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42
141 회포를 풀다(1)
검제와 남궁연화가 돌아가고, 무진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평소대로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하고, 맞춤형 점검을 했다.
천주신창 곽운백에겐 막힌 벽을 허물 단초를 제공했다. 워낙 무공광이라, 알아서 자기를 단련하는 곽운백에겐 따로 훈련을 시킬 필요가 없었다.
대련은 산에서 이루어졌다.
가문에서 했다간 협소한 공간이 남아나지 않을 테고, 작금의 평온을 깨고 싶지도 않았다.
“동생아.”
“또 왜? 벽 넘었잖아.”
“고작 벽 넘은 거로 만족하면 안 되잖니.”
“고작이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영웅으로서 다가올 암류를 헤쳐 나가려면 지금보다 강해져야 해.”
“누가 영웅이 되고 싶데!”
“영웅은 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다.”
어감이 완전히 달랐다. 영웅은 운명에 의해서 탄생한다고 하는데, 만들어지는 거면 조작이잖아! 대놓고 조작을 하는데도, 모르면 그만이라는 취지였다.
“난 영웅 같은 거 되고 싶지 않다고!”
“그러면 가문이 혈사에 휘말려도 상관없다는 거지? 너는 부모님과 가족, 문도들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형이 있잖아.”
“난 영웅의 그릇이 아니다.”
겸손 떨지 마!
저게 겸손이 아니라 귀찮아서 나한테 떠넘기려는 의도란 걸 모를 줄 아나!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자신을 알고 물러나는 용자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심은 전혀 달랐다. 모든 귀찮은 일거리를 동생에게 왕창 밀어주고, 자기는 형수님과 아이들이랑 알콩달콩 놀러 다니겠다는 심보잖아.
세상 사람들! 형이 이런 사람입니다!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고래고래 소리라도 치고 싶은 강무호였다.
“나 같은 사람이 영웅이면 좋겠어?”
“아~~~~!”
“인정하면 감정은 상하는데.”
“어쩌라고?”
“잘.”
지랄이었다.
그래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형의 무력은 인정한다. 그런데 영웅으로 치부하기에는, 피로 이어진 형제라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솔직히 음모의 주재자가 훨씬 어울린다. 이보다 더 어울리는 적성도 드문데, 자기 적성을 낭비하고 있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천성이 있고, 그에 맞는 방향을 찾는다고 했다.
오싹!
그런데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형이 악당이라고 상상해 봐라. 그건 천재지변이나 다름이 없었다. 보통 악당도 아니고, 속물근성으로 뭉쳐져 있었다. 대응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나마 형에게 가족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런!
정신을 다른 데 팔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현재의 목숨을 건사해야 했다.
형이 주먹을 쥐었다.
“우리 동생 검강 한 번 볼까?”
“이익, 송호천하!”
강무호는 검강을 촘촘한 실타래처럼 끄집어내어 강기의 망을 이루었다. 천하를 가두는 강기의 그물망이었다. 현재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전력이었다.
꽈아아앙, 쩌저저저적!
와장창!
강기의 촘촘한 그물망이 주먹 한 방에 으깨졌다. 검강이 유리잔도 아닌데 왜 저딴 소리가 나는 건데? 입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다.
“같은 거야.”
무진은 동생과 비슷한 내력을 썼다.
그럼에도 강무호에게는 거대한 절벽이었다. 검제 어르신과도 겨뤄 봤지만 이렇게까지 막막하진 않았다. 다시 돌아온 형은 건재함을 뛰어넘어 그사이에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헉!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불주먹을 보았는가?
저게 되네.
꽈아아아앙!
가속하여 떨어진 유성처럼 내리찍은 불주먹에 강무호는 함몰되었다. 대지에 찍힌 권흔의 중심에 대(大)자로 엎어졌다. 그 꼴을 아무도 보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영웅의 품격을 지켜 주려는 무진의 배려였다.
“아버지한테 가마.”
“……이 악마!”
아버지, 불효자식은 형을 막지 못했…… 크억!
집에 왔으면 신고식은 필수지.
동생을 조지…… 훈육하고 곧바로 아버지를 불렀다. 나오지 않으면 곤란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니,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문파의 장로들도 이제는 무진을 거스르지 않았다. 실력은 둘째 치고, 거물들이 수시로 찾고 있었다.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유명 인사가 포진했다. 그러니 예전처럼 편하게 잔소리를 하기도 힘들었다. 입이 간질거려 보이는 증조부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다른 의미로 눈치를 보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버지, 자꾸 피하시면 곤란해요.”
“피하긴 누가 피했다고 그래!”
“아들 눈을 똑바로 보고 말씀하셔야지요.”
“보고 있다니까.”
아들의 눈이 희번덕거리자 강우경은 좋은 시절 다 갔음을 실감했다. 내 망할 놈의 아들이 기억력은 좋은 편인가 보다. 잊지 않고 찾아와서 훈련의 성과를 닦달했다.
