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48
247 교란술(3)
눈이 따가웠다.
바람에 눈이 들어온 줄 알고 비볐던 북궁혜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앞이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소금…… 누가?”
눈송이가 아니라 소금이 바람에 실려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앞에서 누군가 소금을 뿌리지 않고서야.
어?
발이 질척거리는 무언가에 걸렸다. 앞을 봤다면 걸리지 않았겠지만, 순간적으로 눈을 뜨지 못했다.
까악!
쿠다다다당!
미끄러운 바닥에 힘을 주고 달리고 있었다. 균형을 잃자 볼썽사납게 구르고 말았다.
눈을 뜬 북궁혜는 앞에서 수작을 부렸다는 걸 깨달았다. 범인은 어렵지 않게 찾았다. 이런 짓을 할 위인은 그 거지밖에 없었다.
이 거지발싸개 같은 인간이!
“이 치사…… 벌써!”
무모한 도전을 하던 이서정이 어느새 거리를 좁혔다. 무섭도록 빠른 속도였다. 같은 출발선에 있었다면 도저히 따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대론 내가 꼴찐데!’
바닥에 있는 얼음덩어리를 몰래 숨기고 있다가 이서정이 나아가는 순간에 집어 던졌다.
파아앙, 까악!
방심하고 있을 줄 알았던 이서정은 얼음덩어리를 쳐 내 버렸다. 하필이면 북궁혜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젠장!’
장난질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다. 북궁혜는 감히 두 번째 수를 쓰지 못했다.
‘이러다간…… 엄마야!’
하늘에서 빙괴가 날아오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눈덩이를 모아 집채만 한 눈 덩어리를 만들어 내었다. 눈덩이 맞아 저세상으로 직행할 뻔했다.
“느리네.”
“……가요!”
무진은 추격자로서 도망자들에게 활력을 제공했다. 멀어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양산하고. 자연이 내려 준 눈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눈도 아껴야 잘 살지.’
-개소리를
단 삼일.
북해에서 사막의 경계에 도착했다. 식사와 수면을 제외하고 줄기차게 내달린 결과였다. 육칠과 철호는 대륙을 횡단한 경험이 있기에 놀라지 않았지만, 북궁혜와 이서정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한계를 규정짓지 마. 그러나 항상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해.”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정답. 많이 컸구나, 제자야.”
“아무렴요, 그 철모르던 시절의 제가 아닙니다.”
뭔가 있어 보였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무진은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을 뿐이다. 고민했던 이서정과 북궁혜는 순간 허탈해졌다. 이 와중에도 저딴 개소리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설득력이 있었다.
앞을 보고 내달리기만 하면 부족한 부분을 놓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꼬집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생사의 기로가 되었을 때, 놓친 부분이 치명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쓰담, 쓰담.
저거 뭐냐?
이서정과 북궁혜는 철호의 모습에 헛바람을 삼켰다. 무진이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자 마치 주인에게 칭찬받은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큰 곰이 연상되었다.
‘애는 애네.’
워낙 노안이라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칭찬에 저리 해맑게…… 어쨌든 좋아했다. 그간 자신들이 너무 철호를 신경 써 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상처를 준 셈이었다.
‘이러면 우리만 나쁜 년이잖아.’
동기부여라며 제자를 갈구던 사람이 이젠 온화한 사부가 되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든 사람이었다.
“나는 혈궁을 들렀다가 관문을 넘을 테니 육칠은 관문에서 기다리도록 해.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침원으로 연락하고.”
“예, 강 대협.”
“아, 정운상단에 연락해서 북해빙궁에 가 보라고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육칠, 이서정, 철호와는 이쯤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무진은 북궁혜와 사절단으로서 혈궁으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사전에 전서를 보내 뒀으니, 혈궁에서도 연락을 받았을 것이다.
“당분간 빙천검예를 봉인해.”
“어째서요?”
“몰라서 묻는 거면, 맞는다.”
“빈틈이 없으시군요.”
