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4
014 세월유수(4)
산에서 잡은 꿩을 손질한 후 교자 속에 넣어 쪘다. 찌는 데 오래 걸리진 않는다. 삼매진화를 이용해서 불을 붙이고, 직접 만든 찜통에 넣어 기다렸다.
다 만들어진 교자를 비법 간장 양념과 함께 내놓았다. 여기에 구운 꿩과 삶아서 간장에 절인 알을 올렸다.
상에 꿩과 교자, 밥과 찬을 가지런히 놓아 완성했다. 가장(?)주부로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떠냐?”
“역시 내 아빠야. 최고로 맛있어.”
딸의 과감한 칭찬이라면 무진은 백경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농담 아니다. 진짜로 잡은 적이 있다.
“역시 우리 미주밖에 없다니까.”
“당연하지. 나는 천하무적 아빠 딸 미주거든!”
여덟 살이 된 미주는 어린 시절의 귀여운 외모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몸만 컸다. 또래보다 발육 상태도 상당히 좋은 축에 속했다. 후일 미녀로 불리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 딸, 곧 시집가도 되겠네.”
“난 평생 아빠랑 살 거야!”
딸이 원한다면 아비로서 뭘 못하겠는가. 진심이라면 들어는 줄 수 있다.
“그래도 어떻게 그래.”
“난 아빠 아니면 싫어!”
아빠를 최고로 여기는 딸의 애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까지 오늘의 행복함을 간직하고 살도록 아빠로서 노력해야 했다.
-나이가 차고도 그런 생각이면 인정해 주마.
‘애들이 다 그렇지, 아빠 좋아하는 게 어때서.’
-마흔쯤 되면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 거다. 그 나이에 아빠 최고라고 하면 느낌이 쎄할걸!
‘내가 언제 그때까지 싸매고 다니겠데! 내 공격을 10초식만 버티면 사위로 맞아줄 용의가 있다고!’
-평생 혼자 살겠군. 독수공방이 남 일이 아니었어!
전왕의 공격을 일 초식도 아니고 십 초식이나 받으라니. 하물며 지금 당장도 아니고 세월이 흘렀을 때의 전왕이었다. 지금도 십 초식을 제대로 받을 사람이 거의 없거늘. 시간이 지날수록 사위는 점점 늙어 간다.
뾰루뚱!
아들의 시선을 그제야 느낀 무진이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보냐, 아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내 녀석이 할 말이 있으면 해야지, 혼자 뚱해 있으면 쓰겠어. 어서 말해봐.”
“소룡대회에 나가기로 했어요.”
“그거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 다 준비해 놨단다, 이 아빠가.”
“정말?”
“당연하지.”
강 장로한테 들어서 오늘 알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아들의 반색하는 얼굴을 보니, 딴말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준비라고 해봐야, 별게 있을까.
사실 준비는 미리 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우연은 세상에 없듯. 태진의 성취가 또래보다 올라간 게 우연은 아니다.
-내 덕이다.
‘공치사는.’
태진이를 위한 아빠의 필수 덕목, 벌모세수를 해주었다. 3갑자의 공력과 미세한 진기 운용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무공의 성취를 높여주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필요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마왕이 한 수 위였다.
마왕의 투심마안(透心魔眼)을 이용해서 각인을 시켜 놓았다. 태진은 밤마다 꿈을 꾸는 줄 알지만, 실상은 훈련이었다. 그러나 무조건 수면만으로 성취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각고의 노력과 훈련이 필요했다.
“엄마 올 때까지 우리 아들 실력 좀 볼까?”
“응, 좋아.”
태진이 날다람쥐처럼 앞마당으로 쏘아져 나갔다. 확실히 또래의 움직임하고는 거리가 멀다. 민첩한 데다가 바로 서는 중심의 이동이 나쁘지 않았다.
“좀 흔들리는구나.”
“어디가?”
“착지 시 흔들림은 무게의 중심 이동이 원활하지 않아서 생기는 거다. 삼 푼가량 허리와 무릎에 더 힘을 주도록 해.”
“알았어.”
목검을 들었다.
