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63
262 위기일발(1)
사막과 북해의 소식을 기다리던 현천군은 마땅치 않은 듯 인상을 썼다. 근래에서 들어 조바심이 나고 있었다. 자신했던 계획이 실패하면서 심신을 다스리지 못했다.
“내 손으로 놈의 가문에 날개를 달아줬구나.”
사사건건 신경을 거슬렀던 천운권의 송호문을 부수기 위해 힘을 썼다. 패천문의 패룡이 나선 것도, 무림맹이 한발 물러선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 원하는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패천문의 패룡이 신검마협의 일검에 패했다. 패룡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신검마협이 최소한 초절정,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송호문의 처리는 중요하진 않았다. 대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무리해선 안 되었다. 다행히 송호문과 사파 간의 다툼이 있었고, 무림맹 내에 산동악가와 제갈세가가 강력하게 나섰기에 의심을 사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송호문의 거침없는 약진은 거슬렸다. 그 망할 놈의 악운이 예상을 상회했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천운권이란 별호처럼 운이 연이어 따랐다.
“어찌한다?”
산동악가와 제갈세가는 굳이 부추기지 않아도 송호문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송호문을 압박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대놓고 하기에는 껄끄럽다. 흑룡성과의 대결에서 공적을 쌓은 정도 문파를 무림맹으로선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맘 같아서는 그놈의 문파를 조각조각으로 찢어서 개 먹이로 던져 주고 싶었다. 하나, 잠시의 여흥을 위해서 대계에 지장을 초래할 순 없다. 냉철한 이성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던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다.
“파문을 던져 줄 순 있겠지. 갑작스러운 무공의 상승은 시기를 사기에도 충분하고.”
비급을 이용한다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다가올 쟁탈전에 송호문을 끼워 넣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만 된다면 의심을 사지 않고도 송호문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이 순간을 즐기도록 해라. 곧 숨통을 끊어 주지.”
한편으로 자신의 감정적인 굴곡이 편치 않은 현천군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증오가 실패의 반복을 만회하려는 보상 심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흠.
방문 밖에서 서두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것이 현천군의 심기를 건드렸다. 성급하게 처리한다고 능사가 아니거늘.
드륵!
백암이 문을 열고 들어와 예를 취했다.
“혈궁과 북해가 밀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북해의 사신을 처리하기 위해 현암이 독단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성공이 필요했기에 사막의 소식을 학수고대했던 현천군은 치미는 울화를 다스리기 힘들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지만, 사태의 심각성이 예상을 벗어났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북해에서 혈궁의 대공자를 포섭한 듯합니다. 그를 통해 혈천과 협상을 제안한 것이 분명합니다.”
제대로 뒤통수를 처맞았다. 북해와 사막은 견원지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서로의 영역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적대시해 왔다.
게다가 북해는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기도 바빴다. 이토록 신속하게 손을 내밀다니, 폐쇄적인 북해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일이 꼬이는군.”
“현암에겐 환살이 있습니다. 북해의 사신이 아니라 천존이라도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사법을 좌도방문으로 매도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자들에게 현암은 치명적인 독과 같은 존재였다. 북해의 사신 따위가 문제가 될 리 없다.
잠깐.
돌아가는 정황이 너무 쉽다.
내부적으로 문제를 일으켰기에 북해와 사막은 교의 존재를 눈치챈 상태였다. 그런데도 사신을 보내고, 종적을 남겼다면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함정!’
현천군은 다른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위화감을 느꼈다. 이는 이성적인 판단과 본능이 동시에 울리는 경종이었다.
북해의 발 빠른 행동은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빗나가게 했다. 천존의 성향을 봐선 어울리지 않는 행보였다. 누군가 머리를 쓰는 자가 있지 않고서는.
그렇다면 이토록 허술하게 나오진 않았을 터.
“당했다.”
“함정이란 말씀입니까? 하오나, 현암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혈궁에서 북해의 제안을 들어줄 리 없지 않습니까?”
현천군의 판단에 백암은 당황했다.
현암은 완벽하지 않은 일엔 나서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섰다면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현천군의 노파심일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북해의 별인가 뭔가 하는 놈이 거슬리는구나. 놈이 나타나면서 돌아가는 사태가 이상해졌어. 북해의 사신이 놈이라면 상황이 달라지겠지.”
