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26
125 신화마정갑(3)
파아아앙, 후아아앙!
보무도 당당하게 강렬한 기세를 뿜어낸 강시였지만, 빛이 번쩍이더니 재차 벽면을 강타했다.
“먼지 날리고 있어.”
유성처럼 날아가 돌무덤을 형성했던 강시도 재차 아무렇지 않게 일어섰다. 더더욱 흉성을 불태우며 무진을 향해 돌진했다. 무진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 대결을 받아 주었다. 누가 더 강한지, 힘과 힘, 속도와 속도의 대결이 되었다.
슈우웅!
눈이 따르지 못할 속도였다.
실제 강시가 펼치고 있는 보법은 천무자의 천섬보(天閃步)였다. 빛의 번쩍임을 보고 그가 창안해 낸 보법으로, 따를 자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천무진경을 기반으로 한 천무자의 신공이 불을 뿜었다. 빛살과 같은 권공이 무진의 정면을 가득 메운다.
퍼퍼퍼퍽, 투두두두두!
무진의 권영과 천무자의 권섬이 맞부딪치자 천둥 치는 굉음이 토해졌다. 무수히 많은 권격임에도 하나하나의 위력이 천외천을 향해 내달렸다.
태산을 부수는 강격의 격돌.
추아아아앙!
거친 파문이 넓은 공터를 사납게 휘몰아친다. 거센 기파는 층층의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전투 공간을 형성했다. 그 안으론 경지에 이르지 않고선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늘의 무라더니, 꽤 인간적인데.’
-전왕공과 비슷하군.
‘무공이 다 거기서 거기지. 쓰는 놈이 강하면 장땡이고.’
-맞는 말이지만, 인정하지 않겠다. 마왕공이야말로 천하무적이니까.
특정 무공을 익혔다면 얘기가 달라질 순 있지만, 높은 경지에 이를수록 무공이 아닌 본인의 능력치에 따라서 결판이 난다. 실제로 역량의 차이를 무공으로 상쇄하긴 쉽지 않다.
고수와 하수의 격차를 예로 들면 적당하겠다. 하수가 제아무리 가공할 무공을 익혀도, 고수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 것처럼.
천무자가 십팔반병기술에 정통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병기술을 권공에 접목하여 천무권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천무자의 권공은 검처럼 날카롭기도 하고, 도처럼 무겁기도 했으며, 창처럼 관통력이 있기도 했다. 병기술의 장점을 권공에 불어 넣은 것이다.
퍼퍼퍼퍼퍽!
손과 발이 닿는 거리에서 무진과 천무자의 권공이 불을 뿜을 때마다 지형이 변화를 일으켰다. 움푹 파이기도 하고,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분쇄되어 가루가 되기도 했다. 이어서 내지른 권풍은 범위를 무시하고 파괴력을 과시했다.
우우우우우웅, 후아아아앙!
삼십 장의 거리를 유지한 나릉, 육칠, 철호는 무진과 천무자의 살벌한 대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평생 구경하기 힘든 절대자의 격돌이었다.
굳이 비교하면 괴수 두 마리의 난동이랄까?
“그만 됐어.”
육칠, 철호, 나릉의 감탄과는 별개로, 무진은 심드렁해졌다. 확실히 강시는 강하다. 생전의 능력 이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 인간의 창의성을 넘어서진 못했다. 공수의 형태가 일관적이었다.
쩌어엉!
다시 불을 뿜자, 무진은 수비를 풀고 공격적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미묘한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진의 공격이 천무자의 공격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격차가 드러났다.
퍼억, 뿌걱!
격돌한 천무자의 팔이 튕기며 부러졌다.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진 못하지만, 팔이 제 역할을 못 하자 틈은 훨씬 더 벌어졌다.
퍼퍼퍼퍼퍼퍽!
무진의 맹공이 천무자를 두들겼다. 좀 전이었다면 혈강시화된 천무자는 반격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복되기도 전 무진의 권공에 실린 전사경이 천무자의 내부를 찢어발겼다.
우드드득!
팔을 잡고 부스러뜨리고, 무릎을 찼다. 무릎이 역으로 꺾이면서 뼈가 튀어나왔다. 핏물이 튀어나와야 할 텐데, 강시는 강시였다. 비명도 지르지 않는 천무자의 저항이 기괴했다.
허!
순식간에 결판이 나 버렸다.
공전절후의 대결 양상이 이어질 줄 알았거늘, 급격하게 기울더니 회복 불가 상태가 되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그들은 전율했다. 공수가 보이지도 않았고, 극히 미묘한 차이였다.
