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20
219 내 알 바 아니잖아(2)
“빌어먹을!”
형제들이 죽어 가고 있지만, 파사랍은 갈등했다. 여기 있다가는 개죽음이 머지않았다. 복수하려면 살아 있어야 하고, 후일을 도모하려면 도망쳐야 했다. 다행히 빙백마녀는 형제들에게 시선이 쏠려 있었다.
푸어억!
돌아서려던 파사랍은 가슴을 뚫고 나온 손을 보았다. 손에 들린 붉은 덩어리는 자신의 심장이 분명했다. 심장이 죽지 않으려고 박동할 때마다 핏물이 쭉쭉 빠져나갔다.
“……어째서?”
“겁쟁이는 죽어 마땅하지.”
등을 뚫어 심장을 꺼낸 자는 희천산이었다. 그는 히죽이며, 죽어 가는 파사랍에게 마지막을 선사했다.
꽈득!
손에 힘을 주자 심장이 터져 나가며 선혈이 바닥을 붉게 적셨다. 가슴이 뚫리고 심장을 잃은 파사랍은 살려 달라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몸은 차갑게 식어 갔고, 눈빛은 회색으로 물들었다.
뿌거걱!
희천산은 죽어 버린 파사랍의 머리통을 발로 밟아 부순 후, 희뿌연 공간을 보았다.
‘빙백마녀가 둘이었나?’
삼공자와 혈궁사자대가 빙백마녀의 추격에 나섰다. 빙백마녀는 흑풍사의 본채에 있어선 안 되었다. 사로잡히거나 죽었어야 할 빙백마녀의 등장은 그로서도 예측하지 못한 사태였다.
스윽!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무의식이든 의식이 있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흑풍사를 도륙하는 도중 자신을 알아채고 돌아봤다.
기운을 세밀하게 조절하여 기척을 죽이고 있었거늘.
“하, 이거 참.”
희천산은 빙백마녀가 다가올수록 안색을 굳혔다. 서릿발 같은 냉기는 물론, 완전한 형태의 검강은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초절정의 초입이 아닌 화경에 올라서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보고가 잘못됐군.”
삼공자와 혈궁사자대가 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빙백마녀의 무공이라면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하나, 상대를 잘못 만났다.”
마녀라고 불린다더니, 외모가 제법이었다. 빙백마녀를 마주한 희천산은 입술을 핥으며 음욕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쪽으로 미치게 해 주마.”
계집을 미치게 해 주는 것도 사내의 본분이지.
흑풍사의 본채에서 멀지 않은 모래 능선.
무진은 자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간이 천막을 쳐서 그늘막 대용으로 사용했다. 돗자리를 편 자리에 앉아 흑풍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폭발음이 들리고, 비명이 화합을 이루었다.
“잘하지 않냐? 소질이 있다니까.”
“본인은 달갑지 않아 하던데요.”
“원래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른 법이야. 좋아해도 적성에 안 맞으면 말짱 꽝이지.”
“이건 그런 영역이 아니잖아.”
“무공은 원래 사람 죽이려고 배우는 거야.”
육칠과 철호에겐 따로 시켜 놓은 일이 있어 같이 오지 않았다. 정해진 날짜에 침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북궁혜는 안심이 되지 않아서 데리고 다니는 중이다. 뭐라도 하려는 의욕적인 모습을 보니 더더욱 불안하다.
‘의욕이 앞서면 사고를 치거든.’
능력이 되면 모를까, 북궁혜의 검공은 어중간했다. 현재 실력으론 육칠과 비슷하지만, 생사를 가르는 전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옳지, 옳지! 문부터 박살 내고. 오는 족족 시원하게 베라고. 그 맛에 들리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나도 한때 그랬지. 그 시절이 그립네.”
-미친놈.
정신 나간 년이 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더욱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사전에 맹훈련한 보람이 있었다. 저 정도면 완전히 돌아 버렸을 거라고 착각할 것이다.
“약속된 동작도 잘하고, 실전에 강한데. 누구와 달리.”
“왜 절 보세요?”
“오해하지 마, 기대 안 하니까.”
“너무해요!”
도중에 의도치 않은 몸짓은 의문을 심어 주는 요소였다. 적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 어딘지 모를 위화감을 일으켰다.
“도륙하기 좋은 날씨네.”
그런 날씨가 어디 있냐고요.
무서운 말을 평상시처럼 쏟아 내고 있었다.
