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31
230 융통성(?)(1)
휘이잉!
바닥을 쓸듯 불어오는 삭풍에 얼어붙은 눈의 알갱이들이 휩쓸린다. 살을 에는 추위는 바람을 동반했다. 날씨가 추워도 바람이 불 때와 불지 않을 때는 천지 차이였다.
바람이 멈추지 않고 부는 호수 위.
잘게 부수어져 버린 얼음 파편들이 얼어붙는다. 당장은 살얼음이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층층의 겹을 더해 단단해질 터.
살얼음판 위 무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식하기는, 융통성이 있어야지.”
얼음과 뒤섞인 공간은 피바다로 변해 있었다. 차갑게 식다 못해 얼어 가는 선혈은 좀 전까지만 해도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그러나 생기가 멈춰 버린 주검은 덧없이 얼어 갔다. 허망하고 맹목적인 죽음이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 답이 나오는 줄 아나. 머리를 썼어야지.”
-병기는 생각을 가지면 골치 아픈 법이다.
“쓰기는 편해도 이럴 때 보면 바보 같잖아. 낭비야, 낭비.”
-백살 따위에 고전했다면 널 선택하지 않았다.
무진과 마왕에겐 대수롭지 않으나, 백살은 약하지 않았다.
전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장소의 이점을 활용한 것도 컸다. 백살이 백혼섬멸진(魄魂殲滅陣)을 펼쳤다면 화경에 이른 고수도 빠져나가기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라면 백살은 동귀어진도 스스럼없이 펼쳤다. 그것이 백살의 무서운 점이자, 명백한 패착이 되었다. 절대고수를 척살하는 살인 병기의 최후치고는 허망했다. 장단점이 분명하다면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수정했어야 한다.
어쨌든 결과론에 지나지 않았다. 벌어진 참화는 되돌리지 못한다. 무진과 마왕처럼 회귀하지 않는 이상.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닐 테지.”
-병기는 병기일 뿐이다.
마신교가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백살을 만들었다고 보진 않았다. 관리와 목적의 편리성, 임무 실패 시 정보 유출을 차단하는 데 유용하기에 백살의 사고를 제거한 것이다.
그러니 강하면서도, 약점이 뚜렷하다.
“멍청한 놈들이었으면 이 고생 하지 않았겠지.”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되나 보군.
“뭔 소리야, 나만큼 너희들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잠깐, 그럼 여태 왜 나한테 물은 것이냐?
“쓸데없이 고민하기 귀찮잖아.”
-……이 육시랄 놈이!
마왕이면서 상스럽긴.
구대성천인 현천군은 손을 쓰기로 한 이상 확실한 수를 쓰는 성향이었다. 백살이면 차고 넘칠 수도 있겠으나, 노파심이 강하다 못해 광적이라면 유비무환은 필연이었다.
쐐애액!
불어오는 바람을 관통하는 울림이 있었다. 깨진 얼음이 얼어붙고 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었다. 바닥을 받침대로 삼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런데도 속도가 줄지 않고 더욱더 빨라지고 있었다.
“똥줄이 좀 탔나 본데.”
-생각지도 못한 사태…… 말 시키지 마라!
마왕의 투정을 뒤로하고, 무진은 바닥을 살폈다.
한 번 써먹은 전술이긴 해도.
호수와 모래.
성질은 아예 다르지만, 활용성은 오히려 괜찮다. 상대의 조급함을 이용하기도 훌륭하고, 변수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흠.
지척에 접근했다.
휩쓸리는 눈보라를 헤치고 나타난 자. 남루한 차림을 한 노인이었다. 고색창연한 선풍도골의 호인도, 마왕인이 박힌 마인도 아니었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인상으로, 삶을 충실하게 살아온 세월이 보였다.
스윽!
노인은 주변을 살폈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분명함에도 한숨을 쉬거나, 인상을 쓰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평온한 신색이다. 관점에 따라서 전혀 관계없는 인물처럼 보인다. 한적한 날 홀로 사색에 잠기거나, 낚시를 하러 온 강태공처럼 평온하다.
주변을 둘러본 노인이 나직이 탄성을 토했다. 그것이 노인이 보인 최고의 격정이었다.
“대단하군.”
“볼 줄 아는구나.”
“또한 무식하군.”
“눈뜬 봉사냐.”
“이토록 무식한 전술을 쓰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군. 하나, 백살에겐 치명타를 선사했어.”
