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49
148 이심전심(1)
안휘 상계가 지각변동을 일으킬 사건이 터졌다. 그동안 청풍상단과 백제상단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상전을 다투었고, 정운상단은 뒤로 처져 중규모 상단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익을 냈었다.
그런데 일발 역전이 터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금광이 개발되었고, 황금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벌써 일정량이 채광되었으니 관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잔뜩 움츠러든 채 다른 사업을 구상하고, 이곳저곳에 광산을 개발하기까지 했다. 부질없는 일에 매달려, 곧 정운상단이 문을 닫을 거란 의견이 분분했었다.
막대한 양의 황금이 유통되자 얼어붙었던 상계가 후끈 달아올랐다. 다른 성의 상단과 거래를 터 황금이 퍼지기 시작했다. 근래 광산 개발이 늦어지는 통에 황금의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한 터였다.
정운상단은 황금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백제상단과 청풍상단의 배후를 바짝 쫓았다. 얼마 후면 상전의 우승 후보가 바뀌리라 내다보았다.
꽈득!
어처구니없이 흘러가는 상계의 변동에 묵암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인상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날카롭게 변한 퀭한 눈빛과 말라 버린 각진 턱선. 신경질적으로 변한 성격만큼이나 외형도 바뀌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게 말이 되는 경우야!”
정운상단은 다시 일어나지 못해야 마땅했다. 백제상단과 청풍상단이 흡수하여 광산을 개발할 인력과 기술을 빼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절묘한 시기에 광산을 개발했다.
그것도 상당량을 캔 상태로.
관의 허락을 받기 전에 손을 썼어야 했다. 그랬다면 정운상단이 개발한 광산을 가로챌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관에서 허락한 이상 가로채긴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이 있었다.
광산을 하나도 아니고 한 번에 네 개를 개발하고 있었다. 재정이 부족한 정운상단이 어디서 자금을 조달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광산 개발이 불투명한 정운상단에 자금을 융통할 전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드륵!
흑수가 돌아왔다.
“자금을 댄 전장이 어디야?”
“천운권입니다.”
“전장이 아니고 천운권이라고! 대체 언제?”
“아무래도 일전에 정운상단과 거래하면서 미리 계약한 듯합니다.”
둔기로 세게 머리를 맞은 듯 멍했다.
묵암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아내 선물이라는 기도 안 차는 거래로 정운상단의 숨통이 트이는 바람에 시일이 더 걸렸다.
실상 상전의 마감까지도 갈 필요가 없는 승부였다. 그런데 그 망할 놈이 자금을 대어 주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놈이 이제는 대계의 기틀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놈이 횡재했다며 떠벌리고 다녔답니다.”
황금을 유통하기 직전 객잔에서 술을 퍼마시고, 기분 좋다며 손님들이 마실 술까지 계산했다고 한다. 황금종을 울려 대며 천운을 널리 자랑했다.
부르르르!
그 빌어먹을 놈이 운은 억세게도 좋았다. 광산 개발은 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사업이다. 아마 정운상단의 꼬드김에 넘어갔다고 봐야 했다. 그러면 보통은 자금만 쏟아붓고 날려야 하는데, 도리어 금광이 터져 버렸다.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객잔에서 술을 마시고 그다음 날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종적이 묘연합니다.”
지극히 인지상정이었다.
돈 벌었다고 떠벌리면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돈 자랑을 하려거든 그에 걸맞은 무공이나 세력이 있어야 했다. 돈 좀 벌었다고 나대는 것은 칼 좀 맞겠다고 설치는 바와 다름이 없었다.
“운이 좋구나.”
이번에도 운이 따르고 있었다. 만약 습격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묵암은 분풀이를 했을 것이다.
이대로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놈에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선사해 주어야겠다. 오성문에 연락해.”
“예, 암주.”
***
선택을 받은 사람들.
태진과 육칠은 배웅을 나와 손을 흔드는 철호와 나릉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무진과 정운상단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음을 모르지 않았다. 어지간한 사정이 아니면 밖으로 나돌 성격도 아니고.
현재 정운상단이 상전에 본격적으로 참전을 하면서 안휘 상계가 들썩이고 있었다. 느긋하게 승부를 가리던 백제상단과 청풍상단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실제 백제상단과 청풍상단의 경쟁은 치열하지 않았다. 서로 나누어 먹자는 식으로, 하나를 도태시키고 시장을 독식하려는 노골적인 담합이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육칠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금광을 찾고 싶다고 해서 찾아진다면 개나 소나 전부 다 뛰어들지. 지역의 유지조차 금광을 개발하려다 개털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욕심에 눈이 먼 결과라 안타깝지도 않다만.
‘공청석유에 이어 금광까지, 이 인간 찍기의 신인가?’
