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78
177 불만 있는 사람?(3)
소정무의 외침 따윈 세 사람의 귀에는 닿지도 않았다. 그쪽엔 무진이 있었다. 소가장이 아니라 하북팽가가 전력을 끌고 와도 안 된다.
그들은 제압한 무인들의 단전을 두드려 으깨 주었다.
퍽, 크아아아악!
단전이 박살 난 무인들의 비명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혈이 제압되어 발버둥도 맘대로 치지 못했다. 핏발이 서며 눈을 뒤집어 까는 광경은 섬뜩함을 자아냈다.
오싹!
지켜보는 곽가장의 무인들마저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죽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놈들, 이런 짓을…… 크아아악!”
자기는 괜찮을 줄 알고 소리를 지르지만, 태진은 백정이 소를 잡듯 소정무의 단전을 부수었다. 무인에겐 전부라 할 수 있는 단전을 부수는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안전제일, 보신주의.
태진은 영웅 따윈 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시키면, 그게 무엇이든 입 닥치고 따르면 된다. 괜히 이유를 물어서 아버지의 입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분수에 맞는 행동이 삶의 여유를 가른다고 했다.
‘성질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요 꼬맹이!’
육칠은 나름 태진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간혹 아비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하물며 실전에서 힘을 발휘하는 녀석이었다. 싹수가 보이다 못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뭐 저런 것들이 다 있지?’
‘대체 뭐 하는 분들이세요?’
곽가장의 무인들은 신음이 판치는 장소에서 태연한 그들이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
곽가장과 소가장의 비무는 곽가장의 승리로 끝이 났다. 작은 문파는 아니나, 명문세가나 대문파에 비할 수 없는 일이라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진 사건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승부에 굴복하지 않은 소가장이 곽가장을 습격한 것이다. 사파도 아니고, 정파에 적을 둔 문파였으니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소가장은 이권은 물론, 명분마저 잃어 다시는 일어서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다행이라면 곽가장에서 아량을 베풀어 멸문은 당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곽가장은 세상으로부터 무력을 인정받았고, 명분을 쌓을 수 있었다. 단양뿐만 아니라 강소성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반을 얻었다.
“호산은?”
“행적이 끊어졌습니다.”
가문의 주인이 기거하는 혼원정.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기개가 넘치고 웅대한 기상을 풍기는 거각이다.
하북팽가의 가주 경천신도 팽위천의 의중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다시 떠진 그의 눈빛엔 안타까움이 깃들었다.
“그렇게 가면 안 되는 녀석이거늘.”
팽호산은 아버지가 데리고 온 숨겨진 자식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고 자신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으며, 위의 돌림자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팽호산은 인정을 받겠다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가문의 일원으로 소속되고 싶어 했던 녀석이다. 그런데 모진 세월을 보상받기도 전에 허무하게 떠나고 말았다.
“일찍이 호산을 가계에 넣고 자리를 주었어야 했어.”
“가주님의 탓이 아닙니다. 당시 대부인께서 워낙 완강히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십 년이 넘었어. 하물며 이번 일도, 탐탁지 않았다.”
“장로회의 의결을 통해 결정된 사안입니다.”
팽위천으로선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장로회의 힘이 워낙 강했다. 자신의 발언이 통하려면 장로회의 과반을 얻어야 한다. 패도의 화신으로 불린 아버지의 그릇에 미치지 못한 부덕이었다. 그러니 이복동생이 병기로 쓰이는 동안에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실패해서 다행이라니.’
성공했다면 장로회를 쥐고 흔드는 숙부의 그늘이 더욱더 짙어졌을 것이다. 이번 일을 주도하다시피 한 분이 숙부였다. 아버지가 있을 때와 다르게, 어느 순간부터 숙부의 세력이 강해졌다.
“숙부께선 어찌하시고 있지?”
“당분간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했다.
호산과 패룡대의 무력은 가문 내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혔다. 곽가장으로선 패룡대를 상대할 수 없다.
외부의 조력이 의심스러운 가운데 곽가장에 압력을 가한다면, 외통수에 걸릴 수 있었다. 소가장에 명분이 있다면 모를까, 곽가장이 화를 당한다면 세상은 가문을 의심할 것이다.
이건 좋지 않았다.
‘지금이 기회군.’
숙부와 장로회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내고 장로들의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 지금이 그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밝혀야 하는 일도 있었다.
“호산의 죽음을 알아봐라.”
“명을 받듭니다.”
***
가문의 위기를 들은 그녀는 남편을 재촉했다. 하루라도 빨리 가문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가족들의 안위를 살피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은 무리였다. 여건이 되어야 했다. 상단의 일로 출타 중인 남편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남편이 돌아오고 나서야 가문으로 향했다. 그러는 도중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최악이 아닌, 최선의 결과였다. 이로써 가문은 안정을 찾고 영향력도 강해질 것이다.
그녀는 이번 기회에 가문의 입지를 다지고, 그 자식에게 당한 앙갚음을 되돌려 줄 심산이었다.
가문에 도착한 그녀는 남편과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 괜찮으신 거죠?”
“너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구나. 서신을 보냈어야 하는데,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에요. 잘됐으면 된 거죠.”
“그보다 상단은 어쩌고?”
“이제 바쁜 일은 다 끝냈으니 며칠 더 있어도 돼요.”
오랜만에 딸을 봐서 기쁘기는 한데, 곽철용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문의 힘을 중시하는 딸의 성향을 봤을 때, 어찌 나올지 뻔히 보였다.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장인어른, 자주 찾아뵙지 못해 송구합니다.”
