 놓았다.
입구에서 지하로 삼 장여를 내려갔다. 직각으로 되어 빛이 들어올 공간을 차단했다.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건조한 지형이다. 물이 들어가는 구멍은 다른 곳으로 이어졌다. 내부의 함정이 습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우웅!
강환을 다발로 형성했다.
어둠 속에서도 대낮처럼 행동하기를 바랐겠지만, 무진은 천무의 수작에 넘어가 주지 않았다. 동굴 안을 대낮처럼 밝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심력을 쏟지 않는다. 지하수처럼 남아도는 공력을 활용했다.
“군데군데 구멍이 많네.”
“정해진 곳을 밟지 않으면 암기가 튀어나오는 구조입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땅이 꺼지는 구조는 아니지?”
“그렇습니다.”
“됐어, 그럼.”
무진은 진각을 밟았다.
쿠웅!
밟은 공간에서 파문이 일어나더니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암기가 빗발치듯 쏟아져 나왔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암기는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었다.
푸스스스!
호신강기를 발출하여 날아오는 암기를 모조리 다 분쇄해 버렸다.
“생각보다 훨씬 멍청한데.”
암기는 순차적으로 발출되어 내부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고슴도치가 되어 버릴 수 있었다. 침입자는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할 테고, 기관을 밟으면 작동하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지금처럼 헛방질에 지나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암기를 녹인 무진은 막아선 통로를 향해 권환을 발출했다.
슈아아아앙, 촤아아아!
내지른 권환이 통로를 녹이며 안전한 입구를 형성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철호, 나릉, 육칠은 아래턱이 빠져 버렸다. 함정을 만든 당사자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일 것이다. 암기의 형태, 세기, 강도, 통로의 구조를 고려하면, 무진의 한 수에 천무자는 뻘짓을 하고 만 것이다.
다음 장소까지 무난했다.
권환은 딱 정해진 만큼 통로를 뚫었다.
무진과 일행은 평상시처럼 통로를 걸었다. 실제로 기관 일부가 무진의 진각에 부서지면서 함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기관을 섬세하게 설치한 천무자의 명백한 실수였다. 이토록 무식한 침입자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다음 함정은 오십 장 넓이의 독수가 흐르는 곳이었다. 지극독혈수(地極毒血水)는 지독한 산성을 띠는 지저의 지하수로, 무엇이든 닿기만 해도 녹여 버렸다.
“저 앞까지만 가면 되는 거잖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
무진에겐 허공답보가 있었다. 이 함정은 애초 벽호공을 시험하는 곳으로, 체력과 내력을 살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언제 벽을 타.”
나릉, 철호, 육칠은 허공을 걸어가는 무진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시험을 위해 함정을 설치한 천무자의 고뇌가 허무하게 틀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들은 벽을 타야 했다. 지극독혈수의 영향으로 동굴의 내벽은 부식되었다. 앞을 잘 살피지 않으면 한 줌의 독수가 될 수 있었다.
강환에, 권풍에, 허공답보까지.
인간이라면 내력의 소모가 있어야 하거늘, 마르지 않는 무진의 내력이었다. 상식적인 선을 연이어 가뿐히 넘고 있었다.
지극독혈수를 건넌 무진의 앞에 펼쳐진 것은 독지였다. 이름도 알기 어려운 독충이 물샐틈없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화르르르르르!
무진의 손끝에서 시작된 가공할 화염이 기풍을 타고 독지를 휩쓸었다. 독지의 독충은 화염에 내성을 가졌지만, 그것도 어지간한 수준의 화염이어야지.
백염.
무진의 삼매진화는 화염의 최종 단계인 백극지염(白極之炎)에 이르렀다. 백염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내벽까지 녹아들며 물처럼 흘러내렸다.
주르르!
독지의 독충은 한 줌의 독수조차 남기지 못하고 백염풍에 휩쓸려 먼지처럼 사라졌다.
헐!
뒤를 따르는 철호, 나릉, 육칠은 연거푸 혀를 찼다. 함정을 무한 내력으로 뭉개 버리고 있었다.
‘저러면 내가 뭐가 되는 거지?’
