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10
209 설득(2)
솨아아, 두둥!
그야말로 완벽한 빙하의 성벽을 이루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촘촘해진 서리의 공간을 강제로 뚫고 들어간다 해도 제압한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크크크크크!
빙백마녀는 빙공을 절정으로 뿜어내며 일대를 장악했다.
적풍사와 흑풍사는 진을 구축하여 겨우 막아 내고 있을 뿐, 희생은 늘어만 갔다.
용강과 야율제로선 난감했다.
‘하필이면 이때 각성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나?’
힘을 빼기 위해 차륜전을 재구축해야 할 판이었다. 지금까지의 희생만으로도 부족했다. 그들조차 전력을 사용했음에도 제압은커녕 밀렸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들어갔다간 목숨을 보장하지 못했다.
두두두두!
빙백마녀도 진을 완벽히 뚫어 내진 못하는 상태였다.
완전한 상태로 빙정을 흡수했다면 모를까, 아직은 그녀도 불완전했다. 그 결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답답한 대치 구도가 지속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야율제와 용강이었다.
빙백마녀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대치가 안정적으로 변할수록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결단을 내려야 하나,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수로 밀어붙이면서 빙백마녀의 빙공이 약해지기를 기다리는 처지였다. 아니면 더 큰 희생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용강과 야율제가 갈등하는 사이.
“잘 안 되는가 보군.”
……헉!
언제?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돌아선 그들은 귀신을 본 눈이 되었다. 감지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다가와 등을 내어 주고 말았다.
두둥!
뒷짐을 쥔 채 삼공자 철사진이 서 있었다. 처절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유가 흘렀다.
“기다려 줄 만큼 기다렸다고 보는데, 이만 비켜 줬으면 해.”
“하오나 아직…… 크윽!”
“좋게 말하니 내 말이 우습나?”
“기회를…… 커억!”
혈천공을 운용하자 철사진의 육신에서 붉은 혈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경지에 이른 혈천공은 심혼을 제압하는 마력이 있었다. 이를 혈천마혼기라고 한다. 혈천의 제자 중 혈천마혼기를 깨달은 자는 일공자뿐이라고 전해졌다.
‘혈천마혼기를…… 이건!’
숨이 턱 하고 막힌 용강과 야율제였다.
그들은 삼공자에게 자신들이 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사진의 혈천마혼기를 접하자 무릎이 저절로 굽혀지려고 했다.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벽, 혈천이라고 하여 이럴 수 있을까.
‘혈천의 제자들은 다 이런가?’
용강이 저항을 포기하고 물러설 때까지도 야율제는 갈등했다. 자신은 흑풍사의 주인이며, 혈궁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혈천의 불꽃 앞에 감히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혼이 모조리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절망의 나락이 자리했다.
“싫다면 하는 수 없지.”
“……모두 물러나!”
형제의 복수, 그런 차원을 언급하기엔 상대가 지나치게 거물이었다. 야율제는 느끼고 있었다. 삼공자는 지배자이자 무자비한 포식자였다. 그는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우우우우웅!
철사진이 나서자, 그 주변으로 혈궁사자대가 도열했다.
혈궁의 주력인 혈궁사자대의 기도에 적풍사와 흑풍사는 침음을 흘렸다. 저들이 비록 혈궁 직속이라고 해도 큰 차이는 없을 줄 알았다. 현실은 냉혹했다. 자신들은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 사막의 악몽으로서의 자부심이 산산이 무너졌다.
철사진은 흑풍사와 적풍사를 보며 웃었다.
후후후후!
길들지 않은 야생의 이리를 길들이려면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어야 했다. 이제 놈들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철사진은 율밀향으로 적풍사를 제물로 쓰고, 흑풍사를 유인하여 빙백마녀를 원하는 장소에 가두었다.
‘과연, 검후의 진전을 이었군.’
중원의 소식에 어두운 사막의 이리들과 달리, 그는 빙백마녀의 흔적을 보고 빙검후를 떠올렸다. 다듬어지지 않은 검예이긴 해도, 빙천검예가 분명했다.
적풍사와 흑풍사가 사막의 악몽으로 불린다지만 도적단에 불과하다. 놈들이 검후의 후인을 제압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물론, 완전하지 않은 빙백마녀였다면 작금의 무대는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빙백마녀는 궁지에 몰릴수록 잠재력을 격발하여 빙천검예를 제법 완숙하게 뿌렸다.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으니 적당히 즐겨 주지.”