사람을 들었다 놨다.
칭찬할 거면 칭찬하고, 욕을 할 거면 욕을 하란 말이다. 듣는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었다.
이럴 거면 대화를 왜 하는 거야?
“하나만 하지 그래.”
“천의무봉에 이른 공력, 나보다 윗줄이군.”
노인네가 벽창호였네.
남 말을 안 듣는다.
자기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도취형이었다.
여하튼 벽창호는 벽창혼데, 상황을 추리해 내는 과정이 날카롭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노인네의 안목이 보통은 넘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상대를 냉정하게 가늠할 줄 알았다.
얄팍한 수는 일단 뒤로 미루었다. 변칙이 통할만큼 어수룩하진 않았다. 자기가 잘난 줄 아는 부류하고는 달랐다.
‘못 보던 노인넨데.’
-천지검이다.
‘천지검? 내가 아는 그 삼재검과 비슷한 천지검 맞냐?’
-맞다.
천지검은 삼재검과 마찬가지로 삼류 동냥아치도 알고 있을 법한 기초 검법이다. 초식이라고 할 것도 없다. 가로베기, 세로베기, 찌르기로 구성이 되었으니까. 천지양단(天地兩斷), 천지횡참(天地橫斬), 천지관일(天地貫日)로 거창하게 불릴 뿐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다만, 삼재검처럼 수비초식인 팔방풍우가 아닌, 검 자체의 흐름에 맡기는 형식이었다. 만류귀종을 지향한다나, 그러다 여럿 비명횡사했지.
‘전장에선 들어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어째서?’
-노환으로 죽었다고 들었다.
‘대체 몇 살인데?’
-이백 살이라고 했지, 아마.
‘오래도 살았네.’
범인와 달리 고수는 내력의 도움으로 평균 백 살까지는 무탈하다. 칼 맞고 뒈지지만 않으면. 어쨌든 백 살이 넘으면 내력으로 육체의 노화를 멈추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물며 이백 살이라면 일반적인 경지로는 어림도 없는 단계였다.
그것만으로도 이 노인네는 범상치 않았다. 하나, 그보다 무진의 신경을 거스르는 점은 천지검에 있었다.
‘다른 검도 익혔겠지?’
-그가 아는 검은 천지검이 전부다.
‘까다롭네.’
-그 이상일 거다.
‘신분이 뭐야?’
-그는 나의 검술 교관이었다.
비록 완성되지 않은 시절이라 하나 마왕의 검술 교관이었다니, 놀랍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자질만 놓고 보면 마왕은 미완성 시절에도 강했다. 허구한 날 술 퍼마시고, 허송세월하였던 무진과는 자질이 달랐다.
정리를 끝낸 노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보기보다 예의가 바르다고 해야 하나.
“엽삼이다.”
“그래서?”
“고약하군.”
“당연하지.”
우리가 통성명이나 할 사이는 아니잖아.
이름을 밝혔다고 해서 알려 줄 의무는 없다. 더욱이 마왕을 통해서 신상 내력은 대충 파악했다. 마왕의 검술 스승일 뿐, 따로 직분은 없는 듯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지.’
-속 좁은 놈.
엽삼은 마신교 내에서 분류되지 않은 무영자가 분명했다. 예를 들면 대문파와 같은 전대의 괴물에 속하는 이들로서, 속세에는 좀처럼 나서지 않아도 강자에 반열에 드는 자들이다.
“가겠다.”
엽삼이란 평범한 이름과 달리 자세를 잡은 노인네에게서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전무결, 검으로서 대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따로 수비가 필요하지 않은 천지검을 익힌 이유였다. 자세 그 자체가 공수를 담고 있었다.
‘하긴, 검이 다 거기서 거기지.’
빠르든, 고고하든, 화려하든, 유려하든 다양하게 검공을 표현하지만, 그 시작은 어느 것 하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거늘, 진정한 의미의 만류귀종을 마주했다.
***
칠가쟁패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북해 신성의 대결이 끝이 났다. 칠가의 후기지수는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빼어난 무력을 보여 주었다.
그중에서도 북궁혜의 선전은 놀라웠다.
궁주의 직계라곤 하나 여인의 신분으로 칠가에서 심혈을 기울인 신성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북해천존의 부재로 가세가 기울어 가고 있다는 세간의 평판을 작게나마 뒤집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작은 방향일 뿐이다.
