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70
169 배운 대로(2)
따로 개인 훈련을 시켜 주겠다는, 일종의 일대일 전담과 같았다. 가문의 무인들과 같이 훈련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체면에 손상이 갈 거란 뜻이다.
그것이 곽철용과 곽철웅에게는 협박처럼 들렸다.
개망신당하면서 빡세게 훈련할래,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조용히 훈련할래?
선택은 자유지만, 쌓아 놓은 가문 내의 명성과 명예가 곽철용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그럼에도 선뜻 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또 얼마인가?”
“원래 일대일 전담은 가격이 좀 나갑니다. 하지만 이번엔 특별히 십만 냥에 퉁 치겠습니다.”
기어이 십만 냥을 채우는 무진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에 곽철용과 곽철웅은 혀를 내둘렀다. 앉은자리에서 대체 얼마나 뜯겼는지 모른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까우시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이 중하지, 명예가 중요한가요? 개망신을 당해도 이승에서 구질구질하게 사는 게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만해, 이 개 같은 작자야!
곽철용과 곽철웅은 이성을 잃고 검을 뽑을 뻔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못해 잔혹하다.
“삼 년 분할도 됩니다.”
오 년은 이자가 세단다.
저 얄미운 놈의 면상을 한 번이라도 시원하게 갈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빌어먹을!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맞아 줄 위인도 아니고, 성깔도 더러웠다.
“수인하면 되나?”
“그럼요.”
“이제 끝이겠지?”
“저 그렇게 도둑놈 아닙니다.”
네가 도둑놈이 아니면, 세상에 도둑이 어디 있는 거냐!
한밤중에 남의 집 담벼락을 넘어야만 도둑이냐고!
곽철용의 일생에 두고두고 회자될 끔찍한 계약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계약서의 하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가문에 불이 날 수 있다고 했다.
돈 안 주면 밤중에 몰래 와서 불 지르겠다는 거잖아.
그걸 계약서 내에 명시하는 인간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있었다.
인간 망종 같은 위인이.
당장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으나 곽가장엔 하나밖에 없는 동아줄이었다. 단, 돈값에 따라서 동아줄의 성능이 확연히 달라졌다.
후다다닥!
더는 들을 생각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은 곽철용, 곽철웅 형제는 별채를 서둘러 벗어났다. 그저 찾아왔을 뿐인데, 십만 냥의 거금을 홀라당 털렸다. 그런데 가만히 놔둬도 가산은 소모되었다. 별채에서 대체 뭔 지랄을 하는지 가문의 한 달 예산이 며칠 만에 사라지곤 했다.
-이젠 본업을 바꿀 요량이냐?
‘아무 사이도 아닌데, 돈이 중요하지 사람이 중요해?’
작은 연을 고려해서 형님의 아들을 통해 정수를 전해 주었다. 그러면 감사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데 시험하려고 했다. 괘씸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오만 냥에도 절충이 되었을 텐데. 결국, 자기가 한 만큼 돌아오는 법이다.
-교묘히 사기를 쳤으면서 말은 청산유수군. 요즘은 허접한 걸 잠재력이라고 표현하냐?
‘굴리다 보면 잠재력이 폭발하는 거지.’
곽가장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는 표현은, 명백한 접대용이었다. 실상은, 워낙 무공이 형편없어서 발전의 여지가 무궁무진했다. 이런 경우 나태한 정신만 개조해도 일취월장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컸다.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일이나 해.’
-싫다면? 나에게도 하루 여섯 시진은 보장받을 권한이 있다.
‘그러고 보면 팽가가 수상하긴 했지.’
-아무거나 갖다 붙이지 마라! 그딴 건 운명이 아니다! 그냥…… 찍은 거잖아!
마왕은 다른 의미로 심기가 불편했다. 마신교는 오랫동안 연구하여 백년대계를 완성했다. 그런데 어째서 무진의 무계획에 망가지냔 말이다. 성공해서 다행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럽다. 무소식이 희소식도 아니고, 무계획이 성공의 지름길이 되고 있었다.
‘무계획이 상팔자라잖아.’
-무자식이겠지!
아무려면 어때, 뜻만 통하면 됐지. 안 통하면 통하게 할 정의로운 주먹이 있었다.
무진은 대충 검보를 훑은 후 마왕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딱 봐도 초절정 이상은 나오기 힘든 적당한 검보였다. 완성된다고 해도 자질이 뛰어난 녀석도 드물고, 철호처럼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곽가장의 가장 큰 문제는 검보라고 보기도 힘들다. 삼류 문파의 고질적인 병폐인 체질 개선이 되지 않으면 검보가 개량이 되어도 실전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남궁연화, 태진, 육칠을 불렀다.
“우리보고 가르치라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달 안에 성과를 어떻게 내?”
“나한테 배운 대로만 하면 돼.”
“우리한테 대체 뭘 가르쳤다는 거야?”
“곽가장까지 오면서 많이 배웠잖아. 너희들도 사랑을 베풀어야지, 안 그래?”
내리사랑도 사랑이지, 아마.
잡것들을 가르치는데 나 같은 고급 인력까지 나설 필요가 있나. 지금까지 배운 바를 성실히 수행한 동료를 믿었다.
친구, 아들, 거지가 힘을 합하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있다면, 사랑이 잘못된 거겠지.
무진의 의사를 파악한 남궁연화, 육칠, 태진에게서 의욕이 샘솟고 있었다.
“그런 거였어. 맞아, 사랑을 베풀어야지.”
“제게 베풀어 주신 강 대협의 사랑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겁니다.”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곽가장과 공유하겠습니다!”
