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77
176 불만 있는 사람?(2)
턱이 부서지면서 이빨과 뼈가 안으로 파고들어 뇌까지 터져 나갔다. 짧은 순간 경이 실리며 단숨에 패룡대원의 목숨을 끊어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숨통이 연이어 끊어졌다. 전군보에 의한 예측의 장에 걸린 패룡대는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퍼억, 푸악!
머리가 부서지고, 심장이 박살 나고, 내장이 터져 나갔다. 치는 족족 막기는커녕,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모두 실에 걸린 인형처럼 무진이 나아간 공간 속에서 핏빛 혈로의 제물이 되었다.
푸아악!
마지막 남은 패룡대를 패 죽인 후 무진은 돌아섰다. 놀랍게도 육신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주변에는 신체가 온전하지 않은 고깃덩어리들이 핏물과 어둠에 묻혀 있었다.
“냄새 좋네.”
비릿한 혈향에 입맛을 다시는 무진이었다.
적아를 막론하고 소름이 돋았다.
헐!
곽철용을 필두로 곽가장의 무인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참상에 마른침을 연이어 삼켰다. 하북팽가의 비밀 병기가 습격할 때만 해도 각오를 다졌거늘, 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무위였다.
하나, 그보다 더 전율하게 하는 것은 태연함이었다. 전투에서 보여 주는 무진의 평온함은 그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모습이 진짜구나!’
‘형님! 이런 자를 시험하려고 한 거요!’
‘우리가 살신을 모셨어!’
무진이 처음 곽가장을 찾은 날을 상기한 곽철용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시험하지 않았다. 뭘 하든,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이다. 저항, 그딴 말이 통하는 대상이 아니다.
딸꾹!
곽이정, 곽이철, 곽이선은 터져 나오는 딸꾹질을 틀어막으려고 애를 썼다. 상식을 불허하는 광경이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하북팽가의 기세는 엄청났다. 명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곽가장을 품은 무진은 아예 차원이 다른 강자였다.
신주이십일강이면 어떨까?
솔직히 상위 서열이 아니면 견주지 못할 듯싶다. 그들은 이제야 아버지들이 왜 쩔쩔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런 괴물한테 대들 생각을 해선 안 되었다.
“어이, 노인네. 정신 안 차려!”
화들짝!
환상에 빠진 줄 알았다.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은 지옥이었고, 절대 현실일 리가 없다. 이건 꿈이고, 악몽이 분명했다. 저들이 누군가! 하북팽가의 숨겨진 전력이자 비밀 병기였다.
그런 자들이 한 호흡도 되기 전에 전멸했다. 무엇보다 말이 안 되는 것은 팽호산의 죽음이었다. 그가 어떻게 저리 허망하게 간단 말이던가. 하지만 작금의 지옥도를 만든 악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면서 현실로 급히 돌아와야 했다.
이런 놈이 천운권이라고?
세간의 소문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깨닫게 된 소운천이었다. 놈이 다가올수록 이빨이 다닥다닥 부딪치면서 소름이 돋았다.
“나를 죽이면 곽가장도 무사치 못할 것이다!”
“그거야 당신 생각이고.”
무진의 가소로운 조소에 소운천은 절망했다. 마치 네놈의 수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곽가장으로 간 자식들도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째서 너 같은 자가 곽가장을 돕는 거지? 이건 아니야! 이럴 순 없다고! 내가 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당신 잘못은 아냐. 그냥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편해.”
인생은 원래 운이 칠 할이라고 하잖아. 엮이면 재수가 없는 거고, 안 엮이면 평온한 거지. 어쨌든 먼저 건드렸고, 살인멸구를 지시했으니 그 보답은 필수였다.
“날 어쩌려는 거냐!”
“너보다 네 집안을 걱정해야지. 난 지금 소가장으로 가서 모조리 다 죽일 거야.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어때, 괜찮지?”
남의 가정을 풍비박산 내려고 했으면, 같은 대접을 받아야지. 죄가 없다고? 그 집안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해라. 이렇게 말하면 어떤 기분이겠어? 한다는 소리가 상투적이었다. 실제로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이 악마 같은 놈. 그들은 죄가 없어!”
