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69
168 배운 대로(1)
하하하하하하하하!
폐부에서 터져 나오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살면서 오늘처럼 웃어 보기도 처음일 것이다.
“천운권이라. 참으로 웃기는 종자구나.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천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천하를 흐리고 있다니,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구나.”
의도치 않았음에도 변수가 되어 대계의 기틀을 흔들었다. 천운권으로 인해 족히 수년은 더 걸리게 되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반드시 숨통을 끊어 놓겠습니다.”
“이런, 이런. 험한 소리를 하는구나. 이런 재미난 놈이 하나라도 있어야 살맛이 나지 않겠느냐. 하물며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거늘, 놈이 죽기라도 하면 그 화살이 어디로 날아올까?”
“제 소견이 짧았습니다, 천군!”
백암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샘솟듯이 흘러내렸다. 평온함 속에 천군은 언제든 명부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실력은 있군.”
“절정 중상은 됩니다.”
소문파에서 절정의 고수가 나왔다면 나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제법 명성을 날린단 한들 이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놈은 자신의 실력보다 더한 명성을 얻고 싶었는지, 제 꾀에 제가 넘어가 버렸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 놈의 발버둥이 천하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목을 끄는 능력은 있군.”
“무공보다 암수에 뛰어난 놈입니다. 일례로 놈의 무공으론 음살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머리를 쓸 줄은 알아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천군은 의심을 지웠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묵암이 실패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검제는?”
“취선과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의심을 완전히 지우진 못한 듯합니다.”
“그리 간단히 의심을 지웠다면 그거야말로 기만술이겠지. 그렇다면 확실한 물증을 줘야겠군. 얼마나 진행됐지?”
“곧 완성됩니다.”
“방해물 하나쯤은 처리하고 가야겠군.”
남궁세가와 개방이 걸림돌이었다. 그렇다고 검제와 취선을 당장 처리하면 무림맹이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더욱 확실하게 흔적을 지워야 했다.
“북해는 어찌 되어 가지?”
“조만간 승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중원을 흔들고 새외로 눈을 돌리려는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새외를 정리한 후 중원 공략으로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려면 순차적으로 계획을 실행해 나가야 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맞물려서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한다. 도중에 실패가 있어선 안 되었다.
***
살판이 난 무진이었다.
곽가장에서 제공하는 단물을 쭉쭉! 잘도 빨아먹었다. 강소성의 특산물과 신선한 고기 위주로 삼시 네끼 진수성찬은 기본이며, 명주와 명차를 맹물처럼 들이부었다. 혼자서 족히 백인분의 비용을 가뿐히 소화했다.
능히 백부부당(百夫不當)의 위용이었다.
곽가장에는 부당한 처사겠지만.
소를 백 마리나 키워도, 무진을 방치하다간 가문이 거덜 나게 생겼다. 혼자서 흥청망청 즐기는 것도 정도가 있거늘. 자기 집보다 남의 집에서 훨씬 편하게 지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서 곽철용이 동생을 데리고 별채를 찾았다. 시일을 끌어 봤자 가문의 재정만 부질없이 소모되었다.
아찔!
일어서지도 않았다. 앉은 채로 고개만 까딱하는 무진을 보자 곽철용은 뒷골이 당겼다.
“어서 앉으세요. 왜 멀뚱히 서서 보기만 하는 겁니까? 제 낯짝은 두껍지 않아서 부끄러움을 많이 탑니다.”
부끄럼을 타기는 누가?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다니, 뻔뻔한 낯짝이 금강석보다 단단했다. 이런 놈을 기다리게 했다니, 험한 꼴을 당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더욱이 실체가 드러나자 대놓고 거드름을 피웠다. 그런데도 ‘네가 어쩔 거냐?’라는 듯 적반하장이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네.”
“얼마쯤 고민해 보고 오셨습니까?”
“……?”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보려는 곽철용의 의도는 시작도 해 보기 전에 틀어막혔다. 보문상단과의 혈연을 내세워 협조를 받아 보려는 계산은 개수작이 되었다.
‘천하의 속물이 따로 없구나!’
‘그거 보쇼, 애초에 융숭한 대접을 했으면 이런 험한 꼴 안 당하지!’
형님의 인상이 구겨지자 곽철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처음부터 계산적으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계산적으로 나가면 무진은 더욱 계산적으로 나오는 성격이었다.
물론, 환대를 받아도 계산은 똑바로 해야 했다.
공짜를 바란다면, 머리털을 전부 뽑아 주는 수가 있었다. 다시 자란다고 안심하지 말기를. 여행할 때마다 들러서 머리털을 뽑을 거다.
“천 냥이면 되겠나?”
“저도 양심이 있지, 아내의 가문과 연이 있는 분을 매정하게 대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복을 차신 건 전적으로 곽가장입니다.”
금전으로 천 냥이면 적지 않았다. 곽철용으로선 최대한 크게 불렀다고 생각했거늘, 무진에겐 감흥도 주지 못했다. 천 냥을 일 푼처럼 여기고 있었다.
“얼마를 원하는 겐가?”
“곽가장의 주요 사업을 보니 이만 냥도 안 나오겠더군요. 하지만 미래를 본다면 오만 냥까지는 가능할 듯싶네요.”
헉!
천 냥에서 순식간에 오만 냥이 되었다. 말 한마디에 수십 배로 비용이 늘었다. 곽철용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작자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수십만 냥을 물처럼 쓴다더니, 천 냥은 돈도 아니라는 건가?
“오만 냥은 너무하지 않나?”
“왜 이러실까? 풍검문에서도 그 정도는 해 줬습니다.”
