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74
273 괴의(2)
꽈아아아아앙!
무진의 권공과 괴의의 장공이 부딪치며 격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가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쿠다다당!
쏘아져 나가 바닥을 굴렀던 염 노는 대경실색했다.
팔성의 내력이 담긴 괴선장(怪仙掌)이었다. 집채만 한 바위도 가루로 흩어 내는 성명절기거늘.
우윽!
기혈이 뭉치면서 피를 토할 뻔했던 염 노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괴선장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부족해, 내력을 진탕시켰다. 나이가 어려 내력은 대단치 않으리라 판단했는데, 이제까지 만난 적 없는 절대강자였다.
“어라, 한눈을 팔면 안 되지.”
“이놈…… 커어어억!”
염 노가 일어나는 걸 무진은 순순히 지켜보지 않았다. 냅다 달려들어 염 노의 배를 발로 후려쳤다.
퍼퍼퍼펑!
쏘아져 나가자 수목들이 폭죽 터지듯이 산산이 부서지는 가운데, 무진은 염 노를 놓아주지 않고 정신없이 두들겨 팼다.
“깜찍한 수작을 부리네.”
염 노도 마냥 당하지는 않았다.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인 생사절명침(生死絶命針)을 발출했다. 팔목에 감아 놓은 발출형 암기지만, 평소엔 침을 놓기 위해 사용한다.
타타타탕!
무진에겐 통하지 않았다.
염 노의 수작 따윈 진작 알고 있었다. 그의 모든 수법이 눈에 익었다. 한번 경험한 무공을 써서는 무진을 이길 수 없다.
퍼퍼퍼퍼퍽!
무진의 권공이 불을 뿜었다.
커어어어억!
이 시대의 사상과는 어긋나는 노인 구타를 대놓고 저질렀다. 인정이라고는 섞여 있지 않은, 그야말로 무자비한 구타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흠.
유인책이었던 육칠과 철호는 노인 구타를 담담히 지켜보고 있었다.
“저 노인네가 괴의일 줄은 몰랐는데.”
“괴의가 누군데요?”
“무림에서 손꼽히는 사대명의야. 십팔 년 전 사라진 후 다들 죽었다고 알고 있었어.”
“오늘 죽겠네요.”
“죽일 거면 일격에 대가리를 부쉈겠지.”
사대명의는 생사신의, 약선, 지옥마선, 괴의였다. 이 중 지옥마선을 제외하면 괴의의 무공은 녹록하지 않았다. 신주이십일강에 꼽히진 않아도, 그가 펼치는 장법과 암기술은 정평이 나 있었다.
심술 맞은 성격 못지않게 실력도 좋아서 괴의를 찾는 이들이 많았었다. 특히 그가 만드는 단약은 효용이 좋기로 유명했다.
“어째서 만나자마자 패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걸.”
“이유가 있을까요?”
언제는 이유가 있어서 팼나? 그냥 맘에 안 들면 일단 패고 보는 사람인데.
육칠은 고개를 저었다.
맞아 본 사람은 안다. 저게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를.
“주먹에 감정이 실렸잖아.”
“우리가 모르는 원한을 샀나 보죠.”
“십팔 년 전이면 강 대협도 십대에 불과한데. 그때 원한을 맺어 봤자 얼마나 큰 원한을 맺었으려고.”
작정하고 두들기는 것으로 보아선 원한이 분명한데, 서로 간에 엮일 만한 연결 고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은거한 노인을 패고 싶었나?”
“독왕 어르신도 팼잖아요.”
육칠과 철호의 설득력 없는 개소리였다. 딱히 짐작이 가지 않지만, 굳이 말리진 않았다. 죽이려고 했으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
퍼억!
염 노는 처맞는 와중에도 반격의 몸부림을 쳤었다.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럴수록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무얼 하든 다 막혔다. 어떤 수를 써도 소용이 없는, 상대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제발…… 살려 주게!”
“그런 말은 암수를 쓰기 전에 했어야지.”
살려 달라는 말을 함과 동시에 숨겨놓은 또 다른 생사절명침을 쓰려던 염 노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악!
인적이 드문 장소라 소리를 지른다 해도 돌아오지 않는 소성에 지나지 않았다. 빠져나가기는커녕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게 생겼다.
퍼퍼퍼퍼퍽!
뼈마디가 시린 연세였다. 염 노는 몸이 부서져 나가는 극심한 통증에 몇 번이고 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염 노를 붙잡았다.
“난 이대로…… 죽을 수 없어!”
“그런다고 살려 줄 것 같아?”
“아픈 손자가 있네……. 제발…… 나는 죽어선 안 돼!”
“알아.”
안다고?
자신을 알고 손자를 안다면 놈의 수작은 뻔하다. 동정심을 유발하려던 염 노는 살의를 발산했다.
“이놈…… 호아를 해친다면 네놈을 절대…… 크억!”
“같잖은 동정심 유발하지 마. 난 그런 사소한 정이 먹히는 사람이 아니거든.”
무덤덤한 무진의 화답에 염 노는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살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였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수라의 장을 건넌 자들이 지닌 사신의 눈이었다. 이런 자에겐 인정 따윈 통하지 않는다.
퍼어억, 크어어억!
단발의 비명이 울린 후, 염 노는 추욱! 늘어졌다. 의식을 잃고 기절한 것이다.
탁탁!
무진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을 뻔했던 자들을 위한 위로였다. 미래에 죽었던 사람들은 매우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 편히 죽으면 또 안 되지.
“업어.”
“예, 사부.”
***
끄응!
통증을 느낀 염 노는 의식을 찾았다.
곧 끊어졌던 기억을 상기하며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뼈나 힘줄의 손상은 없었다. 흠씬 두들겨 맞은 것치고는 멀쩡한 편이었다. 혹, 손이 망가져 손자의 치료를 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었다.
