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28
127 신화마정갑(5)
뒤로 돌아서 올 줄 알고 방어를 했더니, 무식하게 정면으로 치고 들어왔다. 누구라도 택하지 않을 작전이거늘, 그 무식한 작전이 마신교와의 결전에서 반전의 한 획을 그었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맞서라!”
삼 대 일에도 밀리지 않는 천무자였지만, 혈강시를 상대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다. 방향을 알아도 워낙 빠르고 강력했다. 생전의 자신을 맞상대하자니 기분도 더러웠다. 자신이 자신을 죽여야 하는 상황.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암시를 어떻게 깬 거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암시가 약해지지 않고서야 역천의 비술을 깨기란 불가능했다.
머리가 복잡해진 천무자였지만, 혈강시와 조무래기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자신의 육체로 만든 혈강시가 워낙 빠르고 강해서 이 보잘것없는 육체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방법은 저 여우 같은 놈을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네놈은 무인도 사내도 아니구나!”
“도발이 식상하긴 한데, 어울려 주지.”
이러면 누가 봐도 나를 노린다고 봐야겠지.
빠져나갈 방법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마공이라는 꼼수를 써도, 당장 제 위력을 내긴 불가능하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또 모를까. 자신은 철호를 그리 무르게 단련시키지 않았다.
‘이 꼬맹이, 그새 강해졌어!’
철호의 성장을 체감한 육칠이었다. 강호 최강의 노안이기는 해도, 이제 막 열일곱 살에 불과했다. 그 나이에 신화마정갑을 착용한 천무자를 맞상대하고 있었다. 혈강시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육칠은 슬슬 지쳐 갔다. 그런데 철호는 지치기는커녕, 두드리고 두드려 완전한 철이 되어 갔다.
‘저 괴물이 괜히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었어!’
육칠은 자존심이 상했다.
괴물이야 논외의 대상이라 쳐도, 꼬맹이한테 밀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무공의 내력만 해도 십 년이 넘게 차이가 났다. 천재들이야 범인의 백 년을 우습게 여긴다 하나, 자신도 개방에선 나름 잘나가는 신성이다. 차기 방주는 몰라도, 법개 정도는 노리고 있었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고!’
괴물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그때부턴 전혀 다른 양상이 되어 버린다. 협공을 펼쳤음에도 승부를 내지 못한 미완성의 대기는 사양하고 싶다.
우우웅!
철호에게 자극받은 육칠도, 잠자고 있던 밑바닥에 숨은 미증유의 잠재력을 끌어냈다.
서로 자극을 받아 무력이 순식간에 상승했다.
큭!
혈강시를 막아 내기도 벅찬 천무자였다. 무진을 도발하여 끌어들이려고 할 때 애송이들이 갑자기 돌변했다.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날카롭고, 좀 더 불편해졌다. 처음에는 미세한 차이였지만, 현재는 크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방심하다가는 도리어 당한다.
“이런, 이런! 불러 놓고 한눈팔면 섭섭하지.”
움찔!
거리를 두고 있었던 무진이 천무자의 사각에서 등장했다. 협공이 맞물리고 있는 빈틈 속에서 무진이 나타났다.
퍼어억!
비어 있는 곳을 정확히 가격했다.
견갑골 아래를 강타당한 천무자의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신화마정갑으로 육체에 두꺼운 방어벽을 쳤음에도 내부를 진탕시켰다.
“……이놈!”
“날 보면 안 되지.”
혈강시, 육칠, 철호가 득달같이 빈틈을 노렸다. 신화마정갑의 자동 방어에도 익숙해졌는지 틈을 확장했다.
그즈음 무진은 사각지대로 교묘하게 보법을 밟아 대며 천무자의 빈틈을 확실하게 노렸다.
퍼억, 퍼억!
철호, 육칠, 혈강시의 뒤에서 천무자를 괴롭혔다.
무진을 사로잡으려고 했던 천무자는 이를 갈았다. 그걸 알고 일부러 약을 올리는 것 같았다.
“이따위 수작으로 날…… 쿨럭!”
“패력을 좀 넣었어. 괜찮지?”
일반적인 공격이었으면 신화마정갑의 재생술과 치료술로 감당이 되겠지만, 무진의 패력은 사악했다. 신체의 모든 기능을 철저히 파괴한다.
“……이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기존에 넣어 둔 게 있거든. 연동했지.”
소호채와의 선상 결전에서 나릉의 육체에 심어 놓은 패력이 남아 있었다. 천무자가 나릉의 육체를 제압했을 때 확인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무진이 패력을 좀 더 심었으니 위력은 두말할 나위 없을 거다.
