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59
158 나눔의 기쁨(3)
후배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무진의 각오에 홍무개는 속으로 한탄했다. 전음을 보내기에는 자리가 좋지 않았다. 이 거리라면 사부님이 알아챌 것이다.
사부님을 말려 줄 사람이 절실하거늘, 검제께선 입꼬리를 말아 올리셨다.
전음을 보내면 도리어 방해할지도.
검패와 남궁연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했다. 특히 무진에게 대결을 부탁했던 첫 만남을 남궁연화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식한 새끼!’
대련 좀 하자고 했더니 일격에 기절시켰다. 거기까지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한다 쳐. 땅바닥에 버려두고 날랐다. 최소한 사람이라면 깨우거나, 방에는 데려다줘야 하잖아.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첫 만남의 강렬함. 무진은 일격혼절의 대명사였다.
그날 이후로 몇 번이나 남궁연화는 혼절해야 했었다. 실력 차가 확연한데도 일절 봐주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비무다운 대결이 되었지만, 그마저도 일방적이었다.
무진과 취선은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선수를 양보하지.”
“감사합니다.”
……안 돼~~~~!
홍무개의 만류는 늦었다.
이 망할 놈이 선수를 넙죽 받고 지랄이었다. 이제 와 받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사부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제자가 되어 버린다.
홍무개는 자신과 사부의 간격을 재봤다.
‘사부도 괴물인데.’
신주이십일강의 하위 서열에 속한 만취한 신선.
세간의 평가와 달리 사부님의 진면목을 아는 이들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 사부를 자신과 동급으로 평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저 새낀!’
괴물 중에서도 쌍(스러운) 괴물이었다.
같은 급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항상 예상을 상회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가차 없이 저지르곤 했다. 어디로 튈지 몰라서 다루기도 어려웠다. 잘못 다루면 역린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었다.
“갑니다.”
“오게.”
무진과 취선의 대결이 시작되자 공터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좀 전의 나른함과는 확연히 다른 거칠고 패도적인 위압감이었다.
공터가 짓눌렸다.
휙, 파아아앙!
이 장의 거리에서 뿅! 하고 사라졌다.
스윽!
다시 나타난 무진은 대뜸 취선의 머리를 노렸다. 직선의 단순한 투로였지만 속도가 워낙 빨랐다. 바람 소리가 난 순간 취선의 제어된 공간을 침투했다.
푸스스스!
타는 듯한 기운, 달아오른 열기에 공기가 증발하여 수증기를 일으켰다. 한순간 이어진 공방으로 변화를 감지한 취선이었다. 찰나 수벽(手擗)으로 무진의 주먹을 쳐 내며 밀어내지 않았다면 머리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쇄액!
취선은 장법에서 검결지로 바꾸었다.
개방의 유일한 검법인 규지검법을 수공으로 펼쳤다. 면의 파괴력을 검의 날카로움으로 전환하여 선공을 취한 무진의 빈틈을 노렸다.
파아앙!
무진의 가슴을 노렸던 취선의 검결지는 나아가는 궤적에서 방향을 틀어 낸 무릎에 막혔다.
파파파파팟!
공수가 연이어 펼쳐졌다.
무릎을 쓴 무진이 날아오른 후 태풍이 되어 소용을 일으켰다. 회전력을 이용한 무진의 각법이 취선의 수비를 어지럽게 했다. 공중에 떠 있으면 운신이 지면에 발을 붙인 상대보다 느려야 할 텐데, 무진은 범인의 상식을 간단히 상쇄했다.
부신공(浮身功).
몸을 띄우고도 지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능력으로, 허공답보, 일위도강, 초상비와 같은 보신도 부신공을 기반으로 한다.
타앗, 투앗!
무진과 취선의 공방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짧은 거리에서 벌어진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공수였다.
권장지각이 절묘하게 맞물렸다.
우우웅, 후아아앙!
부딪침은 외부로 번져 나가는 기의 파장과 파문으로 알 수 있었다. 검제와 검패가 일대를 다스리지 않았다면 넓은 공터도 쓸모없는 황폐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대단했었나?’
홍무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부의 권공을 저만큼 받아 내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개방의 무공이 잡다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하나를 완벽히 익히기도 쉽지가 않다.
사부는 개방의 총화를 한 몸에 이어받은 분이었다. 개방의 역사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재였다.
흠.
홍무개의 감탄과는 달리 검제, 검패, 남궁연화, 육칠은 덤덤했다. 놀라기에는 무진이 해 왔던 일들이 워낙 말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완전하지 않았다곤 해도, 검제를 일방적으로 두드려 팬 전적이 뚜렷하다.
찌잉!
팽팽한 공수처럼 보여도, 취선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권을 마주할 때마다 전해진 기경, 내부로 스며드는 전사경이 혼천강룡신공을 건드렸다.
‘믿어지지 않는군.’
