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76
275 새옹지마(2)
“사람 무안하게 자꾸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야?”
“부러워서.”
“대체 어디가 부럽다는 거야?”
“건강하잖아.”
철호는 빤히 쳐다보는 염산호가 불편했다. 살면서 느껴 보지 못한 선망 어린 시선이 어색하다. 자신이 부럽다고 하는데, 솔직히 염산호의 얼굴이 훨씬 부러웠다.
‘나도 저런 얼굴이면 좋을 텐데.’
염산호의 얼굴은 그야말로 송옥이나 반안의 뺨을 후려치고도 남을 미남이었다. 창백한 안색에 죽어가는 눈빛이 오히려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염산호의 부담스러운 시선에도 철호는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잘생겨도 스무 살 전에 뒈진다고 하면 부럽진 않으니까.
‘나도 저런 몸이면 좋을 텐데.’
염산호는 철호가 동년배란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반 배는 더 큰 키, 떡 벌어진 어깨, 자신의 허리보다 두꺼운 팔뚝까지.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는 옹골찬 근육으로 뭉쳐져 있었다. 일어서면 부러질 것처럼 연약한 젓가락 같은 자신의 육체와는 차원이 달랐다.
‘얼굴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런 염산호의 마음과 달리 철호는 며칠만이라도 저런 얼굴로 살아보고 싶었다.
‘세상은 얼굴이 전부야!’
철호를 잘 아는 육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놈도 제정신이 아닌데, 쟤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구음절맥을 실제로 보긴 처음이네.’
약관까지밖에 못 산다고 하는데, 구음절맥을 타고난 자들은 대개 십세 중반을 넘어가기 전에 죽었다. 역사를 봐도 오래 사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약관으로 명시한 것은 생명선의 최대치에 불과했다. 그래서일까? 구음절맥을 앓고 있는 환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완치되면 볼 만하겠군.’
구음절맥이 희대의 난치병임과 동시에 극복만 한다면 희대의 천재가 탄생할 수도 있었다. 병색이 완연했을 때도 부러워했던 철호가, 완치된 염산호를 보면 어떤 표정일지 내심 궁금한 육칠이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
전설은 전설일 뿐, 평범하게 살아만 가도 염산호로서는 감지덕지할 일일 것이다. 무림의 고수를 꿈꾼다면 지나친 욕심이었다.
만약 그리된다면 철호가 너무 불쌍해진다.
“우리 친구지?”
“내가 왜?”
“나 곧 죽을지도 몰라. 콜록, 콜록!”
“이 새끼가! 나한텐 그딴 협박 따윈 안 통해.”
“쩝, 아쉽다. 그래도 완치되면 우리 친구 하자.”
“어림도 없어.”
“너도 참 특이하다.”
“하나도 안 특이해. 이 몸은 아주 평범하다고! 어디가 특이하다는 거야?”
“원래 나 같은 환자가 부탁하면 웬만하면 들어주거든.”
“개수작은 다른 데 가서 해.”
염산호에겐 생소한 감정이었다. 재밌을 것 같아서 친구 하자고 했는데, 단번에 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보통 자신을 만난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부탁을 들어주곤 했었는데. 아주 신선한 반응이었다.
‘함께 다니면 재밌겠다.’
염산호의 바람과 달리 철호는 단호했다. 곧 죽을 사람처럼 창백하지만, 사부가 나선 이상 완쾌는 기정사실이었다. 지금도 저런데, 다 나아서 같이 다녀 봐라. 비교 대상이 될 게 분명했다. 아홉 번의 환골탈태를 하기 전까진 어림도 없다.
‘내가 더 잘생겨지고 말 테다!’
육칠은 의욕을 불태우는 철호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제발 쓸데없는 일에 의욕을 불태우진 말란 말이다.
‘이래서 천재들이란.’
따지고 보면 외모가 살인자라서 그렇지, 철호의 자질은 천재의 범주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태생적인 잠재력을 고려하면 범인에겐 자괴감을 느끼게 할 만한 자질을 갖추었다.
채채챙, 타아앙!
밖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이서정과 북궁혜가 한창 비무를 펼치고 있었다. 차후, 여검객의 신화를 달성하게 되는 여인들이다. 이서정의 일방적인 공세에도 간간이 보여주는 북궁혜의 반격은 나쁘지 않았다.
‘나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건가?’
육칠도 포기하고 싶진 않은데, 주변에 워낙 천재들이 발에 채고 있었다. 세상 살면서 몇 명 보지 못할 인재들이었다. 그런 천재들 옆에 있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졌다.
‘포기할 순 없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주님보단 강해지고 싶다. 전엔 몰랐는데, 당주님을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붉은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을 땐 나름 뿌듯했다.
‘모두 개방을 위해섭니다.’