북해빙궁에 모인 사람들은 북해천존의 부재를 대놓고 떠들진 않아도, 칠가쟁패가 시작되었음에도 보이지 않자 의아해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폐관수련은 핑계고, 무리한 수련으로 주화입마에 들었다고 하던데.”
“무리한 수련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소실된 북천신결을 연성하려다가 입마에 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분분해.”
“궁주께선 무학이 천의무봉에 이르렀을 텐데, 굳이 과거의 유물에 집착할 필요가 있었나?”
“궁주님도 무인이고, 무학에 대한 욕심은 필연이지.”
“그래도 그렇지,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
북해빙궁의 궁주는 북해의 수장이다. 무학의 완성도 중요하나, 북해의 주인으로서 의무가 있었다. 더욱이 욕심을 부리다가 주화입마에 빠져 자리를 오랜 시간 비워 놓았다.
주인의 부재는 분란을 초래하는 법. 북해를 위험하게 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비무대에서 시선이 쏠리지 않는 사각.
육칠과 철호는 대회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임은 이제 거의 끝이 났다. 남은 일은 당사자들이 얼마나 해 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육칠 형, 저쪽에서도 작업 들어간 거 같은데요.
-우리 쪽에서 움직였다는 걸 안 거지. 흘러가는 분위기도 이상하고.
-이제 어쩌죠?
-어쩌긴, 얌전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지. 우리가 나설 것도 없어. 다 예상한 대로니까.
-어렵네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빙궁이 세워진 이후 처음으로 궁주가 바뀌는 순간이야. 모두의 합의를 끌어냈다고 해도 불만이 안 나올 수가 없어.
육칠과 철호는 차분히 전음을 나누고 있었다.
천해각주의 작업조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궁주의 부재를 떠들어 대고 있음에도 지켜보기만 했다.
후기지수의 대결 전에 바람을 잡았고, 북궁세가가 선전을 하며 천해각주의 예상과는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북해천존의 부재가 누군가의 음모로 비치는 걸 경계한 것이다.
기존의 관행과 질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들 마음속 깊이 자리한 고정관념이란 관성을 깨려면 분위기의 조장은 필수였다.
-그나저나 행동이 무척 빨라. 아마 이런 경우도 예상했을 거야.
-천해각주란 사람이 보통은 아니네요.
-북해칠가만 해도 북해에선 왕족이나 다름이 없어. 그걸로도 만족 못 하는 자라면 당연히 보통이 아니겠지.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군요.
-넌 아닐 것 같냐?
-저는 욕심 없습니다.
-송옥이나 반안을 노린다며. 그거 욕심을 넘어 만용이야.
-……이거와 그건 명백히 다릅니다!
역린을 건드렸는지 철호가 발끈했다.
하나, 육칠이 보기엔 북해빙궁의 궁주가 되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로 봤다. 저 얼굴로 꽃미남을 지향하다니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불가능했다. 막말로 환골탈태를 열 번이나 하면 뼈가 삭아서 없어지겠다. 잦은 환골탈태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해야 했다.
-나처럼 내려놓고 편하게 살아.
-거지는 결혼을 못 하니까 제 맘을 모릅니다.
-(이놈이)! 나도 하려면 결혼할 수 있어!
-어떤 미친년이 거지하고 결혼합니까?
-좋아, 네가 꽃미남이 되는지, 내가 먼저 결혼을 하는지 내기하자!
-좋습니다! 지는 사람이 동생입니다.
-이 자식 봐라, 개수작이 늘었는데. 그거 말고 평생 수하다.
-단, 거지에서 벗어나면 반칙팹니다.
육칠은 어른답지 못하게 울컥하기는 했지만, 철호가 만만치 않음을 인정했다. 무공만 강한 애송이로 취급하기에는 능구렁이가 되어 갔다. 그 철모르고 순진했던 철호는 세파의 찌든 때가 덕지덕지 묻었다. 어떤 상황이든 곧이곧대로 보지 않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노련미가 생겼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다.
강 대협과 붙어 다니게 되면 일단 사람 자체를 못 믿는다. 허튼 내기에 평생 발목이 잡히는 광경을 수도없이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런 불쌍한 인생들이 어디 한둘인가.
자신들부터가 그렇다.