북궁혜는 간담이 서늘했다. 모든 일이 장난 같은데, 당하는 처지에선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아니, 무슨! 가는 곳마다 시산혈해냐고!’
어딜 가든 전부 다 때려죽이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것도 정신이 나간 채로.
전쟁을 멈추지 않고 키우는 재주가 탁월했다. 어딜 가나 기대 이상으로 피를 불러왔다.
그뿐이랴.
같은 짓을 동료에게 시키고 있었다. 전적으로 무진의 뜻에 따라서 이서정은 칼춤을 주었다.
그것도 미친 척 연기를 하면서.
거절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거절은 불가능하다. 이서정은 무진에게 구함을 받았고, 빙정까지 얻었다. 하늘 같은 은혜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입었다. 거기다 말도 안 되는 짓으로 무공까지 늘려 주었다.
‘나 같아도 못 하지.’
거절하기에는 은혜가 지나치게 깊었다.
악행을 일삼은 도적들을 죽이는 일이니 도륙해도 괜찮았다. 도적들의 죽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고.
호오.
무진은 새로운 적의 등장에 기꺼워했다. 일방적인 도륙을 멈추고, 팽팽한 기세가 충돌하고 있었다.
‘이거, 대어가 걸렸네.’
-그 정도는 아니다.
‘생각지 못했잖아.’
-잔챙이에 불과하다.
마왕이나 내 입장에선 그런데, 이서정에겐 조금 버거운 상대다. 그는 대막칠사의 일인 풍사였다. 칠사에서 가장 강하진 않지만, 가장 빨랐다. 경신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래서 죽이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놈이었다.
‘혈제랑 싸울 때 깔짝대서 귀찮긴 했지.’
-저런 놈에게 고전하다니, 수치스럽군.
‘누가 고전했데! 귀찮았다고.’
-우리에게 그 정도면 고전한 거다.
마왕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어쨌든 비슷한 급에 도달한 자에 한해서지, 이서정에겐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나, 상성이 있었다. 빙공이라는 특수성을 활용해 빠른 발을 묶어 놓는다면 흥미로운 대결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나설 때가 됐군.”
전장은 죽고 죽이는 현장이다. 흥미로운 대결은 비무에서나 따져라.
‘조절 잘해.’
-너나 잘해라.
그렇다고 대단한 작전을 짜진 않았다. 풍사 따윌 잡는 데 심력을 쏟을 거면 회귀 안 했지.
아아!
목청을 가다듬은 무진은 주문을 외웠다.
“쿵쿵따리쿵쿵따, 사바사바수리수리요수리, 관우제갈유비장비조조, 도원결의패가망신, 유진사랑미주사랑, 태진이네~~~!”
“……?”
북궁혜는 이 인간이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나 싶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막, 대충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매우 진지하게 지껄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나서는 줄 알았거늘, 앉아서 괴상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도중에 아는 단어도 나오고 있어, 개소리를 인증했다.
‘그딴 게 통할 리 없잖…… 어?’
상식은 죽었다. 북궁혜는 답답했다.
***
금방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마녀의 빙공은 희천산의 예상을 벗어났다. 극한에 도달한 극음기는 닿기만 해도 피부를 관통하여 뼈를 시리게 했다.
풍령신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녀의 주변을 메우는 안개는 극한지대였다.
‘이년, 보통이 아니구나.’
강의 경지에 들어서긴 했어도, 완숙하진 않았다. 미숙한 부분을 공략했지만, 그 이상으로 빙공이 강력했다.
찌릿!
풍혈장을 중첩하여 날렸을 때 수벽(手擗)에서 한기가 전해졌다. 힘으로 밀어붙이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고 말았다.
‘빌어먹을 년이 감히!’
다 잡은 먹이에 고전하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조급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우를 범할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희천산은 풍령공을 조절하여 본인의 장기인 치고 빠지는 전술로 방향을 바꾸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는 하나, 정면 대결을 펼쳤다간 손해가 막심해진다.
응?
희천산은 찰나, 빙백마녀의 부자연스러운 기색을 읽었다. 혼란스러워하다 곧 원래의 백안을 번뜩이며 내일이 없다는 듯이 빙폭을 퍼부었다.
‘뭐지?’
이상하긴 했다. 화경에 이르렀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숙한 부분도. 그것을 단순히 완벽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부자연스러웠다.
부르르!
