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66
165 이것도 명성은 명성이지(2)
천금 상단의 선박을 확인한 동룡채주 육사악의 흉측한 안면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근래에 강소성을 시끄럽게 했던 소문을 그도 듣고 있었다.
소문의 내용은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한동안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었다. 자신의 운을 시험하고 싶으면 천운권에게 도전하라는 말도 돌았었다.
“내 앞에서도 운이 통하는지 확인해 보겠다.”
“감히 채주님 앞에서는 배짱을 부리지 못할 겁니다.”
“제법 두둑하게 챙겼다고 했지?”
“적어도 오만 냥은 되지 않겠습니까.”
풍검문과 관아에서 받은 보상금이 만만치 않았다. 하물며 일전에 녹림왕에게 패하고 금전으로 해결을 봤다고 했다. 그만하면 현재 가진 돈도 돈이지만, 사로잡으면 제법 짭짤할 것이다. 이참에 그놈이 가진 운을 시험해 볼 수도 있을 테고.
‘운도 실력일 수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지.’
동룡채의 배와 수하들을 전부 데리고 왔다. 소문이 과장이 되었다고 해도, 녹림왕과 음살이 연관되었다. 운만으로 살아 나왔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물며 어떤 식으로든 지기라도 하면, 명예가 땅바닥을 뚫고 들어간다.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 수도 있었다.
크흠!
이십 장의 거리에 도달하자 육사악은 목을 가다듬고 소리쳤다. 이 장강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나는 이 장강수로의 지배자……?”
……설마.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가공할 기운이 쏘아졌다. 전신의 솜털이 발딱 서며 전율이 일었다. 위기감을 감지하고 대응하려고 했지만, 폭사 된 권경은 사정을 가리지 않았다.
꽈아아아아아앙, 푸아아아앗!
장강의 지배잔지, 집주인인지 제대로 된 성명 발표를 하기도 전 폭사 된 거대한 무형권이 동룡채주와 선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오싹한 전율을 느꼈던 육사악은 등장과 동시에 퇴장했다.
꽈아아아앙, 푸아아아앙!
선체만 한 무형권은 동시에 열 발이 쏘아졌다. 동룡채주의 선체가 소멸함과 동시에 나머지 아홉 개의 선박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수로채의 수적들도 한꺼번에 휩쓸렸다.
솨아아아아아!
사방을 휘몰아치는 패도무쌍의 기경에 파도가 거세게 일었다. 휩쓸고 지나간 공간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선박의 잔해물이나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부숴 버렸다.
헐!
한순간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공간에 정적이 감돌았다. 보무도 당당하게 선박을 포위하며 다가왔던 수적들은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선량한 사람들 피나 빨아먹는 것들이 어디서 건방을 떨어.”
백 장의 거리에서도 무진의 귀는 매우 예민했다. 육사악은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괜한 짓을 벌인 것이다. 예민한 사람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하물며 잘난 체하는 꼴을 두고 볼 만큼, 무진은 속이 깊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목도한 남궁연화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선량한 이들을 위해 거머리는 박멸해야지.”
걱정을 하기는.
이 인간이 걱정할 위인이 아님을 남궁연화는 새삼 깨달았다. 수적들이 잘했다고는 말 못 해도, 대화도 나눠 볼 생각도 없이 전멸시킬 줄 누가 알았겠어. 최소 수백 명의 수적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씨 몰살을 당했다.
“이렇게 대놓고 사고를 치면 어떻게 해!”
“어떡하긴, 사실대로 말해야지.”
“그러면 정체를…… 아!”
“사람들은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버릇이 있거든.”
일련의 과정을 되새긴 남궁연화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간의 상황들이 작금의 현실을 왜곡해 버리고 있었다. 사실을 말한들, 무진은 대륙제일의 허언가였다. 이미 해 왔던 거짓이 쌓여, 진실을 비틀었다.
“이젠 내 맘대로 해도 되겠지.”
천운권의 숨겨진 진의였다.
한 번의 거짓으론 믿지 않겠지만, 거짓이 두 번, 세 번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이제 무진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렇지.
수적이긴 해도 사람이었다. 저토록 가벼이 사람을 죽여도 되나 싶었다. 수백 명의 수적이 의도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저들의 저의를 모르잖아.”
“저의는 무슨, 나를 노리고 온 놈들이야. 내 명예를 위해서라도 혼쭐을 내줘야지. 안 그래? 사람은 이름 때문에 뒈진다며?”
이 망할 놈이!
강소성에서 무진에 관한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을 테니 동룡채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천운권을 꺾어 명성을 쌓겠다는 의도는 말이 되지 않았다. 결국, 동룡채의 목적은 무진이 받은 보상금이었다.
‘감히 내 돈을 노려!’
적당히 먹고 떨어졌으면 죽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내 돈을 노리는 순간 운명은 정해졌다.
‘내가 주기 전까지는 너희 돈이 아니거든.’
예로부터 남의 돈을 노리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법이잖아. 장강의 율법에도 나왔을 거다. 없으면 이제부터라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죽여야 할 놈들이니까.’
-별호를 전왕(錢王)으로 바꿔라!
‘맘대로 불러. 내 돈 노리면 난 못 참아.’
-내가 어쩌다가 이런 놈을!
마왕은 돈 앞에서 속물이 되어 버리는 전왕을 볼 때마다 한숨이 흘렀다. 이런 놈을 믿고 마신교를 무너뜨리고 육체를 찾을 수 있을까? 답답함이 밀려왔다.
