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60
259 인사유명(人死留名)(1)
“네놈이 나의 진을 부쉈구나!”
“어때, 제법이지?”
“네놈만은 살려두지 않겠다!”
“어디 맘대로 발악해 봐.”
분노한 현암이 무진을 향해 쇄도했다. 환살을 제물로 삼고, 선천진기까지 소모했던 진이 허무하게 사라지자,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쐐애애앵!
무진은 쇄도해 오는 현암의 사령검강을 권강으로 받아내며 전력 대결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전장에서 벗어나 술판을 벌였을 때와는 다른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돈값하고 있었다.
슈슈슈융, 푸아아앙!
천수보살이 일시에 주먹을 쥐어 권강을 발출하듯, 일로에 수십 개로 분사한 권영이 현암의 검강을 유리잔처럼 부수며 나아갔다.
사사사삭!
박살 내고 쇄도한 권영이 현암을 강타했지만, 관통하고 말았다. 잔상이 일어나며 분신이 사방으로 그림자를 여럿 형상화했다.
퍼퍼펑!
무진은 멈추지 않고 잔상을 추적하며 권강을 아낌없이 소모해 주었다.
꽈아아아앙!
다발의 권강이지만, 하나하나의 파괴력이 괴랄했다. 파편처럼 떨어져 나간 권강의 편린에 폭약이 터지듯 지면이 솟구쳐 올랐다. 하늘로 거대한 기둥을 형성했다가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실로 경이적이었다.
솨아아악, 타아앙!
어지간한 고수라도 일권이면 산산이 조각나서 신체를 온전히 건사하기 힘들 텐데, 현암은 빠른 속도로 반격을 가해 왔다. 사령마검식의 절기를 검강으로 쏘아 내며 권강의 파괴력을 상쇄했다.
투아아아아앙!
검강과 권강이 충돌할 때마다 천지개벽을 일으켰다. 귀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접근 자체를 불허하고 있었다. 주변을 초토화하는 강기의 포화가 한 호흡의 빈틈도 없이 맞물렸다.
“사악한 놈이 제법 하는구나!”
“네놈이야말로 나의 검을 받아 내다니 대단하구나!”
“너 정도면 무리의 수장쯤 되겠지?”
“나는 그분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디서 개소리를.”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마라!”
대결 도중에도 대화는 또렷이 들리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웅후한 파괴력을 상기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강기로 끝나지 않고, 강환으로 번지며 천지 사방을 가득 메우는 무진과 현암의 결전이었다. 번져 나가는 파문에 휘몰아치는 소요가 일대를 장악했다.
아!
작지 않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적리단철은 암흑진이 사라지고 난 후 끝이 난 줄 알았었다. 한데, 걷히기가 무섭게 기사천이 북궁진을 향해 쏘아졌다.
그 뒤로 펼쳐지는 전투는 실로 놀라웠다. 단순히 강기를 뿜어내는 것이 전부가 아닌, 파괴력을 극대화했다.
‘강하다!’
훈수를 두고, 암습을 가하는 모습만 봐서는 얼마나 강한지 알기 어려웠다. 사막혈전을 통해 강함을 인정받았다고 해도, 직접 부딪쳐 보지 않아서 다소 경시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드러난 무위는 적리단철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했다. 강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때에 따라서 강약을 조절하기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완전한 강의 경지, 화경에 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단순한 화경이 아니다, 어쩌면 궁주님과…… 이런!’
혈천과 비교를 했던 적리단철은 불경을 자책했다. 감히 누구도 혈천과 자웅을 겨루지 못한다, 그것은 사막의 불문율이었다.
그런데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대결을 본다면 불문율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궁주님의 상세가 심상치는 않았다. 진이 걷히자 가부좌를 틀고 운기요상에 들어간 상태였다. 진에 갇힌 위험한 상황에서도 운기요상을 해야 한다면, 기사천에게 낭패를 당했다고 봐야 했다.
그런 기사천과 북궁진이 팽팽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적리단철로선 북궁진을 경시했던 마음을 버려야 했다. 그가 보여주었던 경망스러웠던 막춤사위와 아무 말도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실로 대단한 자다!’
북해의 무인 중 저만한 자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차라리 북해의 천존이었다면 받아들이기가 조금은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북해천존도 아닌 일개 사신의 무력이 이토록 대단하다니, 북해빙궁을 다시 봐야 했다.
흠!
적리단철과 혈병들의 감탄과는 별개로 북궁혜의 눈매가 가늘게 변했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을 보란 말이 있었다. 북해에서도 그렇고, 지금까지의 행보를 봐선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결을 펼치는 것부터가 수상하다.
‘단칼에 썰었다면 모를까?’
삼재검인지, 천지검인지로 북해의 주력이었던 설천한가를 도륙해 버릴 때를 상기해 보면 현암과의 공수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기만 해도 최소한 초절정에 이르러야 하고, 저 정도의 파괴력을 내려면 화경에는 올라서야 했다.
