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63
162 용돈 벌이(2)
부스슥!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기척을 감추고 접근했다면 경계했을 텐데, 대놓고 인기척을 드러냈다.
“볼일은 어디서 보라는 거야?”
측간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는 주정꾼이었다. 그는 주사를 부리는 놈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눈앞에 보물을 두고 기다리는 이 순간, 갈증이 달아올랐다.
어서 가라.
“여긴가?”
왜 남의 방에서 측간을 찾아?
가슴에 손을 넣었던 사내는 문을 두드리면 망설이지 않으려고 했다. 거사를 방해하는 놈은 살려 두지 않는다. 이번 일만 끝내면 남경을 떠날 계획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남경 밖으로 도망친 줄 알겠지만,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연화 방이잖아. 자는 사람 깨우면 예의가 아니지.”
예의는 지켜야지.
방 안의 사내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가 발걸음을 돌리자 사내는 비수를 집어넣었다. 어쨌든 운이 좋은 놈이었다. 실수로라도 방문을 두드렸다면 오늘이 명년의 제삿날이 됐을 것이다.
그러다 사내는 재차 미간을 찌푸렸다.
솨아아아, 콸콸콸!
방문 근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측간을 찾지 못해 통로에다 그냥 싸는 모양이다. 냄새는 나진 않지만, 지린내가 나는 것 같아 코끝을 찡그렸다.
“소피를 봤더니 술이 당기네. 혼자 마시기도 그렇고. 깨울까?”
이 새끼가!
그림자가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돌렸다가 또 돌렸다. 반복적인 행동이야말로 주사의 정석이었다. 할까, 말까? 하려면 속 시원히 할 것이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놈이었다.
“난 예의 빼면 시첸데.”
그런 놈이 사람 지나다니는 통로에 오줌을 싸냐.
그것도 홍수가 나도록?
슬슬 부아가 치미는 사내였다. 놈이 굳이 들어오지 않아도, 밖으로 나가서 멱을 따 버리고 싶은 살인 충동이 일었다. 본 적도 없는 놈이 사람 열 받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
‘죽일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 오늘의 목표는 저놈이 아니라 계집이다. 굳이 사건을 만들어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빠직!
그런데 이놈이 이각이나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차라리 문을 열고 들어오면 즉시 목을 그어 버릴 텐데, 들어오지는 않고 방문 앞에서 지지부진했다.
아예 신경을 끄고 계집부터 처리하려고 할 때마다 들어오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놓기를 반복하니 심각하게 거슬렸다.
‘이 빌어먹을 놈이!’
알지도 못하는 놈에게 살의가 끓어 넘치기는 처음이었다. 이번에도 방문을 열려고 하면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찰나에 살기를 방출했다.
훗.
방문을 사이에 두고 비웃음이 들렸다.
평정심이 흔들렸던 사내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살의를 감추었다. 평소였다면 하지 않을 실수였다. 저놈만 아니었으면 실수 따윈 하지 않았다.
‘넌 내 반드시 죽인다!’
그는 목적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성향이었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 밖에 있는 놈은 거슬렸다.
“병신.”
“……?”
“눈치는 더럽게 없어요.”
“……?”
“그래, 너.”
“……?”
“뭐 하는 새끼야! 등신이 따로 없네.”
“……설마?”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모르면 상병신인데, 이거 보기보다 더 병신이네. 왜 이런 병신을 여태 못 잡았대.”
이쯤 되자 사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아예 대놓고 욕을 하고 있으니,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은형무음공을 시전한 상태였다. 완벽에 가까운 은형술이자 동화술이거늘.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개뼈따귀한테 들키고 말았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런 개자식이 감히 나를 놀려!”
“병신을 병신이라고 하지, 뭐라고 부르냐. 네가 한 행동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병신 같지 않은지?”
사내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더 열 받는 사실은 이놈이 한 말에 반박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 봐도 병신 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부글, 부글!
