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96
195 각성(1)
아내가 보고 싶었기에 무진의 추진력은 빨랐다.
대륙전장을 통해 구해 놓은 마차와 수레를 가지고 왔다. 수레는 넉넉했다. 짐이라고 해 봐야 많지도 않았다. 정든 살림살이와 책을 비롯한 몇몇 유품이 전부였다.
거동이 불편한 노모, 용무길의 아내, 아이들은 마차에 태웠다. 가는 길이 불편하지 않도록 한 무진의 배려였다.
마을 입구를 벗어나자 용무길의 눈빛이 아련하게 바뀌었다. 좋지 않은 사건을 비롯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떠나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지켜 드리지 못해 못내 안타까웠다.
“무림에 발을 들인 이상, 다시 돌아가긴 힘들 거야.”
“알고 있습니다.”
“아는 것과 실제는 달라. 무인을 단순 무뢰배로 봤다면 큰 오산이야.”
“선입견을 버리고 다르게 보도록 견지하겠습니다.”
“굳이 다르게 볼 필요는 없어. 맞는 부분도 있으니까. 지금부터 잘 봐 봐.”
“예?”
무진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용무길은 고개를 갸웃했다. 언뜻 음산한 한기를 느낀 것 같았다.
“사람은 말이야, 한번 얕보이면 한없이 호구처럼 보이거든.”
어제 던져 놓은 미끼가 자기들끼리 알아서 증식했다. 이런 놈들일수록 신중한 편이나, 서두르는 바람에 이것저것 확인하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이럴 땐 물러서는 것도 한 방편이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불확실한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이로웠다.
문제는 욕심이다.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나 맛나 보이는 먹잇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돈에 관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잡것들의 대응은 뻔했다.
“무림은 여지를 주면 안 돼. 반드시 독이 되어 돌아오거든.”
“무림뿐만이 아닐 겁니다. 황실도 저잣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들어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알아?”
“꼭 경험을 해봐야 아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는 것과 들은 건 달라.”
무림에 발을 들인 기념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이 바닥의 생리를.
그래서 버러지 같은 것들에게 미끼를 잔뜩 투척했다. 원래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먹지 못할 걸 먹게 되면 주제를 잊는 경향이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사람이 드문 길에 당도할 즈음.
무진은 마차와 수레를 세우고 홀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보란 듯이 그 주변을 에워싸는 자들이 있었다. 무리에 어제 봤던 놈들이 섞여 있었다.
악금파의 두목, 장봉수가 나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행동대장을 맡은 장봉팔의 형이었다. 악금파는 마을에서 고리대금을 주로 하며 사람들의 피를 말리는 집단이었다. 과거엔 동네의 왈짜패였지만, 현재는 규모가 이백이 넘는 방파가 되었다.
“서운하게, 인사도 없이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
“헛소리는 그쯤하고, 돈은 갚았을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돈도 안 갚고 이리 가면 안 되지.”
“석 냥을 더 주면 되냐?”
무진은 돈을 꺼내 놈에게 던졌다. 누가 봐도 억지가 분명하나, 순순히 돈을 내주었다.
‘얌전히 처먹어라.’
‘그게 살길이라고!’
남궁연화와 육칠은 저놈들이 억지를 부린다는 걸 알면서도, 이쯤에서 돈 먹고 꺼져 줬으면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는 놈들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있겠는가.
“남는 건 술이나 한잔들 해.”
나는 할 만큼 하고 죽였다는 정황증거를 나열하고 있었다.
이렇게 노력했으면, 도륙해도 괜찮잖아.
“이제 가도 되지?”
무진은 아닌 걸 알면서도 재차 물었다.
“돈을 갚으라는 말 못 들었나?”
“방금 줬잖아.”
“받은 기억이 없는데 어쩌지? 애들아, 우리가 돈을 받기나 했냐?”
장봉수가 묻자 다들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흉흉한 살기를 뿜어냈다. 이쯤 되면 의도는 뻔했다. 애초에 돈을 갚고 안 갚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진이 순순히 굽힌 이상, 더더욱 탐욕을 버리지 못했다.
‘봉팔이가 제대로 된 물주를 잡았군.’
협객으로 불리는 놈들은 고지식해서 어지간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타협한다면 실력도 없이 떠벌리는 삼류 무인일 가능성이 크다. 조금 성급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시험 삼아 밑밥을 던졌더니 아주 잘되었다.
“정 대협까지 나설 필요는 없겠습니다.”