“밖에서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게야!”
“그러게요, 자꾸 일이 생기네요. 전 집이 좋은데.”
“크흠. 일이 있으면 나가 봐야지.”
“혹, 저를 내보내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아무렴요,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지.”
“……당연하지. 너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제발 밖으로 나갔으면 하는 강우경이었지만, 속내를 드러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지만 어떤 짓을 할지 이젠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삶의 평온을 위해 최대한 아들을 안전하게 잘 구슬려야 했다.
“아버지, 거짓말은 좋지 않아요.”
“거짓이라니! 아니다, 절대!”
“아버지가 절 그렇게 생각하실 리 없잖아요. 헤헤.”
“……웃지 마라! 제기랄!”
아들의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다. 피하지 못하면 패륜이 된다. 그러고선 내 탓을 하겠지.
왜 못 피하셨냐고요, 라고 하면서.
강우경은 송풍행을 펼쳐 방향을 튼 후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순백색의 기운, 검기가 발산되어 아들의 쇄도를 차단했다.
파아아아앙!
파리를 쫓듯 무진이 대충 휘두른 손바닥에 검기가 꺾이더니 방향이 바뀌었다.
허억!
대경실색한 강우경이 급하게 검영을 완성했다. 확실히 절정을 넘어 초절정에 올라서니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버지의 성장에 무진은 흡족했다.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면서 권풍을…… 이 망할 놈이!”
칭찬하면서 권풍을 다발로 날리고 있었다.
강우경은 단전에 남아 있는 내력의 출력을 극한으로 쥐어짜며 발버둥을 쳤다. 한계, 그 이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형국이었다.
강우경은 여유롭게 권풍을 발출하는 아들이 무척이나 얄미웠다. 대충 날리는데, 막을 때마다 뼛속 깊이 시렸다. 나이 들어 골병들기 좋은 권풍이었다.
“거리 싸움이 늘었네요. 그럼 좀 더 바싹 다가가겠습니다. 아버지와 이렇게 오붓하게 대결을 하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감격하지 말라고, 내 아들 새끼야!
아들이 접근전으로 방향을 전환하자, 강우경은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뿜어내는 위압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렇게나!’
아들의 잘난 체가 맘에 들진 않지만, 대견한 것도 사실이었다. 항상 말썽만 부리고 동생과 비교당했던 녀석이 이젠 끝도 없이 강해져 있었다.
“한눈파시면 곤란합니다.”
파아아앙!
검의 궤적을 찌르고 들어온 권격에 강우경은 섬뜩했다.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하나라도 잘못 맞으면 온전하지 않을 파괴력이었다.
“아들아, 아비를 죽일 셈이냐!”
“잘 조절하고 있어요. 봐요, 피했잖아요.”
“그건 내가…… 흐억!”
“제가 조절한 겁니다.”
종잇장의 틈새.
강우경은 아들과 종잇장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감이 떨어지면, 너무 익어서 바닥에 떨어진 감이 될 수도.
특히 검을 펼칠 때 쓸데없이 사용하면 위험했다. 반드시 다음 경로를 위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
찌잉, 쩌어어엉!
절박함이 극에 이르자 강우경은 신비한 경험을 했다. 검과 하나가 되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들의 권과 검이 아닌 육체로 맞닿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우우우우!
전신의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며 내력과 조화를 이루었다. 단전에서 분출한 내력이 육체를 돌아다니고 있는 흐름마저 느껴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감각이다.
그 감각을 놓쳐선 안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신검합일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나를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그다음이 검이었다. 나와 검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행해져야만 하는 과정이다. 그렇지 않고 단순 공명을 통한 검신합일은 제대로 된 검의로 볼 수 없었다.
파파파팟, 솨아아악!
강우경은 검에 눈이 달린 것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공세가 읽혔다. 전에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쳐야 겨우 피할 수 있었던 권로를 읽어 내며 막아섰다.
타타타탕!
거친 쇠를 치듯, 권공과 검공이 역량을 과시했다. 태풍의 눈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공간은 고요했지만, 제삼자에겐 눈으로 따르지 못할 공수의 연속이었다.
휘이이이잉!
연무장 안은 사나운 기의 파문에 거침없이 흔들렸다. 외부와의 기운을 차단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문파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보인다! 이제 네 권로가 보여!”
“역시 아버지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기념으로 저도 좀 더 힘을 내겠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나 열성적으로 하시는데, 아들이 되어서 힘을 쓰지 않는다면 불효겠지요.”
말이 또 왜 그렇게 나오는 거냐고!
헉!
설마 했던 강우경은 대경실색했다. 아들의 권로가 또다시 깜깜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들이 이제까지 장난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꿀꺽!
침음을 삼키며 강우경은 단내가 나도록 검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권로를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생사의 간극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서 깜짝 놀랐다.
