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94
193 가족 사기단(2)
멀찍이서 낙방학사를 구경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무진은 개방의 연락을 받고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구경했다. 예정과 다르지 않은 행패가 흥미진진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안 말려?”
“괜찮아.”
“저러다 죽는 거 아냐?”
“죽기는, 저들이 다 돈인데.”
“돈?”
“쟤들은 돈 안 되는 짓 절대 안 해.”
사채업을 하는 자들은 잔혹하다. 왜냐고? 돈을 떼먹히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이진 않는다. 나올 구석이 조금도 없을 때나 잔혹한 수를 쓰지, 그전까지는 피를 말려 가며 돈을 갈취했다.
무진이 곽가장을 내버려 둔 것처럼, 단물을 먹인 아이를 다루듯 미끼를 던지니 알아서 돈을 바쳤다. 이렇게 끊임없이 돈을 내어 주는 전낭을 버리긴 아깝잖아.
고리대금업자에겐 낙방학사의 집이 그렇다. 부모가 있고, 애들이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집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니, 어떻게든 돈을 벌어 올 것이다.
‘이때 혹독하게 당하긴 한 모양이더라고. 고리대금업자를 굉장히 싫어했거든.’
-그렇군.
마왕은 시큰둥했다.
알고 싶지 않다는 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군사로서 무림맹을 이끌던 용무길에게 있어 고리대금업자들은 저승사자였다. 조금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고리대금업자들이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리대금을 하는 자들치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무림맹의 군사로서 죄를 낱낱이 밝힌 후 무인들을 보내면 끝나는 문제였다. 정예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 저런 왈패들 따위가 무인의 상대가 될 리도 없고.
“처음부터 도와줄 수 있었잖아.”
“그래선 안 돼요. 사람은 절박할 때가 아니면 감정이 따르지 않거든요.”
탐탁지 않아 하는 남궁연화의 말에 황보세령이 대답했다.
무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잔인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감성적인 동물이다. 제아무리 이성으로 포장해도, 절박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크다. 똥 싸기 전과 똥 싼 후가 다른 것처럼.
“그런 건 협이 아냐.”
“맞아요. 협하고는 어울리지 않죠. 한데, 세상이 협의로만 흘러갔으면 우린 협행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무진은 남궁연화와 황보세령의 견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차후 일선에서 마인을 상대할 남궁연화와 무인들을 전장에 세워야 했던 황보세령의 설전을.
후일 권후는 일대의 패자를 자처할 무력을 갖춘다. 당시의 날카로움은 무진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권후조차 황보세령에게는 전장의 흐름을 가져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니 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누가 옳다 그르다를 평가하긴 힘들다.
처한 상황에 따라서 남궁연화의 말이 옳을 수도 있고, 황보세령의 결정이 현명할 수도 있다. 시대, 배경, 처지에 따라서 정의는 바뀌었다. 절대불변의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진리의 영역이어야 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눈앞의 불의조차 외면하자는 거야?”
“꼭 그렇진 않지만, 이유가 있다면 외면할 수도 있겠죠. 절대적인 협보다는 선택에 따른 협이 현실적이니까요.”
“누차 말하지만, 정파라면 정파인답게 행동해야 해.”
“그것이 가문의 명운을 판가름한다고 해도요? 그리 자신하시면 제가 사과할게요.”
남궁연화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라고 완강하게 부정하지 못했다. 가문의 운명이 걸렸다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할까? 협을 위해 혈족을 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면 위선이고, 아니라고 해도 위선이 되어 버린다.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누구라도 선택하기 곤란한 질문이니까요. 오히려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면 인간적이지 않게 느껴졌겠죠.”
“네 말이 맞아.”
부정하지 못한 비겁함에 남궁연화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말로써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황보세령에게 되레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남궁연화가 무에서는 앞설지 몰라도, 머리 쓰는 일로 황보세령을 이기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논제로 싸워도 남궁연화는 황보세령을 이기기 힘들다.
히죽!
위로가 필요했던 남궁연화였다.
해맑게 웃고 있는 무진을 보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동료가 곤란한 상황이면 심정적으로 동조라도 해 주어야지, 고소해하고 있었다.
깨소금이 뚝뚝 떨어졌다.
하긴, 이런 인간이지.
“그러게 왜 애랑 말싸움으로 이기려고 해. 이럴 때는 네가 가장 잘하는 거로 해야지.”
“이 미친놈이! 그걸 말이라고 해!”
“말싸움은 원래 싸움 못 하는 애들이 하는 거야. 나처럼 싸움 잘하면 주먹으로 해야지.”
“진짜, 너랑 사는 언니가 대단하다.”
남궁연화는 허를 찔렸는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장기는 권공이다. 그럼 황보세령하고 주먹질이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이 인간의 정신 상태는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가 없다.
한데, 그 짧은 순간 남궁연화는 언제 시무룩했었는지 모를 만큼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확실히 아버님 같은 분이 상대하기가 까다롭긴 하죠.”
“논리적인 인간들은 자기 생각과 어긋나면 참지를 못하거든.”
전왕 시절, 말로 싸우던 놈들에겐 말 한마디에 주먹 한 방으로 공정하게 대접해 준 기억이 생생했다.
끝에 가선 둘 중 하나이긴 했지만.
사죄 또는 저승.
무진은 전자는 승리를 자신했지만, 후자는 패배를 깨끗하게 승복했다.
“그건 맞아요.”
“그러니까 너도 사고의 폭을 지금보다 넓힐 필요가 있어.”