실제로는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미묘한 간격을 무진은 아무렇지 않게 벌려 놓았다.
주먹을 뻗을 때마다 무진의 공격은 성공하고, 천무자의 권격은 허공을 갈랐다. 종잇장보다 얇은 궤적에서 공격이 절묘하다. 그야말로 권공의 이상적인 궤적을 완성했다.
‘저럴 수도 있는 건가?’
‘너무 능숙하다!’
‘마치 다음 수를 알고 있는 것 같아!’
무진의 강함을 인정하고 있지만, 무지막지한 공력으로 찍어 누르는 줄만 알았다. 하나, 무진의 진정한 무서움은 익숙함이었다. 한 번 부딪친 무공은 적수가 되지 않았다. 다시 붙었을 땐 필패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완전무결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부르르르!
그러나 천무자는 강시였다. 뼈가 부러지고, 으스러지고, 튀어나와도 복구가 되었다. 완전히 찢어발기지 않으면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인간의 공력이 무한하지 않은 이상, 천무자를 제압하기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꽈악!
무진은 그러한 강시의 회복력에 쾌재를 불렀다. 사지를 부러뜨리고, 패력을 집어넣어 회복을 느리게 했다. 육체의 통제를 원래대로 돌리기 전에 천무자의 목을 잡고 두 눈을 마주했다.
‘일해라, 마왕아.’
-난 네 부하가 아니다.
‘그래서 싫냐?’
-징그러운 놈.
애초에 이 대결은 성사되기 어려웠다. 혈강시가 지금보다 훨씬 강해도, 무진을 이길 순 없다.
왜냐고?
마인병단이 혈강시의 상위 호환이기 때문이다. 마왕은 마인병단을 지배했던 존재다. 천무자가 심어 놓은 대법 따윈 마왕에게 통하지 않는다.
쩌어어엉!
투심마안이 발동하자, 천무자는 제동이 걸린 것처럼 멈춰 섰다. 뇌리를 관통한 투심마안이 삽시간에 천무자가 걸어 놓은 대법을 분쇄해 버렸다.
부르르르르!
저항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회귀한 마왕의 투심마안은 전성기를 넘어서고 있었다. 천무자가 살아 있다고 해도, 마왕의 투심마안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스윽!
잡고 있던 목을 놓았지만 천무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동력을 잃은 인형처럼 멈춰 선 채 대기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회복은 멈추지 않았고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있었다.
‘마인병단이 찢는 맛은 있었지.’
-너도 정상은 아닌 거 알지?
마신교의 전투병기 마인병단은 전투력도 대단하지만, 회복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목만 붙어 있으면 언제든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모습에 질려 공포를 느꼈던 무인들의 전의를 끌어올리기 위해, 무진은 마인병단을 갈가리 찢어발겼었다.
결과적으로 마인병단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무진에게 더한 공포를 느꼈었다. 인간이 아닌 전투에 미친 마왕으로 불릴 만했었다.
‘구해 주면 고맙다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 아니냐?’
-눈앞에서 사람을 걸레로 만들었으면서 할 소리냐!
‘마인은 인간이 아니잖아.’
-언제고 후회할 날이 올 거다.
‘됐고, 건진 건 없냐?’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침입자를 처리하라는 암시만 남겼다.
‘이상한 놈일세.’
-너보단 정상이겠지.
수백 년이 흘렀어도, 자신을 강시로 개조할 놈이라면 사념이 남아 있어야 한다. 사념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니면 전승자를 위한 마지막 시험이자, 배려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혈강시는 좀 아니지 않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암시를 풀었어. 이제 공격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라.”
철호, 육칠, 나릉은 좀 전보다 훨씬 긴장했다. 저 인간은 안심하고 있을 때 뒤통수를 치는 데 선수였다. 무진에겐 위협적이지 않겠지만, 그들에겐 사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문만 열면 보물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거지?”
꿀꺽!
나릉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먼저 간 조상님과 사부님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으로선 신화마정갑은 중요하지 않았다. 돈에 환장한 주인에겐 보물이 우선이었다. 신화마정갑은 있으면 줍고, 없으면 말고였다.
‘무공 욕심은 하나도 없네!’
‘하긴 사부에겐 필요 없겠지.’
‘제발 있어라!’
강시로 변했다지만, 천무자를 가지고 놀았다. 그런 무진에게 다른 무공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한편으로 어떤 종류의 무공인지 연원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강기무공을 쓰고 있지만, 권공의 기본에 지나지 않았다. 기본만으로 여태까지 모든 상대를 쓰러뜨렸다.