포장하기도 쉽고.
사흘 후, 염산호의 치료를 하기로 했다. 그 전에 연습이 조금 필요한 상황이었다. 예정된 치료 방식과 다르기에 손발을 맞추어야 했다.
‘허, 준비한 도구가 필요 없어졌구나.’
구음절맥의 치료는 단순히 아홉 개의 절맥만 뚫어낸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굳어 있던 절맥에 뭉쳐 있는 음기가 전신 혈맥을 약화시켰다. 이를 전체적으로 활성화하려면 삼백육십 개의 혈을 동시에 자극해야 했다.
하나, 한 번에 가능한 시침이 다섯 개를 넘지 않았다. 염 노로서도 시간이 필요했으며, 막대한 내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된 침구와 받침이 무진의 개입으로 인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염 노가 한 일은 침을 놓을 자리, 혈의 깊이, 내력의 양을 알려 주는 역할이 전부였다.
“어때, 이만하면 준수한가?”
“준수하다 뿐입니까, 완벽합니다.”
연습을 위해 준비한 목각인형에 침을 놓았다. 단숨에 삼백육십 개의 침을 꽂고, 각각 다른 깊이로 내력을 집어넣었다.
보기엔 한순간에 벌어져서 쉬워 보이지만, 염 노는 대경실색했다. 침을 놓는 것은 자신도 하다 보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삼백육십 개의 침에 깊이, 내력의 양을 단숨에 제각각으로 조절하기란 불가능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인간인지, 괴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내력의 출회수였다. 허공섭물을 시전한 상태에서 침구의 통제까지 완벽했다. 의술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침술만 놓고 보면 당장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전설의 명의로 꼽히는 화타도 이 광경을 본다면 게거품을 물걸.
-누가 보면 네가 한 줄 알겠다.
‘내력을 보태 준 건 나다.’
-내력만 있다고 다가 아니다. 내력을 섬세하게 통제하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데.
‘오구오구, 그렇게 힘들었쪄요?’
무진은 침구를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신화마정갑을 정교하게 통제하여 작고 예리한 침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통제하는 역할은 마왕이 했다.
아무래도 항상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보니, 신화마정갑에 대해선 무진보다 마왕이 해박한 편이었다.
‘침구 하나하나를 완벽히 통제하다니, 이게 바로 이기어침인가?’
염 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검 하나를 통제하여 날리는 이기어검보다 삼백육십 개의 침을 다스리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통제해야 했다.
이뿐이랴, 목각인형을 허공섭물로 들어 올린 상태였다. 하나도 아니고, 몇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려면 무당의 양의심공을 극성으로 익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주공은 천인이신가!’
마치 자신과 손자를 위해 하늘이 내려 준 보물 같았다. 염 노는 경외감을 가질수록 무진을 경건히 대했다.
“이제 치료해 보자고.”
“주공의 은혜에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설령 호아가 잘못된다 해도 주공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불길한 소린 말고, 나을 수 있다고만 생각해.”
“아무렴요.”
감격한 염 노가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이자, 무진은 편견에 사로잡혀서 오판하지 않았나 돌이켜 보았다. 확실히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는 듯했다.
미래의 괴의는 살아 있는 인간의 오장육부를 갈라서 실험했던 인간이었다. 동일인으로 보기엔 괴리감이 지나치게 컸다.
‘이런 놈들이 꽤 있었지?’
-모두가 괴의 같지는 않을 거다.
무명이야 갱생을 하든 말든 큰 의미가 없겠지만, 유명하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하다못해 화공도 유명하면 파급력이 있었다. 집안에 금기서예(琴棋書藝)에 능한 사람이 있는 것도 괜찮고.
-적당히 해라.
‘내가 뭘?’
-이번엔 화선이냐?
‘그림이 정신 수양에 그렇게 좋대.’
-수양이 필요하면 널 지워라.
맹부삼천지교(孟父三遷之敎)라고 했다. 우리 딸 교육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도 없지. 유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황태자를 가르치고 있는 황사도 데려올 수 있었다.
염 노는 치료를 위한 방을 따로 마련했다. 구음절맥은 미세한 기운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완벽히 통제되고, 고립된 방이 필요했다.
“호아야, 걱정하지 말거라.”
“할아버지를 믿어요. 그리고 주군께 인사드립니다.”
구유마공을 익힌 희대의 마인 염산호를 떠올렸던 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의 염산호는 마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톡 쳐도 부러질 듯 병약한 모습에도, 걱정하는 염 노를 위해서 밝게 웃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죽고 못 살았다. 잘못되면 같이 묻어 줄까? 고민이 되었다.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맙습니다, 주군! 반드시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이런, 할아버지나 손자나.
무진은 낯간지러운 대화를 이쯤에서 끝내기 위해 서둘러 신선단을 복용하라고 했다.