이렇게 되니 그도 참지 않았다.
이 분야의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목적에 충실한 자신을 도발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곱게 죽이지는 않는다. 비록 추적을 받는 신세지만, 무서워서가 아니라 시선을 끌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드륵!
문을 연 무진은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앞에 복면을 쓴 사내가 안광을 번뜩이며 노려보고 있었다.
드륵!
무진은 문을 닫았다.
사내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무진을 보았다. 술에 취한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뭘 믿고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겁이 없구나.”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됐네. 너 지금 한가하게 나하고 대화를 주고받을 때가 아니잖아.”
“건방진, 주둥이만 살았구나! 곧 죽여 달라고 빌게 해 주마. 그리고 네놈 앞에서 저 계집을 취하겠다!”
“검제께서 가만있지 않을걸.”
“뭐?”
“쟤, 남궁세가의 금지옥엽 대연화거든. 설마, 알지도 못하고 겁탈하고 죽이려고 한 거야? 정신 나갔네.”
보통 계집이 아닐 거라고 판단했다. 정순한 내력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내력을 한순간에 끌어올릴 재료로 충분했다. 하긴, 이런 계집이 평범한 신분일 리 없다. 그럼에도 남궁세가라니, 흔적을 남기면 골치 아플 것이다.
“그 말로 네놈이 살 방법은 없어졌다.”
“하는 짓을 보니 음적일 테고. 제법 수준이 높아 보이는데. 너, 음살이지?”
“그걸 어떻게?”
“진짜였어? 와, 설마 칠살의 음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병신이구나!”
칠살에 속한 음살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보인 몇 차례의 사건으로 악명이 알려졌을 뿐이다. 외양도, 내력도,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오늘 어처구니없이 스스로 까발리고 말았다.
자신을 숨겨야 했던 음살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실수의 연속이었다.
“죽여 주마!”
“하긴 주둥이가 길었지. 와 봐.”
무진을 아는 사람들에겐 의아한 일일 것이다. 시간을 너무 끌고 있었다. 굳이 왜 그랬을까?
음살은 그러한 점에 주목해야 하나, 오늘 처음 봤으니 알 리가 있나.
우우웅!
본색을 드러낸 음살은 흡혈마황공을 끌어 올렸다. 완성되기 전까진 끊임없이 피와 욕망을 탐하는 무공이었다. 그래서 본의를 될수록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흡혈마황공이 궤도에 오를 때마다 이성이 무너지면서 광기를 드러냈었다. 그로 인해서 붙여진 악명이 음살이었다.
흡혈마황공을 운용하자 감추고 있던 본성이 드러났다. 끊임없이 피와 생기를 탐하는.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한다. 그 책임은 온전히 네놈의 것이다.”
“이거 어쩌나? 미안해서.”
“이제 와 수작은 통하지 않는…… 어?”
“확실히 내력이 고강하긴 해. 여태 잘 버텼다.”
“설마?”
“당문의 신선폐야. 알지, 산공독인 거?”
산공독도 당문이 만들면 달랐다. 그래서 다들 독 하면 당문, 당문 하는 것이다. 신선폐의 효능은 알다시피 내공의 억제다.
단, 산공독은 내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발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무진은 방 안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약 올리며 시간을 끈 것이다.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할 때부터 사악한 꿍꿍이가 있었다. 괜히 알지도 못하는 사내놈과 길게 대화할 무진이 아니잖아.
부들부들!
삼성의 내력을 끌어올리자 기맥의 흐름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있었다. 종리천은 그제야 자신이 신선폐에 당했음을 깨달았다. 내력을 끌어올릴수록 미친 듯이 빠져나갔다. 이대로는 삼성 이상 내력을 쓸 수가 없었다.
“……이 비겁한 놈!”
“언제까지 처자고 있을 거야?”
종리천은 무진을 향해 이를 갈며 독기를 뿜었지만, 정작 무진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오싹!