그런데도 감흥을 주기는커녕 북궁혜로선 심드렁했다. 여태 해 온 일들이 워낙 상식을 파괴하는 말도 안 되는 괴행의 연속이라 이 정도로는 간의 기별도 가지 않았다.
‘너무 정상적이잖아!’
단도직입적으로 보면 정상적으로 지나치게 잘 싸우고 있었다. 마치 내가 절대고수임을 보여주려고 안달이 난 사람처럼.
그러니까 의심이 들었다.
절대 저렇게 기분을 내는 사람이 아니다. 돈 들어오는 일도 아니…… 응?
돈 들어오나?
적리단철과 혈병의 넋이 나간 표정을 보아하니 그럴듯한 견적…… 아니, 추론이 나온다.
‘전부 계획적이었어!’
북궁혜의 입에서 그제야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 일련의 상황마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끌어온 것이다. 공전절후한 대결도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꽈아앙, 추아아아앙!
허공으로 치솟았던 무진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며 유성이 폭사한 듯한 광경을 자아냈다. 현암은 놓치지 않고 허공에서 검강을 빗발처럼 쏟아 냈다.
슈슈슈슈, 퍼퍼퍼퍼퍼펑!
빠져나갈 공간을 차단하는 현암의 사령검강에 무진은 할 수 없이 호신강기를 발산했다.
꽈아아아아앙!
거침없는 파괴가 벌어지다 무진과 현암이 마주했다. 호흡이 그제야 약간은 거칠어 보였다. 이는 당연했다. 그처럼 엄청난 기운을 쏟아 내고도 지치지 않는다면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었다.
“대단하구나, 나에게 반탄강기를 쓰게 하다니!”
“사령검우를 온전히 받아 낸 자는 네가 처음이다!”
적이지만 서로를 추켜세우는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누가 더 대단한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취지가 분명했다.
내가 이렇게나 대단한데도 불구하고 이겼다는 모양새가 나올 필요가 있었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냐?
‘오랜만에 힘 좀 써보고, 좋잖아.’
-이따위 조잡한 대결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이거 왜 이래, 진짜로 싸우면 내 상대가 될 거 같냐.’
-이놈! 나는 마왕이고, 넌 전왕일 뿐이다!
‘뭔 개소리야!’
암흑진을 걷기 전에 이미 현암은 마왕에게 잠식되어 육체를 빼앗긴 상태였다. 알고 있는 정보는 금제가 발동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쏙쏙! 빼놓았다.
지옥사사겁천진은 무진이 직접 공략할 수도 있었지만, 그리되면 적지 않은 힘을 소모해야 했다. 반면 마왕은 신화마정갑을 이용하여 진 안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물론, 사전에 바닥에 깔아 놓은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면이 없지 않았다.
대결 전 바닥 깔기는 필수였다.
암습을 하기에 기가 막혔다.
지옥사사겁천진은 인간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환상을 일으켜 실과 허의 구분을 없앴다. 사람의 사고는 때론 환상이 현실과 맞물리며 실제로 화를 당하기도 한다. 극에 이른 환상으로 실체를 제어하는 진일지라도, 마왕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현천군이 개입한 거겠지?’
-현천군의 지시는 맞지만, 이번 일은 현암의 독단이다.
‘쩝, 너무 서둘렀나 보군.’
-지시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겠지.
지금까지는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현암을 통해 현천군의 현재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의 본단이나 지부에 대한 정보는 철저하게 금제로 막혔다. 알아보려고 하자, 현암의 영혼이 붕괴하여 소멸했다.
‘현천군도 이젠 똥줄이 타겠지.’
-북해의 실패만으로도 타격을 받은 상태인데, 혈궁까지 이리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올리려고 할 테지.
‘그래 봤자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 날 노릴 것도 아니고.’
-그렇기는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교에서 성천의 지위를 받았다면 특별함이 있다.
두 명의 암주를 처리했으니, 현천군은 남은 암주들을 닦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급하게 움직인다면 이쪽으로서도 나쁘진 않았다. 지금처럼 허점을 요격하여 원하는 대로 흐름을 끌어오면 되니까.
그러나 마왕의 말처럼 성천의 지위를 받은 자들은 특별한 힘을 지녔다. 그것을 교에서는 신력으로 표현하지만, 무진이 보기에 인외의 사특한 마력이었다.
‘그만 끝내자. 어느 쪽으로 할래?’
-난 왼쪽으로 하겠다. 왼팔부터 베라.
‘목을 댕강 자르는 편이 낫지 않나?’
-목부터 베면 이상하게 볼 수 있다.
‘호오, 전략적 죽음을 선택하시겠다.’