사랑을 거론하는데, 남궁연화, 육칠, 태진의 얼굴이 무진과 흡사했다. 태진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혈육을 넘어선 끈끈한 유대였다.
크크크크크!
방 안에선 웃지 않아도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랑의 뜀박질은 기본이지. 크크크크!’
‘사랑스러운 절벽이 근처 어디에 있더라? 크크크크!’
‘사랑이 꽃피는 포구까지 가야겠지. 크크크크!’
남궁연화, 육칠, 태진은 곽가장까지 오는 동안 확실히 강해졌다. 배움에 위아래가 없듯, 가르침을 독식하진 않는다. 확실하게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만 당할 순 없지.
아닌 척하지만 내심 불만이 많이 쌓여 있었다. 풀어 주지 않고 쌓기만 하면 언젠가는 폭발할 수도 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사랑을 베풀어야 했다.
흠.
좀 위험한데.
무진은 친구, 아들, 거지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자신이 내린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된 것 같았다. 자칫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함부로 검기 날리지 마.”
“왜?”
“벼랑에서 줄 묶어라.”
“아!”
“장강까지 가지 마라.”
“헉!”
이것들이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육칠은 평범하긴 해도 거지고, 남궁연화와 태진은 천재적이었다. 일반인들이 같은 훈련을 받으면 뒈질 수도 있었다.
“너무해.”
“아버지, 강해질 기회는 주어야 합니다.”
“동일 훈련은 필수입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무진은 사달이 나기 전에 제약을 건 후 애들을 내보냈다. 그냥 내보냈다가는 줄초상이 날 게 뻔했으니.
‘사랑을 왜곡하면 안 되지.’
-사랑이 그런 뜻이면 받고 싶지 않을 수밖에.
사랑을 곡해하지 말라고.
***
시답지 않은 검보의 개량은 보자마자 끝이 났지만, 시간을 두었다. 검의보다 중요한 것은 체질 개선이었다.
남궁연화, 육칠, 태진은 연무장에서 안면을 익힌 서른 명을 데리고 근처의 산으로 향했다.
‘우리가 왜?’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의문은 선량한 폭력으로 깔끔하게 해결했다. 한 번 맞아 본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두 번째는 수월한 편이었다.
“다들 매우 느립니다!”
“다들 굼벵이를 삶아 드셨습니까!”
“후방으로 지금 검기 나갑니다!”
곽가장에서 나와 산까지 족히 삼십 리였다. 이 거리를 전력으로 뛰고 있었다. 숨을 고르면서 뛰어도 숨이 찼다.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였다.
스왁, 서걱!
뒤처져 있던 장흥의 목 뒤가 간발의 차이로 베어졌다. 살이 살짝 베여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게 뭐야?’
‘돌았나?’
‘나 다시 돌아갈래!’
그제야 그들은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다. 전력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뛰지 않으면 베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꽈아아앙!
후방에서 날아오는 검기와 권기의 향연에 다들 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살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흐억, 허어억!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한계가 다가왔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기 위한 발버둥은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었다. 그들조차도 믿지 못할 가능성의 폭발이었다. 우리에게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 지옥 같았다.
“……죽을 것 같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더는 못 가겠습니다!”
“갈 수 있습니다.”
“……숨이 막힙니다!”
“입, 코, 열어 놓습니다.”
남궁연화, 육칠, 태진은 바로 옆에서 훈련생들의 열의를 북돋웠다. 물론, 말로써 끝내지 않았다. 열외가 되는 자들은 따로 훈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 받고 온 자는, 다시는 열외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벼랑입니다!”
“줄 묶습니다.”
“……그래도 벼랑입니다!”
“나 때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살려!”
“안 죽습니다.”
곽가장의 무력대인 풍호대와 폭호대의 대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이게 과연 인간이 할 짓인가? 설득력 있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벼랑에서도 따라붙어 한계를 시험했다.
헉!
대원들은 기겁했다.
‘줄도 안 묶고?’
‘저것들이 인간이야!’
‘뭐가 저렇게 빨라!’
자신들을 죽이려고 벼랑으로 떠미는 줄 알았는데, 같이 따라오고 있었다. 하물며 줄도 묶지 않고 평지처럼 벽호공을 시전했다. 처음부터 정상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볼수록 미친 연놈들이었다.
두드드드!
작은 사태가 일어났다.
뒤처지는 자들을 위해서 벼랑의 벽면을 살짝 두드렸다. 저들의 수준을 고려한 작은 소요였다. 무진이었다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을 텐데.
“고마워해야 합니다.”
“우린 더했습니다.”
“살고자 하면 삽니다!”
곽철용의 아들들, 곽이정과 곽이철도 훈련에 참여했다.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참여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훈련에 참여하면 다시 물리지 못했다. 싫다고 방에 숨어 있다가 개처럼 머리끄덩이를 잡혀 끌려 나왔었다.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괴물 같은 연놈들!’
이런 괴물들을 시험하겠다고 달려들었으니,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훈련에 익숙했다.
그렇다면 이 연놈들은 이따위 말도 안 되는 훈련을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는 거잖아.
‘아빠, 나는 왜?’
애초에 싫다고 했는데 억지로 참여한 곽이선은 아빠를 원망했다. 이건 훈련이 아니라 고문이었다. 이런 훈련을 하루도 아니고 한 달이나 받아야 한다니!
“차라리 날 죽여…… 까악! 살려 주세요!”
“죽이지 않습니다.”
방금 죽을 뻔했는데, 그딴 말이 나와!
나 여자라고! 그것도 아리따운!
곽이선은 베어진 옷자락을 보며 섬뜩한 전율을 느꼈다. 저 인간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런데 사정을 봐주고 있다고 말했다.
미친 연놈들!
‘아빠, 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