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92
191 비틀어진 운명(3)
-역시나 시집 보낼 생각이 없군.
‘어허, 사위라면 응당 장인의 십초식은 받을 줄 알아야지. 그 정도도 안 되면 얻다 써!’
-백 살 넘어서도 시집 못 가면 볼만하겠군.
‘아래로 팔십 살까지는 괜찮아.’
-그건 사기지!
사랑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백 살이 넘어도 미주는 아름다울 거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마왕은 몰랐다.
마왕과의 노닥거림은 그쯤하고, 거리가 두 배가 된 이상.
“……이 훈련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나만큼 강해지면.”
“……차라리 우릴 죽여!”
“죽고 싶은 사람의 소원이라면 들어줘야 한다고 그랬지.”
“산 사람 소원이겠지!”
육칠과 태진은 훈련에 적응이 되었……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느낌 탓으로 하고.
남궁연화는 훈련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괄괄하고 생생했다. 주눅 들지 않는 배포는 확실히 대단하다. 사내로 태어났다면 대장군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라서 포기할 필욘 없다. 여자는 황제가 되어선 안 된다는 법도 없고.
“쟤는 왜 안 해?”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잖아.”
그딴 말이 어딨냐고!
황보세령은 뜀박질에서 제외되었다. 무진이 허공섭물을 펼쳐 유유히 날아오고 있었다. 시아버지라면 능히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황보세령의 존경심 가득한 눈빛을 보니 흡족했다.
두둥실!
특히 기능성 허공섭물이라 허리와 척추를 정확하게 받쳐 주었다. 장시간의 여정에도 편안한 허공섭물이었다. 허공섭물이라고 해서 다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반드시 무진표 허공섭물이어야 했다.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입에 걸레를 물었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넌 어떻게 대연화란 별호를 얻은 거냐, 그딴 성질머리로?”
“……나 성격 되게 좋거든!”
대연화. 이름을 따서 넣었다고 보긴 어렵고. 딱 봐도 온화의 상징처럼 들리지 않나. 그런데 봐라. 눈에 핏발을 세운 남궁연화를 보고 대연화가 떠오르진 않잖아.
“성격 좋은 애가 나한테는 매번 사자후를 터뜨리냐.”
“그게 누구 때문인데?”
“혹시 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그럼 아닌데.”
“그거, 그거! 자꾸 사람 속을 뒤집어 놓잖아.”
무진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무인으로서 성장통을 겪다 보면 아주 약간 삐뚤어지기도 하니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면 그만이었다.
“성실히 훈련에 임하면 만년석균이라도 주려고 했는데, 싫다니 하는 수 없지.”
“그딴 게 있을 리…… 있네.”
무진의 손에 들린 것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하찮은 이끼로 보기 힘들었다. 만년석균을 찾으러 가겠다고 권왕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정작 찾아내서 보여 주진 않았다. 예단은 산동악가의 명성을 짓밟는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대연화는 필요 없으시단다. 아들은 먹었거든. 거지, 어떠냐?”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잠깐! 나도 열심히 하려고 했어!”
“……?”
그 말을 하고는 쌩 하고 달려 나갔다.
생각 외로 뻔뻔한 대연화의 속도에 무진도 살짝 놀랐다. 미래의 권후와 비교하면 같은 년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빌어먹을!”
영약을 먹겠다 싶었던 육칠은 그제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부리나케 뛰었다.
태진도 나아간 지 오래였다.
무진은 방향 조절을 위해서 간간이 반월권강을 날렸다. 당연한 소리지만, 길은 잘 모른다. 마왕이 투덜거리면서도 방향을 알려 주었다.
스왁!
내지른 반월의 강기는 가로막는 것들을 잘라 버렸다. 길이면 가고, 길이 아니면 뚫었다.
‘진짜 선택 잘했네.’