사막을 건너가는 동안 빙검을 쓰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혈궁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빙백마녀를 찾으려고 여전히 혈안이 되어 쫓아다녔다. 최소한 관문을 넘을 때까지는 얌전히 있는 편이 나았다.
“괜찮겠어요?”
“안 괜찮을 이윤 없지. 두 개나 점을 찍었는데.”
빙궁과 혈궁이 사이좋게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 좋겠지만, 어떤 일이든 마음대로 된다고 보장하긴 힘들다.
그리고 이번 일은 되든 안 되든 상관이 없었다. 빙궁과 혈궁이 손을 잡기 위해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문제 일으키지 말고. 알았지?”
“예, 사부.”
철호 이 녀석, 계속 보다 보니 귀여운 구석이…….
있겠지?
***
파아아아앙!
분기를 이기지 못하고 내리친 탁상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파문을 일으키며 거친 소요가 방 안을 흔들어 놓았다. 조금 더 힘을 썼다면 방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터.
“다시 말해 봐라.”
“실패했습니다. 마도의 가문은 사라졌습니다!”
“천지검과 백살은?”
“시간이 부족하여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죽었으리라 판단이 됩니…… 크억!”
보고를 올리던 백암의 신형이 튕겨 나가 벽면을 두드렸다. 숨통이 끊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력이 내부를 강타했다.
백암의 입술을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허어, 허억!
오장육부가 가닥가닥 잘려 나가는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백암은 신형을 추스르며 무릎을 꿇었다.
현천군이 이토록 분노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었다. 그로서도 실패를 고려하지 않았던 완벽한 전략이었다. 한데, 북해마도와 가문이 멸문하고 말았다.
부들, 부들!
분기로 점철한 현천군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좀처럼 보기 힘든 무너진 모습이었다.
그가 지금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냉정함을 유지하며, 완벽함을 추구했었기 더더욱 오점이 되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이쯤 되면 먼저 죽어 간 묵암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도 무능함을 보인 것이다. 실패가 쌓이면 교에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후우!
현천군은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분기를 다스렸다. 결과가 드러난 이상 되돌리진 못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결과가 나온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차후, 계획을 세우려면 필요한 과정이었다.
“실패한 원인은 찾아냈나?”
“북해성의 후예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북해성?”
“북해성은 북해의 전설입니다. 그가 북해칠가의 근간을 이루는 북천신결을 전수한 이후로 모든 계획이 어긋났습니다.”
“놈이 천지검과 백살을 죽였다고 봐야겠지?”
“그렇습니다.”
북해성의 등장 이후로 입마에 들었던 북해천존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북해오가는 물론 북해의 무인들이 마도를 돌아섰다. 마도의 반역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지검과 백살은 다른 문제였다.
“북해성의 무력 수준은?”
“최소 신주이십일강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봅니다.”
너무 높게 평가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천지검의 무위는 놀라웠다. 검에 대한 이해만 따지면 교내에서도 천지검과 비견되는 자는 흔치 않았다. 자신조차도 검의에 관해서는 천지검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하물며 명령의 수행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살인 병기, 백살이 동원되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규모의 문파는 한 식경 안에 초토화를 할 수 있었다.
“당장 북해를 정리할 수 있을까?”
“북해의 비전을 공개하면서 북해빙궁의 전력이 상승했습니다. 천존의 무력도 알려진 것과 달리 강합니다.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으나,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일이 골치 아프게 돌아가고 있었다. 입마에서 회복한 북해빙궁의 궁주도 문제지만, 북해육가가 교의 존재를 눈치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비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전력 대결을 벌인다면 북해를 장악할 수 있겠으나, 껍데기만 남게 될 테고. 그리되면 혈궁을 비롯한 다른 새외의 세력들도 긴장하게 될 것이다.
흐름 자체가 좋지 않았다.
북해의 전설이 버티고 있으며, 북해육가가 똘똘 뭉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철옹성이 되어 갈 터.
짓밟기에는 그동안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을 허공으로 날리는 격이었다. 또한, 교의 정보가 새어 나갈 우려가 있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상하구나.’