나릉은 독지를 건너기 위해서 피독주와 피갑을 사용해 간신히 통과했다. 그럼에도 반각을 버티기 힘들었다. 그 이상 독지에 머물렀다간 한 줌의 혈수가 되었을 것이다.
독지의 독충은 벽의 구멍을 통해서 나왔다. 하지만 백염풍에 독지의 구멍이 모조리 다 막혀 버렸다. 설령 살아 있어도,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독충 박멸이었다.
‘진짜는 다음이지.’
여기까지의 함정은 마지막을 위한 시험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나릉은 무진의 뒤를 따르며 함정에 관해서 설명했다.
“강시라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강시 때문에 안으로 더 들어가지 못했다는 거지?”
“평범한 강시는 아닐 겁니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강시도 종류에 따라서 위력이 다르다. 그러나 대다수의 강시는 철포삼처럼 조문이 하나쯤 있었다. 그 조문이 어딘지 몰라서 당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약점만 간파하면 손쉽게 제압이 된다. 실제로 강시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면 실용성이 크진 않았다.
하나, 천강시나 혈강시 정도가 되면 얘기가 다르다. 하나를 만들기도 굉장히 힘들긴 하나, 완성만 되면 일인군단에 버금갔다. 지치지 않는 데다 약점도 없고, 금강불괴에 가까운 육체를 지녔으니 무인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다.
통로의 끝을 벗어나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사방이 막혀 있긴 해도 굉장히 넓었는데, 철갑옷을 입고 있는 강시가 정면의 철문 앞에 앉아 있었다. 입구라고 해 봤자 철문 하나뿐이다. 강시를 해치워야 철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번뜩!
침입자를 감지한 강시가 눈을 떴다. 혈안을 번뜩이는 강시는 침입자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혈강시다.
‘미친놈이었네. 이놈, 정사지간이긴 해도 정파에 가깝지 않았나?’
-정파의 위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그러는 너도 썼잖아.’
-내가 만들진 않았다.
마인병단의 토대가 혈강시였다. 혈강시는 말 그대로 피로 만들어진 마물로, 제조하려면 최소 천이 넘는 인간이 필요했다. 완성만 된다면 수명의 제한이 없으며, 화경에 이른 고수도 상대하기가 벅차다.
하물며 생전의 역량이 높을수록 혈강시의 무력은 강해졌다. 고수를 혈강시로 제조했다면 재앙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워낙 제조가 까다롭고, 성공한다는 보장을 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제조하다 폭주하면 도리어 주인의 목숨을 끊어 놓기도 한다는 것.
극악하기로 정평이 난 혈강시가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고금칠천으로 이름이 높은 천무자의 귀물을 지키는 용도로. 생전의 천무자가 어떤 성향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정도를 지향하는 자는 아닌 듯했다.
‘느낌 쎄한데.’
-미친놈이 날뛰었다는 말은 들었다.
무진은 혈강시의 영역을 확인했다. 정해진 구역 안으로 접근하면 공격하도록 암시를 걸어 놓은 것이다.
“이쯤에서 한 발 정도겠는걸. 맞지?”
“……어떻게?”
나릉은 당시 딱 한 발이었다. 강시의 영역에 발을 디딘 후 곧장 빠져나오지 않았다면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 정도로 강시는 빨랐다.
상식적으로 강시는 단단하고 강한 대신, 속도가 느리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 강시의 속도는 나릉조차도 겨우 벗어날 정도로 빨랐다. 만일, 강시의 영역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이 안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너희들, 해 볼래?”
“저희가요?”
“신화마정갑이 궁금하면 해 보고, 아니면 물러서도 된다. 보물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기연이지, 아마.”
아!
나릉은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철호와 육칠은 호기심이 일었다. 강시와의 전투가 두려울 수도 있으나, 신화마정갑의 가치를 안다면 한 번쯤 도전해 봄 직했다.
“해 보겠습니다!”
“같이 해라.”
철호와 육칠은 강시의 느린 발을 노리기로 했다. 간단하게 합을 맞추고, 전력을 끄집어냈다. 무진이 순순히 양보했다는 사실이 긴장감을 높였다.