이제는 송호오검이 되어 버린 검을 펼쳐 보였다. 송호오검은 이제 정직하기만 한 검이 아니었다. 쾌와 강을 완성하면 강검(强劍)의 극의에 이르도록 개조했다. 완성되었을 땐 빛살 같은 검격, 눈을 현혹하는 변화, 영혼을 파괴하는 극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빠!”
“오냐.”
그렇다고 몸을 일으키진 않았다.
손가락으로 휙휙! 허공을 휘저었다. 그때마다 아들의 목검은 무형의 기운과 부딪쳐 파공성을 냈다. 그 소리가 범상치 않지만, 방음은 완벽하다. 안채에 기막을 쳤으니, 훈련에 방해가 되진 않는다.
“허리가 빈다.”
“치사해.”
“약점은 찌르라고 있는 거다, 아들 녀석아.”
“난 아들이잖아!”
“지고 나서 구시렁거리는 건 패자의 변명이란다.”
“아빠…… 너무해!”
무진은 아들과의 대화에 격을 두지 않았다. 편한 친구 같은 아빠로 족했다. 그렇다고 태진이 예의를 모르진 않는다. 내 아내지만, 나를 지나치게 극진히 대한다. 아들과 딸의 예의가 도를 넘어서면, 너무 무섭다.
‘그렇게 무서운 유진이는 처음이었어!’
자식 교육에 관해선 아내가 훨씬 빡세다. 그래서 미안하기는 했다. 나쁜 아빠가 되기 싫어 당근만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송호오검의 일천, 질풍, 붕산, 강림, 천하의 순으로.
빠르면서도 패도적인 검의가 실렸다.
펑펑!
목검임에도 상당한 힘이 실렸다. 드러나진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내기를 쓰고 있는 태진이다. 저 나이에 내기로 무기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잘난체할 만하네.’
-그걸 이제 알았느냐, 마왕의 위대함은 시대를 막론한다.
‘그래도 내가 이겼잖아.’
-작전상 후퇴였을 뿐.
‘변명은 뭐다?’
-개새!
무진은 아들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마왕의 가르침이 부족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자기 외에는 가르친 적이 없었을 텐데, 천성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가, 마왕의 패도가 검에 담겨 있기는 했다.
아무래도 습성을 완전히 버리기는 무리인 데다가, 무진 역시도 패도를 지향하기에 아들의 검은 강맹하다. 그야말로 강함의 극의를 추구하고 있었다. 산속을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호랑이를 본딴, 송호오검의 극의와는 좀 다르긴 하다.
“아직은 유연할 필요 없다.”
“교관님은 부드러움도 필요하다고 했어요.”
“무당의 태극이 검의 주류가 되면서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한 극유극의가 검의 본질로 착각을 하게 됐지. 한데, 세상이 어디 그렇더냐.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듯, 검의는 본질에 가까워야 한다. 본질을 깨우치지도 못한 주제에 다른 걸 집어넣어봤자 강해질 수 없다.”
“교관님한테 그렇게 말해야 해?”
“전부터 말했지만, 너만 알고 있어야지. 이건 아빠의 심득이고 넌 내 아들이니까 가르쳐 주는 거야. 아무나 배울 수 없는 거란다.
-내가 한 말 고대로 따라 하면서.
태진은 아빠의 말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문파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아빠는 특이하게 강하다. 지금도 봐라. 손짓만으로 실제 상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문파의 어르신도 이런 걸 하진 못한다.
“난 언제 아빠처럼 돼?”
“음, 한 이십 년쯤 후에는 되지 않을까.”
“너무 멀잖아.”
“그만큼 아빠가 강한 거 아니겠니. 움하하하하하!”
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통은 겸손하게 대답을 하던데, 아빠는 아니다. 자신의 강함을 굳이 드러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빼지도 않는다. 어떨 때는 너무 솔직해서 어린 아들의 마음에 흠집을 내놓을 때도 있었다.
“엄마, 오신다. 어서 올라와.”
“응.”
무진은 양옆으로 아들과 딸을 앉히고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가 방향을 틀어 안채로 올 때부터 감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내 아내의 동선에 방해물이 있어선 안 되었다. 꼼꼼한 확인은 필수였다.
