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44
243 뽕을 뽑다(3)
수발을 끝내고 육칠과 철호는 궁 밖 식당을 찾았다. 사흘 동안 궁주, 원로, 장로, 가주들은 무진과 술판을 벌였다. 그쯤 되자 제아무리 고강한 체력과 내력을 소유한 무인도 뻗지 않을 수 없었다. 인사불성이 된 궁주, 원로, 장로, 가주들은 집에도 못 가고 궁에 있었다.
“사부하고 술 내기를 하다니 저승길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네요.”
“강 대협이 술이 센 줄은 알았지만, 정말 인간이 아니시다.”
사흘 내내 그들 전부를 상대했다. 물도 그 정도로 마시면 물리다 못해 토악질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모르겠다. 대체 어떻게 술이 안 취하는 건지? 내력으로 주기를 빼지는 않았다.
“너는 알겠냐?”
“몸이 알아서 주기를 해독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게 말이 돼?”
“언제는 사부님이 말 되는 분이셨습니까?”
“그건 그러네.”
육칠과 철호가 찾은 식당은 유명하진 않아도, 북해 사람들이 자주 애용한다고 했다. 이 식당에서 주로 파는 순록전골이 일품이었다.
“사슴 고기는 처음 먹어 봅니다.”
“사막보단 훨씬 낫다.”
“그때 먹은 양고기가 아직도 입안을 맴도는 느낌입니다.”
“여긴 그래도 입맛이 비슷하다.”
육칠과 철호는 순록전골 대(大)자하고, 북빙주를 시켰다. 북빙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북해 사람들이 흔히 먹는 대륙의 탁주와 같았다.
“요새 이 소저와 뭘 하는 거냐?”
“뭘 하긴요, 비무죠.”
“그래서 이겼냐?”
“이기는 건 고사하고, 버티기도 어렵습니다.”
“네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 난 턱도 없겠네.”
육칠은 철호의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또래에서 이 녀석과 견줄 녀석은 태진이가 유일할 것이다. 이미 나이를 뛰어넘어 강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제까지는 나이와 관록으로 버티고 있지만, 더는 어려웠다.
그런 철호가 승부조차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이서정의 검공은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사막에서보다 최소 배는 강해졌을 것이다. 빙궁주의 치료를 도맡으면서 내력을 효율적으로 다루었고, 검의에 북천신결을 장점을 담아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합니다.”
“무엇을?”
“연무장에서 떠나질 않으니까요.”
“노력하는 천재라 이거냐?”
“무공을 모르는 사람도 그 정도로 독하게 노력하면 꽤 강해질 겁니다.”
철호는 이서정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도, 지고 싶지 않았다.
하나, 이서정의 노력은 인정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통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서 포기했냐?”
“포기하기는요. 그러는 형은 어때요?”
“됐어, 인마. 난 나대로 만족하련다.”
“그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기 마련이다. 경쟁심은 성장에 매우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의식하다간 자신의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육칠, 태진, 이서정은 천재였다. 범재는 아니더라도, 자질에서 차이가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그나마 마음은 편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절박함이 크죠.”
“벗어날 수 있겠냐?”
“없습니다. 절대.”
“그렇겠지, 강 대협은 천외천이니까.”
이서정의 성장 동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극복하기에는 벽이 지나치게 높고, 단단했다. 오르고, 또 올라도 오르지 못할 나무가 있었다. 가로막은 나무는 인간적인 영역을 아득히 초월했다.
“천지검이 그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다.”
“무공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무진의 주력은 권공이나, 따지고 보면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어떤 무공을 써도 최적화가 되었다. 천지검을 쓸 땐 평생 검만 수련한 검객처럼 보였으니까. 실제로도 검공의 극의에 도달한 것 같았다. 더욱이 기병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다. 착용하고 있는 신화마정갑까지 더해지면 완전무결했다.
“그런데 형은 어디 갔다 온 거예요?”
“개방에 연락을 넣었다.”
“사부께서 허락은 하셨고요?”
“강 대협이 알리라고 했어. 내가 미쳤다고 내 맘대로 하겠냐.”
사막과 북해에도 개방의 정보원을 파견해 놓기로 했다. 북해에 오기 전 침원에서부터 무진이 시킨 일이었다. 사막도 멀지만, 북해는 더 멀었다.
중원과 연락이 끊어진 시일이 길어지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간에 가교 구실을 할 접선책을 심어 놓았다.
북해에 오기 전에 연락이 갔을 테니, 사막에 들어서면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일 없겠죠?”
“없겠지. 없어야 하고.”
중원 곳곳에서 터지는 사고들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송호문과 연관된 사안이 중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족이 사건에 휘말리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분노한 무진을 상기해 봐라. 평소에도 정상과는 거리가 먼데, 광분하여 날뛰는 무진은 솔직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돌아가겠지?”
“아마도요.”
무진의 변덕이 발동하면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북해성으로 추앙을 받으며 여기서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건 무진의 성향을 모르기에 하는 소리다. 애초에 북해를 위해 나설 위인도 아니었다.
“이번엔 안 집니다.”
“돌아가면서 쌍으로 잘들 논다.”
“기필코 이길 겁니다.”
“강 대협이 서운해하시겠네.”
“그럼 같이 죽는 겁니다.”
육칠이 보기엔 태진과 철호는 평생의 호적수가 되어야 할 팔자였다. 운명이라는 거창하고 필연적인 대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승부에서 이기지 못하면 밖으로 나돌아 다니며 개고생을 해야 했다.
드르륵, 휘이이잉!
문이 열리며 바람이 들어왔다. 북해의 서늘한 바람은 술기운을 달아나게 한다.