-크크크크크크크, 발버둥 쳐 봐!
패력이라고 해서 무조건 의지가 새겨지진 않겠지만, 나릉의 몸에 심어 놓은 패력은 꽤 신경을 썼었다. 양동작전으로 전력을 되찾은 무진의 패력이 천무자의 내부에서 마구 날뛰었다. 내 집도 아니니 신명 나게 놀았다.
“아무거나 막 먹으니까 탈이 나지. 크크크크!”
안됐지만, 나릉은 상한 음식이다.
부패한 음식을 먹고 평상시처럼 활동해도 이상할 텐데, 분노로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내부 관조를 통해 공을 들여 해결해야 했거늘.
무를 통달하여 천무라더니, 생각보다 멍청해서 실망이었다.
비틀, 비틀!
육체가 없었을 때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지만, 나릉을 차지한 이상 육체의 고통은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기신의 합일을 무공에서 중시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하나를 따로 떨어뜨려 놓지 않는다.
“크으으으윽, 이 비겁한 노오오옴! 이거 풀지 못하겠느냐!”
퍼어억!
천무자의 얼굴이 크게 비틀렸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무진의 주먹이 얼굴을 강타한 것이다. 핏물이 튀었다가 치료가 되는 과정이 빠르긴 했다.
그러나 혈강시, 육칠, 철호의 절기가 천무자를 두드렸다.
퍼퍼퍼퍼퍼퍽!
그야말로 내우외환.
안과 밖으로 첩첩산중의 위험을 맞이한 천무자였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빈틈이라도 보이면 노리겠는데, 저 얍삽한 놈이 허락하지 않았다.
차라리 약하다면 모를까. 궤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강했다. 그런데 치사하기가 천하제일이었다. 천무자의 짧지 않은 생애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악질이었다.
“이놈…… 크아악!”
퍼억!
무진은 마구잡이로 공격하지 않았다. 천무자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절묘하게 방해했다. 개수작을 부리기 전 기회를 멸살하고, 간격을 두었다.
그뿐이랴, 패력이 점점 쌓이고 있었다. 내부의 적이 붙을 때마다 강해져서 천무자를 괴롭혔다.
크으으으윽!
자존심이 상했다. 천무자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나릉과의 육체 연동을 끊어 버리면 가능하겠지만, 그리되면 신화마정갑도 제 위력을 내기 어렵다.
“……이런 식이면 이놈을 죽이겠다!”
“어, 그래.”
“……?”
천무자로서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나릉을 인질 삼아 위기를 벗어나 보려고 했거늘, 무진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일언반구도 없이 거절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쩌어어엉!
멈칫을 왜 해.
무진은 천무자의 머뭇거림을 놓치지 않고 패도무쌍의 주먹을 뻗었다. 패권은 천무자의 심장을 관통하듯 나아갔다.
크게 비틀거리는 천무자였다. 내외부의 심각한 충격을 신화마정갑으로도 해소하지 못했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휘익, 퍼억!
바닥에 무릎 꿇자 철호가 달려들어 냅다 발로 얼굴을 후렸다. 얼굴이 크게 들리며 일어선 상태가 되자, 육칠의 파옥권이 상체를 강타했다.
퍼억, 퍼억!
가죽 공을 터트리듯, 개방의 절기이자 내가중수권의 극의 파옥권이 작렬했다. 신화마정갑에 보호받고 있다고 해도, 충격이 상당할 것이다.
철퍼덕!
기력을 다한 천무자가 바닥에 엎어졌다.
혈강시가 허공을 십 장이나 날아올랐다가 쏘아져 내리며 무릎으로 천무자의 가슴을 찍었다.
푸거거거걱!
가슴뼈가 초겨울 살얼음판처럼 와자자작! 으깨졌다. 충격이 원을 그리며 균열이 벽면까지 당도했다. 동굴 안에 가루가 떨어지며 먼지가 부스스 일어났다.
다다다닥!
보통은 이쯤 되면 죽었겠다 싶어서 공격을 멈추겠지만, 육칠과 철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도 또 죽이는, 확인 사살의 교본을 보였다. 시간 차이 없이 달려들어 바닥에 엎어진 천무자를 밟아 댔다.
얼굴, 가슴, 단전, 고환.
이어서 팔, 다리까지.
꼼꼼하게 전력으로 진각을 쓰듯 모든 기력을 쏟아 냈다. 고기를 잘 다져서 불에 스친 고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퍼퍼퍼퍼퍽!
무진은 묵묵히 일다경을 기다렸다.