‘진신무공을 쓰면 대체 얼마나 강해질까?’
그러나 철호, 나릉, 육칠의 착각이었다. 무진에겐 전왕투법을 기본으로 한 권공이 전부였다. 특별한 초식이 있긴 하지만, 전투에서 자주 쓰진 않았다. 기본에 충실하되, 모든 무기를 극한으로 단련했을 뿐이다.
“잠깐만요, 문은 제가 열겠습니다.”
“아, 그래.”
철문을 통째로 뜯으려는 무진을 나릉이 만류했다. 앞에 문이 있으면 열쇠로 여는 게 상식이지만, 무진에겐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가로막으면 날려 버리거나, 통째로 뜯었다. 이런 무식한 방법이 통하지 않아야 하지만, 잘 통해서 문제였다.
트륵, 트륵!
철문의 손잡이 위로 정방형으로 된 철 조각 서른여섯 개가 있었다. 누르는 구조로, 순서가 틀리면 기관이 작동했다.
무진은 통째로 뜯는 방법을 선호하나, 자칫 기관이 발동해서 동굴이 무너지면 눈앞에서 보물을 잃는다.
‘파라고 하겠지.’
보물에 눈이 뒤집힌 무진이 함몰됐다고 포기할까? 산을 전부 판 후 웅덩이를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보물을 찾아낼 것이다. 평생 산에서 땅 파고 싶지 않으면 조심스럽게 열어야 했다.
드르륵, 딸깍!
비도를 가지고 있어도 솜씨가 없으면 문을 열다 화병이 날 수도 있었다. 나릉은 이 분야의 전문가답게 어떤 문이든 손쉽게 열었다. 실생활에도 매우 유용한 능력이었다.
“나릉아.”
“예, 주군.”
“나중에 나랑 일 한번 해 보자.”
“예?”
이 좋은 재주를 썩히면 쓰나. 담금질하기로 마음먹었다. 후일 크게 쓰일 때가 있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창고가 빈다면 마음이 아플 테니까. 정의로운 밤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헐!
육칠은 무진의 속내를 간파하자 기가 막혔다. 저 인간은 도저히 협객으로 치부할 수가 없다. 검은 속내를 버젓이 드러냈다. 차라리 숨기기라도 하라고. 개방의 협사가 뻔히 지켜보는데, 그러지 좀 말라고요.
‘말할 수도 없잖아.’
공범이고 자시고, 저 인간을 어떻게 막아? 하는 일 방해한다며 거지들을 쥐 잡듯이 패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안타깝지만, 개방의 안위를 위해서 모르쇠로 일관했다.
난 못 봤다.
아무것도.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사백 근에 달하는 철문이 열리면서 수백 년 만에 실체를 드러내려고 했다. 닫혔던 문틈으로 먼지가 쌓여 거칠게 열렸다.
드러난 광경은 빛의 물결을 이루었다.
솨아아아!
어둠에 파묻혀 있을 거란 예상과 다른 빛의 포화에 무진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다…….
멈칫!
무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가하기에 모호한 구조의 방이 나왔다. 작지는 않아도, 아주 크지도 않았다. 방의 곳곳에 야명주가 열 개 박혀 있었다. 저 정도 크기의 야명주라면 성을 몇 채 살 순 있겠지만, 무진의 기대엔 미치지 못했다.
방 안의 정면엔 독특한 문양이 있고, 중심에는 단조로운 형태의 갑옷이 놓여 있었다. 한데, 정복을 입기 전 속에 입는 얇은 내의처럼 보였다.
저게 갑옷이면 특이한 거고, 갑옷이 아니면 내구성이 좋은 속옷이었다.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헝겊이 삭지 않았고, 제 모습도 유지하고 있었다.
오른쪽에 철로 된 상자가 두 개 있었다. 크기는 딱 들고 다니기 편한 가로세로 석 자에, 높이 두 자에 불과했다.
철호, 나릉, 육칠이 신화마정갑으로 추정되는 옷감에 정신이 쏠려 있다면, 무진은 보물 상자에 집중했다.
음.
침음을 흘렸다.
황금산은 아니더라도 황금릉이나 황금둔덕은 기대하고 있었다. 고금칠천이라는 명성보다, 자기 몸을 혈강시로 만든 사특한 성격이란 점을 의식했다. 정의감 넘치는 인사는 무공이나 병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망을 내려놓고 내용물을 살폈다.
드륵!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 먼지가 날렸다. 그리고 드러난 내용물에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