육칠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운상단에 투자를 했다고 할 땐 고개를 갸웃했다. 안휘 상계를 고려하면 백제상단이나 청풍상단과 거래를 터야 한다. 기울어 가는 상단에 그처럼 막대한 자산을 투자하다니,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아! 나도 따라 투자할걸!’
구걸로, 아끼고 절약해서 모은 자금이 조금 있었다. 정운상단에 투자만 했어도, 구걸 비수기에 일용할 양식으로 사용하기 좋았을 텐데.
당주께서도 투자 비법을 알아내란 눈치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이렇게나 잘 찍으면 보고 있다가 거는 데 같이 거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대세를 따르라.
‘신기가 들지 않고서야.’
한편으로는 대단했다.
무진의 투자로 인해 안휘 상계가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혼란의 소용돌이였다. 상전에서 무난히 이길 줄 알았던 백제상단과 청풍상단은 그제야 부랴부랴 서두르기 시작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의도한 거라고 보기에는 대충 사는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무진이 원하는 흐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것을 체감할 때마다 육칠은 소름이 돋았다.
‘저 되지는 않는 태풍에 우리가 휩쓸리는 건 아닐까?’
황보세가, 남궁세가, 개방, 당문, 아미파, 정운상단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 세력이 무진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었다.
놀랍게도.
대외적으론 운수대통 천운권으로 알려져 있다. 거짓과 포장으로 만들어진 허상이나,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실상, 의심하기란 쉽지 않다. 상식적인 사람일수록.
청양현 소문파의 망나니란 점이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고, 왜곡했다.
‘또 무슨 꿍꿍이지?’
객잔에서 돈 벌었다고 떠벌릴 땐 미친놈인 줄 알았다. 예측이란 게 통하지 않는 부류다. 알 것도 같다 싶으면, 그 이상으로 미친 짓을 계속 저질렀다.
‘노리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송호문에서 출발하기 전에 무진은 개방을 통해 하나의 소문을 아주 은밀하게 흘리라고 했다. 정운상단의 수뇌부에서만 아는 정보로 포장해서.
스윽!
육칠은 여정을 함께해 온 태진을 보았다. 송호문에서 때깔 좋았던 모습과 달리 눈빛에서 독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 인생도 쩝!’
철호와의 승부에서 비긴 후 태진의 인생에 먹구름이 진해졌다. 오는 내내 혹독한 훈련의 연속이었다. 덩달아 같이 내달려야 했던 육칠도 피곤하긴 매한가지였다.
“쉬엄쉬엄해, 인마.”
“그럴 시간 없어요.”
태진에게 선택의 기회는 없다. 오직 훈련에 집중하여 철호 형과의 승부에서 이겨야 했다. 또다시 패배하면 아버지와 여행을 다녀야 한다.
‘이거, 어째 노린 거 같냐.’
번갈아 가며 태진과 철호를 끌고 다니며 혹독한 훈련과 실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들과 제자를 위한 무진의 배려처럼 보인다. 서로의 승부욕을 자극해서 무력 상승을 유도하는.
잔혹하고 매정한 짓이긴 한데, 훈련의 성과가 무지막지해서 하지 말라고도 못 하겠다.
태진과 철호의 무력은 어지간한 고수는 이름도 내밀기 힘든 영역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또 다른 무진을 보게 될지도.
‘젠장, 남의 일이 아니잖아!’
태진과 철호의 성격이 나쁘진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다. 무진의 몰염치하고 뻔뻔한 성향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었다. 여기에 무진이 나이가 들었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미치겠네.’
해동청이 날아와 소식을 전했다.
-네 책임이 무겁다.
전서를 읽어 내려가던 중 마지막에 적힌 홍무개의 당부에 육칠은 헛바람을 삼켰다.
이건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무진은 객잔에서 말썽을 피우고 난 후 종적을 지웠다. 그 이전 나릉에겐 정해진 날짜까지 오라고 전했었다.
정운상단엔 능소려를 통해 언질을 주었다. 동행하기보다는 사전에 약을 쳐 놓는 편이 나았다.
상단에도 여타의 세가나 문파처럼 밀담을 나눌 장소가 있었다.
산운동(山雲洞).
내부의 중심이 아닌 외곽의 지하에 마련된 장소다. 상단주의 방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외부의 시선을 피해 은밀하게 회동하거나 밀담을 나누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정운상단이 이곳에 터를 잡을 때부터 미래를 대비해 만들어 놓았다.
“상단의 은인을 이제야 만나게 되는군요. 대협의 큰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안심할 때는 아닙니다.”
능백환은 상인답게 처세술이 뛰어났다. 신분과 나이를 내세워 권위적일 수도 있었으나, 그는 철저히 상업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능백환이 광산 개발에 투자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달리 보면 그만큼 상단의 사정이 어려웠다는 의미가 되었다.