-쉬었다 가거라.
부모님의 아련한 권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칫 평생 쉴 수도.
허억, 허억!
얼마나 힘을 쥐어짰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오늘처럼 전력을 다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매번 아들과 대련할 때마다 발바닥에 땀이 났었지만, 오늘을 기준으로 달라졌다.
“살기 위해 노력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울컥하네요. 이게 바로 부정인가 봐요.”
“……!”
대답할 힘도 없이 주저앉은 강우경이었다. 아들의 말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우선은 내력과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맘 같아서는 바닥에 누워 자고 싶었다.
“혹, 제 말이 들리지 않으세요? 이러면 공청석유를 어떡하지?”
“들린다. 아주 잘 들린다, 공청석유!”
역시 내 아버지였다.
부전자전, 무진은 자신이 누굴 닮았는지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한때 방황하던 시절에는 누군가 버린 자식을 주워 온 줄 알았지만, 과연 내 아버지였다. 한때 의심해서 아버지께 죄송했다. 무인으로서 아버지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입 벌리세요.”
무진은 마개를 열어 공청석유 여섯 방울을 허공섭물로 꺼내 아버지의 입에 예의를 다해 전해 드렸다.
쏘옥!
정신을 잃을 뻔하다가 영물이 날아갈 뻔한 강우경은 가부좌를 틀고 입속으로 들어온 공청석유를 내력으로 받아들였다.
파팟!
무진은 아버지의 진기도인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기맥을 타통시켰다. 아버지가 새로 얻은 신검합일의 깨달음을 소화할 시간이었다.
깨달음은 한순간에 오기도 하고, 평생을 가기도 했다. 얻었을 때 바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 번 지나간 기연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 보다 진화한 진화공의 행로를 따르도록 했다. 가문의 무공을 가다듬는 과정이었다.
쓰으읍, 후우우!
가부좌를 튼 강우경의 거칠었던 호흡이 진화공에 융화하여 반복적으로 바뀌었다. 열두 번의 소주천을 통해 대주천을 이룬 현상이었다.
삼화취정에 이른 부공삼매에는 미치지 못해도, 아버지로선 최선의 결과였다. 내력만 따지면 어지간한 고수는 이름도 내밀지 못할 테고. 문파의 문주로서 걸맞은 역량을 갖추어 나갔다.
번뜩!
눈을 뜬 강우경은 정광을 번뜩였다. 수련의 시간이 길지만, 부단히 고련하여 완성한 정공은 마공이나 사공보다 강력했다. 또한 상극의 효과를 지녔다. 정공을 제대로 익힌 고수가 사술에 잘 당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마신교의 사술은 기타의 일반적인 사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마신교의 사술에 대응할 때 사용했던 전왕공의 특성을 진화공에 섞었다.
-누차 말하지만 내 덕이다.
‘알아, 인마. 그래도 공치사는 하지 말자. 마왕답게 대범하게 굴어.’
-공짜로 계속 빼먹을 심산이구나.
‘과연, 안 통하네.’
-네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알면 어쩔 건데.’
무공의 재정립에 마왕의 공이 크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특한 수를 쓰지 않았을까, 조심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지금이야 맘이 통하는 친구처럼 굴지만, 언제 뒤통수를 갈길지 모르잖아.
-이쯤 되면 믿을 때도 되지 않았나.
‘너는 나 믿냐?’
-믿는다.
‘하여간 누가 마왕 아니랄까 봐 거짓말도 잘해.’
무진은 마왕을 탓하지 않았다. 평소 티격태격하긴 해도 서로 비슷한 성향임을 부정하진 못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기도 하고.
어쨌든 주도권은 무진에게 있었다. 마왕은 줄을 잘 선택해야 자기 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쓰읍!
강우경은 전과 다르지 않은 연무장을 돌아보면서도 감회가 새로웠다. 심신의 감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끊임없이 정보를 보내고 있었다.
“다른 세계에 온 걸 감축드립니다, 아버지.”
“이게 네가 보는 세상이더냐?”
“그럴 리가요, 많이 다릅니다.”
“이놈아, 꼭 초를 쳐야 직성이 풀리느냐!”
“무공엔 끝이 없으니까요.”
아들의 원론적인 말에 강우경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장가를 간 후로 방황해서 속을 썩이더니,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도 그간 자신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의심을 했었다니.
“그럼 이차전을 시작해 볼까요. 헤헤.”
“이 녀석!”
강우경은 금세 마음이 바뀌었다. 아들의 얼굴에 떠오른 즐거움이 사악함과 교차하였다.
선과 악의 아수라가 따로 없다.
“좀 더 오래 버티겠네요.”
“오늘은…… 흐억!”
아버지의 맷집을 위해서 무진은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좀 더 강해진 아버지라서, 치는 맛이 있었다.
“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차라리 날 죽여랏!”
효심 가득한 부자간의 대결은 오늘도 화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