“바쁘면 어쩔 수 없지. 괜찮네.”
가문의 위기를 염려하는 반면, 은근히 지원을 바라는 눈치였다. 보문상단에서 힘을 쓰고 싶은 곽이영이었다. 일전에 그놈이 오면서 가문 내의 처지가 묘해졌다. 남편도 동생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고. 특히 아버님과 어머님이 그놈에게 홀라당 넘어갔다.
그런데 그놈이 눈앞에 있었다.
“어, 형님하고 아주머님을 여기서 보네요.”
“자네가 여기는 어떻게?”
“곽가장이 위기에 처했다는데 모른 척할 수 있나요.”
“제부가 관여할 일은 아닌데요!”
무진에게 날을 세운 곽이영의 반응에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식었다. 본가에서 남편과 아들이 망신을 당했다. 엄마로서 화가 나지 않으면 이상하잖아.
“제가 못 올 데를 온 거 같군요. 그럼 갈까요?”
“가다니, 어딜 가겠다고! 여긴 자네 집이나 마찬가질세. 맘 푹 놓고 있게. 영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서 무례를 사과하지 않고!”
아버지의 사과 요구에 곽이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왜 자신이 제부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태도도 이상했다. 제부가 쳐다볼 때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영아, 사과하거라.”
“동생아, 사과해!”
“누나, 사과하세요. 큰 실수예요!”
아버지뿐만 아니라 숙부와 오빠, 동생까지 나서서 사과를 권유했다. 사과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눈빛들이었다.
‘이게 대체?’
곽이영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무진은 결정타를 먹였다.
“하긴 싫겠지요. 그럴 만합니다. 그러나 저도 싫다는 사람과 오래 있고 싶진 않습니다. 차후, 곽가장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제발 가지 말게. 딸을 대신해서 이렇게 비네. 내 딸이지만 오냐오냐 키우는 바람에 독선적인 성향이 있어. 어릴 때부터 고쳐 줬어야 하는데, 내 덕이 부족했네. 그러니 제발 내 얼굴을 봐서라도 화를 풀게.”
“나도 영이를 대신해서 사과함세!”
“동생을 대신해 사과합니다, 강 대협!”
“저도 누나를 대신해서 사과하겠습니다!”
곽이영은 아버지, 숙부, 동생이 낯설어졌다.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들이 아닌 것 같았다. 어머니한테 가 봐야 하나? 하지만 어머니도 가족들과 다르지 않았다. 제부를 극진히 대하며 화를 풀라고 애걸복걸했다.
‘어째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부의 무공이 강하다곤 해도, 곽가장은 약하지 않았다. 소가장을 제압한 이상, 차후 강소성에서도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또한, 보문상단과 공조하면 영향력을 안휘성까지 확대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제부가 뭔데?
명성을 얻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허풍쟁이였다.
‘대체 뭐냐고! 나만 몰라?’
그녀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어이없고 화가 나긴 해도 가족들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가 경솔했어요! 제부!”
“가족끼리 실수할 수도 있지요. 제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앞으로 실수하지 마세요. 제 아내도 그걸 바랄 겁니다.”
사람을 갈구는 데 특화된 무진의 입이었다. 저 독살 맞은 주둥이가 나불거릴 때마다 인성이 죽어 갔다. 하물며 말도 안 되는 절대고수면서 쪼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알았어요, 제부(빠드드득)!”
“이 가는 거예요?”
“아니거든요!”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진정성은 중요하지. 그리고 받은 게 있으면 백배로 돌려주는 게 사람 사는 예의였다. 어딜 감히 남편 동생의 남편한테 함부로 대해!
“제가 중히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편하게 하게.”
“외인이 있는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라서.”
“……알겠네. 영아와 자네는 내원에 가 있게. 곧 갈 테니 저녁 식사나 같이하지.”
곽이영과 백유천은 의도치 않게 붙잡혔다가 거의 반강제로 안에서 밖으로 쫓겨났다. 자기 집에서 축객령을 당한 곽이영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세요.”
“이게 그렇게 넘어갈 일이야! 아빠가 나한테 왜 저래?”
“어쩔 수 없죠.”
“너까지!”
곽이선의 위로는 곽이영에게 통하지 않았다. 천대받는 연유가 분명히 있겠지만, 오랜만에 온 딸과 사위한테 너무한다 싶었다. 이런 대접이나 받자고 찾아온 게 아닌데.
“여보, 미안해요!”
“난 괜찮으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
백유천도 떨떠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가문에서 보여 준 것도 그렇고, 아들이 소룡대회에서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제는 허풍쟁이가 아닐 것이다.
‘하아, 내 부덕이구나.’
동생을 쫓아내고 잘 살기를 바란 자신의 잘못이었다. 모든 일이 원죄가 되어 돌아왔다.
사태 파악이 필요한 형부와 언니를 위해서 곽이선은 그간의 사정을 알려 주었다. 멋모르고 행동하기에는 상대가 지나치게 거물이다.
설명을 들을수록 곽이영, 백유천의 안색은 굳어 갔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범위를 초월했다. 마치 다른 세상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한마디로 설명은 충분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까불지 않는 게 좋아요.”
“……!”
굉장히 속물적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으리라. 곽이영과 백유천은 완전히 납득을 했는지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현실을 깨닫자 초라해졌다.
이젠 대세가 완전히 기울었다.
‘동생을 찾아가야 하나.’
‘아가씨의 맘부터 달래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