“맘대로 해도 되지만, 돈은 깎아 주지 않아.”
장봉수는 만약을 대비해서 일급 낭인 귀도살객 정철기를 고용했다. 그는 낭인계에서도 잔인하기로 손에 꼽히며, 돈 되는 일은 물불 가리지 않는 금전노였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최후의 방패로 귀도살객을 불러 일을 벌이곤 했었다.
“계집은 사로잡고, 모두 죽여.”
“예, 두목!”
장봉수의 명령이 떨어지자 오십 명이 일제히 무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용무길은 잔혹한 현실에 치를 떨어야 했다. 저들은 결국 돈 때문에 사람의 목숨마저 아무렇지 않게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놈들,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가!’
주군으로 모신 이상, 자신으로 인해서 죽는 걸 원하지 않았다. 용무길은 저들의 악행을 막아야 했다. 설령, 자신이 저들에게 처참히 죽는다고 해도.
“괜찮으니까, 지켜보세요.”
“수가 너무 많아!”
“무림에서 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각오를 다진 용무길은 나서지 못했다. 어이없게도 주군의 아들이 어깨를 잡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했을까? 의문이 드는 사이, 눈앞에서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툭, 뿌거걱!
단도를 비롯한 흉기를 들고 달려든 왈패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무진은 주먹을 가볍게 뻗었다.
그랬을 뿐인데, 달려든 열 명의 왈패는 대가리가 박살이 난 채 허무한 최후를 맞았다.
툭툭!
세게 치지도 않는다. 손을 가볍게 쥔 후 점을 찍듯 내질렀다. 그러면 어김없이 시체가 늘었다. 바닥을 구르는 왈패들은 대가리가 박살 나 형체를 잃었다.
부르르르!
의기양양하게 에워쌌던 왈패들의 눈엔 공포가 밀려왔다. 그러나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늦어 버렸다. 상대는 도망치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런 낌새를 보이기가 무섭게 손에서 검은 실선이 뻗어나가 목을 잘랐다.
서걱, 서걱!
암기가 분명하거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날카로운 선이 공간을 잘라냈다. 사선의 경계에 선 자들은 수직, 수평, 사선을 가리지 않고 두 동강이 났다.
뎅강, 뎅강!
사람이 저토록 깔끔하게 분리되는 광경은 그들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몸은 저처럼 간단히 잘려 나가지 않는다.
흐억!
시간의 괴리감이 거하게 발생한 순간, 무진은 어제 본 장봉팔의 앞에 섰다. 수하들이 궤멸당하는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곤 숨 한 번 쉬는 것이 고작이었다.
씨익!
무진의 미소에 장봉팔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제와는 다른 모습에 그는 치를 떨어야 했다. 쉽게 돈을 받아, 제법 두둑하게 챙길 기회인 줄 알았거늘.
그제야 자신이 사신을 건드렸음을 깨달았다.
삼류 협객.
그런 허접한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감각하게 영혼 없는 인형처럼 사람을 쳐 죽였다. 바닥에 나뒹구는 시신들이 그 와중에 늘고 있었다.
저항, 무의미하다.
삼류 왈패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가 어제 보인 행동은 그저, 개미를 밟아 죽이기 귀찮아서 보내 준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살려주십시오!”
“알잖아.”
“……빌어먹을, 죽…… 크악!”
“방심하지 말아야지.”
살기 힘들다는 걸 알고 숨겨 놓은 비수를 던지려고 했던 장봉팔은 대가리가 박살 나며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암기를 쓰려고 했으면 애들이 죽기 전에 썼어야지.
스륵!
장봉팔이 쓰러지는 찰나.
무섭도록 빠른 발도술이었다. 왈패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무공을 익힌 자의 칼이었다.
귀혈도법의 귀살인(鬼殺刃)을 펼친 귀도살객 정철기였다. 그는 무진의 움직임이 보통이 아님을 깨닫자마자 기습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사아악!
정철기의 기습은 빠르고 간결하여 실전적이다. 작은 틈새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전투 감각도 탁월하다. 낭인계에서 일급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강한 자도 수도 없이 죽여 왔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봤거늘.
“……없어.”
뜨끔!
도에서 살과 뼈를 분리한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다. 순간 폐부를 관통하는 오싹한 전율에 정철기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날 죽이면 흑룡……!”
안타깝지만, 뜨끔했던 순간 끝이 났다. 날카로운 혈삭이 훑고 지나간 지 오래다. 돌아서기 무섭게 정철기는 사선으로 그어지는 몸뚱이를 내려다봐야 했다. 몸의 상하체가 분리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몰랐던 것이다.