풍검문 단독이 아닌, 관과 여러 문파의 보상금을 합산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 사실을 밝히진 않았다. 협상의 기본은, 일단 크게 지르고 보는 거다.
“우린 풍검문과 사정이 다르네.”
“근래 소가장이 하북팽가의 지원을 받아 위세가 아주 대단하다던데. 당장의 이득을 따지겠다면 하는 수 없지요. 잘 지내고 갑니다.”
아쉬운 것 없는 무진이었다.
소가장이 곽가장을 집어삼키고 단양을 지배해도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다. 영역 싸움이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고, 약하면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더군다나 하북팽가가 소가장을 공짜로 도와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가장이 하북팽가와 맺은 계약에 비하면 오만 냥은 공짜나 다름이 없었다.
무진은 곽가장의 사업체와 보호비 견적을 개방에서 건네받아 합당한 액수를 찾았다. 어림짐작하는 무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보게, 잠시만!”
“육만 냥 되시겠습니다.”
……이런 날강도를 봤나!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표본을 보여 주는 무진이었다. 상도(商道)의 기본이 사람이라지만, 무진은 딱히 곽가장과 연을 맺을 이유가 없었다. 작은 인연이 있다 하나, 서로 이용하려고 했으면 받을 거 받고 줄 거 주면 깔끔했다.
“어째서 육만 냥인가?”
“곽가장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마십시오.”
가문을 칭찬했음에도 곽철용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돈을 내지 않으면 가문의 가치도 똥값이 될 수 있다는 협박처럼 들렸다. 그리고 무진의 무식한 행패에 눈이 돌아 심계를 간과했다. 그는 곽가장과 주변을 철저히 조사하고 찾아왔다. 그에 비해 자신은 소문에 일희일비하여 사태를 키웠다.
“검보를 개량할 수 있겠나?”
“그럼요. 굳이 보지 않아도 됩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곽철용은 울화가 치밀었다.
가문의 검보는 조상 대대로 개선이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가문의 정수가 담긴 검보를 시중에 떠도는 삼류 무공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부들부들!
건방을 떠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 대 시원하게 치고 싶었다. 그러나 치고 싶다고 해서 칠 수 있는 인간이 아님을 모르지 않았다. 주먹을 내지르기도 전에 처맞고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개량만 해 준다면 원하는 대로…… 아니, 육만 냥을 내어주겠네. 그러나 당장은 다 줄 수 없으니 시간을 주게.”
“우리가 남도 아니고, 이자만 넉넉히 주신다면 기간이야 얼마든 늘려 드리지요.”
차라리 남이 낫지.
기간을 늘려 주는 대신 이자까지 받아 처먹었다. 벼룩의 간도 물에 불려서 처먹을 새끼였다. 곽철용은 쌍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아 내며 계약을 마무리했다.
“이 부분에 수인하시면 됩니다.”
“검보를 부탁하네.”
수인을 마친 곽철용은 품에서 검보를 꺼내 무진에게 내어주었다. 검보를 힐끗 바라본 무진은 곽철용에게 제안을 했다.
“검보만 개량한다고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외인이 나설 일은 아니네.”
소가장과의 영역 다툼은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었다. 욕심을 드러낸 이상, 정파라고 해서 곱게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정파도 자파의 이득이 걸려 있으면 얼마든지 사파처럼 행동했다. 그저 대놓고 하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 정파와 사파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척도는 이거다.
보이지 않게 해결한다, 정파.
대놓고 힘으로 해결한다, 사파.
하나, 정파의 낯짝 두꺼운 나이 든 양반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위선과 포장은 있어도, 인정은 명예의 실추로 여기니까. 끝까지 자기를 포장한 사람은 후일 대협으로 평가를 하겠지.
“하북팽가에서 공을 들인다면서요. 저도 투자를 한다 치고 공을 들여 볼 생각인데, 어떠세요?”
“무공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줄 아나!”
“그거야 밑천을 드러낸 사람이나 그렇죠. 곽가장은 잠재력이 있습니다.”
“진심인가?”
“성과가 없으면 만 냥을 줄여 드리지요. 단, 계약을 맺은 이후엔 간섭은 불가합니다.”
저의가 굉장히 의심스러웠으나 곽철용으로선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최소한 무진의 경지는 초절정 이상일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확신한다면,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계약금이 이만 냥이었다. 이건 뭐, 천 냥 단위는 애초에 꺼내지도 말라는 협박처럼 들렸다. 만 냥 단위가 일상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곽철용은 검보와 훈련에 팔만을 태워야 하는 현실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까지 와서 뒤로 물릴 수도 없는 노릇,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정해야 했다. 더는 나빠지지 않을 거란 작은 희망에 수인을 찍었다.
‘기왓장 하나까지 탈탈 터는구나.’
형님이 수인을 또 찍었다.
곽철웅은 손도 안 대고 가산을 털어 가는 무진의 교묘한 상술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막무가내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또 아니다. 철저히 계산적이며, 타당한 근거를 제시했다.
‘무인이란 자가, 그것도 고수란 자가! 왜 이렇게 돈을 밝혀!’
곽철웅도 돈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돈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살아가려면 필요했다. 그렇더라도 광적으로 재물을 탐하는 무진은 도가 지나쳤다. 까놓고 말해, 무진의 자산이 곽가장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다.
“장주님이나 장로들은 보는 눈도 있을 터. 편의를 봐 드릴 수 있습니다. 참고로 훈련이 제법 힘듭니다.”
“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그거야, 성의에 따라 다르겠지요.”
……이런 개 같은 종자를 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