“여긴?”
누워있는 장소가 자신의 침상이었다. 그러니 방 안이 눈에 익을 수밖에.
“네놈은?”
“왜, 여기서도 푸닥거리 좀 하게?”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염 노는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은 무진과 마주했다.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을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었다. 실력으로도 안 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몸은 이상 없을 거야.”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 밑에서 평생 봉사를 해 줬으면 좋겠어.”
“그런 가당치도 않은 개소리를!”
어처구니가 없어진 염 노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사람을 유인해서 정신이 나가도록 두들겨 패더니 평생 주인으로 섬기란다. 어느 누가 그딴 말을 들어주겠는가. 설령 힘으로 굴복을 한다고 해도, 반드시 앙갚음하리라 마음먹었다.
딸깍!
무진은 염 노가 분노하든 말든, 탁상에 올려놓은 상자를 열었다.
“이제 와 그딴…… 이건 설마?”
“화룡의 내단이야.”
화룡의 내단이라고 하자, 염 노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십수 년간 찾아 헤맸음에도 기약이 없었던 화룡의 내단이다. 기연이 아니고서는 찾기 어려운 영약이 눈앞에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
우웅!
화르르!
내력을 사용하여 내단을 활성화했던 괴의는 급히 멈추었다. 내단에서 발생한 염화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순수한 화정(火精)의 기운이었다.
염 노의 얼굴엔 분노는 사라지고 의문이 남았다. 평생을 찾아다녀도 손에 넣는다고 보장하기 어려웠던 화룡의 내단이었다. 양강의 무공을 익힌 무인에겐 그 어떤 보물과도 바꾸기 힘든 영약으로, 강호에 피바람을 불러올 수 있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어떻게 구했든 그게 무슨 상관이지? 이걸로 손자를 구할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그렇네만.”
“당연한 말이지만, 공짜는 아냐. 선택해.”
무진은 선택의 시간을 오래 주지 않았다.
상자를 닫으려고 하자, 염 노는 무릎을 꿇으며 급히 예를 갖추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강무진이다.”
염 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오래전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다. 손자를 치료해 줄 방도가 있다면 어떤 짓이든 하겠다고. 그에 비하면 평생 주군으로 모신다 한들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염 노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나 세세하게 알고 있다면 굳이 유인하여 팰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무엇이든 들어줬을 것이다.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으셨어도 저는 주군으로 따랐을 겁니다.”
“몰랐어.”
모르긴 개뿔!
내막을 알고 있는 마왕은 이번 일이 단순한 분풀이였음을 모르지 않았다.
-네놈은 양심이 없어.
“맞을 만했잖아.”
현재의 괴의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후일 화룡혈첩이란 엄청난 혈사를 일으킨다. 말 그대로 화룡의 내단을 얻기 위해서 무인들을 유인했고, 막대한 희생을 치렀었다.
이때 냄새를 맡은 마신교가 괴의를 돕는 바람에 무림은 엄청난 피해를 보아야 했다.
하나, 화룡혈첩도 괴의가 앞으로 행할 일에 비하면 약소했다. 그가 만든 마공단으로 마신교의 마인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약적인 내공을 얻었다.
게다가 절맥의 치료를 받은 괴의의 손자는 무림을 도륙하는 살인병기가 되었다.
구유마귀(九幽魔鬼) 염산호.
후일 악명이 자자했던 마인의 탄생을 알렸다. 괴의는 항상 손자의 옆에 있었고, 상당한 피해를 본 후에야 죽일 수 있었다. 특히 죽여도 죽여도 살아났던 끈질겼던 염산호의 질긴 생명력과 괴의의 마공단은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다.
마왕의 말대로 무진은 화풀이를 한 것이다. 아직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쪼잔한 짓을 했다.
그래서 뭐?
속 시원하게 두들겨 팼더니 개운했다. 자고로 앙금은 남기지 말고 해소해야 뒤탈이 없다. 무엇보다 무진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해도 괴의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금제를 가했으니까, 알아서 잘해야 할 거야.”
“손자만 살릴 수 있다면 독약을 주신다고 한들 달게 마시겠습니다!”
“흥,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치료하다 죽으면 책임을 돌릴지 누가 알아?”
“이 염 노, 올바르게 살았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다. 설령 제 손자가 치료를 받다 죽더라도 주군을 따르겠습니다.”
음?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미래의 괴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괴팍한 성향을 넘어 피를 부르는 혈선이 어울렸다.
-마정을 복용한 이상, 성격이 달라지는 것도 무린 아니겠지.
‘그렇다곤 해도 이 자식은 너무 심했다고.’
괴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림인을 잡아다가 생체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알고 지냈던 몇 안 되는 무인도 잡혀가서 마인이 되었다.
마신교의 마의와 함께 무림을 위해선 반드시 죽여야 하는 살생부 서열 상위에 오른 자다. 대의를 위해서라도 죽이거나, 갱생을 시켜야 했다.
‘순수하게 대의를 위해서야.’
-네놈의 입으로 대의를 논하다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구나. 순수는 개뿔, 사리사욕임을 내 모를 줄 아느냐.
마신교에 투신하기 전이라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긴 했다. 규모가 커지고 있는 만큼 가문에 의각이나 의당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한질에 걸리면 안 되지. 싸우기 전엔 몸 상태를 최고로 유지해야 하잖아.’
-괴의를 한질 따위를 치료하는 데 쓰겠다고?
‘이봐, 마왕! 우리 여리고 여린 유진이가 한질에 걸려서 고생하면 좋겠어?’
-내력이 오갑자인데 걸리겠냐?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 고수도 죽을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전에 미리미리 검진을 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