기능성 허공섭물에 의지한 황보세령은 마냥 신기했다. 솔직히 말해 신기함을 넘어, 보면 볼수록 대단한 시아버지였다. 그녀가 비록 무공이 떨어지긴 해도, 무가의 자손으로서 보는 눈은 누구보다 빼어났다. 시아버지의 무력은 능히 일대의 패자를 넘어서, 고금제일을 논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질 줄은 몰랐어.’
자신에게 항상 다정한 할아버지지만, 권왕의 위명은 녹록지 않았다. 황보세가가 산동성의 패자를 자처할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일방적으로 깨졌다는 말을 들었을 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주변 사람들이지.’
다시 만난 진 랑의 무공은 실로 놀라웠다. 가문의 날고뛴다 하는 무인들을 가볍게 무릎 꿇렸다. 동년배에선 따르지 못할 강함이었다. 소룡대회에서 헤어지고 절치부심했던 오빠의 어이없는 표정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강하다. 동네북처럼 매일 처맞고 있는 개방의 육칠 소협도 강한 축에 속했다. 특히 경공에 관해서는 능히 종사의 반열에 들 자질이었다. 저 나이에 저렇게 빠르기도 힘들었다.
죽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것 같긴 해도.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것은 남궁연화 언니였다. 검제의 손녀로서 남궁세가의 얼굴을 담당한다고 들었거늘, 그녀에 성취는 이미 강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여자로서 검도 아니고 권으로 저와 같은 경지에 든 무인은 손에 꼽혔다.
‘가르치는 데 재주가 있으시단 말이야.’
분명 가르친 대상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세간의 평가를 넘어서는 강함을 갖추었다.
“재밌는 분들이 됐네요.”
“됐다고?”
“아버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변하지 않았겠죠.”
“흠, 그것도 그렇군. 하면, 운명이란 요물이 너는 있다고 보느냐?”
“운명이 별건가요. 오늘따라 운이 좋거나 나쁜 것도 운명이고,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운명이죠. 따지고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기연을 얻어 영웅이 될 수도, 마인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선택이 중요하다 이거군.”
“좀 더 확실히 하면 운명은 끌림에서 시작한다고 봐요.”
“과연.”
신산묘녀 황보세령.
안 보던 사이에 격이 한층 성장했다. 무인이 상승의 무위를 얻듯, 황보세령의 혜안이 장강처럼 깊어졌다.
그러나 동의하진 않았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이 그렇듯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그저 하고 싶기에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뜬구름 잡는 얘기는 이쯤 했다. 며느리가 똑똑하긴 해도, 답이 나오는 질문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자기 한 몸은 건사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저는 아버님만 믿어요.”
“쩝, 안 통하네.”
“저 힘들게 하면 어머니한테 이를 거예요. 물론, 저보다 아버님이 일순위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통하지 않을까요?”
헉!
신산 뒤에 왜 묘녀가 붙었는지 알 것 같다. 고양이처럼 어디로 튈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핵심을 관통하며 사람의 심리를 귀신처럼 알아챘다.
-과연 용병술의 대가답군.
‘내 기분도 맞춰 주면서 꼼짝 못 하게 만드네.’
차라리 강하게 나가면 반발 심리가 생기는데, 황보세령은 절묘하게 그 간극을 지켰다.
-헤프군.
‘유진한테 일순위라서 웃는 거 절대 아니다. 나는 아주 담담해.’
-입이 귀에 걸린 놈이 할 소린 아니지 않나?
‘찔러보지 마, 안 통하니까.’
내가 내 얼굴을 못 보듯, 마왕도 무진의 얼굴을 보려면 동경을 봐야 했다. 한데, 내가 왜 손해날 짓을 해.
아, 입에 귀에 걸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좋은 걸 어떡해.
“아버님의 목표는 암중 세력이죠?”
“역시, 예리해. 어떻게 알았어?”
“아버님 같은 분이 사람을 모으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죠.”