안으로 다섯 인영이 들어섰다. 제법 갈무리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복장도 일반 북해인과는 다르게 털가죽을 세심하게 무두질한 고가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이층으로 올라가서 가장 좋은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철호를 보았다.
철호의 이목구비는 어딜 가든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전형적인 살인마 얼굴이거든.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었다.
“북해성께서 데리고 온 노예들이었군.”
“노예들이 운이 좋아, 무공까지 배우고 말이야.”
그들은 북해오가의 후예들이었다. 철호를 알아본 그들은 북해성에게 무공을 배운 철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운이 좋아 가르침을 받아 신분 상승을 했다고 보았다.
북해오성으로 불리는 그들.
북룡진가 명성 진호준.
북검백가 수성 백무성.
빙원명가 복성 명운천.
북웅현가 현성 현인필.
한빙무가 진성 무설군.
북해빙궁에서 열린 칠가쟁패의 후기지수 간 대결에 나와서 제법 선전하기는 했다. 하나, 이번 천해각주의 역모에서 활약했다고 알려진 철호와 육칠에 비하면 부족한 명성이었다.
문제는 철호와 육칠이 암암리에 활동했기에 아는 사람만 안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마주친 대상도 가주, 원로, 장로가 전부였었다. 그러니 북해의 신성들이 보기에는 북해성의 유명세에 편승한 노예들로 보일 수밖에.
자신들도 북해성의 눈에 들었다면 저들보다 훨씬 뛰어난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기조에 깔려 있었다.
“빙검후께서 언제 나오는지 알고 있나?”
“빙검후를 모시고 온다면 후하게 값을 치르마.”
“그거라도 해야 온전히 식당을 나갈 수 있을 거다.”
“아량을 베풀었으니, 고마운 줄 알거라.”
천해각주의 반란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북해성이지만, 그보다 주목을 받은 것은 이서정이었다. 그녀는 북해 한정 빙검후로서 젊은 무인들의 방심을 거세게 흔들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심한 것들이네.’
북해오성인지 뭔지 잘 모르는 놈들의 거만한 태도에 육칠은 혀를 찼다. 주제를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 강 대협이 오지 않았다면 천해각주에게 잡아먹혔을 놈들이 살아남더니 기가 살았다. 세상 밖을 모르는 철부지들이 아닐 수 없었다.
‘상대할 필요 없겠지.’
육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런 놈들과 일일이 말 상대를 하면 싸움밖에 더 나겠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이 잡것들이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
“다 나와, 이 잡것들아!”
“너…… 취했냐?”
아차!
이 자식 술 약하지.
만류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술기운이 돈 철호가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 덩치는 곰 같지만, 속도는 비호처럼 빨랐다. 저 덩치에 저 속도는 솔직히 반칙이었다. 강 대협도 그렇고, 덩치가 큰데도 속도는 역행했다.
“노예 따위가 겁도 없이!”
“북해성께서 네놈을 언제까지 봐줄 것 같으냐!”
잡것으로 치부된 북해오성도 노기를 감추지 않고 폭발시켰다. 하지만 비호처럼 날아온 철호의 주먹질을 간과했다. 그들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난장판이 되었다.
우당탕, 쨍그랑!
퍼억, 크억!
일격을 허용한 진호준은 숨이 턱 하고 막히며 비루하게 튕겨 나갔다. 이어서 전광석화처럼 회전하여 날린 철호의 발길질은 백무성은 왼쪽 안면을 후려쳤다. 허공을 팽글팽글 돌다가 바닥으로 엎어져 버렸다.
쿠다다다당!
현인필과 무설군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하려고 했지만, 철호의 좁은 공간에서의 움직임은 신기에 가까웠다. 눈꺼풀이 닫히고 열리는 사이에 현인필과 무설군은 얼굴과 가슴을 내어 주었다.
퍽퍽!
어이쿠, 사람 잡네!
쌔앵!
거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비처럼 날렵한 운신. 마치 쇳덩이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처럼 역발상의 동선을 보였다.
퍼어억, 쿠다다당!
충격을 받고 쓰러진 북해오성을 철호는 식당 밖으로 집어 던졌다. 술이 들어간 상태였기에 철호는 눈에 뵈는 게 많지 않았다. 이 앞에 사부가 있다면 또 모를까? 그 전까진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사부를 제외하고 무서울 게 없는 철호였다. 이 순간만큼은 나이에 어울리는 질풍노도 같았다.
퍼퍼퍼퍽!
……그만!
찰진 타격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북해오성은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먼지 나게 처맞았다.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기다려 주기까지 했다. 저건 일어나게 해서 더 패겠다는 명백한 구타유발자 행위였다.
‘쌓였네, 쌓였어!’
평소의 철호는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편이다. 본인 얼굴을 가지고 지적질 하지 않는 이상. 오늘따라 화를 내는 걸 보면 저 자식도 그동안 쌓인 게 많았다는 걸 의미했다.
‘그 와중에 주머니를 뒤지냐.’
철호는 정신이 약간 들었는지 식당의 수리 비용을 챙겼다. 북해오가의 신성들이니만큼 돈은 충분했다.
이제 맘 놓고 패도 되겠다 싶은 철호는 북해오성을 자근자근 밟았다. 사부의 가르침 왈, ‘패도 경제성 있게 패야 한다’를 실천했다.
퍼퍼퍼퍽!
기절한 녀석들을 밟아 대는 철호의 눈빛에 광기가 일렁였다.
“야 인마, 그만해!”
“형은 빠지슈!”
말투 봐라.
이러다 사고 나겠다 싶은 육칠은 조심스럽게 철호를 구슬렸다. 하나, 눈 돌아갔을 땐 강 대협 빼고 물불 안 가리는 녀석이었다.
‘누가 보면 부모 죽인 원순 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