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74
173 구밀복검(3)
곽가장과 소가장의 비무 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비무 전에 소문을 낸 효과였다. 발뺌하기에는 늦어 버렸다. 일파만파로 번져 단양을 넘어 강소성을 떠들썩하게 했다.
비무대는 곽가장과 소가장의 경계인 노성평에 설치했다. 평야의 갈대와 숲을 쳐 내고 관람석까지 갖췄다.
정해진 날짜가 되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곽가장은 상인들을 동원해 가판대를 설치해 음식점을 열었다. 일회성이기는 하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특히 도박판을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이게 크다. 비무 결과에 돈을 거는 방식이고, 오전제이기에 승전을 맞히면 배수로 커진다.
세상에 도박 싫어하는 사람 없고, 한탕에 빠지지 않는 자도 드물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대륙전장에 수수료를 내고 사람을 불렀다.
웅성, 웅성!
곽가장과 소가장은 임시 막사를 비무대의 좌우로 설치했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비무대를 높이진 않았다.
“가문의 명운이 걸린 비무대회는 오랜만인데.”
“누가 이길까?”
“소가장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잖아. 그럼 답 나온 거지.”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하북팽가가 배후에 있다더라.”
“이거 돈 좀 따겠는걸.”
“너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서 열에 아홉일 거다.”
세상 재밌는 일이 남의 집 불구경과 싸움질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가문의 명예와 운명을 걸고 벌어지는 비무였다. 이목이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필사적인 대결이 될수록 관객의 호응은 커질 것이다.
“소가장이 왔어!”
“곽가장도 왔어!”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의 깃발을 세워 위상을 돋보이게 했다.
비무 당일까지 철저히 서로의 실력을 숨겼었다. 이제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되었다.
비무 전 작성한 문서에 수인해야 했다. 사전에 검토한 내용이기에 읽어 내려가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소운천을 중심으로 소가장의 핵심 수뇌부가 자리했다.
“이런 식으로 보게 돼서 유감이군.”
“그런 말을 하기엔 늦은 것 같소이다.”
곽철용은 편치 않은 심사를 숨기지 않았다. 하북팽가를 등에 업고 욕심을 부렸으면서 아닌 척 위선을 떠는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그렇긴 하지. 한데, 꽤 파격적이군. 자네답지 않게.”
“사람은 변하기 마련 아니겠소. 반면, 소가장은 여전하오이다.”
“자신감은 중요하지. 그 마음 변치 않길 바라네.”
“당신이나 다른 소리 하지 마시오.”
날이 선 곽철용의 말투에도 소운천은 화를 내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주제에 날을 세워 봤자 어설픈 위계에 지나지 않았다.
응?
그런데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놈이 곽철용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것처럼, 마치 그가 곽가장의 중심처럼 느껴졌다.
“자네는 누군가?”
“촌 동네라서 그런지 소식이 느리네. 나 같은 유명인은 보면 바로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소정무와 장로들이 인상을 쓰며 무진을 노려보았다. 애송이가 입을 함부로 놀리고 있었다. 언성을 높이려고 하자 소운천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디, 어떻게 하나 지켜보려는 심산이었다. 오랜 세월 쌓아 온 냉철한 이성이 본성을 억누른 것이다.
“고인이 몰라봤군. 내 나이가 되면 어제오늘 일도 깜박깜박한다네. 그러니 안목을 높여 주지 않겠나?”
“원하신다면. 저는 강무진입니다.”
“……?”
이름을 듣고도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아냐고 신호를 보냈지만 다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뭔가 있어 보였던 것과 달리,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안달이 난 놈 같았다.
“강호 소식에 진짜 깜깜하시네. 제 별호가 천권입니다. 이러면 좀 아시겠습니까?”
“천권?”
“……!”
가벼이 여기기 어려운 별호였다. 하늘의 이치를 담은 권공의 대가에게나 어울리는 별호였다. 그런데 현재 천권이란 별호를 쓰는 강호의 무인은 없다.
소운천이 아들에게 물었다.
“아느냐?”
“천권은 몰라도, 천운권은 들어 본 듯합니다. 저 허세를 보니, 저자는 천운권이 분명합니다.”
천권이 아닌 천운권을 떠올리자, 다들 기가 막혀서 혀를 찼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 자기 스스로 별호를 지었다. 한 글자 차이이긴 한 천권과 천운권은 아예 다른 영역이었다. 운이 좋아 명성을 얻더니, 이젠 별호를 가지고 사기를 치고 있었다.
“천운권이라니! 나 천권이야, 천권! 대체 언제 적 별호를 거론하는 거야!”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무진이 천권을 연이어 강조했다. 함부로 나불거리면 좋지 않을 거란 위협과 더불어.
‘하, 이런 맹랑한 놈을 봤나!’
소운천의 별호는 적풍도였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신도(神刀)란 별호조차 얻지 못했다. 별호에도 단계가 있다. 신도는 왕, 제, 군, 성, 신으로 이어지는 단계의 아래에 있었다.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애송이의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 소운천은 애송이와 말싸움을 길게 끌고 싶진 않았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천권을 몰라뵈어 송구하군. 한데, 그대는 곽가장과 무슨 사이이기에 여기에 있는가?”
“제 아내의 본가와 매우 깊은 사이입니다.”
깊은 사이라니 어디가! 요즘에는 깊은 사이에 주먹질부터 하냐?
소운천이 아닌 곽철용과 장로들이 속으로 발끈했다. 불과 조금 전만 해도 남보다 못한 사이라고 못을 박았으면서. 조금만 잘못해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서슴없이 했다.