-이걸 원한 건 너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왕의 결의에 무진도 호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장단을 맞춰 줬으니,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신화마정갑 너 가져.’
-어차피 내가 아니면 사용도 안 하잖아!
현재로서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처지긴 하지만, 육체를 찾으면 다시 고려해 볼 수 있었다.
서걱!
현암의 왼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고통에 몸부림을 치기보다는 달려들었다. 마지막 생기를 불태우는 현암의 동귀어진이었다.
무진은 힘겹게 현암의 옆구리를 베고, 목을 벨 수 있었다.
스왁, 뎅강!
데구루르르르!
목을 베지 않았으면 다시 일어나서 달려들 것 같은 광경이었다. 나중에 사로잡지 않고 죽였다고 딴소리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생동감이 넘쳤다.
빠각!
화르르르!
무진은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듯, 대가리를 밟아 터뜨린 후 삼매진화를 발동했다. 잿가루조차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다급함은 필수였다.
후우우!
무진은 자리에 서서 심호흡하며 진기를 회복하는 척했다. 실제로는 거의 소모되지 않았고, 신화마정갑을 회수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도 몰래 흙 아래로 이어진 실선을 타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속옷을 대신했다.
‘시원했었다.’
-닥쳐.
기운을 갈무리한 무진은 돌아서서 한창 운기요상 중인 혈천과 혈병에게로 향했다.
싸우는 동안 거리를 약간 벌려 놓았었다. 지근거리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싸워야 더욱 대단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궁주님은 어떠십니까?”
“북궁 대협이 나서 주셔서 운기요상만 하시면 곧 일어나실 겁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다만, 사로잡지 못해 놈의 거점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 부족함입니다.”
“어찌 그것이 북궁 대협의 부덕이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적리단철은 한순간 가벼운 사람이 되어 버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화를 이기지 못했던 사람이, 이젠 그 어떤 사람보다 친화력을 보였다.
경천동지할 대결을 벌이며 승리했기에 가져온 파급력이었다. 만약 이기지 못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몰랐다. 자칫, 궁주님과 자신들마저 기사천에게 당할 수도 있었다. 생명의 은인이 주는 감투는 위대했다.
‘또 낚였잖아!’
북궁혜는 자신의 짐작이 사실로 드러나자 무진의 심계에 소름이 돋았다. 보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데, 경시했다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 불허였다.
“조카는 저기로 가서 게르라도 치고 있어. 할 일 없이 빈정거리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 안 그러니?”
“……알았어요!”
허튼소리 하지 말라는 무진의 경고였다.
해석하면 다 된 밥에 재 뿌리면 북해빙궁을 갈아서 빙수에 뿌려 마시겠다는 협박이었다.
우우우웅!
가부좌를 튼 혈천의 몸에서 혈기가 활화산처럼 뜨겁게 불타오르다 회수되기를 반복했다. 축융의 불길로써 상처를 치유하는 요상법이었다.
‘반 시진이면 되겠지?’
-그쯤 될 거다.
‘회복되는 줄 알 텐데, 쩝.’
-네놈은 양심도 없냐?
혈천이 현암의 수작에 걸려 궁지에 몰리긴 했지만, 운기요상을 해야 할 만큼 중상을 입진 않았다. 해서 현암으로 화해 운기요상 해야 할 상태로 만들어주었다. 보기엔 자가 치료로 끝날 내상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걱정입니다. 북해에 이어 사막에 이르기까지. 저들의 마수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대체 누굽니까?”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궁주께서 건재하셔야 합니다. 만약 궁주께서 놈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았다면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부상당한 상태로 그리 움직이다니, 한편으로 대단하군요.”
무진은 궁주의 운기요상을 살피며, 승리를 자축했다. 혈천이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다면 쉽지 않았을 거라며 추켜세워 주었다.
‘정말 마음이 넓은 사람이구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적리단철이 보기에 궁주님의 활약은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놈은 상처를 입은 상태로 강기를 다발로 뿌렸었다는 뜻이 되는데, 상식적으로 보면 불가능했다.
“적리 대주께선 궁주님의 상세를 지켜봐야 하니, 저는 조카와 함께 밥 좀 먹겠습니다. 움직였더니 시장기가 도는군요.”
“……그러십시오.”
마음이 넓다고 생각했던 적리단철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전처럼 전장에서 술판을 벌인다고 타박을 주진 못했다. 작금의 위태로운 사태를 해결한 주역을 타박해 봤자 본인들의 무능을 드러내는 꼴이었다.
무진은 북궁혜가 친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밥 차려.”
“또 먹어요?”
“좀 움직였더니 간식이 당긴다.”
“그럼 끝난 건가요?”
“끝나긴, 이제 시작이지.”
“역시 그렇군요.”
북궁혜는 군말하지 않고 식사를 차렸다.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죽을 끓여야 하는지, 배 속에 거지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