무공의 고하도 의미 없다. 그 인간은 닥치는 대로 다 때리고 부수니까. 괜히 말리다간 휘말리는 수가 있었다. 한편으로 선의로 대하는 사람조차 무조건 의심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한눈을 팔아선 안 되었다.
육칠과 철호는 심신을 가다듬었다. 우리에겐 진지한 내기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냉정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육칠은 철호를 시험해 볼 겸 물었다.
이 자식의 지능을 얕보지 말아야 했다. 우직한 노안 뒤로 점점 여우가 숨죽이고 있었다.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
-굳이 소모전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길만 파던 녀석이 제법 융통성이 생겼구나.
-돌아갈 줄도 알아야 오래 살죠.
사부를 만나기 전의 철호였다면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전후 재지 않고 신념만 지키면 된다는, 아주 무식한 행동이었다.
무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중요하긴 하나, 주변을 돌아볼 줄도 알아야 했다. 무모한 신념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육칠과 철호는 단상을 올려다보았다.
제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천해각주는 담담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었다. 아니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었다.
하나, 그것이 오만이었음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궁에 없다 해도 무진의 전략은 이어지고 있었다.
언제나 상대를 손바닥 안에 올려놓고 자기 맘대로 조종했다. 압도적인 무력은 물론 악랄한 심계까지.
육칠과 철호는 천해각주의 야욕을 가련히 여겼다.
하나, 어쩌겠는가.
인외의 괴물이 그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성공을 원했다면 애초에 적으로 두지 말았어야 했다.
육칠과 철호는 이대로 끝이 나리라 보았다. 수작을 부려 봤자 가련한 발버둥일 뿐, 곱게 뒈지는 편이 이로웠다. 수작을 부리면 부릴수록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어째 결말이 다 비슷하네요.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야.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젠 북해빙궁의 몫입니다.
-그건 그렇지.
암류에 흔들리고,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서 기사회생의 기회를 내어 주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밥을 입에 떠먹여 주는데도 받아먹지 못한다면 본인의 무능을 탓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뭐가?
-사부님은 친절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모든 일이 지나치게 순조롭게 계획대로 진행이 되어 가고 있었다. 너무 순탄해서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해결되고 안 되고의 문제하고는 상관이 없다. 언제나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를 아무렇지 않게 일으켰던 재앙의 화신이 무대에서 사라졌다고 얌전히 끝이 나겠는가.
이 자리에 없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는 불가해(不可解)였다.
-에이, 설마?
-그렇겠죠.
보통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 못해 똥을 싸지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불안했다.
절레절레.
육칠과 철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봐도 개입할 필요도, 여지도 없는 흐름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냐?
-저도 그렇습니다.
육칠과 철호는 애써 불길함을 떨쳤다. 노파심이 심하면 되는 일도 안 되는 수가 있었다. 이럴 땔수록 만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시작하는군요.”
육칠과 철호는 등 뒤의 싸한 느낌을 받은 즉시 청초한 목소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언제?’
‘그새 더 강해졌구나.’
남장으로 변복을 해도 예쁜 검후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저럴 거면 뭐하러 남장을 하는지 이해가 되진 않았으나, 지금은 그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왜?
아직은 나와선 안 되는 순서였다. 그런데도 이 자리로 왔다면 단상 위에서 벌어질 일은 파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무인은 관심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세간의 관심이 중요하긴 했다.
두둥!
-북해천존!
주화입마에 들어 궁의 폐관수련실에 갇혀 있다고 알려진 북해천존 북궁백이 건재함을 과시하듯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방의 웅성거림마저 제압하는 가공할 위압감이 번져 나왔다. 사위를 압도하는 절대자의 기도였다.
우우우우웅!
절로 만인의 무릎을 꿇렸다.
북해의 지배자다운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했다. 이로써 그간 떠돌았던 소문이 낭설임을 밝혔다.
와아아아아!
천존이시여!
모두가 환호하는 순간에도 육칠과 철호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순조롭기만 했던 흐름이 어긋나 버렸다.
‘아니 왜?’
‘굳이.’
모두에게 끝이 났다고 할 때, 멋들어진 등장은 좋다 이거야. 굳이 왜 지금 나오냐고!
일그러지는 천해각주의 표정과 대비가 되는 현실이었다.
북궁백의 오만한 시선이 천해각주를 향했다.
“천해각주여, 북해의 지존을 가리겠는가?”
아주 그냥 주인 나셨다.
육칠과 철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사부가 몰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