죽은 자도 간혹 산다는 소문이 들리니, 확실하게 죽여 버릴 필요는 있었다. 나릉이 안타깝긴 하나, 성인이라면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보물을 탐했으니, 죽어도 원망은 하지 않으리라.
-차라리 죽이지 그러냐.
‘혹시, 못 이겨?’
-이 몸은 마왕이시다!
‘됐네, 그럼.’
시간이 됐다.
혈강시, 철호, 육칠을 뒤로 물렸다. 천무자는 잘 버무린 토사물처럼 늘어져 있었다. 나릉과 융화되었던 신화마정갑이 원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무진은 신화마정갑을 벗긴 후 착용했다.
내력을 돌렸다.
-걸렸구나, 크하하하하하!
‘그러네, 크크크크크크!’
천무자는 최후의 도박으로 죽은 척 연기를 했다. 어차피 신화마정갑 안으로 돌아가면 죽지는 않으니 마지막 기회를 노린 것이다. 보갑의 가치를 안다면 쉬이 버리진 않을 테고 착용할 거라 판단했다.
예상대로 무진이 착용하기는 했는데.
심상 속 천무자 앞에 무진과 또 다른 놈이 서 있었다.
‘도와줄까?’
-흥!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
천무자는 한 사람의 영혼 속에 둘이 있다는 것보다, 자신을 두고 누가 상대할지 미루고 있는 상황에 화가 치밀었다. 놈이 자신을 뭐로 보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한순간 주식(主食)이 되어 속을 긁었다.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구긴, 밟힌 놈이지.’
하늘마저 부끄럽게 만든 무진은 사실 적시를 대놓고 해 버렸다. 천무자가 자기 자신과 애들한테 밟힌 것은 현실이었다.
골고루 잘 밟혔던 천무자는 부르르! 영혼을 떨었다. 사실이라 반박하진 못했지만, 심상 속에선 다르다. 원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네놈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 주마!
-네놈 상대는 나다.
-넌 뭐냐?
-주인에게 예의가 없군.
심상 속의 주인을 자처하는 마왕의 주객전도에 무진은 코웃음 쳤다. 자기도 세 들어 사는 주제에, 하여간 뻔뻔했다.
-나는 고금칠천의 천무자다! 하찮은 마귀 따위가 감히!
[투심마안 발동]-그따위 개수작…… 커억!
-통하는군.
마왕은 애초에 정상적으로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투심마안을 발동하자 천무자는 자의식이 흔들리며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런 종류의 싸움을 해 보지 않아서 면역력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마왕은 심상 속에서도 무진과 수도 없이 싸웠다. 단순히 무력 충돌만이 아닌 영혼 전쟁을 불사했다. 서로 누가 더 강한지를 가늠하여 단련한 것이다.
‘하여간 치사하다니까.’
-너는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싸움에 수단 방법을 가리는 건 아니잖아.’
-그건 맞는 말이다.
무진이나 마왕이나 실리적이었다. 평소 무공을 대놓고 구사하긴 해도, 전투에선 최선의 효율을 찾았다. 상대방이 유리한 위치에서는 굳이 싸우지 않는다. 무조건 자신이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상대를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니 무진이나 마왕과 대적하는 자들은 방심해선 안 되었다. 약점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기어이 물어뜯어서 처참하게 굴복시켰다.
지금처럼.
천무자는 무릎을 꿇은 채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원래 심상 속에서 다치면 회복되지만, 천무자의 얼굴은 부어오른 채 시퍼런 멍 자국이 가득했다. 마왕답게 천무자를 금제한 후, 얼굴만 두드려 팬 것이다.
‘명색이 고금칠천인데, 애를 얼마나 무식하게 팬 거야?’
-옆에서 보고 있었으면서 그딴 개소리를 하는 이유가 뭐냐? 혹, 나는 다르다, 이런 말을 할 거라면 닥쳐라.
눈치는 참 귀신…… 영혼이나 귀신이나.
이참에 승천도 고려해 봄 직하다.
무진은 천무자에게 다가가 진지하게 물었다.
‘얼마 있냐?’
-……?
‘뒤져서 나오면 일전에 오백 대다.’
-……?
믿기지 않았다. 천무자쯤 되는 놈이 금괴 반 짝이라니, 숨겨 놓은 밑천이나 재산이 있을 것이다. 나중을 도모한 놈이 맨몸일 리 없잖아.
-……없습니다!
‘거짓말하면 재미없다.’
마왕은 옆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천무자의 영력이 제법이었다.
-이제 먹어도 되는 거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