“우리 자기 수고했어. 오늘도 힘들었지?”
“힘들긴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당신과 애들 보면 오히려 힘이 나는데요.”
“자식들아, 뭐하냐? 우릴 위해 고생하시는 엄마한테 감사의 인사를 올리지 않고.”
“엄마,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가족처럼 보일 수 있으나, 우리에겐 평상시와 다름이 없다.
도란도란 함께 앉아 식사하는 이 시간이 기꺼웠다. 5년이 지났음에도 피비린내 났던 과거의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다시는 그때처럼 살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겼다.
“맛있어요.”
“이 교자도 먹어봐.”
“제가 먹을게요.”
“아, 해봐.”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도 무진은 애정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무뚝뚝한 남편은 이제 됐다. 다정다감한 손발이 오그라드는 짓도 서슴없이 하는 철면피가 되기로 다짐을 했었다.
-꼴 보기 싫군.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잘 때도 열어 놔라. 눈요기 좀 하게.
‘실력 되면 열든가.’
-치사한 놈.
‘그거 관음증에 변태야.’
-괜히 알려줬어.
‘좋은 건 나눠 써야지.’
내 아내의 만수무강과 백년해로를 위해서 무진은 마왕을 꼬드겨 음양신공(陰陽神功)을 얻어냈다. 음양신공은 원래 음양신마(陰陽神魔)의 무공으로, 사공이나 마공으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도가의 양생술(養生術)에 기반을 두었다.
더욱이 음양신마는 두 가지의 성별을 가지고 있는 특수한 체질이었다. 이를 사특한 무공을 익혀서 그렇다고 몰이하는 바람에 피바람이 불었었다.
무진은 아내에게 음공을 익히게 하고, 자신은 양공을 익혀 음양합일을 이루었다. 이게 밤일에는 최고인 데다가, 내공 불어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매일 밤 격체전공을 이용해서 아내의 내력을 돌봐주었기에 현재 내공만 따지면 아내는 1갑자에 달한다.
‘내공이 튼튼해야 오래 살지.’
내공이 탄탄할수록 노화가 느려진다. 음양신공의 극의가 신선의 경지인 반로환동인 걸 고려하면 충분히 노려볼 만했다. 아내의 수명연장을 위한 무진의 사투였다. 같이 늙어 가야지, 아내만 늙어 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
망설이던 아내가 무진을 조심스럽게 보았다. 말을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여보, 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명절 전에 한 번 들르래요.”
“가자.”
“진짜로 갈 거예요?”
“장인께서 부르시는데, 사위로서 마땅히 가야지.”
남편이 선뜻 응하자, 유진은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억눌렀다. 결혼하고 오랫동안 친정에 가 보지 못했다. 반대가 심했었고, 두 번 다시 찾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 이후로 쭉! 마음의 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하기가 어려웠다. 아버지에게 문전박대와 멸시를 당했던 지난 일이 상기되었다.
“고마워요!”
“고마운 건 나지. 장인어른이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당신 같은 여인을 만날 수 있었겠어.”
사실 아내한텐 미안하지만, 처가에 가지 않아서 편하긴 했었다. 기억나지 않는 문전박대와 멸시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때의 기억조차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먼저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젖어 장인, 장모는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겐 미안했다. 출가외인이긴 해도 아내에겐 피를 나눈 혈육이었다.
‘선물이라도 푸짐하게 가져가야겠다.’
5년 동안 나무만 하진 않았다.
산속에 강제로 틀어박혀 무공을 익히는 바람에 강호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편이나, 굵직한 사건들은 알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가족의 무사 안녕을 위한 기틀을 마련해놓았다.
그중 대부분은 가족에 투자한 상태지만, 남은 게 몇 개 있었다.
‘아버지가 군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지.’
미리 입막음을 위한 뇌물을 잔뜩 먹여 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장로들이 한소리 할 때마다 차단을 잘해주셨다. 확실히 기울어 가는 사내에게 가장 좋은 걸 주면, 태도가 달라진다. 이건 부모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안전한 뇌물 싫어하는 사람 별로 못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