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37
236 호박씨의 말로(3)
서걱, 서걱, 푸악!
베이고, 갈리고, 관통하는.
천지검의 반복이 이어졌다. 누구도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주검이 되어 버렸다. 일다경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절반에 달하는 무인이 차곡차곡 대지를 덮었다.
점차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외력을 극한으로 운용한 상태로 본인의 장기이자 절기를 뿌렸다. 그렇다면 상대도 막기 위해서 노력을 하거나, 회피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했다.
그런데 베이고, 갈리고, 관통했다.
일방적으로 죽어 가고 있지만,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아니, 알고 있는데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이 고작 천지검에 죽어 가고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어떻게 한 거지?’
‘진정 천지검이라고? 이게?’
원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한 자는 감히 다가서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두려움이 전염병처럼 번져 갔다. 강자의 반열에 든 자들도 예외는 없었다.
“물러서라!”
더는 틈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마공을 극한으로 개방한 한소천이 설천수라도의 신을 죽이는 수라의 참격, 수라신살(修羅神殺)을 휘둘렀다.
선과 악의 대비가 극명한 수라가 완전한 악이 되어 펼쳐 내는 도강은 공간을 말살하는 힘을 지녔다. 초식의 발현과 함께 발생하는 가공할 도압(刀壓)이 상대를 옭아맸다.
꽈아아아앙!
무진이 선 공간을 아예 박살을 내 버리는 힘의 편린이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도강이 연이어서 폭발을 일으켰다. 휘몰아치는 연환도강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기민했다. 마침내 극에 이르렀을 땐 아수라의 현신이 되어 무진을 집어삼켰다.
스걱!
절대무변의 기력이 파생되었다. 휘몰아치며 떨어져 내리는 눈보라마저 변화에 녹아들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파문의 중심 속 무진과 한소천이 마주 보았다.
“뭘 봐.”
“……개 같은!”
나는 다르다?
웃기는 소리.
정수리부터 수직으로 이어진 혈선을 한소천도 피하지 못했다. 그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반으로 갈리지 않으려는 한소천의 마지막 몸부림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쩌어억!
한소천도 천지검의 먹이에 지나지 않았다.
“어설픈 마도로는 어림도 없지.”
-어설프진 않았다.
마신결을 완성한 북해의 마도였다면 다를 수도 있으나, 무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무림이란 곳이 싹이 자라 줄기와 잎을 틔우고, 꽃이 되어 만개하기를 기다려 주는 따뜻한 세상은 아니잖아.
약육강식, 강자지존.
무림은 원래 그렇다. 아니, 세상이 그렇다. 따뜻한 일면, 그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일 뿐. 훈훈하게 마무리가 될 것 같으면 권선징악으로 포장하진 않겠지.
스윽!
흐억!
한소천의 허망한 최후에 사위는 얼어붙었다.
북해의 추위에 적응된 그들조차도 상상도 못 한 현실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임에도 믿어지지 않았다.
한소천은 저리 죽어선 안 되었다.
자신들을 이끌 북해의 주인으로서 찬란히 빛나야 할 한소천이 일도양단에 쪼개져 버리다니.
덜덜덜!
떨림이 가시지를 않는다.
그제야 북해의 전설을 기억했다. 단순히 북해성의 기예를 얻은 행운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전설마저 뛰어넘은, 상식을 불허하는 천외천의 괴물이었다.
“북해의 무인은 호전적이라고 들었는데, 보기보다 얌전하네.”
무진의 눈빛이 좀 전과 달리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 작은 읊조림은 사신의 전언처럼 죽음과 맞닿았다. 망부석이 되어 멈춰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전염된 공포에 통제력을 잃어 갔다.
서걱, 스걱, 푸억!
무진은 얌전히 보내 주지 않았다.
이 안에 있는 자들의 사정 따윈 의미가 없었다. 무엇이 어떻든 선택을 했다면 대가를 받아야 했다.
“……살려!”
“……도망쳐!”
“……이길 수 없어!”
“……괴물이야!”
하나 무진의 천지검은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도주하는 자들부터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스걱!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베인 자를 무진은 돌아보지도 않고 다음 상대를 찾았다. 마치 오늘 들어올 물량의 소를 도축하는 백정처럼 감정의 편린조차 실리지 않았다.
허!
헐!
멈춰 선 자들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감히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안으로 들어가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비현실적인 광경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이 본 광경이 꿈인지, 생시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방금 죽은 자는 천해각주입니다!”
“천해각주를 저리 가볍게 처리하다니!”
“설천한가의 수뇌부들이 하루살이처럼 썰리고 있어!”
“원로원의 혈음마겸이 도망치다 죽었어!”
죽은 자들의 면면이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라도 하지, 저들은 북해를 대표하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무 썰리듯이 갈려 나가고 있었다.
‘저건 천지검이 분명하잖아!’
‘왜 피하지를 못하는 거지?’
‘마치 제 발로 찾아 들어가는 것 같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그들로서는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북해의 고수가 천지검에 맥없이 죽어 가는 것은 상식적인 선으론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이었다.
너무 어이없이 죽어 나가다 보니, 천해각주가 보기보다 약하지 않았나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 경험해 본 자들은 고개를 젓겠지만, 현실은 눈앞에서 몰살당하고 있었다.
‘천해각주가 보기보다 약한 건가?’
‘그럼 필사적으로 싸운 궁주님은 뭐가 돼?’
‘마지막엔 질 뻔하지 않았나?’
‘가주들이 합공해서 겨우 벗어나긴 했지.’
‘우리가 그동안 궁주님을 잘 모르고 있었나?’