“그래서 비무에 참여하나?”
“안심하세요. 저는 나가지 않습니다.”
갈수록 가관으로, 정말 가소로운 태도였다.
소운천으로서는 처음 보는 미지의 생명체였다. 이딴 미친놈이 강호를 돌아다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도산검림의 강호였다. 황천길에 올랐어도 벌써 오르고도 남을 망종이었다. 세상이 변했던가? 맘 같아서는 강제로라도 비무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비무의 공정성은 차기 천신이 될 제가 공증하니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싸우면 됩니다.”
“영광이군. 더는 할 말이 없을 듯하니 잘 지켜보게.”
천신(天神)이란다. 천대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놈이었다.
말을 섞기도 귀찮아진 소운천은 그쯤에서 일단락한 채 소가장의 막사로 발길을 돌렸다.
아!
곽철용과 장로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조금 더 도발해서 비무에 올렸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자명했을 텐데. 차도살인지계가 통하진 않았다. 과연 소가장의 늙은 여우다웠다. 작은 변수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함이다.
스윽!
휙!
무진이 돌아서자 곽철용과 장로들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 가문의 명운이 걸려 있는 비무보다 무진의 눈초리가 훨씬 무서웠다. 작정하고 개판을 치면 소가장이든 곽가장이든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자꾸 날로 드시려고 하네요. 그러다 탈 나요.”
“우린 날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네!”
“왜요, 막상 붙으려고 하니 겁이 나십니까?”
“겁은 무슨, 우린 자신 있네!”
하북팽가의 지원을 받은 소운천을 비롯한 소가장의 기세가 상당했다. 그에 반해 자신들은 개량된 검보를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과연 통할까? 작은 의심이 남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지도는 완벽하니까. 절대 질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도 진다면 보충 교육을 받아야 할 겁니다. 지는 사람은 무조건. 아니, 제가 데리고 다니겠습니다.”
“기필코 이기고 말겠네!”
“소가장을 잘근잘근 씹어 먹겠다!”
혹시나 했던 불안감 따윈 순식간에 날아갔다. 정신이 확! 깼다. 보충 교육을 받을 바엔 차라리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편이 낫다. 하물며 데리고 가겠단다. 질 수 없다는 필살의 각오를 다졌다.
‘지지 않아!’
‘차라리 죽고 말지!’
‘못 가! 절대 못 가!’
같이 여행하고 싶지 않은 사람 대륙 일위.
무진은 소가장의 천막을 응시했다. 오해의 소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정련된 기운이 숨죽이고 있었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비무는 가문에서 선별된 다섯 명이 치르고, 삼승을 따내면 끝이 난다. 그러니 첫 대결부터 신중하게 치러야 했다. 한 번 패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무 순서는 그 전 대결이 끝나고 나서 정하며, 시작하기 전 사회자에게 이름을 알렸다. 혹시나 상대의 패를 보고 순서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였다.
“비무자는 비무대 위로 올라오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비무자를 부르자 소가장과 곽가장에서 선봉을 맡은 무인이 비무대로 올라갔다.
곽가장은 파운검 호일도였고, 소가장은 파산도 양호필이었다. 둘 다 가문을 대표하는 장로였으며, 예전부터 일면식이 있었다.
“자네가 나올 줄은 몰랐는걸.”
“오늘은 전과 다를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다.”
비무 전에도 몇 번 붙어 본 적이 있었고, 호일도는 매번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양호필이 자신만만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둥둥둥!
북을 울려 비무의 긴장감을 높였다. 대회의 이목이 쏠리며 관중의 환성이 터져 나왔다.
카아아앙!
호일도의 검공과 양호필의 도공이 충돌했다. 거친 파공성이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자네의 검은 내게…… 어?’
일합의 결과, 자신했던 양호필의 안색이 변했다. 검에서 발출된 검경이 양호필의 예상 수위를 넘어섰다.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한순간에 승기를 넘겨주고 말았다.
‘그래 봤자 나에겐 안 된다!’
놀라긴 했지만, 양호필은 호일도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승기를 잡으면 파운검법의 절초를 뿌리는 버릇이 있었다. 궤적이 커지며 생기는 빈틈이었다. 몇 번의 대결에서도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약점이다.
‘어?’
안 써!
파운검법의 후반식을 쓰리란 예상과 달리 호일도는 기본 검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약점을 찌르며 반격할 기회를 노렸던 양호필이 틈을 내어주고 말았다.
차아악!
베였다.
조금 더 깊었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일도는 양호필이 회복할 틈을 주지 않았다. 기본 검식으로 압박한 후 궁지로 몰았다. 이어서 파운검법의 절초 회운낙하를 펼쳤다.
‘걸렸…… 어?’
회운낙하를 펼칠 때를 기다려 반격을 노렸던 양호필의 파산관천은 허공을 꿰뚫었다. 호일도는 회운낙하를 펼치는 척하면서 육신을 비틀어 양호필의 사각을 점했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스웨웨웩, 커어억!
치명상은 간신히 면했어도 기맥이 뒤틀리는 충격을 받은 양호필은 연신 밀렸다.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호일도는 기본과 절초를 절묘하게 운용하여 양호필을 비무대 밖으로 떨어뜨렸다.
“곽가장의 승리입니다.”
와아아아아아!
관중의 함성에 넋을 놓았던 소운천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압승을 예견했기에 생각지도 못한 패배였다. 양호필에게 호일도는 다 잡은 먹잇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