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65
164 이것도 명성은 명성이지(1)
미제로 남았을 남경의 연쇄 살인마가 잡혔다.
관과 무림이 협조하여 추적했음에도 꼬리조차 잡지 못했던 사건으로, 범인은 남경에서 다른 성으로 도주했으리라 추측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다행이라고 여길 뿐 큰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남경뿐만 아니라 강소성 전체가 경악했다.
음살 종리천.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범인의 정체였다. 일전 극살 때도 그렇고, 칠살의 악명이 또 한 번 올라가는 계기가 되었다.
범인의 종적이 묘연했던 연유를 이해했다. 음살은 무공은 물론, 신상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작정하고 숨었다면 잡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설령 안다고 해도, 추적이 용이치는 않았을 터.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풍검문이 남경을 대표하는 삼대문파이긴 하나, 음살의 무공은 범인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섰다. 그를 사로잡기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음살을 잡은 무인이 밝혀졌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또 뭔데?”
“뭐야, 그 아니꼬운 눈빛은? 듣고 싶지 않아? 싫으면 말고.”
“누가 듣기 싫대. 술 산다고, 됐냐?”
“나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다.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고.”
“산도적같이 생겨서는…… 알았으니까 말해. 뭔데?”
“음살을 잡은 사람이 천운권이래.”
“여기서 천운권이 왜 나와?”
아주 유명하진 않더라도, 소식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무진에 대한 소문을 들어는 봤을 것이다.
주둥이 가벼운 호사가들이 입을 나불거리면서 소문은 삽시간에 번졌다. 안주 삼아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기본이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천운권이 음살을 어떻게 잡아?”
“천운권이 음살을 잡았다고 풍검문주가 증명했다던데.”
“뭐야, 그럼! 천운권이 운만 센 놈이 아니란 거잖아.”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범인에 대한 현상금이 두둑하잖아. 그거 가지고 흥청망청 쓰고 다니면서 무용담을 자랑한다더라.”
“아주 살판이 났네.”
“차후, 신주이십일강이라고 하더라. 자기 스스로.”
이제부터 천운권으로 부르지 말고 천권으로 불러 달라고 제 입으로 밝히고 다녔다. 당대의 음살을 무공으로 제압했으니 그에 걸맞은 별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설득력은 있었다.
사람들은 음살을 잡은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자기 입으로 떠벌리는 무진을 좋게 보진 않았다. 공치사를 좋아하는 무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오묘한 심리였다.
그렇게 굳혀 가나 했는데.
개방에서 조사가 이루어졌고, 음살이 산공독을 비롯한 여러 독에 중독된 상태였음을 밝혔다. 함정에 빠져 무공을 발휘하지 못한 채 무방비로 제압당했다고 증언했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그럼 그렇지.”
“자기 입으로 자랑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그럼 풍검문주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는 거야?”
“그래도 자기 아들을 죽인 범인을 잡아 준 은인이잖아. 어떻게 말해.”
“천운권답다. 뻔뻔함은 천하제일이구나.”
“그렇더라도 음살을 잡은 건 맞지. 흉계를 쓰고 산공독을 쓰기는 했어도.”
“차라리 입을 다물지. 개방도 오죽했으면 재조사했겠어.”
“그 입이 화근이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명성이 오를 텐데.”
“자기 명성 깎아 먹는 것도 재주는 재주야.”
음살을 죽인 후 서둘러 화장하지 않아 통탄했다는 무진의 발악은 사건의 전말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개방이 도중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밝혀지지 않았을 천운권의 날조에 다들 혀를 찼다.
그로 인해 음살의 정체보다 천운권에 관한 소문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명성을 쌓고 싶은 추악한 무인의 상징으로, 조롱과 조소가 난무했다.
세상이 조롱하든 말든.
무진은 풍검문과 관아에서 내건 현상금과 보상금을 넉넉히 받아 남경에서 살판이 났다. 남의 돈으로 사치를 즐기니 기쁨이 열 배가 되었다. 실제로 보상을 받고도 한 푼을 내지 않았다.
즐길 거 다 즐긴 후 예약한 배편으로 뱃놀이를 즐기며 이동하고 있었다. 배도 장강의 고급 선단으로, 다른 선박보다 세 배는 뱃삯이 비쌌다. 여윳돈이 생기는 족족 호화로운 여행을 즐겼다.
일례로 배를 통째로 빌렸다.
갑판에는 술상과 음식이 널려 있고, 한쪽에서 육칠과 태진은 낚시를 하고 있었다.
횟감은 바로 잡아서 족쳐야 제맛이기도 하고.
무진이 시범 삼아 낚시의 요령을 알려 주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강을 돌아다니는 대어를 심검으로 요격해서 잡아 올리는데 어떻게 따라 해.
무진은 배에 오르기 전 주문 제작한 고급 기능성 의자에 앉아 술판을 벌였다.
남궁연화는 맞은편에 앉아 깨작거리고 있었다. 세상만사 근심 없이 사는 인간의 전형을 마주 보았다.
“세상인심 한번 각박하네, 그치?”
“또 무슨 꿍꿍이야?”
“말도 하기 전에 의심부터 하는 거야? 참고로 난 여리고 순수하다고.”
“순수한 새끼들이 다 뒈졌어도, 넌 아냐!”
“말 한번 살벌하다. 그러다 시집은 갈 수 있겠어?”
“정도껏 해라!”
“지금도 노처…… 아니다.”
남궁연화로선 이해하기 힘든 무진의 행보였다. 굳이 욕먹을 짓을 하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 자기 명성을 스스로 깎아 먹고 있었다. 무인은 명예에 살고 명성 때문에 뒈진다고 했다. 이 자식에겐 명성 따윈 한 끼 식사만도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니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한데, 가는 곳마다 사고를 몰고 다니고 있었다.