저벅, 파앗!
거리를 확보한 후 양방향으로 강시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혈광을 번뜩인 강시가 발을 내디뎠다.
응?
갑자기 가공할 압력이 발생했다.
큭!
일순 육칠은 천근의 무게를 느꼈다. 발이 다음 지점을 가기도 전에 압착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강시의 수법이 천마의 군림보처럼 압력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흐억!
육칠이 비명을 지를 때, 철호는 우직하게 치고 들어가 철혈사자권의 무쌍일점포를 발출했다.
푸아아앙!
주먹을 내지른 철호는 손맛을 느끼지 못했다.
오싹!
발끝을 강타하는 소름을 느꼈다. 강시가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등 뒤를 노렸거늘, 강시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 짧은 거리에서 회피했어?
퍼어억!
내지른 강시의 주먹을 팔을 십자의 형태로 만들어 막았지만, 철호의 신형이 일직선으로 튕겨 나갔다.
파아아앙!
중압에서 벗어난 육칠이 파옥신장을 사용했으나, 강시를 흔들기는커녕 위기를 초래했다. 장력이 닿았음에도, 도리어 손바닥이 아파 왔다.
퍼퍼퍼퍽!
쿠다다당!
강시의 권에 적중한 육칠과 철호는 충격을 받고 바닥을 굴렀다. 일합은커녕, 막지도 못하고 전투 불능이 되었다.
슈우웅!
강시는 혈광을 번뜩이며 육칠과 철호를 향해 쇄도했다. 저공으로 날아오며 두 주먹에 강기를 머금었다. 강시 주제에 권강을 발출할 수 있었다.
숨통을 끊어 내려는 듯, 강시는 권강을 내질렀다.
꽈아아아앙!
슈우우우웅, 푸아아아아앙!
천지를 개벽하는 굉음이 터지고, 파문이 넓은 공터를 크게 흔들었다. 직선으로 쏘아져 나간 물체는 공터의 끝 벽면을 강타했다. 벽면이 산사태를 일으키듯 부서져 내렸다.
끄응!
구사일생한 철호와 육칠은 강시의 무서움에 몸서리를 쳤다. 나릉이 도전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런 강시를 일격으로 날려 버린 무진이 인간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저공비행을 하며 쏘아져 왔던 강시의 권강을 권풍으로 받아친 것이다.
무식한 권강을, 훨씬 무식한 권풍으로.
말이 되어서 짜증을 유발한다.
푸아아앙!
돌무덤에 갇혔던 강시가 일어서며 내력을 발산했다. 사방팔방으로 돌덩이가 쏘아져 흉기가 되었다. 돌 파편에 실린 위력도 상당했다.
“대체 저 강시는 뭡니까?”
“내 직감이 맞는다면, 저 강시, 천무자일 거다.”
“예? 그게 무슨?”
“생전의 천무자가 권공에 일가견이 있다고 했잖아. 권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데다 제법 위력적이거든. 그렇다면 최소한이 화경 이상일 테고, 그만한 재료가 흔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그렇지, 자기 몸을 강시로 만들 이유가 있습니까?”
“그거야 천무자 맘이지, 난들 알겠냐.”
무진의 추론이지만 신빙성이 있었다. 강시의 전투력은 생전의 능력과 비례했다. 금강불괴에 가까운 육체와 강기를 구사하는 수준이라면 천무자일 수도 있었다.
‘망할, 알면서 우릴 미끼로 던졌구나.’
‘빌어먹을 사부! 지옥에나 가세욧!’
무진의 손바닥 안에서 재롱을 부린 격이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신화마정갑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크르르!
강시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인간처럼 고통을 받지는 않지만,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감정의 기복까지 느껴지는 걸 보면, 사람 같기도 했다.
우우우웅!
내력을 발산하자, 강시를 중심으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생전의 역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기세에 철호, 나릉, 육칠은 마른침을 삼켰다. 무진이 천무자라고 했을 땐 혹시나 했지만, 저런 기운을 가지고 있다면 확실했다.
생전의 천무자는 고금칠천에 속하는 절대강자였다. 강시가 되었다고 방심한다면 무진이라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