철사진의 음험한 눈빛에 빙백마녀 소검후가 반응했다. 그녀는 빙정의 빙혼에 잠식되었지만, 본능은 남아 있었다. 철사진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경계한 것이다.
두두두두두!
그녀의 주변을 혈궁사자대가 포위했다. 완전한 고립무원이었다. 적풍사나 흑풍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개개인의 무력이 용강이나 야율제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솨아아아!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자 소검후는 각성한 모든 기운을 발산했다. 뚫고 나가고 말겠다는 소검후의 각오가 눈의 폭풍을 이루었다. 이제까지와는 또 달랐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주변을 오싹하게 했다.
“좋군.”
휘몰아치는 눈의 폭풍에도 철사진은 흔들리기는커녕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웃는 얼굴임에도 마치 피를 머금은 듯 혈향이 퍼졌다.
솨아아, 파파팟!
철사진과 빙백마녀가 거리를 두고 마주했다. 새하얀 빙기를 뿜어내는 빙백마녀와 선혈처럼 붉은 혈기를 머금은 철사진이 부딪쳤다.
솨아아악!
쇠를 긁어 대는 기세의 싸움이 번졌다. 고수의 반열에 들지 않은 자는 감히 다가서지 못할 영역이었다. 그 가공할 기세의 충돌에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아아아앙!
마치 사막의 폭풍처럼 나선의 거친 회오리를 일으켰다. 거리를 벌린 흑풍사와 적풍사는 철사진과 빙백마녀가 차원이 다른 영역에 이른 고수임을 깨달았다.
형제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다들 넋을 놓은 채 경이롭게 보았다.
‘……이걸 노렸구나!’
‘……당했다!’
사막의 악몽, 그들은 강자를 숭상했다. 삼공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무력을 선보여 흑풍사와 적풍사를 수중에 넣으려고 한 것이다.
대세가 넘어가 버렸다.
이제 와 의도를 안다고 해도, 용강과 야율제는 거부할 수 없었다. 강자에 대한 숭배는 그들도 다르지 않았다.
서른도 되지 않은 철사진의 무력이 능히 혈천에 버금갔다. 그는 후일 혈궁의 주인이 될 테고, 더 나아가 옥토의 중원을 지배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들은 삼공자의 선봉이 될 수도 있었다.
‘하아, 무공만이 아니군.’
‘잔혹한 심성에 이처럼 깊은 심계라니!’
실로 패도의 화신이었다.
철사진은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빙백마녀를 홀로 제압할 것이다. 빙백마녀의 가공할 빙공을 경험했지만, 철사진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끼요요요욧!
철사진이 접근할수록 빙백마녀의 괴성이 음공처럼 울려 퍼졌다. 공력이 얕은 자들은 심혼이 빨려 들어갔다가 뭉개질 수도 있었다.
후아아아아앙!
그녀의 몸에서 냉기가 형상화되어 얼어붙은 용의 형상을 이루었다. 위기를 감지한 빙백마녀의 내재된 한천백룡공이 벽을 넘어 빙룡무극에 도달하는 현상이었다.
“그렇지, 아주 제법이다.”
빙백마녀의 잠재력이 폭발할수록 철사진의 미소도 짙어졌다. 마치 더 잘 익은 과실을 따 먹으려는 듯, 혈천마혼기를 끌어 올려 빙백마녀를 자극했다.
오오오!
혈천마혼기에도 단계가 있었다. 최소 육성이 넘어가야 발휘할 수 있는데, 저처럼 뱀이 똬리를 틀듯이 회전하려면 팔성에 이르러야 했다. 이때는 혈궁사자대의 대주 혈비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재로 일컬어지는 대공자를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혈천이시여!’
대공자를 택하기에는 삼공자의 신위가 지나치게 압도적이었다. 그조차도 굴복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마치 혈천을 마주하는 공포가 자리했다.
철사진과 소검후가 결전을 치르려는 찰나.
다다다다다다!
무언가 질주해 오고 있었다.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하자 거센 모래폭풍이 일었다.
추우우웅!
일순 탄력을 받더니 더욱더 빠르게 쏘아져 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차자자작!
멈추지 않고 찌르고 들어온다. 혈궁사자대가 접근해 오는 자를 막기 위해 대형을 갖추었다.
쐐애애애액!