“백제상단과 청풍상단의 동향을 염려하는 거라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광산에 관원을 배치한 이상, 섣부른 짓은 하지 못할 겁니다.”
“관과 무림의 불가침만 믿고 단정하시면 안 됩니다. 상전에서 이긴 상단은 남은 상단에 이권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상단주께선 무엇을 요구할 겁니까?”
“당연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반 사업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순순히 내어 주진 않을 겁니다.”
“하나, 상전의 규칙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상인들만의 규약이었다. 승자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휘 상계는 물론 대륙 전체의 상계에서 배척받는다. 이는 오래전 상계의 제황으로 불렸던 상황이 정한 율령이었다. 상전의 목적은 상황의 계보를 잇기 위한 발판으로, 각 성마다 상전을 선포할 수 있었다.
“백제상단과 청풍상단의 경쟁은 치열하지 않습니다. 돌아가는 정황만 봐도 각자 나누어 먹으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아니면, 원래부터 하나일 수도 있고요.”
“그럴 리가요. 저들은 오래전부터 독립적으로 상단을 꾸려 왔습니다. 이제 와 통합을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겠지요. 다만, 저들이 아닌 제삼의 세력이 중간에 개입했다면 얘기는 다를 겁니다.”
백제상단과 청풍상단은 정운상단처럼 수백 년의 역사가 있었다. 그들이 쌓아 올린 역사만큼이나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현재 저들은 독립적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일사불란했다.
‘남궁세가가 흔들렸다면 상전에 대한 관심이 줄었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니, 이제야 제법 머리를 굴리는구나.
‘의심스럽긴 해. 잠채도 마음에 걸리고.’
-아무래도 이번엔 사력을 다할 것 같다.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하기 어려울 테니까.
그래서 정보를 흘렸다.
광산 개발에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정보를. 만약 그 소식까지 전해졌다면 연결 고리는 확실했다. 더는 시간을 끌지 못할 테고, 서두를 수밖에 없다.
‘내가 눈엣가시일 테니 잘되는 꼴을 두고 보진 않을 거 아냐.’
-먹지 못할 바에야 부수겠지.
사람 심리가 그렇다. 얄미운 놈이 잘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할 테지. 그것도 항상 눈 밖에 났다면 더더욱. 그간 무진이 쌓아 놓은 이력이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나, 예측보다는 심리전이었다. 마신교의 성향을 잘 아는 마왕의 도움이 컸다.
“강소성으로 가는 상행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진행하라고 했습니다.”
“상단주와 따님께서 함께 움직이셔야 합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요?”
“선택해야 할 때고, 집중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니 이번 상행으로 담판을 짓는 편이 낫습니다.”
“상행의 규모를 늘리라는 말씀이군요. 하오나 위험한 도박입니다.”
“그런 분이 잘도 광산 개발에 투자하셨군요.”
핵심을 찌르는 무진의 말에 능백환은 혓바닥이 씁쓸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광산 개발이 성공해서 자금 사정이 좋아졌을 뿐, 새 사업에 진입할 여력은 되지 않았다. 강소성의 상단과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강 대협께선 저들이 극단적인 수를 쓸 거라 단정을 하는군요.”
“상인에게 주업을 빼앗긴다는 것은 무인에게 무공을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강 대협은 보통의 무인과는 관점이 다르군요.”
“무인이든 아니든, 가치는 중요하니까요.”
능백환은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만나 본 무인들은 고수의 반열에 들수록 상인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상인이 중시하는 가치는 무공과는 다르다고 보았다. 하지만 강 대협은 상인의 가치를 편협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세간의 소문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군요.”
“명예나 명성은 한순간의 뜬구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진은 선택을 종용하고 있었다. 저들이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테니 결단을 내리라고.
“대협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위험이 큰 만큼 보상도 클 겁니다.”
무진은 강소성으로 같이 가기로 일단은 합의했다. 사전에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면, 변수를 만들 요량이었다.
“그런데 제 딸과의 혼약은 어찌하시려는지요?”
“맘이 있다면, 아버지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저런, 그런 줄도 모르고 앞서가서 죄송합니다. 그 여린 아이가 잘해 낼 수 있을지 아비로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지 않으면 누굴 걱정하겠습니까. 그 심정 저도 이해합니다.”
능소려가 여리다고? 송호문에서 봤던 모습을 상기하면 다른 사람을 일컫는 줄 알겠다. 따님의 능력은 알아도 내숭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아버지 앞에서 내숭을 떠는 딸은 없을 테니까.
-그럼 미주는?
‘자식은 건드리는 거 아니다.’
마왕의 핀잔에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불현듯 잊고 있었던 전제가 떠올랐다.
이런.
동생은 영웅이 될 상이고,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지.
중요한 걸 깜빡했네.
착!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을까?
얌전히 대화를 듣고 있던 여운상 대행수가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말하지 말라는 간곡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