사람이란 자기가 본 걸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누구도 따르지 못할 광세무변의 절학이 펼쳐졌다면 모를까. 자신들도 익히 알고, 코흘리개 세 살배기도 가르치면 곧잘 따라 할 천지검이 분명했다.
서두르기는 했어도 추격대는 가문과 궁에서 선별된 고수들이었다. 나름의 식견이 있고,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도.
-천지검이 대단해 봤자 천지검이지.
선입견은 있었다.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눈으로 보는 광경은 허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속속 눈치를 채 가고 있었다. 죽어 가는 자들은 약하지 않았다. 북해에서도 강자로 손꼽히는 자들이 속절없이 죽어 가고 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북해성의 검 앞에 있다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제삼자가 아닌, 북해성의 검을 눈앞에서 마주한다면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작은 의문이 던진 파문은 거대했다.
부르르르!
너무나 간단하고, 간결했다. 초식을 이해하고 말고의 영역하고는 거리가 멀다. 저 단순한 초식을 피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전율했다.
베이고, 양단되고, 관통하는.
아무도 저 단순한 검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멀찍이 있기에 작아 보였던 북해성이 어느 순간 태산처럼 거대한 거인이 되어 그들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막을 수 없어!’
‘……피할 수도 없어!’
‘……죽을 거야!’
막지도, 피하지도 못한 채 죽어 버렸다.
천지검의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 궁극의 무리가 전해졌다. 누구나 놓치고 있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것도 극한으로 단련되어 초월한 자들의 영역이다. 범인은 닿지 못할, 전설에 도달한 자달의 신기였다.
아!
이백 명의 추격대 중 절반은 천지검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남은 백 명 중 절반은 천지검에 무언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절반에 또 절반, 극소수에 속한 자들은 저것이 얼마나 대단한 무리인지를 실감했다.
‘북해성의 전설이 재림하는구나!’
‘진정한 북해의 지존은 북해성이었어!’
‘저런 분을 두고 궁주의 자리를 놓고 싸웠었다니!’
‘우리가 진정 하늘을 몰라봤구나!’
아연실색한 광경 속 모두의 시선이 북궁백을 살짝 흘겨보다 제자리를 찾았다. 그들도 이제는 깨달았다.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을.
‘어쩌다가 이리되었단 말인가?’
북궁백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도 천지검의 진의를 깨달아 갈수록 아득함을 느꼈다.
북해제일검공인 북해칠성검을 대성했지만, 천지검만 못한 현실과 마주했다. 일례로 자신은 천해각주를 죽이지도 못했고, 위험한 상황에까지 놓였었다.
그런 천해각주를 북해성은 밥상 위에서 윙윙거리는 날파리를 잡듯 베어 버렸다. 너무나 간단해서 순간 헛바람을 삼켰었다. 자신이 본 광경이 사실인지 몇 번이고 되짚어 보았다.
‘이게 꿈이 아니고서야!’
차라리 악몽이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다. 지금도 북해성은 역도들을 썩은 짚단처럼 베어 버리고 있었다. 어느새 남은 수는 고작해야 열을 넘지 않았다. 이제와 개입을 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격이었다.
‘어떻게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도망치는 자들이 어디로 갈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되는데,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 볼수록 말이 되지 않았다.
허!
모두는 북해성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궁백은 관심에서 멀어진 채 탄식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서봤자, 공을 가로채려는 수작으로 볼 뿐이었다.
추적대는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지만, 철호, 육칠, 이소정에겐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사막에서 혈궁과 도적단을 홀로 도륙해 버린 전과가 있었다.
-다들 낚여 버렸구나.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설마, 예측한 건가요?
실패해도 괜찮다는 쎄한 느낌을 받을 때부터 이 사태는 벌어질 운명이었던 것이다. 천지검으로 도주자들을 도륙하는 건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이 일련의 사태를 예측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닭 쫓던 개 신세들이네.
-예견된 참상이죠. 사부는 잘난 체하는 놈들에겐 적아를 막론하지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
-궁주가 너무 나댔어.
무인으로서의 빌어먹을 호승지심이 눈앞의 광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의 성향까지 이용한 고도의 심리전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대단한 사람이야!’
이서정은 진정으로 감탄했다.
가벼운 언행과는 다른 이질적인 무력과 치밀한 심기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송호문과 같은 작은 문파에서 저와 같은 괴물이 어떻게 나온 건지 불가해였다.
하물며 주변 인물들도 범상치 않았다. 옆에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육칠과 철호도 보통이 아니었다.
‘사부님, 저는 모르겠어요!’
물심양면으로 키워 준 사부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가슴속에 협의가 있다면 난관을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주버님은 사부가 말한 난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뭘 해도 안 될 것 같았다. 무공을 대성해도 벗어나기는커녕 꽉 잡혀 살 팔자였다.
아!
얼이 나가 있었던 북궁혜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고 있었더니 목이 다 뻐근하다.
이런 결과는 상상도 못 했다. 아버지조차도 제압하지 못해서 쩔쩔맸던 천해각주를 일검에 양단해 버릴 줄은.
천해각주로 인해서 빙궁이 위태로웠던 시기가 거짓말 같았다. 저리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럴 거면 칠가쟁패에…… 아!’
안 된다.
무진이 대회에 나오면 아버지의 존재감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존재감은 여기서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마치 그렇게 될 운명처럼 요상하게 흘러갔다.
‘이제는 어쩌지?’
사태는 해결되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위엄은 망가졌고, 빙궁은 반파되었다. 그렇다고, 왜 참석하지 않았느냐고 원망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