“너는 죄가 있어서 곽가장의 가솔을 죽이려고 한 거야? 강호가 죄의 유무를 따지는 이상적인 곳이었구나.”
무진의 빈정거림에도 소운천은 말문이 막혔다. 그로서는 도저히 반박하기 어려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세간에 알려지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알려질 이유가 없잖아. 밤중에 가서 싹 다 죽이면 그만인데. 어떻게 알겠어. 내 별호를 알면서.”
천운권이라 불리는 동시에 허풍권이란 별호가 따라다니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거짓말이라고.
무진에 대해서 사실대로 떠벌려 봤자 같은 취급을 받을 뿐이다. 눈앞에서 봤더라도, 믿는 사람은 반도 안 될 거다.
부르르!
이 사실을 소운천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체를 드러낸 무진은 천권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가장이 하북팽가보다 강한 것도 아니잖아. 막을 수나 있으려나. 크크크크크!”
이쯤 되면 누가 악당인 거냐!
협박을 대수롭지 않게 하고 있었다. 더욱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절묘하게 이용했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데 이보다 뛰어난 자가 또 있을까? 소름 돋는 협박이 아닐 수 없었다.
“악마 같은 놈!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 같은 이상적인 거 따지지 말고, 자기 스스로 헤쳐나갈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지. 자, 더는 시간이 없어. 건설적인 얘기가 아니면 허무하게 가는 거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무진의 의도는 지나치게 적나라했다.
오른손으로 검지와 엄지를 맞물리게 해서 원을 만들어 흔들고 있었다. 이걸 보고도 의도를 모른다면 상식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돈 달라고 대놓고 협박하네!’
‘뒷골목 삼류 왈패는 상대도 안 되는군!’
‘왜 익숙하냐고!’
지켜보는 자들에게도 목이 타는 광경이었다. 좀 전의 무참한 살육보다 더더욱 공포스럽다. 정파고 명분이고, 그딴 거 통하지 않았다. 이번 비무대회에서 가장 큰 이득을 챙겼음에도 만족을 몰랐다.
나는 아직도 돈이 고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모르면 인생 끝나는데.”
“……헙! 원하는 걸 말해라!”
“숨겨 둔 비자금하고 장부 싹 다 넘겨. 그럼 남은 소가장의 식솔은 살 수 있을 거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잖아.”
소운천같이 신중한 자가 숨겨 둔 자금이 없을까. 나중을 위한 장치를 해 두었을 것이다.
“비자금은 내가 아니면 찾을 수 없다!”
“안됐네. 잘 가.”
투심마안은 거짓을 구분하며, 굳이 고생하면서 찾진 않는다. 가는 길에 여유 자금 좀 얻겠다는데 비협조적이면 곤란하지. 그럴 바엔 안 먹고, 다 쳐 죽이는 편이 효과적이다.
가성비는 중요하니까.
무진의 노골적인 살의에 소운천은 다급하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자신이 살길은 없겠지만, 소가장까지 사라지게 놔둘 순 없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어쩌다 이런 악마 같은 놈에게 걸려서, 차라리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소가장에서 북쪽으로 오 리 떨어진 곳에 바위산이 있다. 중턱에 오르면 소나무 세 그루가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바위 터가 있다. 그곳에 자금을 숨겨 놓았다.”
“그것뿐이야?”
“그렇다.”
“거짓말. 자꾸 이러면 소가장의 핏줄이 계속 줄어들 텐데, 괜찮겠어?”
“……내 방에서 이어지는 통로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서 벽을 열면 장부와 자금이 있어.”
“그것뿐이야?”
“그렇다.”
“또 거짓말이네. 자꾸 짜증 나게 할래!”
소운천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어떻게 아는지, 말하는 족족 거짓과 진실을 구분해 냈다.
-내가 거짓말 탐지하는 사람이냐?
‘그거라도 해. 할 거 없잖아.’