섬뜩한 기운이었다. 종리천은 그제야 자신이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뒤를 돌아서기가 무섭게 침상에서 벌떡 일어난 남궁연화가 권격을 발출했다.
슈우우웅, 파아아앙!
위기의 순간 음혈장으로 맞대응을 한 종리천의 얼굴에 굵고 파리한 힘줄이 돋아났다. 무리하게 내력을 운용하여 벌어진 역효과였다. 지금은 내력을 쓰기보다 여길 벗어나서 신선폐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었다.
그러나 상대는 회피를 용납하지 않았다. 발출한 장력을 뚫고 들어오는 뇌기에 충격을 받았다.
휘, 파앗!
간신히 막아 낸 종리천은 안도할 틈이 없었다. 등 뒤에서 수리검이 날아왔었다. 몸을 비틀어 회피했지만, 살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칫 등의 중심을 내어 줄 뻔했다.
어질!
수리검에 스친 종리천은 순간 현기증이 났다. 급히 스친 부위를 살피자 어느새 검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당문표 채사독이야.”
채사독(蠆蛇毒)은 전갈의 독과 뱀의 독을 독초로 절묘하게 배합한 당문의 독이다. 독왕이 주로 사용하는 독보다는 약해도, 가지고 다니면 쓸모는 있었다.
물론, 음살이 신선폐에 중독이 되지 않았다면 내력으로 몰아냈을 것이다.
크윽!
독에 당한 종리천은 치를 떨어야 했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이런 식으로 어이없이 당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러고도 네놈들이 정파더냐!”
“정파는 독 좀 쓰면 안 되냐?”
독 좀 썼다고 정파가 아닌 것도 아니잖아.
슈슈슉!
무진은 말을 하면서도 수리검을 아끼지 않았다. 독과 달리 수리검은 시중 대장간에서 싸게 구매했다. 가성비가 훌륭해 마구 뿌려도 아깝지가 않았다.
퍼어억!
무진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종리천은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체력적인 약점을 극복한 남궁연화의 천뢰신권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성취를 이루었다. 내지를 때마다 뇌성벽력이 울리며 종리천을 괴롭혔다.
찌릿, 찌릿!
푸악!
나락에 직격당한 종리천은 내력을 사용하다 선혈을 뿌렸다. 막혀 버린 기맥을 억지로 돌린 결과는 참혹했다. 전신의 혈맥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고, 핏물은 검게 변하고 있었다.
슈웅, 파앗!
그럴 때마다 무진은 수리검을 던져 종리천을 괴롭혔다. 수리검에 묻은 채사독이 종리천의 운신을 지속적으로 좁혔다.
‘……이럴 순 없어! 빌어먹을!’
종리천으로선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저 비겁하고 추잡한 놈도 거슬리지만, 이 계집의 무력도 만만치 않았다. 정상적인 상태였다고 해도, 쉬이 승부를 내기 어려울 만큼 강했다.
“한눈팔 때가 아니지.”
“네놈만은 죽인다!”
눈이 돌아 버린 종리천이 흉악한 살기를 뿌렸다. 일반인이었다면 심장이 마비될 살의였다. 그러나 어쩌랴, 상대는 범인과 격이 달랐다.
“할 수 있으면. 얘들아.”
“……이런 개자식을!”
무진의 좌우로 육칠과 태진이 나타났다.
호출을 받은 그들은 종리천을 향해 권공과 검공을 발출했다. 합공을 연습하지 않았어도, 같이한 기간이 있어 호흡이 척척 잘도 맞았다.
“왼손 조심해라. 혈삭이라고, 꽤 날카로운 기병을 숨기고 있거든.”
……어떻게?
억장이 무너지는 종리천이었다.
그로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반전을 꾀할 병기였다. 한데, 사용도 해 보기 전에 들통이 났고, 왼팔이 허공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