“네 힘이 필요하다. 내 손을 잡겠느냐?”
“이러시면 진 랑이 서운해하거든요.”
내 아들이지만 태진의 미래가 보였다. 황보세령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날 앞날이.
-아들을 팔았군.
‘아내한테 잡혀 살 때가 좋은 거야. 부부가 되어서 생활을 해 봤어야 알지.’
-여자는 많았다.
‘잡아 온 여자들이잖아.’
-나 좋다고 한 여자도 많았다.
그건 인정.
다른 건 몰라도, 마왕의 외모는 꽃미남이었다. 호리호리하게 생겨서는 마왕이라고 불렸으니, 상반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럼에도 마왕이다.
좋다고 달려드는 계집들이 미친 거지. 다른 계집은 몰라도, 나는 바꿀 수 있다는 무지몽매한 희망을 품고서.
-나를 조금이나마 바꾼 계집도 있었지.
‘뭐야? 있다고?’
-나를 대체 뭐로 본 거냐?
‘하루에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마왕. 나하곤 정반대지.’
-네놈이 나보다 사람을 더 많이 쳐 죽였어!
‘죽일 놈 죽인 거고. 너처럼 피에 미쳐서 사리 분별없이 날뛰진 않았어.’
-내 의지가 아니었다.
‘병신.’
-(빠직).
무진의 빈정거림에도 마왕은 대꾸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지만, 자의를 가지도록 해 준 여인이 있었다. 그렇다고 뭐, 이름이 알려진 대단한 여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굉장했지.
‘그렇게 잘해?’
-생각하는 것하곤.
‘못하는 것보단 낫지.’
-잘했다.
서로 사랑하면 속궁합도 맞춰 갈 수 있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타고난 사람도 있었다. 경험이 중요하긴 해도, 잘하는 사람 만나는 것도 복이었다. 물론, 잘하는 대신, 정신적으로 속이 썩어 갈 수도 있겠지만.
‘아주 중요하지.’
-인정.
살다 보면 느낄 거다.
얼굴…… 중요하다.
몸매…… 중요하다.
재정…… 중요하다.
이거 부정하는 인간들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마라. 위선자들이 분명하니까.
단, 성격은 살아가면서 고칠 수 있다. 안 고쳐진 사람을 무진과 마왕은 만난 적이 없었다.
‘유진은 처음부터 천상 선녀였지.’
-알았다.
‘똑똑하기도 하고.’
-그만해.
‘그 와중에 요리도 잘해.’
-싸우자는 거냐?
‘우리 자기는 대체 못 하는 게 뭘까?’
-죽어랏!
유진을 생각할 때마다 무진은 후끈 달아올랐다. 이래서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아주 곤란하다. 아침마다 건강함을 증명하는 것도 질렸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야만 했다.
“어머님은 좋겠어요.”
“어?”
“어머님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어떻게 알았어?”
“너무 행복해 보여서요.”
황보세령은 아버님의 반응이 재밌으면서도 어머님이 부러웠다. 누군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자신도 진 랑에게 그런 여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무진은 황보세가에 있는 동안 황보세령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 주었다. 문파에서 군사로서 용병술을 담당하게 될 아이였다. 가문의 전력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우리 문파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봤니?”
“전력의 구 할이 아버님이잖아요. 그럼 정해졌죠.”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요. 수성전이죠.”
“시아버지를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냐?”
황보세령의 전략에 무진은 입맛이 썼다. 그러나 부정하진 못했다. 여태 해 왔던 뻘짓들을 꿰뚫은 통찰력 있는 혜안이었다. 어리다고 얕볼 수만은 없는 녀석임은 분명했다.
“그래도 아버님이 다른 사람들을 고기 방패로 쓰는 그런 분은 아니시잖아요.”
“……그렇지. 난 그런 사람 아냐.”
며느리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신중해야겠다고 다짐한 무진이었다.
-정확하군.
‘넌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