“저를 보내 주십시오!”
“안 돼.”
백암의 요청에 현천군은 고개를 저었다. 현암과 환살이 함정에 걸렸다면 그 이상의 전력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되면 현재 진행하는 작전이 흔들릴 수 있었다. 백암의 보고가 맘에 들진 않아도, 내막을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사막은 보류해. 우선은 문제의 시발점이 된 요인부터 제거한다.”
예상대로 함정에 빠졌다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자칫 교의 전력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연이어 꼬이기는 했지만, 현천군은 선후를 외면하진 않았다.
단, 이번 일만은 절대 실패할 수 없었다.
***
개방에서 보낸 연통을 받고 송호문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습격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단숨에 처리했지만, 이어지는 암습과 추격은 만만치가 않았다.
쩌어엉, 투아아앙!
천뢰폭을 연이어서 뿌렸다.
단련된 강맹한 권공이 뇌기와 뒤섞이며 폭발을 일으켰다. 나락처럼 어둠을 밝히는 휘광이 번쩍일 때마다 살벌한 광경이 펼쳐졌다.
후우우!
연거푸 권공을 출수했던 남궁연화는 심호흡을 한 후 천뢰무한을 펼쳤다. 한 무리를 처리했다고 방심해선 곤란했다. 겹겹이 포위 진형을 이루는 자들은 철저히 차륜전을 펼쳤다. 뚫고 나가려고 시도할 때마다 방향을 제어하는 암기가 쏟아졌다.
쌔애액!
그녀로선 습격자들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송호문에서 돌아온 후 무공을 재정립하지 않았다면 다섯 차례나 이어진 암습을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파아아앙!
방향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고, 추격하는 자들을 향해 천뢰신권을 뿌리며 접근을 불허했다.
파아앙!
거리를 벌렸다고 안심하는 찰나 남궁연화는 마주해 오는 기운과 충돌했다.
찌릿찌릿!
내지른 주먹이 저리다. 흘러들어 오는 패도무쌍의 기운에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이제까지 상대했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에 오른 자였다.
능히 강자라 불려야 마땅했고,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계집이 제법 대단하구나.”
“그러는 네놈은 대단한 사내놈이라고 해 줄까! 숨어서 암습이나 하는 쥐새끼가 어디서 대단한 척 지랄이야!”
“……?”
생김새와는 다른, 입에 담지 못할 폭언에 어둠 속에서 등장한 거구의 사내는 멈칫했다. 설마하니 명문정파의 금지옥엽에게서 이토록 쌍스러운 욕설을 들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하하하하, 이거 아주 재밌는 년이었군!”
“나는 하나도 재미없거든. 이거나 처먹엇!”
남궁연화는 대화를 차단하며, 질풍처럼 쏘아져 나가 권강을 발출했다. 뇌기를 잔뜩 머금은 권강이 일순 증폭하여 위력을 더한다.
-천뢰신권 중반식, 광뢰폭살(狂雷爆殺).
광기로 들어찬 뇌신의 분노를 연상케 한다. 휘광에 휩싸였던 뇌기가 폭사하면서 발출하는 빛의 광기가 시야를 교란한다. 어둠이 일순 빛의 포화에 물들어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냈다.
후아아아앙!
꽈아아아앙!
잠식해 버린 휘광 속 폭발력은 흉험했다. 살아 있는 자를 원하지 않았다. 흩어지는 빛과 함께 사라져 버리기를 기대했다.
쩌어어어엉!
남궁연화는 멈추지 않고 빛에 휩싸인 공간을 항해 나락을 떨어뜨렸다.
구뢰신(九雷神).
완전한 아홉 개의 나락이었으면 좋겠지만, 일곱 개를 완성했다. 이전 아홉 개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과 달리, 하나의 나락에도 완전함을 담는 데 주력했었다.
투아아아아앙!
쇠를 찢어발기는 파공성이 귀를 먹먹하게 하다못해, 혼을 승천시킨다. 사방으로 퍼지는 뇌기의 파편. 수목과 수풀이 부서지며 타들어 갔다.
후아아앙!