마왕의 투심마안을 이용해서 소운천을 속옷까지 탈탈 털었다. 꽤 흡족한 결과물이었다. 예상대로 뒤로 구린 짓을 많이 했는지, 비자금이 상당했다.
받을 거 다 받았으니 미련은 두지 않았다. 마무리는 깔끔해야 하는 법이다. 인정에 얽매이면 뒤통수는 기본이거든.
“잘 쓸게.”
“……잠깐! 내가 잘못했다! 제발 살려 줘!”
“잘 가.”
“……젠장! 죽어서도 저주할 것이다!”
무진의 권공에는 인정이 서리지 않았다. 소운천과 같은 자는 복수심을 잊지 않는다. 그런 자는 살려 두면 두고두고 고달파진다. 이는 무공과는 관련이 없다. 독기를 품은 자는 때론 무력을 넘어설 때가 있거든.
푸슥!
가공할 권경이 소운천을 관통했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광경은 비현실의 극치였다.
소운천의 허망한 최후는 곽철용과 가솔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저리 허망하게 갈 만큼 허술한 인간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순식간에 끝이 나 버렸다. 일말의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무진의 단호함에 간담이 서늘했다.
‘우리가 대체 뭘 본 거냐?’
‘사신을 끌어들였나?’
‘심기, 무공, 성향까지, 이런 자가 있다니!’
고양이를 피하려다가 사나운 맹수를 끌어들인 격이었다. 곽가장의 미래가 어찌 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소가장과의 비무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뭐합니까, 치우지 않고.”
“예, 바로 치우겠습니다!”
곽철용이 공대를 하는데도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다. 아니, 의식을 했어도, 공대하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저는 소가장에 잠시 들렀다 오겠습니다. 혹, 불만 있는 사람 있습니까?”
“……!”
있을 리가.
있어도 말 못 하지.
같은 시각.
곽가장은 소가장의 습격을 받았다. 하나, 피해는 전무했다. 곽가장은 만약을 대비해서 가솔들을 대피시켰고, 선별된 무인으로 구성해서 소가장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소가장의 습격은 싱겁게 끝이 났다. 기습에 무방비인 줄 알고 대차게 들어오면서 함정에 걸려 삼분지 일이나 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비무에서 진 분기로 사태 파악을 하지 않은 까닭에 피해가 훨씬 컸다.
하지만 삼분지 이가 남았으니 곽가장의 주 전력이 돌아오지 않은 이상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었다.
웬걸.
앞을 남장여자, 거지, 애송이가 가로막았다. 주력이 빠져나가 상황 판단이 부족하다고 봤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에게 최악을 선사했다.
가볍게 여겼던 남장여자, 거지, 애송이가 평범하지 않음을 단 한 번의 격돌을 통해 깨달았다. 자기 딴에는 남장으로 변복했지만 어설펐다. 그러나 무공은, 어설프기는커녕 폭발적이었다.
뇌기가 번쩍할 때마다 소가장의 무인들은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주변을 통제하며 남장여인을 돕는 애송이와 거지도 만만치가 않았다. 게다가 곽가장의 무인들이 협조하자 무엇을 해 보기도 전에 죽거나 제압당했다.
털썩!
냉바닥에 무릎이 꿇린 소가장의 가주 소정무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칼은 반 토막이 났고, 손발은 상처를 입었고, 단전은 제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제길, 뇌기가 내 맘대로 제어가 되지 않았어.”
“저도 도중에 숨이 차서 검로가 흔들렸으니 송구하네요.”
“나도 이번에는 멋지게 십팔연각을 성공시키려고 했는데.”
이 연놈들이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자신들의 부족함을 되돌아보고 있지만, 역으로 되짚으면 소가장이 허접하단 뜻이 되었다.
“이놈들! 날 풀어 주지 않으면 곽가장의 가주와 무인들은 전부 죽을 것이다!”
소정무가 쥔 마지막 수단은 인질이었다. 하북팽가의 살인 병기들이 살려 두진 않겠지만, 지금 당장은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사실이 전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통할 것이다.
“단전을 부수죠.”
“그래야겠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