혈궁사자대의 방어 진형, 혈궁벽을 개진했다. 중첩된 진형으로 겹겹이 두꺼운 성벽을 쌓듯이.
삼공자의 신위를 만천하에 알리는 자리였다. 이 숭고한 의식을 방해한다면 제물로 쓸 수밖에.
“멈춰랏!”
혈궁사자대의 대주 혈비의 웅후한 공력이 거침없이 쏘아져 돌진해 들어오는 자를 요격했다.
쌔애애액!
그러나 주춤하기는커녕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자존심이 상한 혈비는 살의를 비쳤다. 혈궁벽은 방어 진형이지만, 공수의 전환이 언제든지 가능했다.
기의 전의를 통해 충격을 받아 내고, 돌진해 들어오는 파괴력을 더해 위력을 한층 끌어 올렸다. 상대는 최소 세 배에 달하는 충격을 받게 된다. 저처럼 무작정 달려든다면 십중팔구 절명이었다.
꽈아아아아아앙!
멍청한 놈. 혈궁벽은 말 그대로 금성철벽이었다. 감히 육탄 돌격으로 뚫어 보겠다니 어림도 없는 짓이었다.
“곧, 철벽에 부딪혀 곤죽이 될 터. 더는 볼 필요가……?”
철퍼덕, 쿠다다당!
예상을 상회하는 결과에 혈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삼중의 겹겹이 친 혈궁벽이 꿰뚫렸다. 막아선 대원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일직선으로 길이 생겨 버렸다. 내지르는 관통력에 휘말린 대원들은 찢겨 나갔다고 봐야 했다. 스무 명의 대원이 허망하게 죽고, 열 명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놈!”
혈비의 외침은 공허했다.
상대는 멈추지 않고 혈궁사자대를 관통하여 철사진과 빙백마녀를 향하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기에 폭풍 전야처럼 침묵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봤을 땐 경악할 광경이 펼쳐졌다.
“……도대체 뭐야?”
“혹, 빙백마녀를 구하려고?”
그렇지 않고서야 느닷없이 난입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함부로 나서지 못한 것은 혈궁사자대의 처참한 모습 때문이었다. 찰나에 위용을 잃어버렸다. 진형을 갖추어 위압감을 선보일 때와는 극명한 대치를 이루었다.
흠.
쏘아져 오는 그림자를 본 철사진의 눈빛이 가늘게 떠지며 기광을 번뜩였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었다. 이 자리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무대였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혈궁사자대를 저처럼 무식하게 뚫어 내는 놈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대세는 바뀌지 않는다. 자신이 설계한 무대에서 혈궁사자대는 관객에 지나지 않았다.
화혈수.
뒷짐을 쥔 철사진의 수장에 맺힌 붉은 기운, 타오를 듯 섬뜩한 혈기가 맺혔다. 찌르고 들어오는 놈을 일장에 요격하여 한 줌의 혈수로 만들겠다는 살의가 팽배했다.
팟!
꺾어?
장력을 모아 두었던 철사진은 느닷없이 방향을 전환하자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향한 맹렬한 돌진이 속임수였던 것이다. 놈의 목적은 애초부터 빙백마녀였다.
“놔둘 줄 아느……?”
빙백마녀를 구하는 줄 알았던 신형이 재차 가속하더니 빛살이 되었다.
그림자를 향해 빙백마녀는 검을 휘둘렀다.
솨악!
빙룡무극에 이른 빙검강이 수평으로 갈라졌지만, 그림자를 베어 내지는 못했다.
뻐어어억!
빙백마녀가 검을 휘두르고 회수하기 전이었다.
그림자는 사각에서 지체하지 않았다. 내지른 주먹이 공간을 관통하여 빙백마녀의 왼쪽 광대뼈 아래를 찍듯이 꽂았다.
꽈다앙!
그림 같은 주먹질이랄까?
주먹에 맞은 빙백마녀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모랫바닥에 시원하게 처박혔다.
단 일격이었다.
바르르!
머리를 바닥에 처박은 빙백마녀는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다 숨죽였다.
“미친년에겐 매가 약이지.”
구질구질하게 설득하거나 자초지종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정신이 들기를 바라지만, 그런다고 정신이 드나.
모든 일이 그렇듯, 일단 주먹을 날리고 보는 거다. 걱정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스윽!
소검후와 원만하게 잘 해결한 무진은 그제야 돌아봤다.
허!
어이없는 탄성에 이어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