혼천강룡신공은 극한의 패도적인 심법으로, 다른 어떤 내력의 침투도 불허했다. 내력으로 공격하면 가공할 반진력으로 되돌려 주었다. 한데, 십성의 혼천강룡신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잡아먹힌다고?’
패도를 패도로 잡아먹고 있었다.
취선은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생소한 감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젊은 시절 검제와 합을 나누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석년의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미 완성이 되었고, 그 이상이다.
개방의 총화를 쏟아내고 있음에도 취선은 승기를 잡기는커녕 겨우 팽팽함을 유지했다.
“실로 대단하구나.”
“여유가 있군요.”
“하는 수 없지, 전력으로 가마.”
“이만 끝내겠습니다.”
“이것마저 받아 낸다면 뭐든지 들어주지.”
“그럼 받아 내 볼까요.”
밑천을 끄집어내려는 취선과 무진의 동상이몽이었다.
취선은 승기를 잡았다고 여기는 무진의 패기에 미소를 지었다. 아직 젊어서 속단하는 모양이나,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우우우우, 화르르르르!
취선의 내력이 순식간에 배로 상승했다. 가공할 기운이 활화산처럼 피어올랐다. 불꽃처럼 번지는 붉은 기운, 그것은 홍무자염신공의 열기였다. 한데, 파괴적인 기세는 혼천강룡신공이었다. 두 개의 내력이 하나로 귀일하여 파괴력을 극대화했다.
굉장히 위험한 수법이었다.
혼천강룡신공과 홍무자염신공은 개방이 자랑하는 강력한 공부였다. 자칫 내력이 폭주하거나 엉켜 주화입마에 들 수도 있었다. 한데, 취선은 내력을 증폭했음에도 꽤 안정적이었다.
“혼원귀일공이군.”
검제는 어떤 식으로 두 가지의 내력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였는지 파악했다. 혼원귀일공의 화합하는 성질을 이용해서 두 개의 신공을 받아들인 것이다.
꽈아아아앙!
개방의 절기, 강룡십팔장이었다.
일순 사방의 공기가 응축되었다가 터져 나오는 기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스치기만 해도 휘말려 갈가리 찢겨 나갈 거력이었다.
“막았어?”
피할 거란 예상과 달리 무진은 주먹으로 받아쳤다. 강룡십팔장을 정면으로 받아 내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취선은 놀라고만 있지 않았다. 보통이 아님을 수차례의 공수로 경험했다. 일장으로 끝낼 수 없다면 공수를 이어 나가면 그만이었다. 대결이 팽팽할수록, 패기보다는 관록이 승패를 가른다.
파팡, 투우웅!
무진과 취선이 재차 맞붙었다.
장력을 발출할 거리가 아님에도, 취선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좁은 거리에서도 최적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찌릿!
찰나, 취선은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애써 부정하며 권공으로 전환하여 권풍을 발출했다.
퍼억!
휘청!
어깨를 강타당한 취선이 충격을 흩어 내며 재차 공수를 마주했다. 하지만 처음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두 배 이상의 공력으로 파괴력이 상승했지만, 상대가 맞아야 위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퍼억, 퍼억, 푸악!
개방의 총화가 담긴 취선의 무공이 무진의 권공에 일방적으로 파훼 되었다. 권장지각으로 이어지는 절묘한 수법의 전환은, 무진에게 닿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무진의 권격이 취선의 육체를 강타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시간이 지날수록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천하의 취선이 전혀 반응을 못 했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한쪽으로 기울기까지의 과정이 실로 말이 안 되었다.
‘고작 한 끗 차이거늘.’
‘취선께서 따라잡지를 못하는군.’
‘받아치는 수준이 아니잖아.’
차라리 피하고 쳤다면 그나마 이해가 될 것이다. 한데, 한 끗 차이로 동시에 공격을 펼쳤다. 반응 속도의 차이일 수도 있으나, 저 빠른 공격을 모조리 다 받아친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개방의 전대 방주인 취선을 상대로.
‘경이롭구나.’
보는 눈에 따라 시각도 다르다. 검제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봤다. 그 짧은 순간 취선의 무공을 완전히 파훼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수법이었다.
취선이 숨겨 놓은 패를 꺼낼 때만 해도 좀 더 팽팽한 공수가 이어질 줄 알았거늘. 예상을 비웃듯이 무진은 일방적으로 끝내 버렸다.
푸앗!
털썩!
턱을 맞은 취선은 핏물을 분수처럼 뿜어내더니 기력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
“……사부!”
경악할 일이었다.
망연자실했던 홍무개와 육칠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사부를 챙겼다. 피를 토하고 쓰러진 사부를 부축했다.
홍무개는 무진을 보며 치를 떨었다.
“야, 인마! 내가 부탁했잖아.”
“그래서 적당히 했다.”
“이게 적당히 한 거라고?”
“검제 어르신이 보장해.”
“그걸 왜 검제께서…… 하아!”