“이런 개 같은……!”
남은 조무래기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려고 하지만, 무진은 내버려 두지 않았다. 모조리 다 혈삭의 제물로 삼았다.
도륙하기에 혈삭보다 유용한 장비는 많지 않았다. 한 번 손에 익으니 여러모로 유용했다.
음살이 좋은 선물을 주고 갔다. 신화마정갑과 합쳐진 혈삭은 이전보다 훨씬 유용하고 편했다.
부들부들!
홀로 남겨진 장봉수는 살신의 재림에 망연자실했다.
거짓말 같은 광경이었다. 동생의 말을 듣고 시험을 해 봤을 때까지만 해도 돈 많은 호구를 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설프게 협객 놀음을 벌였던 자는,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야차와 같았다.
주춤, 주춤!
시체 조각들이 널린 공간 속을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
장봉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적은 물론, 도망도 불가능했다. 어쭙잖게 도망쳐 봤자 두 동강이 날 것이다.
“대협, 제발 살려주십시오!”
“응, 늦었어.”
살육의 전장에서 무진은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그것은 적아를 막론하고 섬뜩한 공포를 자아냈다.
“백 냥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가진 걸 전부 내놓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난 돈에 타협하는 사람이 아냐.”
남궁연화와 육칠에겐 허튼소리로 들렸다. 돈에 타협하지 않는 인간이 가는 곳마다 궤짝으로 갈취를 하느냐고. 황보세가와 곽가장에서 받은 돈만 해도, 평범한 사람은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다.
빠득!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지자 장봉수는 독기를 품었다. 비록 고리대금이나 하고 있지만, 이 바닥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그런 그가 순순히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겠는가.
“이런 짓을 하면 흑룡성에서 가만두지 않을 거다!”
“흑도는 꼭 죽기 직전에 흑룡성을 거론하더라.”
“……오지 마! 날 죽이면 관에서도 네놈을 추적할 거라고!”
“내 걱정 하는 거면 하지 않아도 돼.”
무진의 의지가 공간을 장악했다. 그러자 바닥에 퍼져 있던 고깃덩어리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며 삽시간에 불이 붙었다. 가공할 화염이 일순 휩쓸고 지나가자 잿더미가 바람에 날렸다.
“어때, 이러면 좀 낫지?”
덜덜덜!
장봉수의 턱이 나가다시피 벌어졌다. 그의 상상력을 아득히 벗어난 광경이었다. 일순 전신을 옥죄는 가공할 경력은, 인간의 범주를 초월했다. 그리고 벌어진 허공섭물과 삼매진화는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비록 삼류 무공을 익히고 있으나, 저와 같은 경지를 모르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자들, 초월자의 영역에 이른 절대자이자 무법자들이었다.
신주이십일강.
그런 괴물을 건드린 것이다.
“살려…… 쿠웩!”
도망치려 했던 장봉수는 무진의 손아귀에 잡혔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허공섭물로 일대의 시체들을 전부 들어 올려 불살랐다. 한 사람이야, 손을 뻗는 즉시 빨려 들어올 수밖에.
꽈악!
손아귀에 딱 맞지는 않지만, 강제로 규격에 맞췄다. 장봉수는 목이 잡힌 채 바동거렸으나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내 눈을 바라봐.”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감은 장봉수였다. 그러자 무진은 눈꺼풀을 엄지와 검지로 강제로 벌려 마주 보게 했다. 귀찮지만 주변의 나뭇가지를 얇게 잘라 내 장봉수의 눈을 예쁘게 해 주었다.
번쩍!
투심마안 들어간다.
먹잇감을 던져 주자 무료했던 마왕이 설치기 시작했다. 마왕은 투심마안의 경지를 개척하는 중이었다. 더는 발전이 없을 줄 알았는데 투심마안의 새로운 영역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를 시험하기 위해선 재료가 많이 필요했다.
부들부들!
정보를 숨기려고 했던 장봉수는 탈탈 털리며 모든 걸 갖다 바치고 있었다. 어느 것도 막지 못했다. 보는 즉시 자신조차 알지 못한 어린 시절부터 현재의 기억이 전부 떠올랐다.
푸스스스!
하나, 일정 영역에 도달하자 버티지 못하고 정신과 육체가 무너져 내렸다. 기력이 빠져 버린 장봉수는 목내이가 되더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