무진은 황보세령과 같은 혜안을 가지진 못해도, 수많은 전장을 경험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다.
“얼추 뜸이 다 들었으니 밥을 먹으러 가 볼까.”
뜸 들이는 놈들의 활약상이 끝나 가기 직전이었다. 너무 빨리 끝내도, 너무 늦게 끝내도 곤란하다.
적절한 시간에 무진은 솥뚜껑을 열었다.
뻥, 푸아앙!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찼더니 문짝이 맥없이 떨어져 나가며 박살 났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는 만점이었다.
보통 돗자리를 깔아 주면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으나, 무진은 깔아 줄 때 훨씬 잘 날뛰었다.
“넌 뭐야!”
“보면 몰라? 지나가는 협객이잖아.”
낙방학사를 짓밟던 왈패의 우두머리 장봉팔은 낯선 사내의 등장에 험상궂은 인상을 구겼다. 협객 놀음에 빠진 자들을 간혹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쭉정이들이 걸리긴 하지만, 싸워 봤자 좋지 않다. 삼류 무인이라도, 시비가 붙으면 위협적이긴 마찬가지다.
손해를 따져 본 장봉팔은 인상을 풀며, 정중히 갈 길 가라고 종용했다.
“별일 아니니 그냥 가시지요.”
“별일이 아니긴, 피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외면하라는 거냐. 그쯤에서 멈추고 너희들이나 돌아가.”
“우린 빌린 돈을 받으러 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협객 나리께선 이 마을에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가면 또 오겠다는 말처럼 들리네.”
“돈을 받을 때까진 어쩔 수 없지요. 누차 말씀드리지만, 이건 정당한 거래입니다. 관아에 신고해도 불리한 쪽은 이들입니다.”
장봉팔은 최대한 정중히 보내려고 애를 쓰면서도,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신들끼리 약속한 은어였다.
스윽!
낙방학사와 가족을 두들길 때는 쓰지 않았지만, 그들은 적당한 길이의 단도를 차고 있었다. 단도를 빼 가장 가까운 거리를 선점했다.
“여차하면 인질로 쓸 기셀세.”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협객 나리.”
장봉팔은 협객을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주제도 모르고 남의 일에 간섭하는 놈들이지만, 되지도 않는 협의를 주장했다. 이럴 때는 맞서 싸우기보다는 인질을 이용하는 게 최고였다.
그러면서 적당히 타협의 여지를 내어 주는 것이다. 앞뒤 꽉 막힌 협객 놈들을 상대할 땐 제격이었다.
“우리라고 무작정 돈을 달라고 협박을 하는 건 아닙니다. 계약서에 적힌 대로 받아 갈 뿐이지요.”
“그래서 얼만데?”
“협객 나리께서 갚아 주시게요?”
“그렇다면.”
“은자로 쉰 냥 되겠습니다, 협객 나리.”
숨죽여 듣고 있던 낙방학사의 아내가 고개를 저으며 완강하게 부정했다. 자신들이 빌려 간 돈은 열다섯 냥이었다. 이자를 갚은 것도 있고, 쉰 냥은 터무니없었다.
휙!
장봉팔이 신호를 주자 수하들이 여인의 목에 칼을 대었다. 허튼소리를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쨌든 말이 통하는 데다 재물을 갖춘 협객이자, 호구였다. 이 집구석을 뒤져 봤자 돈 나올 구석도 보이지 않았는데, 마침 잘되었다.
툭, 데구르르!
누런 돌덩이가 바닥을 굴러 장봉팔의 발끝에 닿았다.
금자였다.
무진은 석 냥을 던져 주며.
“남은 건 가져. 그럼 이만 가 주실까?”
“아무렴요. 애들아, 가자!”
장봉팔은 얼른 금자를 주워 소매에 집어넣고 애들을 데리고 낙방학사의 집을 나왔다.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날 것 같은 험악한 대치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가산이 기운 집 안에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흑흑흑!
곧 사내의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며 참았지만 버텨 내기 힘들었다. 쌓인 설움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크흐흐흐흑!
나약한 모습은 보여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다. 그러나 용무길은 자신의 처량함보다 가족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무능함에 비참했다.
“아빠, 울지 마!”
“……미안하구나. 어머니, 여보! 미안해!”
전염병처럼 가족들은 서로를 감싸 안으며 소리 죽여 울었다. 그마저도 시원하게 토해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무진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한을 쌓아 놓기만 해선 좋지 않았다. 지금처럼 쏟아 낼 때는 쏟아내야 마음을 빨리 추스를 수 있었다.
‘하품 나오려고 하네.’
-너는 감정도 없냐?
‘마왕이 언제부터 그딴 거 찾았어? 웃긴 놈일세.’
-메마른 놈!
정리가 될 즈음.
무진은 아들에게 시장에 가서 음식 재료를 넉넉하게 사 오라고 하고, 육칠에게는 의원을 데려오라고 시켰다. 집에 먹을거리라고는 풀떼기도 찾기 힘들었다.
대체 뭘 먹고 살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여태 굶어 죽지 않고 산 것만 해도 대단했다.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용무길의 아내를 보니 그간의 고생이 훤히 보였다.
‘쯧쯧, 사람 할 짓이 아니잖아.’
용무길의 아내와 애들은 상처만 치료하면 되었지만, 노모는 지병이 있어 의원의 치료가 필요했었다.
노모의 치료를 끝내고 다 같이 자리에 앉았다. 허름하기는 해도 방 자체는 넓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