하아!
육칠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했다.
일순간 뿜어졌던 패도지세는 인간적인 영역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수적들의 선박은 강선이었다. 어지간한 충격에는 부서지지 않았다. 그런 강선을 일격으로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강에서는 수적들이 유리하다지만, 이런 식이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자맥질할 틈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동룡채주면 제법 강자로 정평이 나 있는데.’
독하기로 유명하고, 생긴 것과 달리 조심성이 강했다.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열 척의 배를 준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진위를 따질 일은 아니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는 장강수로십칠채구나!’
촌음 만에 수채 하나가 사라졌다. 이 사실을 개방에 알려야 하기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당주께서 또 사고 쳤다고 닦달할 게 뻔하다.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문 열어 드려.”
“예, 강 대협!”
육칠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선실에서 조마조마해 하고 있던 선장과 선원은 멀쩡히 살아 있는 손님들을 보자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동룡채가 지나가면 무탈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꼬투리를 잡아 돈을 뜯어 갔었다. 한데, 동룡채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다른 볼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후우, 천만다행입니다. 손님은 정말로 운이 좋으시군요.”
“이제 목적지로 가시죠.”
“아무렴요, 금방 갑니다.”
선장은 손님들이 운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동룡채가 돈을 요구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은 고양이가 생선을 모른 척하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천운이 따랐다고 봐야 했다.
그러고 보니 천운권이라고 하지 않았나?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운이 좋은 줄만 아는 선장이나 선원들과 달리, 남궁연화, 육칠, 태진은 전말을 알기에 안도하지 못했다.
더욱이 증거를 완벽히 지웠다. 앞으로도 수적들은 무진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육지에서 싸우면 시간이라도 벌지, 배는 한정된 공간이라 도망갈 곳도 협소했다.
‘죽을 놈들이긴 해도.’
이래도 되나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진은 호화로운 뱃놀이를 계속했다.
“자자, 여기 와서 한잔하시죠.”
“손님은 참 맘이 넓으십니다.”
맘이 넓기는 누가?
자기 돈 노린다고, 말도 못 한 채 떼죽음당한 수적들은 뭐가 되냐고.
이건 동룡채의 말도 들어 봐야 한다고!
***
장강수로십팔채는 달마다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동룡채에서 시일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나 인원을 파견했고, 동룡채가 비어 있음을 확인했다.
습격이나 침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수채에 남은 소수의 내부자가 금고를 털어 사라졌었다. 도망친 놈들을 사로잡아 정황을 파악해야 했다.
“어떻게 됐어?”
“사로잡은 놈들을 고문했지만, 건질 만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동룡채에 남아 있다 도망친 놈들은 쭉정이에 불과했다. 육사악과 정예는 배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허!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 수라도 낭악에게도 이번 사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간 문제를 일으키긴 했어도, 육사악이 주제를 모르고 행동할 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열 척의 배로 이동했다면 흔적이 남아야 했다.
“북룡채와 서룡채는?”
“지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룡채는 북룡채와 서룡채의 사이에 있었다. 그 중간에 여러 물줄기가 있지만, 배의 크기와 수를 고려하면 북룡채와 서룡채의 수로를 지나가야 했다.
“당장 찾아내.”
“예, 총채주.”
전체에서 동룡채의 비중이 크다고 할 순 없으나, 이번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면 수로채 결속에 해가 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당했다면 응징을, 도망을 쳤다면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했다.
‘대체 어떻게?’
후자는 말이 안 된다. 육사악이 수로채에서 도망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후자일 텐데, 동룡채를 흔적도 없이 지울 수 있는 세력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빌어먹을.’
녹림과의 협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동룡채가 사라졌다는 걸 저들이 모르지 않을 테고, 어떤 식으로든 트집을 잡을 수도 있었다. 이른 시일 안에 해결하고, 계획대로 진행해 나가야 했다.
***
진강의 포구에서 내려 마차를 구해 단양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시일이 소요되었다. 가는 길에 시비를 거는 자들이 있었다. 강소성의 주요 소문 서열 일위를 차지하고 있는 천운권을 검증하겠다며.
“청랑창 노강위라고 한다. 자신이 있다면 나의 창을 받아 보아라.”
“내 아들을 이기면 받아 주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하물며 자식 뒤에 숨다니, 무인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러는 네 실력은 부끄럽지도 않냐?
유명세를 이용해 보겠다는 건 좋다 이거야. 그래도 실력이 있어야지. 딱 봐도 쭉정이 주제에 있는 척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개방을 통해 소문을 낸 이상, 나설 생각이 없다.
“아들, 처리해.”
“예, 아버지.”
태진은 평소대로 빛살처럼 쏘아져 나가 검을 휘둘렀다. 한두 번은 예의를 차리겠는데, 길마다 이어지자 귀찮음이 다분했다. 빨리 처리하고 훈련이나 하는 편이 나았다.
스왁, 뎅강!
청랑인지, 찰랑인지.
창법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졌던 노강위의 분노는 창대가 두 동강이 나면서 반으로 쪼그라들어 버렸다.
차악!
태진의 검극이 노강위의 숨통에 닿았다.
톡! 하고 찌르면 피가 톡! 하고 튀어나올 위치였다. 빨리 끝낼 심산이지만, 방심은 하지 않았다. 나이도 어린놈에게 졌다고, 수작 부리는 진상이 꽤 있었다. 그럴 바엔 처음부터 여지를 주지 말아야 했다. 그것 하나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더 하실래요?”
“……내가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