거세게 휘몰아치는 파문 속 하늘과 대지가 일직선으로 갈리며 빨려 들어갔다. 이어서 사방으로 퍼지는 가공할 기파에 공간을 휘젓던 뇌기가 삽시간에 진화되었다.
-패공도(敗空刀) 오식, 멸인(滅引).
공간을 다스리는 사내의 도공이었다. 거칠게 내지르는 일도양단에 압축되었던 공간이 기력을 잃고 소멸했다.
“확실히 보통 계집이 아니군.”
저 나이에 초절정만 해도 비슷한 연배에선 대적할 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한데, 대연화의 권공은 초입이긴 하나 화경에 이르렀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진전이다. 천재의 반열에 들어 괴물에 올라서려 하는 계집이었다.
어설픈 수를 썼다면 도리어 잡아먹혔을 것이다.
“나를 넘어서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그 말을 기다렸을까?
떼구르르르르!
대연화의 검공을 무력화하고 반격을 가하려고 했다. 사내는 발밑으로 굴러온 물체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이건.”
구체를 알아보기 무섭게 폭발했다.
푸아아앙!
슈슈슈슉!
남궁연화는 전력으로 권공을 펼쳤지만, 그건 이 순간을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았다.
방금 던진 암기는 당문에서 공수한 천뢰구였다. 기폭은 어렵지 않았다. 천뢰구에 연결된 가느다란 선에 뇌기를 주입하여 원하는 순간 폭발을 일으켰다.
천뢰구는 화약을 이용한 암기로, 폭발과 동시에 수백의 날카로운 강침과 파편을 쏟아 냈다.
쇄애애액, 타타타탕!
예상치 못한 암기의 포화에 사내의 근육이 팽창하듯 부풀어 올랐다. 이어서 도를 휘둘렀다. 일시에 수백의 선이 촘촘하게 그어지며, 거대한 장막을 이루었다.
솨솨솨삭!
도법으로 펼쳐 내는 궁극기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도막이었다. 초절정에 이르면 도막을 펼칠 수 있다고 하나, 이처럼 완벽한 도막을 펼치는 도법의 고수는 흔치 않았다.
허~~!
천뢰구를 도막으로 분쇄해 버린 사내는 어둠 속의 빈 공간을 보며 혀를 찼다.
“이거 제대로 한 방 먹었군.”
명문정파의 여인이 암기를 쓰는 것도 부족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튀었다. 정파의 무인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튀기 위한 사전 준비였던 것이다.
“훌륭하다.”
생사가 갈리는 전투에서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거는 자들을 사내는 어리석은 부류로 치부했다. 전장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자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일보를 내디뎠다.
사내의 신형이 한 줄기 섬전이 되어 어둠을 꿰뚫었다.
슈아아앙!
거리를 벌리려고 했던 남궁연화는 무섭도록 빠른 사내의 경공에 혀를 내둘렀다.
‘강해.’
빛으로 시선을 교란하고, 구뢰신으로 타격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는 절정에 달한 도법의 고수였으며, 감각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방어 후 방심한 틈을 타 당문의 금용암기인 천뢰구를 사용했다. 심각한 타격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줄 알았거늘.
‘게다가 빨라.’
천풍신법을 극성으로 펼치고 있음에도 거리를 벌리기는커녕 조금씩 좁혀 오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속도에서만큼은 자신이 있거늘, 사내의 경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직이야.’
남궁연화는 내력을 좀 더 끌어 올려 경공에 힘을 더했다. 상대와 속도전을 벌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내력과 체력의 소모가 심할 수도 있지만, 자신은 있었다.
‘그 인간보단 훨씬 나아!’
추격자가 강하기는 해도, 비교 대상은 괴물이란 단어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천재지변이었다. 그 인간과 추격전을 벌였던 때와 비교하면 아직은 할 만했다.
휙!
퍼어엉!
일례로 반월을 그린 도기가 등을 노렸지만, 남궁연화는 동물적인 반사 신경을 발휘하며 나아갔다. 당시에 겪었던 반월강기보다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슈아악!
서걱!
남궁연화의 주변이 숭덩숭덩 잘려 나가고 있었다.
사내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도기를 발출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초절정을 넘어 화경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