“네 말대로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뒈지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뒈진다고 했어. 그깟 명성이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목을 매냐. 남이 뭐라고 하든 내가 아니면 그만이지.”
“세상 달관한 척 개소리 지껄이지 마시지.”
“쩝! 말도 못 하게 해!”
“맞잖아!”
무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진 않아도, 눈앞에서 깔보면 가만둘 수 없지.
“경치 좋다.”
“말 돌리지 마.”
“알면 그만해. 계속하면 맞는다.”
“툭하면 주먹질이야, 흥!”
평화를 위해선 정의로운 주먹도 필요한 법. 쓸데없이 말 길어질 때도, 주먹이면 만사형통이었다. 이에 대한 반박은, 무조건 주먹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나 위협적으로 보인 거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암류를 대하는 무진의 신중함에 남궁연화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닌 무진이 조심스러워하다니, 놀라웠다.
세상 지 맘대로 살 것 같은 녀석이.
해이해진 것도 사실이다.
어느 순간 마음을 풀었다는 걸 깨달았다. 음살도 그렇고, 무림은 강함이 전부는 아니었다.
실력의 삼 푼을 숨겨라.
강호에 발을 담근 무인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격언이었다. 남궁연화는 무진을 되돌아볼수록 기본을 되새겼다. 암류의 무서움을 안다면 더더욱 자신을 담금질하고 각오를 다져야 했다.
‘이 자식도 걱정이란 걸 하는구나.’
인간 같지도 않은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기에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줄 알았다.
“방 선장님, 목 좋은 곳 맞습니까?”
“아무렴요.”
“근데 왜 하나도 못 잡습니까?”
“이럴 리가 없는데. 제가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목이 좋든 안 좋든 문제는 되지 않지만, 횟감의 수급이 늦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닥쳐올 횡액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육칠과 태진이었다. 무공과 다르게 낚시는 자신들하고 맞지 않았다.
타앗!
선장은 확실히 노련했다. 넣기가 무섭게 건져 올렸다. 원래 초보자가 무서운 법인데, 선장은 그마저도 뛰어넘은 강태공이었다. 순식간에 횟감을 건져 내어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했다. 숙련된 선장은 요리도 수준급이었다.
“잘하네요.”
“잘하긴요. 전문 숙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배에서 먹어서 맛있는 겁니다.”
선장은 자기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배에서 잡아 바로 회를 쳤기에 맛이 있는 거지, 식당에서 먹으면 그 맛이 그 맛이었다.
“한 잔 드시죠.”
“배를 몰아야 하는데.”
“한 잔은 괜찮습니다.”
“손님께선 뭘 좀 아시는군요.”
음주 운행을 강행하는 무진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차하면 허공섭물로 배를 띄우면 될 일이었다. 거나하게 취하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러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석 잔이 아니면 아쉬운 법이다. 술로써 모르는 사람도 친해질 수 있었다. 과연 술이야말로 인맥 관리와 인성 파악의 필수였다.
후일 내 사위가 되려면 삼십일 동안 쉬지 않고 마실 주량을 지녀야 한다.
“넌 안 마셔?”
“됐거든.”
남궁연화는 며칠 전을 상기하면 아직도 속이 메슥거렸다. 이 자식하고 대낮부터 해가 지고 뜰 때까지 마셨더니 주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사 없었다니까.”
“웃기지 마, 삭신이 쑤셨거든.”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 전신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던 남궁연화였다. 기억이 끊어진 후, 다시 떠올리기 싫은 짓을 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몸이 이렇게나 아플 리 없잖아. 이 자식이 술 취했다고 사람을 마구 팬 게 분명하다.
그러고선 주사가 없다고!
그냥 패고 싶다고 말하지 그러냐!
“내가 또 주사를 고치는 데 신묘한 방법이 있다니까.”
“닥쳐!”
한가롭게 뱃놀이를 즐기는 중.
두둥!
범상치 않은 선박 열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의 깃발을 보니 장강수로십팔채를 뜻하는 수룡이 그려져 있었다.
‘열 척이나, 어째서?’
깃발을 확인한 선박의 선장, 방철의 안색이 퍼렇게 변했다. 달마다 정해진 기일에 맞춰 통행세를 냈음에도 긴장이 되었다.
그 이유는 장강수로십팔채의 동룡채였기 때문이다.
동룡채주 독안흉도 육사악.
장강수로십팔채 내에서도 흉명이 자자한 인물이다. 한쪽 눈을 잃고서 얻은 흉도라는 악명만큼이나, 수로를 건너는 선박엔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통행료를 냈음에도 자기 내키는 대로 행동할 때가 많았다. 통행세를 냈다고 항변하던 선장과 선원을 모두 죽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방 선장으로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자이나, 장강에 터를 잡은 뱃사람으로선 겪어야 할 시련이었다.
으차!
장강의 풍광을 즐기던 무진은 의자에서 일어나 방 선장에게 다가갔다.
방 선장은 손님이 당황하지 않도록 애써 덤덤한 척했다. 자신마저 당황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침착하게, 동룡채주가 원하는 대로 해야 했다.
“손님, 별일 아닐 겁니다.”
“별일 맞아요. 그러니 선원들과 선실로 들어가세요.”
“예?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자자, 들어가세요. 제가 알아서 해결합니다.”
“아니, 손님이 어떻게?”
“설득은 제 전문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어어어!”
무진은 선장과 선원을 밀다시피 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저항을 해봤자 힘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육칠과 태진은 선원들을 모두 배 안으로 몰아넣고 문을 닫았다.
“어쩌려고?”
“이렇게 하려고.”
무진의 다음 행보에 남궁연화는 기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