거리를 둔 희천산은 풍령기를 발동해 주변을 파악했다. 그러자 거의 느껴지지 않는 미세한 파문이 하나의 선이 되어 빙백마녀를 가리켰다.
-쿵쿵따리쿵쿵따, 사바사바수리수리요수리, 관우제갈유비장비조조, 도원결의패가망신, 유진사랑미주사랑, 태진이네~~~!
파문에 실려 온 목소리를 읽었다.
요상한 주문이었다.
이게 과연 주문이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주문이 달라질 때마다 빙백마녀는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더욱 미친 듯이 공격하라는 주문과 같았다.
‘동조자가 있었나?’
그간 빙백마녀의 단독 범행으로 보았었다. 배후에 동조자가 있다면, 빙백마녀는 만들어진 광녀일 가능성이 크다. 주문의 진원지를 찾아 주술사를 제거하고 배후를 캐야 했다.
‘감히 이딴 조잡한 잡술로 나를 농락해!’
태어날 때부터 바람을 다루는 능력을 체질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풍령신과 만나면서 빠름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했다. 또한, 바람과의 교감을 통해 전음을 읽을 수 있었다.
솨아악!
빙검강이 희천산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빗나갔지만, 희천산에겐 당연했다. 거리를 벌린 이상, 마녀의 검강은 자신에게 닿지 않았다.
‘네년은 조금 있다 놀아 주지.’
빙백마녀의 검강이 허리를 노릴 때, 희천산은 바람을 타고 삼십 장의 거리를 벌렸다.
풍령신 극의 풍뢰.
전설의 축지술에 비견되었다. 단숨에 빙백마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슈아앙!
텅 빈 자리를 베어 낸 빙백마녀는 주변을 돌아보다 멈춰 섰다. 백안을 번뜩이고 있지만, 이서정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강했어.’
흑풍사의 본진은 주력이 빠진 상태라 상대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까지 손속을 나누었던 자는 승부를 자신하기 어려운 강자였다. 끝까지 갔다면 둘 중 누구든 죽을 수 있었다.
하아.
그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발광해야 했다. 그녀로선 평생 감추고 싶은 비밀이 되었다.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시집도 가기 힘들 것이다.
‘설마?’
노린 건 아니죠?
***
‘왜 이딴 게 통하는 거냐고!’
북궁혜로선 받아들이기 싫은 결과였다. 주술도 아닌 개소리에 반응해서 득달같이 달려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한가하게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서정을 밀어붙이다 사라졌다면, 여기로 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곧 불어닥칠 것이다.
“아서라.”
“제게 맡겨 주세요, 할 수 있어요!”
“넌 못 해.”
“보여 드리면 되잖아요!”
“안 되는데.”
통사정에도 끝까지 믿지 않는 무진의 무성의함에 북궁혜는 뭔가 보여 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여기서 깊은 인상을 새겨, 눈에 들겠다는 각오였다.
‘할 수 있어, 나는 무능하지 않아!’
빙백수라신공을 운용한 후 북천신검과 동화했다.
북천신검은 예전처럼 날카로운 독아를 머금지 않았다. 무진에게 보여 주겠다는 각오는 북궁혜뿐만이 아니라 북천신검도 마찬가지였다. 북해의 신물으로서의 자존심이었다.
‘좋았어.’
완전한 형태의 빙검기.
북천신검에 공능이 발휘되었다. 검신이 사라지고 검기마저 투명해졌다. 무턱대고 나서진 않았다. 주술을 파악하고 노렸을 테니, 오는 방향은 정해져 있다.
상대는 자신과 북천신검을 모른다. 정면 대결을 벌인다면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기습이라면 한 번 해 봄 직했다.
‘날 무시하지 못하게 하겠어!’
북해빙궁의 직계 혈통으로 자존심을 지켜야 했다. 이런 식으로 무시당한 채 계속 끌려다니고 싶진 않았다. 같이하기라도 했으면 또 몰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팟!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온다.
북궁혜는 심호흡을 한 후 멈추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재차 기회를 잡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하다. 멀리서 봤을 때도 그의 움직임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북천신검과 동조하여 감각을 극대화했기에 겨우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야.
잔뜩 웅크리고 있던 북궁혜는 모든 전력을 일검에 담았다. 북해칠성검의 마지막 초식, 파군(破軍)이었다.
완벽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전력을 실어 파괴력을 극대화했다. 강에 이른 고수라도 이 일검을 맞고 멀쩡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