순조로웠던 흐름이 비틀리더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수시로 방해하지 않고서야. 마치 거대한 암흑 속에 홀로 방황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빙궁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마침 쓸모를 다한 자가 있습니다.”
“그자를 회유하고 북해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해.”
“예, 천군.”
빙궁을 통해 혈궁을 장악하려고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기에 혈궁을 반드시 장악해야 했다. 새외의 세력을 흡수할 수 없다면 최소한 힘을 빼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었다.
“실패는 없다.”
각오를 다지는 현천군의 잔잔한 울림에 백암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다음에도 실패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
청양이 떠들썩했다.
흑룡성 산하 사도십이세(邪道十二勢)의 한 축인 패천문에서 송호문에 도전장을 보낸 것이다. 정파와 사도의 우호적인 교류를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생사결에 가까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간단했다.
패천문에서 내보낸 무인이 패룡이기 때문이다. 용의 반열에 든 자로서 사도 무림을 대표하는 무인이다. 언뜻 신성 중에 뛰어난 자로 판별할 수 있으나, 실제는 다르다. 사도 무림의 용들은 정도 무림과 달리 연륜이 있었다.
마흔 중반에 이른 패룡은 사도 무림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자이며, 패도무쌍의 기질을 갖춘 권공의 달인이었다. 그와 대결을 한 자치고 멀쩡히 걸어 나간 자가 없었다. 대다수는 폐인이 되었고, 심지어 죽은 자도 적지 않았다.
패룡이 도전 상대로 지목한 대상은 청양제일검이었다.
신검마협은 거산방과의 결전에서 이름을 알린 신진검수로서 정도 무림을 이끌어 갈 차세대 검호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송호문의 소문주를 꺾기 위해 패룡을 보냈다는 것은 사도 무림의 보복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커 가는 문파를 상대로 패천문이 직접 나섰다는 것 자체가 이를 증명했다.
더는 송호문이 세를 키워 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고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였다. 이쯤 되면 무림맹에서도 흑룡성에 따져 물어야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송호문은 정도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어쩐 연유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무림맹에선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적인 복수가 아닌, 무인 대 무인의 순수한 비무로 보겠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 무림맹에선 정도 무림의 기상을 사도 무림에 보여 주라고 종용했다.
“대체 언제 적 패룡이야. 이십 년도 전에도 패룡이었잖아.”
“별호만 신성이지, 이건 너무한 거 아냐!”
“흑룡성에선 이번 대결을 용의 대전이라고 명명했던데.”
“자신들도 신룡이라는 건가?”
“그냥 대놓고 송호문을 짓밟을 생각이구나.”
흑룡성에서 패룡을 보낸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의 별호가 주는 이름값이 있었다. 마치 이런 때를 대비해서 별호를 그대로 둔 것만 같았다. 실제로 패룡은 말만 패룡이지, 내부에선 패군으로 불리고 있었다.
“의도가 노골적인데, 무림맹도 너무하네.”
“우리 같은 사람도 아는 일을 무림맹의 높으신 분들이 모를까?”
“알면서도 잘하라고 응원 한 마디로 땡처리한 거잖아.”
“벌써 청양에 들어설 문파를 섭외하고 있다는 소문이야. 무림맹에 선을 대려는 문파가 있더라고.”
“송호문이 끝장났다고 본 거네!”
예전의 청양이 아니었다. 수로가 개발되면서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도시의 규모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기는 하나, 곧 도시로 편입되리라 보았다. 그런 곳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문파가 통째로 관리하게 되었다.
사도 무림뿐만 아니라 정도 무림에서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패룡이 송호문의 기둥인 신검마협을 쓰러뜨린다면 문파를 세우기엔 절호의 기회였다.
정도든 사도든 문파를 유지하려면 무력이 필수조건이다. 송호문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문파로선 신검마협이 명성을 크게 얻어야 했다. 반대로 신검마협이 꺾이면 송호문의 기세는 그날로 끝장이 난다고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