꿀꺽!
염산호는 신선단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염 노는 곧바로 수혈을 짚어 염산호를 가사 상태로 만들었다. 신선단의 기운을 전신 혈맥과 세맥으로 돌리는 과정은 극심한 고통을 유발했다. 맨정신으로 버티라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몸에 못을 대량으로 박은 상태로 웃으라는 말과 진배없다.
두둥!
무진은 허공섭물로 염산호를 띄운 후, 신화마정갑을 침구로 변환했다. 속전속결,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치료 시간이 길어지면 환자의 심기체만 소모된다.
“한다.”
“예, 주공.”
무진은 배운 대로 염산호의 삼백육십 개의 혈에 침을 놓았다. 각각 다른 깊이와 내력으로. 주입한 내력이 굳어 있는 혈맥을 녹이며 내력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바탕을 쌓았다.
염 노는 아홉 개의 절맥을 침으로 다스리며 하나씩 뚫어 나갔다. 그럴 때마다 무진은 침의 내력을 조절해야 했다.
절맥이 풀리며 신선단의 약력이 순환할수록 흐름이 빨라졌다. 강약 조절을 끊임없이 해야 하기에 난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우우우우웅!
절맥이 뚫릴 때마다 기운이 발산되었다. 병색이 완연했던 염산호의 얼굴이 점차 붉어지며 혈색을 찾아갔다.
화화활!
신선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화룡의 내단이 지닌 화기가 절맥에 쌓인 한기를 녹여 내며 열기를 발산했다.
타타닥!
염 노는 전신 타혈을 통해 추궁과혈을 펼쳤다. 아홉 개의 절맥이 뚫렸다고 해서 끝나지 않았다. 굳어 버린 통로를 뚫어내고 주천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뚜드드드득!
한 번의 소주천을 이루자, 염산호의 신체가 변이를 일으켰다. 멈춰져 있었던 골격이 원래 나이로 돌아가는 현상이었다.
그렇다고 골격이 철호처럼 커지진 않았다. 자기 또래로 돌아가는 정도였다.
타닷!
절맥을 완전히 뚫어낸 후, 수혈을 풀었다. 의식이 돌아오려고 하자, 무진은 허공에 눕혔던 염산호를 내려놓고 가부좌를 틀게 했다.
“별거 아니고, 천무신결이야.”
“천무라면 혹, 천무자의 무공입니까?”
“그보단 더 좋겠지.”
“하면, 이건 신화마정갑이군요.”
신화마정갑이 보갑 중의 보갑이란 말을 들었지만, 이처럼 자유자재로 변환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염 노였다.
“어찌 이 귀한 무공을?”
“괜찮아. 보급형니까.”
“아…… 그렇군요.”
“보급형이긴 해도 성취는 개인의 역량이겠지.”
천무신결은 천무자의 천무진경과 북해성의 북천신결을 조합해서 창안한 새로운 결의 심공이었다. 보급형이라 희소성은 떨어지지만, 여타의 무공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오성까지는 보급형에 걸맞게 익히기 까다롭진 않으나, 그 이후부터의 성취는 아예 다른 영역이 되어 버린다.
우우우우웅!
이를 증명하듯 육신에 새겨진 대로 진기를 운용하게 된 염산호의 육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신선단의 복용으로 얻은 삼갑자의 내력에, 기존에 몸에 품고 있던 영약이 합쳐지면서 단숨에 경지를 뛰어넘었다.
“난 간다.”
“……아! 예.”
천무자의 진본이 아닌 줄 알았던 염 노는 손자의 성취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말로는 보급형이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절세신공이었다.
천고의 신공을 일면식도 없는 손자를 위해 내어 준 주공의 담대함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으로선 감히 잴 수 없는 큰 그릇이었다.
-사기 치는 수법이 나날이 느는구나.
‘상대에 따라 다른 거지.’
치료실에서 나온 무진은 꽤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었다. 꽉 막힌 고립된 공간을 벗어나자 신선한 기운이 몸 안으로 스며들어 와 활력을 채웠다.
‘좀 힘드네.’
-당연한 일이다.
마왕의 위로에도 무진으로선 부족함을 체감하게 되었다. 고작 천년 내력을 반나절 썼다고 지친 기색이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더욱 완벽해지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그렇다고 내력만 소모하진 않았다.
구음절맥의 치료를 통해 내력의 순환을 확장하고 팽창할 방법을 찾아냈다. 후일, 폭발적인 힘이 필요할 때 구명절초로 사용하면 괜찮을 듯싶다. 그런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지만, 준비는 해야 했다.
철호가 방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 그새 정이라도 든 게냐.
“사부, 그 새끼 더 잘생겨졌습니까?”
“……?”