검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한통속 아니랄까 봐. 남궁세가의 가주와 남궁연화도 깊이 수긍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정도면 체면을 많이 봐준 것이다. 비무 대련이 아니었다면 일수에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끄덕, 끄덕!
이 새끼가!
육칠까지 고개를 끄덕이자 홍무개는 뒷골이 당겼다.
***
“이걸 다시 복구하라고?”
분지에서 냇가로 이어지는 지점을 확인했다. 직각으로 되어 있는 통로를 따라 들어선 노인은 뒷골이 당겨 왔다.
눈 앞에 펼쳐진 통로는 엉망진창이었다. 아주 제대로 부숴 놨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걸 복구하느니 아예 싹 다 갈아엎고 다시 짓는 편이 훨씬 빠르겠다.
“그러니까 비동을 복구해 달라고?”
“조금만 손보면 될 겁니다.”
이게 어딜 봐서 조금만 고치면 되는 거야?
독각묵룡의 처리를 끝내고, 무진과 약속한 묵운산에 당도했을 때까지만 해도 가볍게 여겼었다.
속았다.
천하의 독왕이 사기를 당한 것이다.
당사독은 골이 아픈지 이마를 꾹꾹! 눌렀다. 그 자식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게 아니었다. 뼛속 깊이 자리한 뻔뻔함은 불치병이었다.
“연우야, 다시 생각해 보거라.”
“역시 주군이십니다.”
정을 쌓을 겸 당연우를 계속 데리고 다니고 있었다. 끊임없이 무진의 만행을 거론하지만, 손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가문에 정을 붙여야 하거늘, 그 망할 놈이 매번 걸림돌이 되었다.
“이런 무식한 놈을 봤나.”
기관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놀라웠다. 과거가 아닌, 현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천기에 능통하고 기관진식에 해박한 천무자다웠다.
그럼 뭐하냐고!
무진은 천무자의 노고를 단순무식하게 부숴 버렸다. 똑똑해 봤자, 무식한 놈한테 걸리면 답 안 나온다는 걸 증명했다.
‘진각으로 부수고, 권풍으로 날리고, 삼매진화로 녹였네.’
지극독혈수를 건너는 방식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공력이 남아돌아서 마구 쓰는 놈이 천무자의 의도대로 따랐을 리 만무할 테니, 벽호공이 아닌 허공답보로 건넜을 것이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관이지만, 다시 고칠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하여간 그 녀석과 엮이고 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솨아아!
기관이 설치된 통로를 지나자 넓은 비동이 나왔다. 예상대로 그 앞에 천무자의 혈강시가 버티고 있었다.
-암호를 대시면 됩니다.
-정말로 그걸 하라고?
-제압할 수 있으면, 제압하시면 됩니다.
-흥, 그래 봤자 과거의 유물이지.
무진에게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당사독은 혈강시를 시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오너라, 유물.”
끼요요욧!
무음으로 달려들면 이상할 것 같아서, 무진은 혈강시에게 효과음을 암시로 넣어 두었다.
자동반사적으로 듣기 싫은 고음을 발출하도록.
“하여간 지 같은 짓을!”
정해진 영역으로 진입하자 혈강시가 쇄도했다.
당사독은 달려들다가 순간 비틀거렸다. 손자 녀석이 기어이 무진이 시킨 대로 하고 있었다.
경건하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열 번 하고.
“무진 님 만세!”
열 번 외쳤다.
혈강시는 당연우를 침입자로 인식하지 않고 당사독만 노렸다. 저걸 보고 나니 더 하기 싫었다.
“이 녀석아!”
남사스럽지도 않더냐.
너는 장차 대사천당문의 가주가 될 녀석이란 말이다.
암시를 걸어도 꼭 자기 같은 걸 걸어 두었다. 그 얄미운 놈을 상기할수록, 혈강시를 무릎 꿇려야 했다.
쌔애애애앵!
고금칠천의 천무자, 당사독도 한 번쯤 겨뤄 보고 싶은 자였다. 과거를 뛰어넘어 현재의 자신에게 얼마나 통할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은 무인의 본능이었다.
퍼퍼퍼퍼펑!
당사독과 혈강시가 본격적으로 붙자 비동이 거칠게 흔들렸다. 혈강시는 당사독의 예상보다 강했다. 전투가 길어지자 당사독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걸 그냥!’
당문의 절기를 쓰지 않고서는 제압이 어렵다. 그러나 암기를 동반한 독을 사용하면 혈강시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혈강시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중요한 미끼였다. 망가뜨리면 그 녀석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젠장!
거리를 벌린 당사독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말년에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들에게 맡기는 건데, 망할 놈의 호기심이 발목을 잡았다.
“무진 만세!”
열 번 외쳤다.
이제 괜찮겠지?
끼요요요욧!
야, 이 개새끼야!
한 글자 틀렸다고 인식을 못 했다. 다시 해야 하는데,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손자의 모습에서 그놈이 연상되어 짜증이 확 일었다.
끼요요요욧!
하면 될 거 아니야,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